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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안 - 일본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 9인의 단편집
미야베 미유키 외 지음, 한성례 옮김 / 프라하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혈안

 

일본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 9인의 단편집 『혈안』이 출간되었다. 개인이 아닌 여러 명이 모인 미스터리 단편모음집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그 동안 줄곧 독자들에게 선보였다. 국내의 특정 소설상 수상 작품집이 아닌 장르문학으로 단편집을 낸다는 점은 늘 신선하다. 아직까지 국내에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이상한 편가르기 현상이 이런 책을 이른바 마니아만 읽는 책으로 치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적을 가리지 않고 장르문학 단편집이 나왔다는 점은 이런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가라앉힐 수 있다. 장르문학에 조금 더 다가서고 그 세계를 이해하는데 긍정적인 기회로써 분명하다.

한 작가의 작품을 여러 편 읽어야 그 작품 세계를 헤아릴 수 있다. 하지만 짧은 시간 내에 단편소설 한 작가를 만나는 건 번갯불에 콩 구워 먹기일지도 모른다. 사실 한 작가의 장편소설을 읽기보다 여러 작가의 단편집을 보는 게 더 힘든 면도 있다. 가독성은 높을지 모르지만 방금 읽은 앞의 소설과 이야기가 중첩되거나 다 읽고 나서 다시 읽어야 하는 비효율적인 독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작품씩 곱씹어보면 읽어야 그나마 작품을 이해하고 생각하는데 알맞을 테다.


 「혈안」
미야베 미유키

단편집 『혈안』은 작가 9명이 모였다. 마치 야구의 타순과 같다. 1번 타자는 「혈안」이다. 요즘 들어 국내에서 유명한 해외 작가가 있다. 바로 미야베 미유키이다. 지난 해 작가의 소설로 만든 영화 <화차>가 이름값이 부쩍 치솟았다.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익히 알고 있는 존재였지만 잘 몰랐던 독자들에게는 영화로 작가의 존재가 분명해졌다.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면 다양한 장르를 넘다 들며 굉장한 필력을 선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름값을 기대하는 듯 야구의 1번 타자처럼 출루를 위해서 미미 아주머니가 선봉에 섰다.

「혈안」은 ‘혈안’이라는 요괴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요괴보다는 가상의 신, 사람들이 만들어 낸 무형의 신이나 마찬가지이다. 혈안은 눈이 50개이며, 혈안과 약정을 맺으면 도박에서 끗발을 날리고 딴 돈은 흥청망청 써야 한다는 이상한 속설이 전해 내려온다. 특정 집안만 아는 혈안은 가훈처럼, 집안 내력처럼 이어져 내려오면 틀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재미있는 점은 미신에 이야기를 붙이고 사람들의 눈길을 모으면 그것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다는 현상이다.

「혈안」을 읽으면 이웃동네 어느 집을 연상케 한다. 이 이야기는 작가는 지어냈는지 실제로 일본 어느 지역에서 내려오는 전통설화인지는 모르겠지만 토속신앙에 가까운 이야기여서 조금 더 관심이 간다. 역시 미미 아주머니라는 말을 나오게 한다.


「미도로 언덕 기담 - 절단」
아야쓰지 유키토

일본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 9인의 단편집 『혈안』은 일본 추리소설의 명가 ‘카파 노블스’가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하였다. 각 단편에 숫자 ‘50’이 눈에 띄는 이유도 그러하다.

사실 「미도로 언덕 기담 - 절단」의 아야쓰지 유키토는 생소한 작가다. 책 날개에 있는 작가 약력을 살펴보고서야 얼추 이해할 뿐이다. 전혀 모르는 작가를 만날 때의 기분은 소개팅에 어떤 이성이 나올지 만큼이나 궁금하다. 주인공은 본격 추리소설 작가이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점점 감퇴한다. 줄곧 살아온 곳에 대한 이른바 도시 정보가 대학 때 온 부인보다 없다. 기억력 때문인지 관심이 없는지 그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느냐가 급선무다. 주인공은 일종의 직업병처럼 누군가 어떤 이야기를 하면 그것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낱낱이 물어보는 성향의 소유자다. 남들이 보면 꽤나 성가셔 보이지만 추리소설 작가로서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한 문장이라도 작품을 쓰는데 도움이 되면 어느 것도 가리지 않는다. 그가 기억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현상은 나이 탓이 아니라 너무 많은 정보를 머릿속에 입력시키는 게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다.

