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한 기술
오다 하야토 지음, 기정수 옮김 / 혼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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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남자』라는 책이 한 때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단순히 성별의 차이도 있겠지만 생각하는 방향도 다르다. 육체에서 빚어지는 남녀간의 엇갈림만큼이나 정신에서 오해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남자는 이것이라고 말할 때 여자는 저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다른 의견으로 남녀 사이에 틈이 생기고, 급기야 헤어지는 경우도 있다.

 

상대방을 알려면 귀를 쫑긋 세우고 잘 들어야 한다. 그래도 잘 모르면 조언을 듣거나 배워야 한다. 이 때 필요한 책이 바로 『여자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한 기술』이다.

 

'여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남녀 사이의 복잡한 심리를 간단하게 풀어놓았다. 남자는 그 동안 만나오거나 주위에 있는 여자들과 지내면서 뭔가 생각이 다르다고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점을 풀어갈 방법을 알려준다. 제목처럼 '여자의 언어'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 여자들이 무심코 하는 말조차 저마다 뜻이 있다. 빨리 알아채고 행동하면 여자에게 점수를 얻고, 그렇지 않으면 옐로우 카드가 쌓인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이해한다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 카사노바는 이런 책을 읽지도 않고 뭇 여성들을 울리지 않았는가. 요즘 나쁜 남자가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한다. 나쁜 남자는 이 책에 나온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카사노바든 아니든, 나쁜 남자이든 아니든 여자의 마음을 얻는데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꼭 여자가 아니더라도 남자의 언어를 아는데도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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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베리 나이트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1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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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몇 해 동안 한국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타난 소재가 스릴러다.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면서 긴장을 이끈다. 각종 범죄가 일어나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는 일이 많아지면서 스릴러 소재는 갈수록 늘어난다. 문제는 이야기의 다름이다. 스릴러는 아무리 뛰어난 이야기더라도 보여지는 면에 따라 그 느낌은 다르다.

 

『스트로베리 나이트』는 셜록 홈즈와 콜롬보 형사를 필두로 한 남성 중심 세계에서 여형사(히메카와)가 앞에 나선다. 사설 탐정이 아닌 경찰서에 소속한 형사로, 실제로 범죄를 당해 하나의 트라우마를 지녔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하지만 히메카와에게 적은 범인, 동료 형사,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아픔과 남자들 틈에서 어떻게 범인을 잡는지 눈여겨볼 만하다.

 

이 소설은 벌써 TV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그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일본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벌써 이 드라마를 본 사람도 적지 않다. 보는 이마다 다르겠지만 범죄수사드라마가 넘치고 있어서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사람도 있다. 아무래도 미국 드라마와 범죄 스릴러를 소재로 하는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어서 눈높이가 높아진 탓도 있다.

 

『스트로베리 나이트』는 살인을 정당화하지 않지만 사람을 해칠 수밖에 없는 사회를 드러낸다. 일본 거품경제 뒤에 일어난 현상이 한창 소재로 쓰였다. 빈부격차와 사회 특권층이 벌이는 일처럼 사회 곳곳에 숨은 이야기는 지나칠 수 없게 되었다. 충분히 있음직한 일들이고,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일어날 법하다.

 

책을 읽고나서 이웃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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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심
도바 순이치 지음, 나계영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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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소재로 한 소설 · 영화 · 만화 · TV 드라마가 있다. 흔히 야구를 인생에 비유하듯, 한 경기마다 흐름이 있다. 같은 야구를 하더라도 뜻과 내용이 다르다. 언제, 어디에서 하느냐에 따라 경기는 제 각각이다. 그만큼 야구라는 스포츠 종목은 개성 넘치고,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으로 한국 야구 열기는 한껏 올랐다. 야구가 열리는 날 관중석은 꽉꽉 들어차기 일쑤다. 지금 한국에서 야구는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다. 야구가 생긴 이래, 관련 이야기가 줄지어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도 야구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있으며, 영화 · 만화 · TV 드라마 소재로 삼아 보는 이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지금 한국에서 야구는 가장 눈길을 끈다. 이럴 때, 관련 소재가 많이 나온다면 인기를 얻을지도 모른다.
 
도바 순이치 (Toba shunich 堂場瞬一)라는 일본 작가가『오심, (원제) ミス.ジャッジ』이라는 야구 소재로 이야기를 썼다. 마침 국내에 옮긴 책이 나왔다.
 
일본은 한국보다 몇 십 년 먼저 야구를 시작했다. 일본 사람의 야구에 대한 관심은 굉장히 높으며, 시설 기반도 뛰어나다. 야구를 소재로 한 이야기도 꽤 많다. 일본에서 그것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 나온 점은 자연스러울 정도다. 그 동안 야구 선수에 초점을 둔 이야기가 대다수였다면『오심』은 심판이 중심인물로 나타난다. 선수와 코칭 스태프, 팬과 함께 야구에 꼭 필요한 자원이 심판이다. 가장 객관으로 야구를 바라보며,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존재다.
 
