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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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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어의 공동체로부터 떠어져 다른 언어 공동체로 유랑해간 디아스포라들, 그들은 새롭게 도착한 공동체에서 항상 소수자의 지위에 놓여, 거의가 지식과 교양을 익힐 기회마저도 박탈당한다. 그런 곤란을 극복하고 언어를 쓸 수 있게 되더라도 그것을 해석하고 소비하는 권력은 언제나 다수자가 쥐고 있다. 그 호소가 다수자에게 편안한 것이라면 상대해주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차갑게 묵살해버리는 것이다.

<디아스포라 기행-추방당한 자의 시선>(서경식, 돌베개 刊) 231쪽

마침 어제 신문(한겨레, 2007.7.10)에는 선관위의 재외국민의 올 대선 투표가 어렵다는 기사가 실렸다.  관계부서인 중앙선관위는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결국은 당리당략으로 인해 공전된 국회로 인해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이 쥐어지는 역사적 사건이 좀더 시간을 두고 기다리지 않으면 안된다.

기사의 외통부 정보에 의하면 재외국민은 285만명이 나가 95만명이 재외국민으로 등록하고 2, 3세의 교포들은 신고를 안한 경우가 많다며 대상 파악에 분주한 듯 하다. 이것이 우리 정부의 현주소다. 최근까지 그들을 국민으로 포함시킬 생각을 전혀 갖지 않았던 나라. 정말 아름다운 나라다.

285만명. 그러나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의 어느 페이지에선가 600만명으로 적은 것이 언뜻 기억난다. 그러고 보면 딱 절반만 재외동포로 보는 것이리라. 그 차이가 나는 300만명에는 누구 포함이 될까? 아마도 재일조선인 사회에서는 총련계 동포들이 그쪽으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디아스포라와 나. 나는 서경식의 이전의 책과 지금의 <기행>을 읽으며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혹시 서경식의 말대로 나도 다수자의 입장에서 내 입맛에 맞는 대로만 상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디아스포라는 연민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실존이다. 다수의 사람과 권력에 의해 두 번 세 번 이산(離散)을 경험하는 그들은 실존이다. 이번 일본행에서 히로시마 조선인학교를 반드시 찾았어야 했다. 그래서 그 디아스포라들의 실존을 만나서 확인해봤어야 했다. 그러나 왜 그러지 못했는가?

시간을 쪼개고 나눠서라도 갈 수 있었을 곳임에도 가지 못한 것은 어쩌면 아직도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정치적 현실, 사회적 편견 이런 것들을 아직 내 마음 속에서 털어버리지 못하고 보신하는 것은 아닐까.

서경식의 일련의 디아스포라 보고와 일본의 조선인학교에 대한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나는 흔들리고 있다. 그 내적 분열과 확산은 건강한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라고 애써 위로해 본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2007. 7. 11 오후 이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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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의 일본견문록
강재언 지음, 이규수 옮김 / 한길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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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이처럼 260여 년에 걸친 에도 시대 교린의 역사에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이라는 역사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양국 사이의 관계는 결코 평탄한 길이 아니었다. 이 책을 읽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교린의 원점, 즉 신의(信義)와 성신(誠信)의 정신으로 돌아가 온갖 장애와 어려움을 극복한 양쪽의 노력이다. 
 
그 전형적인 사례는 히데요시의 '왜란'을 '교린'으로 전환시킨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결단이다. 또한 쓰시마 번의 '야나가와 사건'을 처리한 제3대 쇼군 이에미쓰, 아라이 하쿠세키에 의한 '국휘논쟁'의 후유증을 처리한 제7대 쇼군 요시무네의 지도력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에도 시대의 조선과의 교린사는 도쿠가와 막부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래서 막부의 권위가 쇠퇴하기 시작한 19세기 전반기에 이르면 교린의 역사 또한 흔들리기 시작했다.(하략)


<조선통신사의 일본견문록> (강재언, 2005년 한길사) 344~345쪽

전공적인 관심으로 대마도 관계 가벼운 서적을 몇권 읽어봤지만 집중을 하지 않아서인지 머리에 남은 것이 별로 없다. 고작 동래부와 대마번 사이의 표면적인 외교관계만을 되뇌이는 나를 보며 어디가서 대학원생임을 떳떳하게 밝힐 수 없다.

