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 미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허먼 멜빌 외 지음, 한기욱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필경사 바틀비 _ 월 가(街) 이야기(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 Street)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로 풀이되는 인물》
 



♨ 반전을 일으키는 인물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 The Usual Suspects, 1995』와 『식스 센스 The Sixth Sense, 1999』는 반전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후 서사극에서 반전은 꼭 첨가하여야 하는 필수 요소처럼 되었다. 두 영화에서 반전은 인물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존재하지 않는 인물인 유령 아이와 의사, 존재하지만 베일에 가려진 인물인 카이저 소제가 반전의 핵심이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만 모아지는 시선을 완전히 날려버린,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아닌 사람이 반전의 축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바틀비는 앞에 언급한 인물들을 먼저 접한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이지 않은 그의 모습에 시선을 멈추게 한다. 그도 충분히 반전을 일으키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는 말 한 마디가 이를 입증한다. 그 말 한 마디는 사무실 내의 기본 구조를 뒤엎는다. 서구 사회라고 하더라도 하급 직원이 상사에게 쉽게 뱉을 수 없는 문장이다. 바틀비는 일개 필경사로서 상사에게 자신의 의사를 솔직히 말하고 가능과 불가능을 명확히 구분한다.

♨ 유령으로 존재하는 인물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일어난 사회적 현상 중, 대공황 • 실업 • 엄청난 노동 • 자본 우월주의 • 비인권 등이 있다. 『필경사 바틀비』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고용주 – 나 - 를 제외하고 터키 • 니퍼즈 • 진저 넛 • 바틀비는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Modern Times, 1936』에 등장하는 기계적인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들은 살아 있는 사람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아닌 기계로, 기계를 넘어 아스팔트 위를 떠돌아다니는 유령으로 존재한다. 터키 • 니퍼즈 • 진저 넛은 평범한 사람들이나 한 가지 병(病)이 있다. 일종의 현대 병이 있다. 소설 속에서는 그런 표현으로 정리를 하지 않았으나 사무실에서 보이는 인물들의 특징,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겪을 만한 병들을 앓고 있다. 죽어서만 존재하는 유령이 아니라 살아 있으면서 병을 앓고 있는 사람 - 유령으로 존재하는 노동자들이다. 어쩌면 바틀비는 고용주가 만들어낸 허상일지도 모른다. 피고용인이 고용주에게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내뱉는 사람은 유령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 심리가 뒤얽히는 인물
위에 언급한 두 영화 속의 반전 인물처럼 바틀비는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베일에 가려진 인물처럼 보인다. 고용주라면 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와 함께 업무를 하면서 맞춰 나가야 하는 부분들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는 말 한 마디로 고용주의 생각은 모두 뒤집어졌고, 이후의 관계도도 다시 그려졌다. 고용주가 바틀비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밀리면 밀리고 당기면 당겨질 뿐, 팽팽한 긴장감은 전혀 없다. 혼자서 바틀비에 대한 신경이 곤두서고 자신이 이끌리고 있다고 받아들인다. 대개 사람이 타인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가질 때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감정을 지나치게 쏟아 붓는 경우에 생긴다.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기분만 상한다. 감정의 과잉이 가져온 결과이다. 때에 따라서, 무관심으로 일관하면 만사가 편할 텐데, 그렇지 못하다. 고용주의 심리는 전향적으로 바뀐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틀비에 대해서 연민의 감정이 싹튼다.

♨ 모호한 인물
모호한 인물인 바틀비에 대한 판단은 쉽게 할 수가 없다. 무관심과 호불호(好不好)라는 잣대가 가장 적절할지도 모른다. 고용주는 무관심이 아닌 관심을 갖고, 불호(不好)보다는 호(好)로 마음이 바뀌어 간다. 소설 말미에 바틀비는 가련하기 이를 데 없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나 바틀비는 자신을 굉장히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처럼 행동할 수 없다. 바틀비는 신체적으로 강건하고 용기 있고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 인물보다 훨씬 더 강한 사람이다. 바틀비는 직업과 겉모습으로 쉽게 판단이 내려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소신을 보인다. 예를 들어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와 같은 문장이 그러하다. 그런 태도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게 하며, 알고자 하는 인물로 바뀌게 한다. 소설은 고용주가 모호한 바틀비를 알아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모호함은 겪어 봐야 뚜렷해진다.

 

참고 도서,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지음, 『필경사 바틀비』, 한기욱 엮고 옮김, 창비, 20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