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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석에서 빙글빙글 춤을 추며
이토 다카미 지음, 김지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성장소설은 끝나도 끝나지 않는다. 청소년기 때 성장소설을 읽으면 동병상련의 감정이 생긴다. 나이가들어서 성장소설을 읽으면 마지막 쪽에 찍힌 마침표 이후가 더 궁금해진다. 이는 독자가 성장 이후의 삶을 살고 있기에 그렇고 등장인물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지로 받아들이려는 태도이기도 하다. 일탈을 한 등장인물이 그 이후에도 그 행위가 이어지는지 아닌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가 궁금하다는 뜻이다. 지금보다 나중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선이다. 모순이지만 그때의 지금은 현재는 없다. 그렇다고 끝나지 않고 아직도 시간은 지속된다. 그 당시는 그 자체로 돌고 도는 것이다. 17세 어느 날은 과거가 되었더라도 아직 살아있다는 뜻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사람은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있다.
이토 다카미의 『조수석에서 빙글빙글 춤을 추며』는 당시의 시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청소년기인 등장인물의 행동과 생각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향수를 자극하는 부분이 나오기도 한다. 평일 오후에 방영하는 청소년 단막극 정도로 보여서 읽는 재미와 감칠 맛은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약간의 참을성만 가지면 자기 시간에 대한 생각을 되돌아보게 하는 강점이 있다. 자기 시간이란 ‘세상 > 나’과 아닌 ‘세상 < 나’라는 명확한 개념에 바탕을 둔다. 내가 살아 있기에 시간이 돌아가는 것이다. 청소년기에는 어른이 되고 싶은 욕망과 사회제도의 테두리로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 ‘세상 > 나’로 받아들인다. 질풍노도의 시기여서 호기심은 커지고 반항심이 싹튼다. 등장인물들은 이 시기를 겪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그 모습이 드러난다. 나이가 들어서 성장소설을 읽을 때 힘든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벌써 경험한 시기를 다시 보려니 재방송을 보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어른이 되어서도 ‘세상 > 나’의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한 단계 올라서면 이루어질 줄 알았던 일들이 막상 그 시기가 되더라도 그렇지 않다는 점을 깨닫는다. ‘세상 < 나’라는 형식을 생각하고 살아가야 할 때는 바로 청소년기이다. 이때 세상을 바라보고, 자기 시간을 소중히 하는 과정을 거쳐야 어른이 되어서도 성장이 멈추지 않는다. 신체적으로 어른이 되면 노화가 시작한다. 삶은 늙어가지 않고 성장한다. 어쩌면 사람은 성장만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동물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지 모른다. 무언가에 열정을 쏟고 관심을 기울여서 지금을 알차게 보내는 일만이 중요하다는 명제를 떠올리게 한다.
『조수석에서 빙글빙글 춤을 추며』을 읽으면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존’이나 ‘샐리’, ‘철수’, ‘영희’로 바꾸어도 좋을 만큼 어떤 나라의 어떤 사람인지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인다. 남의 일 같다는 생각을 애초에 지워버린다. 이웃에 사는 청소년 또는 그때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물론 완전히 같다고는 못 한다. 그렇더라도 리얼리티가 뛰어나거나 주변 묘사가 돋보이지 않는다. 그저 가볍게 읽을 만하다고 하겠다.
작가는 성장이란 단어를 ‘빙글빙글’이라는 의태어로 묘사하였다. 삶은 돌고 돈다는 수레바퀴로 비유하기도 하는데 ‘빙글빙글’을 써서 느낌을 더욱 강하게 한다. 소용돌이에 휘말린 청소년기를 드러내면서 이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편이 더 낫다고 말하는 듯 하다. ‘빙글빙글’은 원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성장은 수직이 아니라 원을 무수히 쌓아 올리면서 진행하는 것이다. 가벼운 소설을 읽고 무겁게 의미를 읽어낼 필요는 없지만 이런 생각도 한 번쯤 하게 한다. 우리 모두는 나이와 상관없이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멈춰 있다고 생각해도 빙글빙글 돌고 있다. 이 흐름은 거부하지 못하는 삶의 동선이다.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