강재언 선생은 도쿠가와 막부 이후를 다루지 않아 인용되지 않았지만 외교문서를 통해 보면 한일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일본측 외무성과 대마도의 외교권 선점 다툼으로 꽤나 복잡다양했음을 대략 알고 있다.

사실 이런 것을 볼때 우리의 역사자료라는 것이 우리의 것보다 일본의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우리는 왕에게 올리는 글과 문집정도가 남았을까. 이에 비하면 기록적 가치를 볼때 일본의 철두철미함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의 선두에 선 것은 대마도주였다. 그러나 도요토미의 사망과 조선침략의 실패, 그리고 장인 고니시 유키나가의 패배가 있었음에도 새오운 정권은 도쿠가와 막부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대마도주 소가(宗家)집안을 보면 일본의 조선외교에서 대마도는 버릴래야 버릴수 없는 중요한 가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양국의 외교관계에서 아라이 하쿠세키 같은 인물들이 결국은 교린이라는 벽을 넘어 우월성을 내세우며 다시 한번 도요토미가 실패한 이후를 꿈꾸게 되는 것이리라.


2007. 5. 25 이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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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과 국민 사이 - 재일조선인 서경식의 사유와 성찰
서경식 지음, 이규수.임성모 옮김 / 돌베개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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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말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작업일까? 그리고 시란 또 무언가? 그것은 적어도 우리 재일조선인에게는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문제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물었다. 또 근대에서의 '패배' 경험을 살려 미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전망을 탐구하고 있다. 설령 그것이 '패배의 미학'처럼 보일지라도.

<난민과 국민 사이> 서경식(2006, 돌베개) 75쪽 중에서

한겨레 금요 섹션에는 비정기적으로 서경식 선생의 칼럼이 한승동 기자의 번역을 통해 실려지고 있다. 그 글들을 읽으면서 왜 그토록 재일조선인을 일컬어 디아스포라, 즉 난민이라 칭하는지 알듯 말듯하였는데 비로서 진작에 사서 쟁겨두었던 이 책을 최근에야 전철에서 읽어가면서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불경한 표현일수도 있지만 난 내가 재일조선인이라면 어땠을까라고 여러해 전부터 떠올려보곤 했다. 더 나아가 그랬다면 정체성의 혼란으로 힘든 청년기를 보냈을까, 일본속의 차별에서 얼마나 견뎠을까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이런 좋지 않은 예만은 아니다. 일본속에서 난 양심적인 사회구성원들을 만나 양국의 가교가 되는 상상도 했으니까.

서경식의 말처럼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일본땅에서 반쪽 조선인으로 사는 모든이들의 갈등거리이듯 나에게도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꿈꾼다. 앞으로 일본에 체류할 기회가 된다면 그들 재일조선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만나보고 이야기를 듣고싶다는 것을 말이다.

제국주의 시절엔 일본의 이등 국민으로 이용당하고 광복후엔 철저히 내팽겨쳐진채 60년을 살아온 일본속 조선인들. 그들은 이제 통일된 한반도의 주역으로 힘차게 부상하여야 한다. 재외조선인들이 나서야 통일도 한걸음 더 가까워지는 것 아니겠는다. 한쪽에 치우침없이 통일된 한반도를 위해 수고할 재일조선인들, 특히 청년들에게 동지로서 찬사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재일조선인, 센징, 자이니치.... 디아스포라.... 난민.... (일본의)국민이 되기엔 부적격한 이등 시민의 이름. 그 벽을 조금씩 조금씩 부숴가는 일을 볼때 한반도 남쪽에서 호강이 요강이 되도록 언어도 스스로 버려가는 우리들은 깊이 반성해 볼일이다.