병원에서 들은 엽기 토막 살인사건이 그의 귀를 쫑긋하게 한다. 시체를 무려 50조각으로 자른 무시한 사건의 이야기다. 작가는 시체 토막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가끔 뉴스에서 들려오는 토막 살인의 방법을 조목조목 알려주는 불친절한 내용을 서술한다. 주인공은 그냥 넘기지 못한다. 추리소설 작가이기 때문이다. 형사와 이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숫자가 50이 아니라 51이 맞지 않느냐는 등 형사 앞에서 더 형사다운 추리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할 일 없어 보이지만 직업의식이 투철한 작가가 확실해 보인다. 머릿속으로 계속 사건의 결말을 풀어내려는 의지는 참으로 독특해 보이기도 한다.


「신신당 세계일주 – 영국 셰필드」
시마다 소지

개인적으로 단편집에서 가장 눈여겨본 작품이다. IQ가 50에 시력이 좋지 않아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지만 꿋꿋이 버텨나가는 개리의 이야기는 가슴 뭉클하다. 요즘 국내에 학교 폭력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점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한다.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개리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의 어린 시절, 지금의 아이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에서 핵심은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것이다.
“뭔가 하나라도, 다른 사람들은 불가능하지만 너만 가능한 일이 하나쯤은 있을 거라고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162쪽)
바로 이것이다. 남들과 다른 무엇, 남들보다 잘 하는 무엇 찾기이다. 실제로 사람은 남들보다 나은 것 하나쯤은 가지고 태어난다고 본다. 환경에 따라 도드라지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열쇠일 테다. 더불어 이것을 끄집어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식구든, 친구든, 선생님이든 누군가가 건드려줘야 빛을 발하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개리의 아버지가 이 역할을 한다. 아버지는 개리의 힘을 보고, 역도를 시킨다. 개리는 누구보다 힘을 잘 쓴다. 좌절하려고 할 때는 그 동안 짓밟힌 세월과 사람을 상기시킨다. 개리에게는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힘만큼이나 설움이 있다. 두 가지가 합해서 누구보다 센 모습을 드러낸다.

이 소설을 읽으면 미스터리라는 장르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다른 단편소설처럼 추리, 신비, 살인 등 아무것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가 약자를 보호하지 않는 현실을 미스터리로 등장시키는 듯하다. 불편한 진실처럼 말이다.


「여름의 빛」
미치오 슈스케

미치오 슈스케는 최근 일본에서 가장 주목 받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문장이나 전체 흐름을 보면 이 작가가 장르문학 작가인지 갸웃하게 한다.

소설은 오이할멈과 완다의 앙숙관계를 주로 드러내고 있다. 더불어 빛이라는 자연 물질이 어떤 현상을 빚어내는지 카메라에서 빛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만큼인지 드러내고 있다. 어느 날 오이할멈과 완다가 시끌벅적히 싸움을 벌인다. 문제는 완다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한 사진으로 완다가 죽었다는 걸 확신하는 주인공은 범인을 찾는다.

장르문학보다는 청소년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흔히 장르문학은 문장이 조금 떨어진다는 선입견을 주저 앉힐 정도이다.


「하늘에서 보내 준 고양이」
모리무라 세이치

국내에는 증명 3부작으로 유명한 작가 모리무라 세이치. 작가의 작품을 읽어보면 촘촘히 얽혀 있는 내용에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하늘에서 보내 준 고양이」는 6~70년대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하는 농어촌 청년을 연상케 한다. ‘집 떠나면 개고생한다’는 광고 문구처럼 아오바 요시오는 성공을 쫓아 도쿄에 온다. 지방에서 대학까지 나왔지만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다. 큰 결심을 하지만 고생 길만 훤하다. 막상 도시로 오면 살 길이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기대만큼 실망도 크다. 도시는 도시만의 법칙이 있는 듯하고 자신보다 잘 난 사람으로 가득하다. 자신가 처지가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만 눈에 더 잘 띈다. 심지어 돈을 소매치기 당하여 첩첩산중이다. 어느 날 자신이 우연히 말을 걸었지만 의외로 친절을 베푼 스기무라라는 여자가 죽는다. 이 일로 여러 사람이 걸려들고 진술을 해나가는 과정이 전개된다.

