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리처드 포드 지음, 곽영미 옮김 / 학고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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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우선 우리 부모가 저지른 강도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다음에는 나중에 일어난 살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첫문장부터 500페이지에 달하는 긴 내용을 작가에게 죄다 스포당해버리고, 뭔가 좀 심드렁해진 기분으로 책장을 넘겨왔다. 열다섯의 어린나이에 부모가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잡혀가고, 하나뿐인 쌍둥이 누나는 집을 나가버리고, ​캐나다로 떠밀려진 주인공의 이야기. 내가 여기서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저 첫문장만큼 황당한 스포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겠군!?)

​ 그래서 책이 좀 지루했다는 것이 이 서론의 요지다. 무려 2주에 걸쳐 책을 읽다보니, 책을 읽으면서 하고 싶은 말이 수시로 변했다. 꾸벅꾸벅 졸면서 짜증과 함께 책장을 넘긴 날도 있고, 어떤 날은 심하게 심취하여 울컥울컥하면서 책장을 덮어버린 날도 있었다. 도대체 이 작가는 뭐하러 이렇게 내용을 질질 끌고있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특히 1부에서) '그래, 뭐. 혼자 버려진 불쌍한 어린아이가 참 당돌하고 똑똑하게 잘 살아가고 있구나. 나보다 낫네' 정도의 생각을 하면서, 소설같은 소설을 읽어갔다. 그러다 탕!하는 총성과 함께 내 머릿속을 맴돌던 무수한 생각들이 일순간에 사라져버리고, 오직 한가지 생각만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 무수한 생각들도 나름의 교훈들이었는데...)

 그래서 지금의 나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풀고 싶었는지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멍해져버렸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 것일까?'

 처음 나는 이 책을 가족이 무너져가는 세상속에서 개인의 상실과 슬픔을 담은 책으로 소개받았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그 소개는 모두 거짓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개인의 상실과 슬픔을 넘어 그 개인이 삶을 바라보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넘어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삶의 성찰을 담고 있었다.

​ "불안정해도 괜찮아." 그가 말했다. "나도 불안정하거든. 난 남들 말도 쉽게 따라, 아니 한때 따랐지. 이곳에서 우리는 불안정해. 여기 있는 자체가 당연하지 않으니까. 그 점에서 너와 난 똑같다."  (405p.)

​ 15살의 소년은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에게 닥친 모든 운명은 잔인하게도, 그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았고, 담담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다만 그는 꿈을 잃지 않았다.

​ 자신의 삶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삶은 우리의 의견조차 묻지 않고 많은 것을 결정한 채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거기서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좌절하고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받아들이고 그것을 넘어설 것인가.'하는 것 뿐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그 결정이 결국은 우리의 인생 전체의 모습을 결정하고,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인생은 결국 누군가가 결정해 준 것이 아니게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같은 환경을 지니고 태어났지만, 주인공 델의 인생과 그의 누나 버너의 인생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 "넌 멋진 삶을 살아온 것 같니? 내 기분은 말해 줬잖아? 그러니 넌 그렇다고 해도 괜찮아. 난 기뻐." 그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그 순간 그녀의 얼굴에는 긴장의 기색은 없고 평안함만이 보였다. 내 기어게 영원히 남아 있을 얼굴이었다.

 "난 받아들여." 내가 대답했다. "다 받아들여. 나한테 꼭 맞는 여자와 결혼했어."

 "우리 모두는 받아들여. 그건 대답이 아니야." 그녀의 마른 입술에 주름이 졌고 그녀는 지나간 버스를 언짢은 얼굴로 돌아보았다. "우리에겐 어떤 선택이 있을까?"

 "그렇다면, 맞아." 내가 말했다. "난 멋진 삶을 살았어." 내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533p.)​

​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를 둘러싼 모든 말들에는 극단적인 두가지 결론이 있고, 그 경계는 쉬이 구별되기 어렵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여야 그다음의 결정을 할 수 있지만, 그것에 완전히 물들어서는 안된다. 받아들이는 정도가 심해져 완전히 물들어버리다면 결국은 또다른 파국을 맞이할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에. 담담하게 하지만 때로는 반항적인 시선으로, 삶의 태도를 결정한다는 것은 역시 조금 혼란스럽다.

 이 책에서는 국경을 넘는 것으로 삶의 새로운 결정을 묘사하고 있다. 저자가 캐나다라는 공간에 어떤 숨겨진 의미를 담아두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삶의 환기였고 더 나아감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 것일까.' 지금의 나는 이 질문을 들으면 지극히 허무주의적인 결론에 부딧히고 만다. 나는 이 책의 주인공인 '델'만큼 삶을 담담하게 바라보고 받아들일 용기가 없는 듯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용기를 갖지 않는 일조차도 조금은 지치는 느낌이다. 스스로를 정의하고 삶의 이유를 찾아가는 일은 꽤나 멋져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부질없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래서 마지막에서야 이 책의 저자가 저런 파격적인 첫문장을 선택한 이유를 깨달은 나는 꽤나 슬픈 기분이 든다. (책이 슬픈게 아니라 지금 나를 둘러싼 사건들이 슬픈걸지도...) 이 책은 허구이면서 현실이었다. ​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책은 가족의 붕괴 속 개인의 슬픔을 담은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우리는 왜 살아가는 것일까.', '우리의 삶에는 어떤 선택이 있을까.'의 삶의 성찰을 담은 꽤나 씁쓸한 맛이 나는 소설이다. 누가 도둑질을 했고, 누가 살인을 했는가 하는 문제는 첫문장에서 발설해버려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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