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짐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66
조셉 콘래드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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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모임에서 읽으면 할 말이 무척 많겠다. 두어 시간으론 택도 없고, 책 속 화자 말로처럼 듣는 이가 질려버릴 정도로 끝없이, 빽빽하게 떠들 수 있을 것 같달까. 묘사가 어찌나 생생한지 읽으면서 닭살 여러 번 돋았다. 어둠의 심연보다 흥미롭게 읽었으나 짐의 죄의식 과잉에는 끝끝내 공감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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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진이빵 2026-10-21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노트 이 소설이 처음 책의 형태로 나왔을 때, 작품이 나를 이끌었다는 말들이 있었다. 어떤 평론가들은 단편소설로 시작된 이 작품이 급기야 작가의 통제를 벗어나 버렸다고 주장했다. 그 가운데 한두 명은 그 사실을 뒷받침하는 내적 증거를 찾아내고 흥미로워 하는 듯 했다. 그 사람들은 서술 형식의 한계를 지적했다. 한 사람이 그토록 오랜 시간 혼자서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은 내내 그 이야기를 듣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런 상황은 그리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약 16년을 이 문제로 숙고해 보았지만, 아직도 그 주장에 수긍이 되지 않는다. 열대와 온대 지역 사람들은 밤늦게까지 자지 않고 모험담을 주고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소설에는 하나의 모험담만 담겨 있으며, 숨 돌릴 시간을 주기 위해 몇 차례 중단되기도 한다. 듣는 이들의 참을성에 관해 말하자면, 이야기가 <흥미로워야 한다>는 조건만 충족하면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는 처음부터 가정되는 필수 사항이다. 재미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나는 애초에 이 이야기를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의문도 있겠지만, 의회에서는 연설이 세 시간을 넘어 여섯 시간 가까이 걸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안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말로의 이야기가 차지하는 부분은 세 시간 이내에 낭독될 수 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뿐만 아니라, 내가 이 이야기에서 사소한 세부 사항을 모두 엄격히 배제하긴 했지만, 그날 밤 다과가 준비되어 있었고, 또 이야기하는 이가 중간중간 마실 수 있도록 광천수도 한 잔 있었으리라 가정하는 게 좋겠다. 하지만 솔직하고 진지하게 말하자면, 내가 처음에 생각한 건 단편소설이었고, 순례자 수송선 에피소드만 다루고자 했을 뿐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합당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몇 쪽 쓰고 나자 무슨 이유에서인가 만족스럽지 않았고, 한동안 그 원고를 제쳐 두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윌리엄 블랙우드 씨에게서 자기 잡지에 뭔가 기고해 주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고서야 그 원고를 서랍에서 꺼내 보았다. 그렇게 다시 원고를 꺼내 보니 순례자 수송선 에피소드가 종횡무진하며 자유로이 전개될 이야기를 펼칠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 에피소드라면, 순박하고 예민한 한 인물에 담긴 모든 <실존의 감상>을 채색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출발점에 담긴 준비 단계의 모든 감정과 정신적 동요가 명확하지 않았고, 그 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더 분명해진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제쳐 두었던 그 몇 쪽의 원고가 주제 선택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부분을 작심하고 다시 썼다.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 긴 소설이 될 거라는 건 알았지만 잡지에 13회나 연재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읽으면서 당시 평론가들의 심정을 똑같이 느꼈지만, 잡지에 13회에 걸쳐 연재 된 소설이었다고 하니... 참작해드림.

국진이빵 2026-10-21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반으로 갈수록 솔직히 좀 지겹긴 했음. 동일한 서술 방식(1인칭 독백)으로 쓰인 걸작 스티븐 킹의 <돌로레스 클레이본>을 숨 넘어가게 재밌게 읽었던 독자로서...

국진이빵 2026-10-21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탈리아의 한 여성 독자가 이 소설을 싫어하는 이유를 들어 <그 소설은 너무나 병적이거든요>라고 말했단다. 조지프 콘래드는 저 혹평이 유감스러웠다지만, 저 여성 독자가 느낀 감상이 뭔지 잘 알겠다. 내가 느끼기에도 짐의 죄 의식은 과도한 편이다. 여튼, 저자의 필력에는 확실히 압도되어 <노트스로모>도 곧 읽을 예정. 그 소설은 더욱 재밌길 바라!
 
줄라이, 줄라이
팀 오브라이언 지음, 이승학 옮김 / 섬과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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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시기와 타이밍에 읽어서 더 그랬을 지 몰라도 인물들의 이야기가 하나같이 내 경험, 내 사연인 양 마음에 와닿았다. 이 책의 각주 덕분에 좋아하는 소설(it)에서 주인공이 애착 자전거 이름을 실버로 짓고 탈 때마다 ˝이랴, 실버!˝하고 외친 게 론 레인저의 백마 오마주였음을 알고 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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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진이빵 2026-10-08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구나무 서서 읽더라도 팀 오브라이언의 목소리로 읽힐 만큼 찰진 번역과 친절한 각주.
 
오늘부터 우리는!! 1~19 세트 - 전19권 (완결) - 애장판
히로유키 니시모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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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물 없이 고구마 먹은 것처럼 팍팍할 때, 내 방 책장 상석에 오랜 세월 당당히 꽂혀있는 이 만화책을 직접 꺼내 읽거나 이 만화를 읽을 때마다 몇 번이고 으레 무아지경으로 배 잡고 낄낄거리는 나 자신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 숨통이 트이고 사는 게 우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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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에 관하여 (20만 부 기념 완결판) -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임경선 지음 / 토스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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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지인이 인생 책이라며 강력히 추천해주어 읽었지만 정말 식상하고 별로여서 노여웠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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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진이빵 2026-09-17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이 넘도록 여러 차례 개정까지 되어가며 계속 팔리고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국진이빵 2026-09-23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점에 별을 하나만 줬더니, 이렇게 야박한 인성을 가진 독자가 대체 누구인지 궁금해 하는 방문자들 덕분에 일일 서재 방문자 수가 난생 처음 보는 숫자를 찍었길래 별 한 개 더 주었다... 도긴개긴이지만. 아무튼 이 책이 (나에게는) 매우 별로였던 것을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일개 독자 나부랭이의 취향과 평가에 너그러운 무관심을 부탁 드림...
 
어른도 길을 잃는다 - 창비장편소설
박정요 지음 / 창비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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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소설, 숨겨진 명작, 엄청난 행운, 그야말로 대박이네요! 다른 독자들의 백자평에 한 술 더 떠 외쳐본다. “찌찌뽀오오옹!” 행남이가 보고 듣고 겪고 깨우치는 모든 것들이 어찌나 순수하고 애틋하며 생생하게 와닿는 지. 다 읽고 헤어나오기 힘들었다. 애늙은이 행남이도, 투병 끝에 작고하신 작가님도, 나만 읽기엔 정말이지 너무 너무 아까운데 절판인 이 책도 갈비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강한 힘으로 와락 끌어안고 싶다. 마침내 내가 없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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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진이빵 2026-10-22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세요 제발. 작년에 읽은 책들 중 단 한 권만 꼽자면 손창섭의 <유맹>, 올해는 이 책이 될 것 같다. 말하면서도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는 이유는 올해가 아직 4개월이나 남았기 때문이다. 확신은 보류하겠지만 낭중지추,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느껴질 만큼, 뱃속이 뜨끈해질 만큼 압도적으로 좋았다. 작년엔 손창섭 작가님을 알게 된 것이 복이었다면, 올해는 박정요 작가님을 알게 된 것이 복이라 여기면서도 더 읽을 그녀의 책이 없다는 사실에 마음도 길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