사회범죄 소설로 앞서가는 작가답게 사회문제를 소재로 삼아 독특한 이야깃거리를 배치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미치오 슈스케와 모리무라 세이치는 단편집의 4, 5번째에 자리를 잡아 야구에서 4, 5번 타자처럼 힘 있는 한방을 날려주는 듯하다.


「눈과 금혼식」
아리스가와 아리스

이 소설은 역시 50이라는 숫자에 맞게 금혼식이 등장한다. 금슬 좋은 부부의 이야기, 동서의 살인이 제재이다. 가장 좋은 날에 최악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범인은 누굴일까.

사건을 풀려면 실마리를 찾아내야 한다. 먼저 제목에 나왔듯이 눈이 있다. 눈에 찍힌 발자국, 눈을 덮은 눈, 남편의 기억상실, 기억상실은 기억이 새하얗게 된 것과 같다. 이것들을 나열해보자 사건을 풀기가 여간 쉽지 않고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지는 듯하다. 비(雨)를 소재로 하여 글을 쓸 수도 있겠지만 눈은 수분이 빙결되어 생긴 물질이다. 녹으면 다시 액체가 된다. 고체이지만 액체라는 성격을 둘 다 지녔으니 사건은 확실히 굳은 일이지만 자칫 물처럼 어딘가로 스며들지 모른다.

소설을 끝까지 읽으면 마지막 부분에 뭔가 재미있는 실마리가 나올 것이다. 기대하라.


「50층에서 기다려라」
오사와 마리마사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를 보면 ‘카이저 소제’라는 인물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영화를 봤다면 결말을 알 테다.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가 실제로 드러난다. 「50층에서 기다려라」는 ‘드래곤’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실체는 없다. 소설을 읽어가면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는다. 유명무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입 소문 마케팅이 활발하다. 보이는 광고보다 들리는 광고가 더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기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오래된 우물」
다나카 요시키

“몇 번이나 말했지만 나는 유령도, 저주도, 재앙도 믿지 않아. 오로지 인간의 악의를 믿지. 인간의 악의는 밤보다도 어둡고 오래된 우물보다도 훨씬 깊어. 거기서 검은 손이 뻗어 나와 갑자기 사람의 발목을 잡는 거지.”(417쪽)

한참 이 소설을 읽고 있다가 지금 무엇을 보고 있지 하는 생각을 했다. 끝부분을 읽고 나서야 작가 하고자 하는 말을 십분 헤아렸다. 다시 앞으로 돌아갔다. 이를 염두하고 책을 읽으니 이해의 폭이 조금 더 넓혀졌다.

우물이라는 소재가 화수분 같기도 하지만 메우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전락한다. 계속 읽어보자.

 

「미래의 꽃」
요코야마 히데오

흔히 말하는 보험금을 타려고 남편을 죽인 아내의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다. 그러나 이것이 다는 아니다. 뭔가 다르게 재미있게 보려는 시도를 한다. 갈수록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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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케이지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2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일만 잘 하면 되는 회사, 훈련만 잘 받으면 될 듯한 군대에서 해야 할 일보다 중요한 점을 발견한다. 바로 기본 생활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 관계이다. 외딴 섬에 홀로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인간 관계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소울 케이지』도 이 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른 장르소설보다 더욱 드러내고 있다.

 

장르소설에서 사건 해결은 마지막 종착점이다. 경주마가 목적지만을 바라보며 달리듯이 읽는 이는 인과를 알려고 장르소설을 읽는다. 작가는 종착역으로 가는 동안 곳곳에 갖가지 이야깃거리를 깔아놓는다. 독자는 이것들을 쓱 훑고 지나가면서 사건의 원인과 배경을 받아들인다. 여느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소울 케이지』는 이런 점에서 툭툭 치고 나가는 작가 특유의 문체와 등장인물의 설명을 더 하는 이야기로 이것저것 눈여겨 볼 만하다. 작가가 등장인물에 무척 애정이 많아 보이기도 한다. 목적지로 가는 길에 굳이 이것까지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어떤 인물의 연애사, 가정사 등 사족처럼 보이는 설명이 보여서 사건의 인과관계로 가는 과정에 시선을 빼앗는 듯하기도 한다. 과감히 쳐냈어도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을 듯하다.

