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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 세계사 1 - 베르사유의 장미에서 피의 백작부인까지, 우아하고 잔혹한 유럽 역사 이야기 ㅣ 풍경이 있는 역사 1
이주은 지음 / 파피에(딱정벌레) / 2013년 10월
평점 :
역사를 지독하게도 싫어했던 학창시절. 나이 서른 먹도록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만화를 통해 접했던 내용들이었다. 퀴리부인, 나이팅게일, 라이트형제, 나폴레옹, 베르사이유 장미를 통해 본 루이18세와 마리 앙투와네트 이야기 사실 그 외에 내가 아는 내용이 없다.
중세 유럽이라고 하면 정장을 입은 남자가 펑퍼짐한 드레스를 입은 아리따운 여성에서 다가가 손에 입을 맞추고 춤을 덩실덩실 추는 것? 그정도?? 우리나라 초가집과는 다른 생활을 했다는 것 정도밖에 없다.(사실 남자 입장에선 중세 유럽이라면 갑옷입고 말타고 창싸움 칼싸움 하는 쪽이 더 이해하기 쉽다)
우리나라 역사만 해도 그렇다. 나의 역사적 지식은 빗살무늬 토기와 비파형 동검, 그리고 잔무늬 거울을 지나가면서 모든 기억을 상실해 버렸다. 서론이고 노론이고 아는 내용은 TV 드라마에 나오던 이순신이나 대조영, 태조왕건 이 정도 뿐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들의 삶보다는 그 주변에 나오는 설인귀라던가 '내 아우 수달이가 죽었어!!'라고 울던 견훤, 그리고 대조영과 뜨거운 사랑을 나눴던 몽골 여인.. 등등 잡스러운 것만 기억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아는 지식이 이 정도일진데 서양사는 어쩌겠는가. 그야말로 바닥에 바닥을 치고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역사가 이토록 재미없었던 것은 일련의 사건 안에 들어있는 역사적 진실은 가르치려 하지 않고 무조건 외우라는 교육방법이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뭔가 이해가 되어야 외어질텐데 난 외우질 못했다.
역사라면 치를 떨고 살던 내 눈에 2013년 연말, 잠실역 교보문고에서 기술사 책을 보려고 어슬렁거리다 발견한 하나의 아리따운 여자가 그려진 책 하나. 이름하야 스캔들 세계사. 여자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로써는 여자 이야기 많은 책을 좋아하는데 딱 내 취향에 맞는 책을 발견하였다. 게다가 제목이 무려 스캔들이라니! 세계사 스캔들이라니!! 요거 알면 이야깃거리가 좀 되겠는데? 하고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읽은 결과는 대만족.
요 몇 년 전부터 인테리어든 건축 구조물이든 지중해 생활양식이라 불리우는 프로방스 스타일이 각광을 받고 있다. 그것이 마치 유럽에서는 잘사는 사람들이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던 아름답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생활양식이라고 생각했지만, 스캔들 세계사를 통해 들여다본 중세 유럽사회의 모습은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 책 page. 96. 8편, 중세유럽에서 남자로 태어났다면?
"키우는 가축들은 밤에는 모두 집안으로 들여옵니다. 냄새 좀 참지 않으면 닭이든 소든 돼지든 밖을 어슬렁거리는 굶주린 늑대며 여우며 곰같은 온갖 포식자들이 다 잡아먹어버립니다. 가구가 없기 때문에 모든 생활은 바닥에서 했습니다. 흙바닥에 건초 깔아놓고 자고 흙바닥에서 밥을 먹고 화장실 대신 통 하나를 두고 거기에 볼일을 보았습니다."
도시에 사는 자유민들은 오물이 가득한 요강을 창 밖으로 버리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프로방스 스타일의 아름다운 아치 모양의 나무 창문으로, 빨간머리 앤이 턱을 괴고 웃고 있을 그런 곳에서 요강에 담긴 똥오줌을 밖으로 그냥 버렸다고 한다. 또한, 씻는 것이 불경스러운 것으로 여겨져 위생상태가 불량하였고, 그러한 생활양식은 흑사병을 부르는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이었다.
- 책 page. 77. 7편, 중세유럽에서 여자로 태어났다면?
" 해가 빨리 뜨는 여름은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계절입니다. 해가 빨리 뜬다는 것은 그만큼 더 빨리 일어나야 한다는 뜻이고, 그러면 당신은 한여름에는 새벽 3시부터 하루 일과를 시작해야 합니다.... 식사 준비가 끝나면 온 가족을 부릅니다. 다들 맛있게 먹네요. 잠깐! 당신은 기다려야 합니다. 여자니까요. 아이들과 남자들이 다 먹고 난 후 남은 게 있다면 먹고, 없다면 굶습니다."
낭만적이고 사랑스러운 삶을 살았을 것 같은 중세시대는 일반인들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힘든 시대였다. 낮이고 밤이고 쉴 시간이 거의 없었고, 오죽했드면 평균 수명이 40대 초반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반인의 이런 고달픈 삶과는 달리 귀족들의 삶은 여유가 넘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실인가 보다. 단지, 지금은 과거에 비해 인권이 신장되었다고 할 뿐, 돈 많은 사람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건 변함이 없었다.
백설공주 이야기 편에서는 이야기 속에 담겨진 시대상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야기 하나하나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 독사과를 먹고 죽은 공주 시체를 사려는 왕자, 계모를 죽이는 백설공주의 잔인함까지.
이 밖에도 중세 남성과 여성이 어떻게 살아갔는지에 대한 이야기, 아들을 낳아 후계자를 잇고 싶어했던 헨리 8세가 여섯명의 여자를 갈아치운 이야기, 마녀로 몰려 죽어갔던 수많은 과부들을 통해 중세시대의 어두운 단면도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코르셋, 퐁탕주, 칼라 등 패션아이템으로 당시 유행했던 의복의 유래와 전파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하고 있어, 중세 유럽의 사회상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이야기로 풀어씌였다.
"역사를 이야기 형식으로 가르친다면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다."
재미는 흥미를 불러 일으키고, 흥미는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 관심은 나아가 해당 분야에 대한 집중을 하도록 할 것이며, 그러한 집중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채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역사책과는 달리, 재미없고 외우기만 해야 했던 역사를 역사적 증거와 자료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로 풀어쓰면 얼마나 쉽고 재미있게 역사에 다가갈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진짜 도움이 되는 역사 지식은 단편적인 연도 나열이 아니라, 당시 생활상, 사회상, 가치관에 대한 정확하고도 자세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의 블로그에서는 이 책에 수록된 내용이 신세대 언어로 좀 더 개성 넘치고 재밌는 언어로 풀어 씌여 있어, 책에서 읽는 것과는 또다른 신선한 느낌을 주고 있으니 직접 확인해보기 바라며, 역사란 것이 해석하는 사관에 의해 변화될 수 있는 것이지만 이 책처럼 사실만을 전달해주는 책이 있음에 감사하며 더 유익하고, 재밌고, 도움되는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 더 많이 발간되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