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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요리를 먹는 여자 - 개정판 ㅣ 생각의나무 우리소설 7
송혜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식당에 가면 항상 먹던 것만을 시켜 먹게 된다. 게다가 고급스러운 레스토랑 등에는 가본 적도 없고 별로 가고 싶지도 않으며, 맛있는 집을 열심히 찾아다니는 미식가도 아닌 것은 예민하지 않은 둔하고 펑퍼짐한 내 성격 탓일 것이다. 식욕이란, 그리고 혀도 느끼는 감각이란 인간이 누리는 하나의 특혜와도 같을 것이다. 경박하게 말하면 '배가 부르니' 미각을 통한 욕망의 분출도 찾게 되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한편으로는 신비롭고 풍부한 감각인 것도 분명하다.
<이태리 요리를 먹는 여자>를 읽게 된 건 우선 서점에서 특이하고 세련된 장정에 끌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다지 꼭 읽어야겠다고 끌렸던 건 아니다. '엑조티즘'과 '댄디' 같은 정말 낯선 특징을 나타내는 카피도 그랬고 등단한 지 10여 년만에 처음 소설집을 묶어내는 작가의 약력도 그랬고, 괜히-나쁘게 말하면- 겉멋이 든, 상류층 취향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벨벳'의 느낌 그대로.
작품들은 내내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 어울리지 않게 초대되어 안 맞는 옷을 입고 낯선 이들과 발음도 어려운 음식을 먹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체할 것 같은 거북스러움이라기보다는 아,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소녀의 경이로움.
호수 옆의 예쁜 집, 그 안에서 벌어지는 나른하고 위태로운 사건들, 향기로운 차가 놓인 탁자 앞에 앉아 정원을 내다보는 중년 여인의 권태로운 눈빛들... 이런 것들이 구차하진 않지만 끔찍스럽게, 비현실적이지만 아름답지도 않게 그려지고 있다.
'앤틱'의 물건들을 좋아하는 주인공(또는 작가)의 취향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도피하지도 못하는 몇몇(결코 다수의 보편적인 상황은 아니다) 여인들의 과거지향적인 굴레를 보여주는 것 같다. 어느 작품인가와 비슷한 표제작도 그런 대로 좋았고, <거울이 놓인 방>이나 <먼 옛날부터 당신을 기다렸다>도 괜찮았다.
그래도 점수를 많이 주지 못하겠는 건, 다분히 자기도취적이고 유아적으로 보이는 '작가의 말'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