2007. 3. 22 이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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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국 평전 - 벼락이 떨어져도 나는 내 서재를 뜰 수가 없다
정운현 지음 / 시대의창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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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의 고개마루에 서서 돌아다보면 나는 평생 중뿔난 짓만 하면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문락가를 꿈꾸던 녀석이 고시 공부를 했다는 자체가 그랬고, <이상전집>이 그랬고, <친일문학론>이 그랬고, 남들이 잘 안 하는 짓만 골라가면서 했던 것 같다. 타고나기를 그 꼴로 타고났던지 나는 지금도 남들이 흔히 하는 독립운동사를 외면한 채 침략사와 친일사에만 매달리고 있다. <일본군 조선침략사>가 지난해 말에 출간된 터이지만 계획된 일을 완성하자면 앞으로도 내겐 최소한 10년의 기간이 필요한 것이다.

권력대신 하늘만한 자유를 얻고자 했지만 지금의 나는 5평 서재 속에서 글을 쓰는 자유밖에 가진 것이 없다. 야인이요 백면서생으로 고독한 60년을 살았지만 내게 후회는 없다. 중뿔난 짓어었어도 누군가 했어야 할 일이었다면 내 산 자리가 허망했던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임종국, <술과 바꾼 법률책>중,

<<임종국 평전>>(정운현, 2006, 시대의창 刊) 537~538 쪽 재인용


그의 말처럼 '중뿔난 인생'이었고 평전을 통해본 그는 생각보다 더 괴팍한 괴인이자 기인이었다. 그러함에도 그의 에너지는 그런데서 자생하여 <<친일문학론>>같은 역작을 남기게 되었겠지.


그의 사후 유지를 받든 사람들이 있었다. 역사학계에서도 인정받을 시간도 없이 사라진 그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던 이들이 민족문제연구소를 꾸려 그의 뜻을 이었고 지금은 명실공히 근현대사 속의 친일문제를 올곳게 바로세우는 일을 하고 있다.


임종국. 이 이름 석자가 누구들에게는 원수가 되었을 이름. 하지만 그가 뿌린 씨앗이 뒤늦게나마 새싹이 돋아 튼튼한 밑둥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 그를 모르는 이들이 많다. 정운현 씨의 이 평전이 평전의 형식을 많이 무시하고 자유로운 글쓰기로 전개된 것이 그를 아는데 장점이라면 장점일수 있겠고 아쉽다면 아쉬운 부분일게다.


2007. 1. 18 새벽 이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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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0
이원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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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처음 체포당해 천진으로 이송될 때 감방 벽에 '나는 여기서 다시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고 썼다고 했으며 그게 조선의 대표적인 민요라고 했지요? 친절을 베푼 호송 경관에게 그 노래를 불러주었다고도 했지요?"

지락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건 조선을 대표하는 노래이지요. 조금 전 중국과 일본의 전쟁에 대한 전망을 말했지만 우리 조선은 아리랑고개를 넘어가고 있는 거지요."

"그걸 불러주세요. 가사도 가르쳐주시고요."

헬렌의 푸른 눈이 간청하듯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고즈넉한 음성으로 아리랑을 불렀다.

 

<김산평전>(이원규, 2006, 실천문학사) 570쪽

 

톨스토이의 소설을 사랑한 혁명가, 조선의 순결한 혁명가 로베스피에르, 그 김산을 지는 해와 뜨는 해의 사이에 평전을 통해서 만났다. 우리는 많은 영웅들을 만나왔다. 물론 김산처럼 운 좋게 이름과 행적이 알려진 사람도 만났지만 이름없이 져버린 젊은 날 툭하고 져버린 동백꽃 같은 영웅들이 많다. 그들이 흘린 피 위에 지금 내가 숨을 쉬고 살고 있다.

 

삶은 긍정이어야 한다. 김산이 헬렌에게 불러준 아리랑은 슬프지만 희망을 담은 노래이다. 15살에 시작한 독립운동을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보고 달려온 젊은 혁명가의 순결함을 생각하며 그의 아리랑을 떠올려본다.

 

그는 자신을 제거한 중국공산당을 원망했을까. 분열된 독립운동 단체 지도자들을 미워했을까. 이 모든 설움을 안고 아리랑을 넘어간 김산을 숙연히 마음으로부터 추모한다. 그의 길이 옳다. 그의 생이 옳다.

 

2007. 1. 2 이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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