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마을의 경제학 - 읽기 쉬운 경제 우화
사이카린 신세이 지음, 부지영 옮김 / 프리미엄북스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일본 저자들의 책에는 독특한 취향이 있다. 우리로 치면 입시용 참고서 분위기로 정리된 다이제스트서를 잘 내는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지식의 대중화 내지는 지식의 세속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그네들의 주요한 출판 풍토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아이카린 신세이가 지은 [몬스터 마을의 경제학]은 일테면 케인즈주의적인 입장에서 거시경제학의 화폐론과 유효수요의 중요성을 우화를 통해 풀어내고 있는 책이다. 이상하게도 역자는 이 책이 금융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며 일본의 낙후된 금융시스템을 꼬집고 있는, 즉 우리에게도 반면교사 노릇을 해주는 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여담이지만, 가끔 조선일보 기자들이 옮긴 책의 서문을 보며 이렇게 눈을 다시 부비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이러한 역자의 오해는 저자 자신의 불명확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책의 뼈대를 이루는 케인즈 경제학을 못보고 지나친 것은 역자의 무지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어쨌든. 책은 화폐의 출현을 발생학적으로 따라가는 것에서 시작한다. 장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몬스터 마을은 화폐 경제가 서지 않은, 즉 욕망의 이중적 일치가 발생할 때만 교환이 일어나는 동네이다. 그 동네에 인간인 미스터X가 출현하여 화폐를 도입한다. 이를테면 화폐를 독점적으로 유통하는 중앙은행인 셈이다. 처음에는 금본위제를 실시하다가, 경제의 규모가 커지면서 화폐를 추가적으로 발행해야 하는 압력에 놓인다. 금본위제에서 중앙은행의 신용에 기초한 순수한 화폐경제의 출현을 보여준다. 그리고, 미스터X의 부인은 생산은 하지 않고 오직 사치하는 존재로 등장하여 몬스터 마을의 서비스업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X의 부인은, 케인즈가 말한 바, 비록 비생산적일지라도 국가가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경제를 부양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실현한 존재인 셈이다.

몬스터 마을이 그럭저럭 굴러갈 즈음, 옆 아쿠아 마을의 미스터 푸가 등장한다. 그는 몬스터 마을이 지닌 금융시스템의 취약점을 이용하려는 악당. 이미 전면적인 화폐경제로 이행했음에도 몬스터 마을은 여전히 금과 화폐의 태환을 실시하고 있었다 . 이를테면, 화폐는 불태환 지폐가 아니라 태환 지폐였던 셈이다. 경제의 규모에 맞게 많은 돈을 풀었고 마을 주민들의 축적 욕구도 충분히 고무한 덕택에, 몬스터 마을의 금은 천정부지로 올라 있었다. 미스터 푸의 작전은 이렇다. 그는 몬스터 마을에 와서 시세보다 비교적 싼 값에 금을 판다. 금이 많이 풀리면서 가격이 떨어지고 점차 주민들 사이에 금에 대한 회의가 퍼지게 된다. 이때 미스터 푸는 자신의 하수인을 통해 원래 팔았던 값보다 훨씬 싸게 금을 되산다. 이렇게 미스터 푸는 아쿠아 마을에서 소용할 가치 기준인 금과 유통 수단인 화폐를 몬스터 마을에서 휩쓸어간다(다소 이해가 안 되지만, 책에서는 조폐기는 오직 미스터X만 소유하고 있으며, 그래서 미스터 푸가 부득불 이런 작전을 펼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미스터 푸의 이러한 '작전'은 고정환율제 하에서 영국 정부를 상대로 파운드 전쟁을 벌여 거대한 부를 쌓은 소로스의 꽁수와 무척이나 닮아 있다.

돌아온 미스터X는 이미 아쿠아 마을의 가치 기준이 된 몬스터 마을의 돈을 마구 찍어 다시 아쿠아 마을로 건너가 비슷한 방법으로 아쿠아 마을의 금을 바닥낸다. 몬스터 마을에서 가져온 제한된 화폐만을 지니고 있는 미스터 푸로서는 사람들의 금태환 요구를 모두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 미스터 푸는 마침내 모라토리움을 선언하고 이번에는 아쿠아 마을이 초토화된다.

하지만, 두 마을 간의 전쟁에 승자없었다. 그 가치를 의심치 않았던 금의 가격 폭락으로 인해 몬스터 마을은 심각한 불황에 빠져들게 된다. 게다가, 이제 사치를 전담하는 미스터X의 부인도 없으니 불황을 탈출하는 일이 더욱 힘들게 되었다. 이른바 케인즈의 '저축의 역설'이 작용하게 된 것이다. 개인의 차원에서 잘살기 위해 소비를 줄일 수록, 국가 전체로서는 유효수요가 축소되어 되려 불황의 골을 깊게 한다는 것이다. 결국, 미스터X의 최종적인 해결책은 사람들에게 임의로 돈을 풀어 유효수요를 인위적으로 창출하는 것이었다. 정확히 대공황에 대한 케인즈의 해법이다.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다. 정작 내가 갸우뚱해지기 시작한 것은 "노 비전이라는 이름의 나라"라는 제목의 장부터다. 노골적으로 일본을 지시하고 있는 가상국가 "노 비전"은 정부의 유효수요를 "낭비"적인 부분에 소모했기 때문에, 오늘날 자취를 감춘 것이라고 미스터X는 열변을 토한다. 즉, 정부의 지출은 "생산적인 쪽"으로 씌여야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지금까지 책의 뼈대를 끌고 온 케인즈의 유효수요론이 지닌 본질을 완전히 호도하는 것이다. 즉, 케인즈의 유효수요는 대공황이라는 자본주의의 병리적 이상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단기적인 해법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책에 나온 것 처럼 사람들을 데려다가 오늘은 땅을 파게 하고 내일은 같은 자리를 묻게 하더라도 공황의 상황에서 그것이 선(善)이 된다. 그리고, 책의 테마와 기조 또한 이러한 분위기로 흘러왔다. 예를 들어, 미스터X의 부인은 비생산적인 존재였지만, 그 자체로서 서비스업이라는 확실한 유효수요를 창출하여 몬스터 마을의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했던 것이다.

이렇게 저자는 지금까지 잘 이끌고 나왔던 단기 거시경제학을 갑자기 '장기'로 틀어 일본 경제의 저성장과 침체, 그리고 나아가 창조성 부재까지 싸잡아 비난하고 나선다. "노 비전"이라는 국가에 대한 미스터X의 주장이 맞는지 틀리는지 나로서는 제대로 알수 없었다. 다만, 책의 제목이 표방하고 있는 "알기쉬운 경제 우화"라는 표제는 이 책에 절반만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차라리, 마지막 부분의 어설픈 일본 경제 비판이 없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인데 말이다. 덕분에 우스꽝스러운 역자 서문도 나왔으니, 책을 두번 죽인 격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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