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무분별하고 분열증적인 성향이 다분한 나에게
좋아하는 작가를 묻는다면
죽죽 이름을 대다가 배수아, 에서 잠시 머뭇거리곤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반응을 기다리는 묘한 시간.
그리고 다시 결심. 나만의 애정을 은밀하게 간직하리라..
<훌>을 손에 넣고 표지를 쓰다듬다가
명절 후 유난히 붐비는 출근 지하철에서 페이지를 넘긴다.
회색 時.
회색 옷을 입고 회색 벽에 기대어 선 나를 회색으로 덧칠하는 시간.
나도 모르게 지금은 없어진 예전 홈페이지에
배수아 작품에 대해 아래와 같은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리고 어느 기자가 배수아에 관한 기사를 쓰면 '무단'으로 인용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나의 느낌은 지금은 유효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간직하고픈 흔적.
주인공들은 전혀 사회에 관심도 없고, 혼자 잘 놀고, 어쩌면 아무 생각 없는, 도대체 왜 사는지 모르는, 사실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절대 친해질 것 같지 않은, 오히려 저런 사람은 이 사회의 변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회색분자들이지, 하고 욕을 할 그런 인물들이다. 배수아의 글은, 그리고 등장인물들은 무표정하고 무책임하고 충동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탈적이라거나 실패자들이라거나 그렇게 말할 수도 없다. 그런 것들도 어쨌거나 이 사회, 부르주아의 도시, 검은 무리의 늑대들이 어슬렁거리는 이런 도시를 깔끔하게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방법일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