 

한편 인간관계에 비중을 두어서 몇 가지 흥미로운 점도 있다. 주인공 히메카와 레이코를 빼고는 수사본부 내에 별다른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다.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여서 그렇고 남성 중심의 사회에 홀로 버텨나가는 존재를 드러내려는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지만 오히려 이런 등장인물 구성으로 레이코는 남자들과 맞서는 주인공에 지나지 않는다. 흔히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같은 수사본부 내에 동료 여형사가 등장하고 알게 모르게 갈등을 빚는 흐름이 있으면 오히려 레이코의 존재가 더 부각되지 않을까 한다. 과거 상처를 딛고 일어서 활동하는 인물로 굳센 의지가 돋보이지만 어떤 면에서 레이코는 동료 남자 형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인물로 보이기도 한다. 물론 소설 속에 어떤 인물과는 조금 더 친밀하고 겉모습과 다른 속마음, 가깝게 지내고 싶어하는 인물의 존재 등이 엿보이기도 한다. 대체로 경쟁심이 가득한 인물로 영리하게 살아남은 레이코로 보인다. 어떻게 보면 레이코는 1000미터 달리기에서 남자들과 동일하게 뛰는 사람으로만 보이기도 하며,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자라는 말처럼 레이코는 수사본부 내에서 가장 생명력이 뛰어난 형사로도 보인다. 레이코라는 인물을 조금 더 탐구할 필요는 있다. 이는 앞으로 나올 시리즈에 더욱 주목하게 한다.

 

전편인 『스트로베리 나이트』와 『소울 케이지』를 보면 겉 표지에 작은 글씨로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라는 문구가 보인다. 이미 모든 초점은 그쪽으로 쏠린다. 독특하게도 대체로 여성이 이성적이고 눈썰미가 남다른 경우가 있다. 시리즈에 등장하는 레이코는 이와 반대로 뛰어난 직감과 발 빠른 행동으로 수사를 한다. 이는 쿠사카 경위와 대칭을 이룬다. 그는 분석 수사로 일을 처리하는 유형이다. 한 여성 형사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기존의 관념을 하나 둘 빼버린 듯하다. 이성보다는 직감, 여성이 많은 곳이 아닌 근무처를 배경으로 삼아 인물을 더욱 드러낸다.

 

수사는 어떤가? 이웃나라 일본의 범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국내에서도 신종범죄에 대한 기사를 보면 양파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한 껍질 까내더라도 끝이 아닌 한두 단계가 더 있다. 가해자의 심리, 행동, 상황 따위가 여러 겹으로 쌓이고 까면 깔수록 본질이 드러난다. 문명에 따른 범죄가 날로 진행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소울 케이지』도 그렇다.

 

뜬금없이 '손목'이 발견된다. 추락사. 동일한 회사에 근무했던 전혀 다른 사람. 수사를 하면서 두 사건의 공통점을 알아낸다. 오리무중이던 사건의 진실을 밝혀지면 형사들은 범죄를 미워해도 사람으로서 공감하는 부분도 있다. 직감 레이코와 이성 쿠사카, 발군의 하야마 등 등장인물 각자의 장점으로 수사를 좁혀간다. 셜록홈즈처럼 한 사람이 드리블을 하기보다는 여러 사람이 공을 몰고 가서 골대 앞에 이른다.


