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문장수업 - 미움받을 용기 고가 후미타케
고가 후미타케 지음, 정연주 옮김, 안상헌 감수 / 경향BP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 인적도 드문 자그마한 블로그를 가진 내가 할 말로는 조금 우습게도 들리지만, 최근 인터넷 세상에 나의 생각을 공유하는 행위가 조금 두렵게 느껴지고 있다. 단순히 개인의 놀이공간 정도로 생각됐던 블로그가 어느 순간 만인의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나의 지위를 엄연한 콘텐츠 생산자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특별히 칭찬을 받지도 비난을 받지도 않았지만, 타인의 시선이 존재한다는 인식만으로도 모든 것에 과도하게 예민해져있고 조심스러워지는 나를 본다.

 어떤 일이든 그 형태는 다르겠지만, 우리는 무엇을 생산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결국 타인을 의식하는 이 상황에서 영원히 벗어나거나 도망친 채로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까지는 그것을 예방하기위해 노력하거나 책임지고 견디며 살아갈 수 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나의 습관이 그렇게 쉽게 바뀔것이라고도, 내가 누군가의 방법론을 따르게 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생산자라는 역할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라도 나는 휘적거리며 생전 처음 맞춤법을 살폈고, 스스로도 황당하지만 글쓰기 책을 펼쳤다.​

 이해했기 때문에 쓰는 것이 아니다.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쓰기'라는 재구축하고 표현하는 작업을 통해 자기 나름대로의 '해답을 얻는 것이다. (25p.)​

 글쓰기를 책으로 읽고 배운다는 것이 아직도 ​의문스럽다. 내가 선택했지만, 책의 페이지가 그냥 영혼없이 훌훌 넘어갔다. 술술 잘 읽혀졌다기보단 빗겨 지나갔다. 그래도 다행히 내가 익히 들었던 글쓰기 방법론에 관한 교과서같은 책들과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 크게 거부감은 없었다. 당연한 듯 하면서도 가볍지 않고, 전문적인 듯 하면서도 권위적이지 않은, 좋은 선배와의 식사시간 같은 책이었다. 나를 가르치려고도 자신을 자랑하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어깨를 다독여주며 스스로 깨닫고 용기를 얻기를 지켜봐주는 책, 시작을 하려는 사람에게도 잠시 멈추어 있는 사람에게도 권할 수 있을 것 같다.

 글쓰기에 대한 예찬은 사실 나도 이 작가에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왜냐하면 나는 저자의 ​"쓰기라는 표현 과정은 생각하는 방법이다.(26p.)" 라는 말의 기적을 경험한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뱅글뱅글'이라는 단어로 표현된 현상은 그다지 유쾌한 현상이 아니며, 개인에게 바람직한 증상도 아니다. 사실은 명확히 알고 있는 것도, 이루어낸 것도 아닌 것을 나는 알고 있고 이루어냈다고 '착각'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처럼 '뱅글뱅글'은 번역되어야만 한다. 타인에게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개인의 바람직한 성장을 위해서 그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늘 감정의 혼란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곤 한다. 글을 써보라고. 잘 쓸 필요도 없고, 누구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다고. 맞춤법, 문맥, 흐름 어떤 것 하나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썼다가 스스로도 읽어보기 부끄러우면 그 자리에서 불태워버려도 된다고. ​혼란스러운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빙빙 돌도록 내버려두지 말고, 눈에 보이는 글자들로 옮겨서 직접 마주보라고. 조금 책의 내용과는 조금 벗어난 이야기지만, 나는 결국 자신의 표현은 자기인식 이후에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에서 나는 감히 이 책을 추천하고자 한다. 분명히 체계적이고 훌륭한 스킬들이 담긴 책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방법론을 읽는 일은 자아를 무너트리는 일이며, 결국은 창작에 마이너스 요인이 되고 말 것이다. 스스로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것은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혼자가 어려운 사람에게 이 책은 충분히 괜찮은 선배가 되어줄 것이다. 화려하고 멋진 '스킬'들은 그 다음에 알아가도 늦지 않다.

 너무 강하게 단정하는 말을 쓰면 강렬한 반발을 살 가능성이 높다. 물론 자신과 같은 의견이라면 강하게 찬성하겠지만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글쓴이가 단정해 버리면 독자는 강하게 반발한다. ... 그런 위험을 헤아려서인지, 일상 대화에서도 가능한 한 단정을 피하는 사람이 많다. ... 다만 이런 말이 품고 있는 미묘한 여지나 보험에는 누구나 민감하게 눈치챈다. 독자가 '도망갈 구멍을 만드네.' '얼버무리고 있네.'라고 생각하게 되면 돌이킬 수 없다.

 ... 나는 비판을 두려워하지 말고 좀 더 단정해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문장뿐만 아니라 일상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단정하려면 상당한 자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자신이 있기 때문에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가지기 위해 단정하는 것이다. (76-77p.)​

​ 이 책은 나를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또한 어떠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도 못했다. 오히려 내가 가진 고민들을 모조리 긁어모아 혼란만 가중시켰다. 그는 어느 순간 단정하는 듯 말했지만, 언제나 결론은 '스스로 부딧혀보라'는 이야기였다. 나역시 책을 심각하게 읽지 않았고, 그의 말을 삐뚤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독서의 끝에는 허무한 감정이 남지않았다. 오히려 읽어볼만한 책, 곁에 두고 싶은 책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생산자가 된다는 것, 특히 누군가의 시선을 염두해두어야 한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사실 누구도 제시해 줄 수 없으며, 행여 가능하다해도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실감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나의 조언자는, 자신감 넘치는 리더보다는 그저 내 손을 잡아줄 수 있는 미소가 따뜻한 선배가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