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소설집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지음, 이승학 옮김 / 섬과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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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읽어서는 안 되고, 빨리 읽을 수도 없는 책이다. 짧고 처연한 생이 자아낸 문장들을 좇다보면 헛헛하고 서글픈 마음이 차오르고, 이 애수와 연민을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태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완독 후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표지만 봐도 여전히 애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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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팀 오브라이언 지음, 이승학 옮김 / 섬과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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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언젠가 꼭 가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더욱 애틋하고 간절한, 꿈 같은 이상향(낙원)을 심어주었다. 그 이야기를 떠올리고 그곳에 머물면 이내 마음이 놓인다. 무표정으로 말 없이, 강처럼, 늦여름 태양처럼, 신처럼, 완전한 침묵 속에서 나를 지켜보는 엘로이 버달과 팁 톱 오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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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진이빵 2026-06-02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왜 때문에 이 책이 아름답고 서글프고 위안이 되는 지는... 읽어보면 안다.

국진이빵 2026-06-02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또 다른 한 장면,

‘매표소에서 린다가 저만치 떨어져 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매점으로 건너가 단것을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우리 둘은 어색하게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매우 주의를 기울였다. 그것으로 우리는 서로가 사랑에 빠졌음을 알았다. 순수한 앎이었다. 우리 중 누구도 그 단어, 사랑이라는 단어를 쓸 생각 안 했을 테지만, 서로 보지 않고 대화 나누지 않는 사실로써 우리는 둘이서 거대하고 영속적인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음을 언어를 떠나 투명하게 이해했다.‘

그렇다. 자고로, 침묵이 금인 것이다. 린다도, 화자도, 독자인 나조차 숨 죽여 엿듣고 설레버린 바로 그 침묵...
 
여자에게 약한 남자
리차드 포드 지음, 한기찬 옮김 / 프레스21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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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자에게 약한 남자>, <질투>, <서양인들> 세 편의 중편이 실려있다. 세 편 모두 고르게 좋지만 <서양인들>은 페이지마다 걸려 넘어지는 압도적 수작이다. 난 정말이지 리처드 포드가 싫다. 이 빌어먹을, 남일 같지 않은, 꼬리 긴 동질감은 더 싫고. 이런 책이 절판인 건 더더욱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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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진이빵 2026-05-31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 속 화자들이 제아무리 여색을 탐하고, 변덕스럽고, 망상 자가분열증후군 말기에 겉과 속이 다른 구라쟁이 중년 남자일지라도, 독자인 특권으로 나는 화자의 속내를 수박 속 파먹듯, 씨까지 야무지게 발라먹을(훤히 들여다볼) 수 있으므로 괜찮다. 독자인 나를 기만할 수는 없으니까. 그들 모두가 그저 잔망스럽고 애틋하고 귀여울 따름이다. 이 책은 조만간 감상을 길게 적어야겠다.

국진이빵 2026-05-31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질투>는 청년 화자가 주인공인데, 침대에 누워 방 불 켜기도 귀찮아 휴대폰 후레시 비춰가며 읽다가 결국 일어앉게 만듬…
 
보라색 커튼
김유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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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자전적 소설. 정신 병원이 배경인데다 화자의 정서 또한 암울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읽으면서 응달에 기어드는 볕 같은 위로를 받았다. 내 양친의 기질을 합쳐서 빼다박은 화자가 측은했고, 마음이 눅눅한 시기에 읽어 더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선물로 주어놓고 금방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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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진이빵 2026-05-29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처음 읽은 장소(이제는 없어진 대전 탄방동 24시 복층구조 베이커리 카페, 빵과 커피 맛 둘 다 평균 이하로 형편없었지만 -낮 동안은 줘도 안 갈-올빼미 독서가 가능한 유일한 장소였어서 자주 감)와 시간(자정 무렵), 책을 읽는 동안 서서히 휩싸인 신체적, 심적 동요, 책을 덮은 뒤 남겨진 마음 상태(깊고 어둡고 적막이 흐르는 심해를 속수무책으로 떠다니다 내 몸 하나 겨우 누일 만 한 섬에 기어올라 볕을 쪼이는 듯한)까지도 애틋할 만큼 나에게는 각별한 책이지만, 이 감상과 공명은 오직 내 것일 뿐, 타인에게는 이 책이 전연 무감하게 읽힐 수 있으리란 소침에서 기인한 후회.

국진이빵 2026-05-29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팡이 쓸어서 지금은 버렸지만, 작가의 단편집 <어메이징 그라스> 속 몇몇 단편들도 좋았다.
 
나의 특별한 동물 친구들 - 폭식하는 알바트로스와 히치하이커 애벌레
제럴드 더럴 지음, 김석희 옮김 / 우리학교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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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을 보호한 공로로 대영제국 훈장도 받은 동물학자 더럴이 1930년대에 그리스의 작은 섬 코르푸에서 가족(엄마, 큰 형 래리, 작은 형 레슬리, 누나 마고, 애완견 로저)과 섬에서 만난 주민들, 동물, 곤충들과 함께한 어린 시절을 회상하여 쓴 책. 진솔하고 유쾌하며, 풍요와 신비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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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진이빵 2026-05-27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초에 읽은 책들 중 유일하게 별 다섯을 매겼다. 읽는 내내 즐겁고 행복했다.

국진이빵 2026-05-27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 구성원 중 큰 형 래리는 알렉산드리아 사중주를 쓴 소설가 ‘로렌스 더럴‘로, 제럴드 더럴은 소설가인 형의 제안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데 형 못지 않은, 심지어 더욱 맑고 순수하고, 보다 전인적인(인간의 세 가지 심적 요소인 지성, 감정, 의지가 원만하게 균형 잡힌 인격을 지닌) 인간미가 느껴지는 필력을 뽐낸다. 필력도 결국 유전의 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