골대 앞에서 수사를 매듭짓는다. 여기서 형사도 일반인과 같은 사람이라는 냄새를 물씬 풍기게 한다.  이번에는 부성애가 돋보인다. 쿠사카도 형사라는 바쁜 직업으로 가정, 특히 아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가족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로 형사와 사건이 아닌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방식과 관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람 사는 사회를 말하는 듯하다. 이는 『소울 케이지』의 매력이기도 하다. 더불어 히메카와 레이코를 제외한 동료 형사에게 관심을 두어 인물을 조금 더 들여다보게 하는 요소로도 작용한다. 읽는 이에 따라서 레이코보다 다른 인물에 더욱 관심을 가질지도 모른다. 작가가 등장인물을 잘 배치했다고 할 만하다.

 

장르소설은 소위 시간 때우기용(用)인 경우가 있다. 독자가 자신만의 눈으로 여러 볼거리를 끄집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TV 수사 드라마 한 편 보는 편이 훨씬 낫다. 혼다 테쓰야의 소설이 최근 일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하고 있는 점은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공존해서 일지도 모른다.

 

『스트로베리 나이트』는 겉 표지에 어떤 인물의 하반신이 보인다. 『소울 케이지』는 어떤 인물의 손목이 보인다. 소설 내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터인데 소재를 분명히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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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석에서 빙글빙글 춤을 추며
이토 다카미 지음, 김지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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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성장소설은 끝나도 끝나지 않는다. 청소년기 때 성장소설을 읽으면 동병상련의 감정이 생긴다. 나이가들어서 성장소설을 읽으면 마지막 쪽에 찍힌 마침표 이후가 더 궁금해진다. 이는 독자가 성장 이후의 삶을 살고 있기에 그렇고 등장인물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지로 받아들이려는 태도이기도 하다. 일탈을 한 등장인물이 그 이후에도 그 행위가 이어지는지 아닌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가 궁금하다는 뜻이다. 지금보다 나중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선이다. 모순이지만 그때의 지금은 현재는 없다. 그렇다고 끝나지 않고 아직도 시간은 지속된다. 그 당시는 그 자체로 돌고 도는 것이다. 17세 어느 날은 과거가 되었더라도 아직 살아있다는 뜻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사람은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있다.

 

이토 다카미의 『조수석에서 빙글빙글 춤을 추며』는 당시의 시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청소년기인 등장인물의 행동과 생각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향수를 자극하는 부분이 나오기도 한다. 평일 오후에 방영하는 청소년 단막극 정도로 보여서 읽는 재미와 감칠 맛은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약간의 참을성만 가지면 자기 시간에 대한 생각을 되돌아보게 하는 강점이 있다. 자기 시간이란 ‘세상 > 나’과 아닌 ‘세상 < 나’라는 명확한 개념에 바탕을 둔다. 내가 살아 있기에 시간이 돌아가는 것이다. 청소년기에는 어른이 되고 싶은 욕망과 사회제도의 테두리로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 ‘세상 > 나’로 받아들인다. 질풍노도의 시기여서 호기심은 커지고 반항심이 싹튼다. 등장인물들은 이 시기를 겪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그 모습이 드러난다. 나이가 들어서 성장소설을 읽을 때 힘든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벌써 경험한 시기를 다시 보려니 재방송을 보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어른이 되어서도 ‘세상 > 나’의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한 단계 올라서면 이루어질 줄 알았던 일들이 막상 그 시기가 되더라도 그렇지 않다는 점을 깨닫는다. ‘세상 < 나’라는 형식을 생각하고 살아가야 할 때는 바로 청소년기이다. 이때 세상을 바라보고, 자기 시간을 소중히 하는 과정을 거쳐야 어른이 되어서도 성장이 멈추지 않는다. 신체적으로 어른이 되면 노화가 시작한다. 삶은 늙어가지 않고 성장한다. 어쩌면 사람은 성장만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동물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지 모른다. 무언가에 열정을 쏟고 관심을 기울여서 지금을 알차게 보내는 일만이 중요하다는 명제를 떠올리게 한다.

 

『조수석에서 빙글빙글 춤을 추며』을 읽으면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존’이나 ‘샐리’, ‘철수’, ‘영희’로 바꾸어도 좋을 만큼 어떤 나라의 어떤 사람인지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인다. 남의 일 같다는 생각을 애초에 지워버린다. 이웃에 사는 청소년 또는 그때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물론 완전히 같다고는 못 한다. 그렇더라도 리얼리티가 뛰어나거나 주변 묘사가 돋보이지 않는다. 그저 가볍게 읽을 만하다고 하겠다.

