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부검 - 나는 자살한 것을 후회한다
서종한 지음 / 학고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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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왜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까. 더이상 '자살'을 쉬쉬하며 덮어서는 안된다. 죽음의 앞에 선 당신, 누군가의 안타까운 선택 앞에 괴로워하고 있는 당신. 또 다른 '당신'을 위한 최소한의 시도가 바로 이 <심리부검>이다. 마음이 아프지만, 때로는 불쾌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심리부검을 해야만 하는 이유. 심리부검의 필요성을 다양한 사례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심리부검이나 자살예방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읽어보기에도 좋을 듯 하다.

 자살문제가 심각하고 이제는 그저 무시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하지만, 역시 책을 펼치기까지는 많은 망설임이 필요했다. 일단 내가 죽음이나 피와 같은 단어들에 너무나 취약하기 때문이었고, 타인의 자살을 접하기에 과연 현재의 내 심리상태가 건강한가 하는 문제도 조금 걱정스러웠다. 역시 처음 몇 페이지는 텅 빈 공간에서 혼자서 읽어내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너무나 오랫동안 무시해왔던 분위기에 완전히 압도당해버렸기 때문에.

 필자가 실시한 심리부검을 기준으로, 자살자 200명 중 83%는 정신 질환 경험을 했으나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병원 가기를 꺼려했다. (중략)

 여기서 "아직 한국적인 정서상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개인의 생명이 문화적인 풍토보다 우선순위가 낮다는 말인가? (65p.)​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잔인하다거나 심약자들은 보지 말아야할 책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굉장히 이성적이고 담담한 문체로 서술된 이 책은 누구라도 한번쯤은 진지하게 읽어볼 필요성이 있었다. 우리는 그 불편함을 반드시 느껴야만 한다. '한국적인 정서', 그것은 '자살'이라는 단어를 우리와는 거리가 먼, 썩 불쾌한 단어로 인식하도록 만들어버린다. 그런 생각은 자살자들을 현실에서 유리시키고, 이상한 사람 혹은 비난받을 사람들로 만들어버린다. 과연 자살이란 개인적인 문제인걸까.

​ 자살 사망자는 우리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고 죽음과 관련된 문제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뭔가 그들만의 확연한 특성이 자살 현장에서 발견되리라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의 현장에 가 볼수록 그 생각은 틀렸음을 깨닫게 되었다. 자살 사망자가 살고 있는 공간은 바로 필자가 살고 있는 공간의 구조와 요소들 면에서 아주 비슷했다. ...점차 나는 그들이 살아왔던 삶의 공간들이 지금 필자가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하는 공간임을 깨닫게 되었다.  (49,50p.)

​ 언젠가 이러한 내용의 연극을 본 적이 있다. 4명의 시신, '그들의 사인은 모두 자살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장으로 시작된 연극은 '그들의 사인은 모두 '타살'이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막을 내렸다. 자살자들의 인생과 그 자살자의 사인을 읽어내는 의사의 인생은 다르지 않았고, 이것은 우리가 곧 자살자 그들이며 또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용의자라는 의미가 된다. 결국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자살'이라는 단어를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자살은 우리와 멀지 않다.

 

 이런 생각에서 <심리부검>은 중요해진다. 심리부검은 죽음의 자의성과 타의성을 구분하고,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것에 첫번째 목적을 둔다. 때로 이것은 법정에서 중요한 증거로 제출되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것이 과학적으로 옳은가에 대한 의문은 떨치기가 힘들다.

 오히려 나는 법적 증거로서의 심리부검보다 '자살 예방'에서의 심리부검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죽음의 원인, 그리고 죽음의 순간까지 자살자가 보인 여러가지 징후들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정리해둔다면, 그리고 그런 자료들에 우리가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자살들을 조기에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심리부검은 부분적으로는 유족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망자의 자살 원인이 무엇인지 그냥 묻어 두고 이루어지는 심리 치료는 큰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유족들은 내심 자신의 관심과 주의가 부족해서 그들을 놓쳤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살의 책임을 병리적인 수준에서 자신들에게서 찾으려 애를 쓰며 집착한다. (중략) 우울과 낮은 자존감, 죄책감으로 이들이 자살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부 실제로 자살로 나아가기도 한다. (239p.)

​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우리가 멋대로 막을 자격이 있는 것일까? 죽음에 대한 선택 역시 그들의 존엄성의 문제가 아닌가?'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자살시도에 의한 죽음의 문턱에서 구출된 사람들의 대다수가 '재시도'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강으로 뛰어는 사람들이 바로 그 순간 자살을 후회했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을 수 있다.

 사실 이 문제는 생각보다 간단하지가 않다. 평균적으로 한 명이 자살하면 그 주위 사람 5명이 심한 우울증에 걸린다고 한다. 자살의 원인 중 하나인 '살아있는 자들에게 자신이 짐이 되는 것 같아'는 결국 자살을 택함으로서 남은 자들에게 더 큰 짐이 되어버리고 마는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과 복잡한 관계로 얽혀 있고,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선택은 어쩌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가진 모든 관계 속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많은 자살사례들이 실려있고, 그들의 자살 원인은 각기 달랐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의 자살 원인이 결국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시작한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이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보이기 위한 자살 방지 대책은 오히려 자살시도자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뿐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도 단시간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결국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심리적 아픔을 겪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어하던 누군가가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린적이 있다. 모든 연락수단을 없애버렸고, 지금의 나는 그 친구가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언제나 그 친구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내가 좀더 단단히 손을 잡아주었더라면면, 내가 더 자주 말 걸어주었더라면하고. 지금은 그저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났길, 그래서 더 나아졌길 바랄수 밖에...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갖고 지내고 있으며, 우리 개개인은 생각보다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다만 스스로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에게 끈이 되어주자. 힘든 사회를 살아가는데 희망이 되어주자. 사회를 바꿀 수는 없어도, 조금씩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은 작은 힘으로도 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작은 시도에 심리부검의 존재는 더 큰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살이라는 단어에 죽음이라는 단어에 더이상 무심해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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