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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케이지 ㅣ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2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일만 잘 하면 되는 회사, 훈련만 잘 받으면 될 듯한 군대에서 해야 할 일보다 중요한 점을 발견한다. 바로 기본 생활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 관계이다. 외딴 섬에 홀로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인간 관계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소울 케이지』도 이 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른 장르소설보다 더욱 드러내고 있다.
장르소설에서 사건 해결은 마지막 종착점이다. 경주마가 목적지만을 바라보며 달리듯이 읽는 이는 인과를 알려고 장르소설을 읽는다. 작가는 종착역으로 가는 동안 곳곳에 갖가지 이야깃거리를 깔아놓는다. 독자는 이것들을 쓱 훑고 지나가면서 사건의 원인과 배경을 받아들인다. 여느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소울 케이지』는 이런 점에서 툭툭 치고 나가는 작가 특유의 문체와 등장인물의 설명을 더 하는 이야기로 이것저것 눈여겨 볼 만하다. 작가가 등장인물에 무척 애정이 많아 보이기도 한다. 목적지로 가는 길에 굳이 이것까지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어떤 인물의 연애사, 가정사 등 사족처럼 보이는 설명이 보여서 사건의 인과관계로 가는 과정에 시선을 빼앗는 듯하기도 한다. 과감히 쳐냈어도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을 듯하다.
한편 인간관계에 비중을 두어서 몇 가지 흥미로운 점도 있다. 주인공 히메카와 레이코를 빼고는 수사본부 내에 별다른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다.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여서 그렇고 남성 중심의 사회에 홀로 버텨나가는 존재를 드러내려는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지만 오히려 이런 등장인물 구성으로 레이코는 남자들과 맞서는 주인공에 지나지 않는다. 흔히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같은 수사본부 내에 동료 여형사가 등장하고 알게 모르게 갈등을 빚는 흐름이 있으면 오히려 레이코의 존재가 더 부각되지 않을까 한다. 과거 상처를 딛고 일어서 활동하는 인물로 굳센 의지가 돋보이지만 어떤 면에서 레이코는 동료 남자 형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인물로 보이기도 한다. 물론 소설 속에 어떤 인물과는 조금 더 친밀하고 겉모습과 다른 속마음, 가깝게 지내고 싶어하는 인물의 존재 등이 엿보이기도 한다. 대체로 경쟁심이 가득한 인물로 영리하게 살아남은 레이코로 보인다. 어떻게 보면 레이코는 1000미터 달리기에서 남자들과 동일하게 뛰는 사람으로만 보이기도 하며,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자라는 말처럼 레이코는 수사본부 내에서 가장 생명력이 뛰어난 형사로도 보인다. 레이코라는 인물을 조금 더 탐구할 필요는 있다. 이는 앞으로 나올 시리즈에 더욱 주목하게 한다.
전편인 『스트로베리 나이트』와 『소울 케이지』를 보면 겉 표지에 작은 글씨로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라는 문구가 보인다. 이미 모든 초점은 그쪽으로 쏠린다. 독특하게도 대체로 여성이 이성적이고 눈썰미가 남다른 경우가 있다. 시리즈에 등장하는 레이코는 이와 반대로 뛰어난 직감과 발 빠른 행동으로 수사를 한다. 이는 쿠사카 경위와 대칭을 이룬다. 그는 분석 수사로 일을 처리하는 유형이다. 한 여성 형사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기존의 관념을 하나 둘 빼버린 듯하다. 이성보다는 직감, 여성이 많은 곳이 아닌 근무처를 배경으로 삼아 인물을 더욱 드러낸다.
수사는 어떤가? 이웃나라 일본의 범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국내에서도 신종범죄에 대한 기사를 보면 양파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한 껍질 까내더라도 끝이 아닌 한두 단계가 더 있다. 가해자의 심리, 행동, 상황 따위가 여러 겹으로 쌓이고 까면 깔수록 본질이 드러난다. 문명에 따른 범죄가 날로 진행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소울 케이지』도 그렇다.
뜬금없이 '손목'이 발견된다. 추락사. 동일한 회사에 근무했던 전혀 다른 사람. 수사를 하면서 두 사건의 공통점을 알아낸다. 오리무중이던 사건의 진실을 밝혀지면 형사들은 범죄를 미워해도 사람으로서 공감하는 부분도 있다. 직감 레이코와 이성 쿠사카, 발군의 하야마 등 등장인물 각자의 장점으로 수사를 좁혀간다. 셜록홈즈처럼 한 사람이 드리블을 하기보다는 여러 사람이 공을 몰고 가서 골대 앞에 이른다.
골대 앞에서 수사를 매듭짓는다. 여기서 형사도 일반인과 같은 사람이라는 냄새를 물씬 풍기게 한다. 이번에는 부성애가 돋보인다. 쿠사카도 형사라는 바쁜 직업으로 가정, 특히 아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가족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로 형사와 사건이 아닌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방식과 관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람 사는 사회를 말하는 듯하다. 이는 『소울 케이지』의 매력이기도 하다. 더불어 히메카와 레이코를 제외한 동료 형사에게 관심을 두어 인물을 조금 더 들여다보게 하는 요소로도 작용한다. 읽는 이에 따라서 레이코보다 다른 인물에 더욱 관심을 가질지도 모른다. 작가가 등장인물을 잘 배치했다고 할 만하다.
장르소설은 소위 시간 때우기용(用)인 경우가 있다. 독자가 자신만의 눈으로 여러 볼거리를 끄집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TV 수사 드라마 한 편 보는 편이 훨씬 낫다. 혼다 테쓰야의 소설이 최근 일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하고 있는 점은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공존해서 일지도 모른다.
『스트로베리 나이트』는 겉 표지에 어떤 인물의 하반신이 보인다. 『소울 케이지』는 어떤 인물의 손목이 보인다. 소설 내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터인데 소재를 분명히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