도바 순이치는 독특하게 일본 아마추어 야구 유망주(다케모토)가 뜻하지 않게 선수를 그만두고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심판이 되는 설정을 한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야구 선수(다치바나)를 나오게 하여, 그와 맞서게 한다.
 
흔히 야구를 정신과 심리에 기반을 둔 스포츠라고 한다. 선수는 작은 부분도 쉽게 놓치지 않는다. 반면에 잊을 건 빨리 잊어야 한다. 이점에서 두 사람은 지나칠 정도로 소심해보이고,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매달리는 모습도 보인다. 큰 무대에 선 사람들치고는 그릇이 작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대개 야구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재미있다. 재미가 없으면, 생각할 부분이 반드시 있다.『오심』는 두 가지에서 아쉬움이 있다. 일찌감치 승패가 난 야구를 보는 느낌이 든다.
 
야구는 미국에서 시작했다. 일본과 한국에 들어온 시기가 백 년이 넘었다. 야구는 아시아에서 근대 문물이다. 한국은 미국 선교사 필립 질레트가 들여왔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바르지 못한 일본 야구용어를 쓴다. 한국말로 고친 낱말도 있지만 여전히 한국 · 미국 · 일본 세 나라 야구 용어를 섞어 쓴다. 옮긴 이가 이에 관심을 더 기울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를테면, Fastball이 직구인지 속구인지, 이제는 한국에서 방어율을 평균자책점으로 쓴다는 점을 알았으면 어떠했을까. 읽는 이의 지나친 바람이고, 원저를 따르려 했겠지만 좀더 바른 용어가 무엇이고 지금 한국에서 어떻게 말하는지 알아봤으면 더 좋았을 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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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

『문학의 공간 L’espace littèraire』 中, 「Ⅰ부 본질적 고독」

《죽어야 끝나는 이야기와 죽어서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
 

  괴수 • 공포 영화 등을 보면, 누군가 죽어야 이야기가 끝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주인공은 최후에 살아남는 확률이 높고, 주위의 인물들만 자의든 타의든 생을 달리한다. 흔히 ‘죽어야 이야기가 끝난다’라는 식이다. 일종의 ‘러시안 룰렛(Russian roulette)’ 게임과 같다. 한 사람은 분명히 극단의 결말에 이르러야 한다.   

문학도 누군가 죽어야 하는 게임이다. 작가는 문학 작품을 만들어내면서, 그것에 의해 뒤로 물러서야 한다. 대체로 러시안 룰렛의 총알은 작품이 아닌 작가로 향한다. 작가의 본질적 고독은 작품과의 힘겨운 줄다리기에서 뒤로 물러나야 하고, 죽어야만 하는 결과에 이르는 과정에서 생기는 심리적 압박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매번 사점(死點 • dead piont)을 많이 겪으면서, 한 편의 작품을 마무리 짓는다. 다음 작품에서, 그 다음 작품에서 재생 – 창작 / 살아남 - 과 소멸 – 작품 속으로 밀려남 / 죽어야만 함 - 의 반복적인 과정을 겪는다. 작품은 작가의 분신이면서, 다른 개체이기도 하다. 다만 홍길동의 분신처럼 한 명이 사라져도 마지막에 원형 – 작가 - 이 남는 경우와 다르게, 작품은 새로 늘어나지만 원형 – 작가 - 이 희미해진다. 작품은 작가가 어떤 식으로든 죽어야만 끝나는 이야기이다. 

작가는 죽을 수도 없는 존재이다. 아직 할 말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할 말이 없는 작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할 말이 없으면서도, 작가가 되길 원하거나 작가로 남길 원한다면,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문학의 공간』 中, 「Ⅰ부 본질적 고독」에서 작자는 쓴다는 것에 대해서, 말을 내뱉는 사람에게서 비롯하고, 이 말은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말은 본질적으로 끊이지 않으므로, 이것을 못하도록 막거나 침묵을 강요할 수는 없다. 마치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는 말처럼, 작가는 할 말을 가지고 끊임 없이 이야기를 써야 하므로, 죽어서도 할 말은 끝나지 않는다. 작가 생전에 남긴 작품이, 사후에 다른 의미를 갖고 여러 해석이 가해지는 건, 역시 작가의 이야기는 죽어서도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의 고독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자신의 작품 활동을 멈출 수 없는 현실이다. 어린 자식을 남겨두고 눈을 감아야 하는 부모는 죽어서도 죽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작가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작품을 남겨두고 죽지 못하는 기로에 서 있는 존대들이다. 작가들의 욕망은 바로 그것이다. 아직까지 자신의 언어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포기하지 못하고, 죽지 못하는 것이다. 