 

작가는 성장이란 단어를 ‘빙글빙글’이라는 의태어로 묘사하였다. 삶은 돌고 돈다는 수레바퀴로 비유하기도 하는데 ‘빙글빙글’을 써서 느낌을 더욱 강하게 한다. 소용돌이에 휘말린 청소년기를 드러내면서 이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편이 더 낫다고 말하는 듯 하다. ‘빙글빙글’은 원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성장은 수직이 아니라 원을 무수히 쌓아 올리면서 진행하는 것이다. 가벼운 소설을 읽고 무겁게 의미를 읽어낼 필요는 없지만 이런 생각도 한 번쯤 하게 한다. 우리 모두는 나이와 상관없이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멈춰 있다고 생각해도 빙글빙글 돌고 있다. 이 흐름은 거부하지 못하는 삶의 동선이다.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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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존
기시 유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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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싸움이 벌어졌다. 다른 소설과 다르게 사건이 바로 시작한다. 연속극 16부작을 압축하여 4부작 정도로 만들면 밀도감이 높아진다. 이야기가 늘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돋보인다. 『다크 존』은 전개가 빠르다. 일본 장기를 소재로 하여 이야기의 재미를 더 한다. ‘인물 – 사건 – 배경’ 각 요소가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어쩌면 『다크 존』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장기를 두는 목적은 흡사하다. 상대를 제압하고 자신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점이다. 전쟁이 장기이고 장기가 전쟁이라는 느낌을 준다.

 

『다크 존』을 읽으면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저마다 독특해 보이는 인물들이라 눈에 띈다. 적어도 이 소설을 읽으려면 이 인물들이 누구인지는 알아야 한다. 그러고 보면 『다크 존』은 읽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이 존재한다. 일본 장기와 신화이다. 책을 펼치면 일본 장기에 대해서 자세히 서술해놓았다. 신화는 독자의 몫이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 않으니 읽는 이가 수고를 해야 한다.

 

작가는 『다크 존』을 쓰려고 배경인 군락도를 직접 갔다고 한다. 출입금지를 하고 있던 터라 어려웠다고 한다. 작가가 발로 쓴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하다.

 

소설을 읽고서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만약 내가 장기의 말이 된다면 어떨까? 아마 나를 움직이는 사람에 따라 삶이 좌지우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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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사는 방법
야마사키 타게야 지음, 한성례 옮김 / 혼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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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없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나이를 먹고 사회 생활을 하면 머리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장수하는 사람들은 최대한 단순하게 살라고 하기도 한다. 장수하는 나이가 아니라면 적어도 걱정 없이, 복잡한 생각 없이 살기는 쉽지 않다.

 

『단순하게 사는 방법』에서는 자신의 몸과 주변 따위를 될 수 있는 대로 가볍게 하라고 한다. 생각을 단순하게 하고, 일을 복잡하게 하지 말고, 가지고 있는 물건을 덜어내라고 하고, 본질을 흐리지 말라고 한다. 자신의 본질을 찾으려면, 비우고 또 비워야 한다는 뜻이다. 지은이는 평소 다도(茶道)에 관심이 많다. 맑은 차에 얼굴을 비추고, 마음을 가다듬는 듯하다.

한 때, 멀티 플레이어가 이야깃거리인 적이 있다. 한 가지 일도 잘 하기가 쉽지 않은데, 세상은 더 많은 부분을 원한다. 사람마다 다르기에 누구에게나 멀티 플레이어를 요구하면 안 된다. 요즘은 스페셜리스트가 다시 분위기를 모으고 있다. 한 우물을 오랫동안 판 사람이 대접을 받는 것이다. 말 그대로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은이는 멀티 플레이어보다 스페셜리스트를 선호한다. 그렇게 할 때 자신을 찾고, 하고 싶은 일에 더욱 매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치열하게 움직이는 세상에서 단순하게 살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게 생각하면 된다. 한참 열심히 움직여야 할 사람이 나이 든 사람을 흉내를 낼 수는 없다.

 

이 책을 읽은 뒤, 자신을 가볍게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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