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사람들의 말에는 정답은 있지만, 공감은
없다. [나는 개천에서 살았다. 하지만 기나긴 노력끝에 용이 되었다.] 는 '용'에만 강조한 나랑
상관없는 세상의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 책은 독자가 다 얼굴이 벌게질정도로 '개천'과 '노력'을 강조한다. 이 책은 글쓰기책이
아니라 저자의 일기장이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글쓰기에 대한 마음가짐조차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방법'이
아니라 '마음'을 배우고 싶은 사람, 딱딱한 자기계발서보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지금은 조금 잠잠해진 느낌이 드는데, 한동안 글쓰기가 붐을
일으키는듯 보였던 시기가 있었다. 대입논술시험을 치는 것도 아니고 글쓰기를 어떻게 책으로 배울 수 있느냐는 의문을 가진 나는 쏟아져 나오는
글쓰기 서적들을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이 책 역시 그런 책들 중 하나였다.
제목부터 심상치않다. <서민적글쓰기>라니, 그당시
서민교수님의 존재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제목만 듣고서 '庶民적글쓰기'인줄로만 알았다. 그러니까 어떠한 권력도 가지지 못한 일반시민들이 어떻게
하면 글로서 유명해질 수 있는가를 알려주는 방법론적인 책을 제법 그럴듯한 제목으로 포장해둔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다보니, 어쩌면 이 제목에는 그런 의도도 조금은 담겨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아니 이런 위트를 가진 저자라면, 분명 그 스스로 이런 제목을 출판사에 제안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이
특별한것은 이 책의 저자가 '서민'교수이고, <서민적글쓰기>라는 제목에는 '서민'교수의 글쓰기라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모든 것은 나의 추측이다.)
내가 서민교수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서울 모카페에서의
강연에서였다. 다른 이유로 서울을 방문했다가 우연한 기회에 방문했던 자리였는데,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라는 강연주제에 혹해서 갔던
자리에서 나는 서민교수님의 매력에 홀랑 넘어가버렸다. 교수님의 첫 느낌은 매우 겸손하고 위축되어 계시다는 느낌이었다. 큰 인기를 등에 업고 있는
사람으로는 절대 생각되지 않았기에 가까운 자리에 앉아서도 저분이 오늘이 강연자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반전. 기생충학을 전공하고 계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지만,
나는 대중과학서를 쓰시는 분들 중에 이렇게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이 있는 분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특별한 내용을 담은
강연은 아니었지만, 정말 1시간 남짓의 그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정도로 정신없이 빠져들었고, 이 책도 그 강연만큼이나 몰입도가
있었다.
책은 크게 두파트로 나뉘어져서, 앞에서는 교수님이 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어떻게 글을 써왔는지에 관한 역사(?)를 소개하고 뒤에서는 서민'적' 글쓰기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단정적인 어조로 당연한 소리를
하는 다른 책들과 달리, 자신의 방법이 반드시 정답은 아니고, 자신도 더 좋은 글들을 보며 부지런히 노력하고 있다는 한발 물러선 듯한 뉘앙스에서
오히려 더 진정성과 설득력이 묻어난다. 전문가, 선생님이 권위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위치에서 같이 걸어주는 느낌에 책의 모든 구절이
마음에 와닿는다.
대중서가 필요한 이유는 뭘까. 분업화된 현대사회에서 살다 보면
자기 분야 이외에는 잘 모를 수밖에 없다. 물론 모든 분야를 다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는
분야라면 어느 정도의 이해는 필요하다. 그 분야를 잘 몰라 일반대중이 피해를 볼 수도 있고, 대중의 무지를 틈타 이익을 취하려는 불순한 세력도
생길 수 있으니 말이다. 대중서로 그 분야에 대한 국민적 이해가 증진된다면, 그 분야에서 겪는 어려움을 타개할 기회가 마련될 수 있다.
(88p.)
책의 한 대목처럼, 그의 글쓰기는 솔직함이며, 간결함, 꾸준함,
비유하기, 돌려까기, 웃기기, 정확함, 비딱함...그리고 지옥훈련이었다. 우리가 삶에서 글쓰기를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특히 전문가집단에게
글쓰기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멋진 글을 쓰는 '정답'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 책을 권하지
않는다. 잘 정리된 요약집은 이 책 말고도 충분히 많이 나와있으니까.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다소 허무맹랑하고 시간낭비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멋진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정말 좋은 글쓰기 멘토를 얻은 기분이 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