작가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은 작가들의 글을 쓰는 동기는 대체로, ‘순전한 이기심 –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 -, 미학적 열정 –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 -, 역사적 충동 –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 -, 정치적 목적 –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 –‘  때문이라고 한다. 위에 언급한 네 가지는 작가를 끊임없는 미로 속으로 빠뜨린다. 작가의 욕망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할 말이라는 대체물로 나타난다. 할 말은 죽어야 끝나거나 죽어서도 끝이 나지 않는 양가적 특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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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 미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허먼 멜빌 외 지음, 한기욱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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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_ 월 가(街) 이야기(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 Street)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로 풀이되는 인물》
 



♨ 반전을 일으키는 인물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 The Usual Suspects, 1995』와 『식스 센스 The Sixth Sense, 1999』는 반전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후 서사극에서 반전은 꼭 첨가하여야 하는 필수 요소처럼 되었다. 두 영화에서 반전은 인물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존재하지 않는 인물인 유령 아이와 의사, 존재하지만 베일에 가려진 인물인 카이저 소제가 반전의 핵심이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만 모아지는 시선을 완전히 날려버린,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아닌 사람이 반전의 축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바틀비는 앞에 언급한 인물들을 먼저 접한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이지 않은 그의 모습에 시선을 멈추게 한다. 그도 충분히 반전을 일으키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는 말 한 마디가 이를 입증한다. 그 말 한 마디는 사무실 내의 기본 구조를 뒤엎는다. 서구 사회라고 하더라도 하급 직원이 상사에게 쉽게 뱉을 수 없는 문장이다. 바틀비는 일개 필경사로서 상사에게 자신의 의사를 솔직히 말하고 가능과 불가능을 명확히 구분한다.

♨ 유령으로 존재하는 인물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일어난 사회적 현상 중, 대공황 • 실업 • 엄청난 노동 • 자본 우월주의 • 비인권 등이 있다. 『필경사 바틀비』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고용주 – 나 - 를 제외하고 터키 • 니퍼즈 • 진저 넛 • 바틀비는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Modern Times, 1936』에 등장하는 기계적인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들은 살아 있는 사람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아닌 기계로, 기계를 넘어 아스팔트 위를 떠돌아다니는 유령으로 존재한다. 터키 • 니퍼즈 • 진저 넛은 평범한 사람들이나 한 가지 병(病)이 있다. 일종의 현대 병이 있다. 소설 속에서는 그런 표현으로 정리를 하지 않았으나 사무실에서 보이는 인물들의 특징,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겪을 만한 병들을 앓고 있다. 죽어서만 존재하는 유령이 아니라 살아 있으면서 병을 앓고 있는 사람 - 유령으로 존재하는 노동자들이다. 어쩌면 바틀비는 고용주가 만들어낸 허상일지도 모른다. 피고용인이 고용주에게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내뱉는 사람은 유령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 심리가 뒤얽히는 인물
위에 언급한 두 영화 속의 반전 인물처럼 바틀비는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베일에 가려진 인물처럼 보인다. 고용주라면 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와 함께 업무를 하면서 맞춰 나가야 하는 부분들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는 말 한 마디로 고용주의 생각은 모두 뒤집어졌고, 이후의 관계도도 다시 그려졌다. 고용주가 바틀비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밀리면 밀리고 당기면 당겨질 뿐, 팽팽한 긴장감은 전혀 없다. 혼자서 바틀비에 대한 신경이 곤두서고 자신이 이끌리고 있다고 받아들인다. 대개 사람이 타인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가질 때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감정을 지나치게 쏟아 붓는 경우에 생긴다.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기분만 상한다. 감정의 과잉이 가져온 결과이다. 때에 따라서, 무관심으로 일관하면 만사가 편할 텐데, 그렇지 못하다. 고용주의 심리는 전향적으로 바뀐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틀비에 대해서 연민의 감정이 싹튼다.

♨ 모호한 인물
모호한 인물인 바틀비에 대한 판단은 쉽게 할 수가 없다. 무관심과 호불호(好不好)라는 잣대가 가장 적절할지도 모른다. 고용주는 무관심이 아닌 관심을 갖고, 불호(不好)보다는 호(好)로 마음이 바뀌어 간다. 소설 말미에 바틀비는 가련하기 이를 데 없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나 바틀비는 자신을 굉장히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처럼 행동할 수 없다. 바틀비는 신체적으로 강건하고 용기 있고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 인물보다 훨씬 더 강한 사람이다. 바틀비는 직업과 겉모습으로 쉽게 판단이 내려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소신을 보인다. 예를 들어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와 같은 문장이 그러하다. 그런 태도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게 하며, 알고자 하는 인물로 바뀌게 한다. 소설은 고용주가 모호한 바틀비를 알아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모호함은 겪어 봐야 뚜렷해진다.

 

참고 도서,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지음, 『필경사 바틀비』, 한기욱 엮고 옮김, 창비,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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