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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짓 - 일상 여행자의 소심한 반란
앙덕리 강 작가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3월
평점 :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의 저자가 남자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책이 묵직한
목소리로 내게 이야기를 들려줬다. 책 표지의 밝은 느낌과는 조금 이질적으로, 고요히 한 자 한 자 글자를 채워하는 그런 노신사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다가 '야구 글러브 아가씨'에서 흠칫 놀랐다.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책은 목소리를 잃고 갈팡질팡했다. 그러다가 다시 제
목소리를 가다듬고 이야기를 읽어주기 시작했을 때 즈음, 나는 이 글들의 매력에 흠뻑 젖어있었다.
또렷해진다. 또렷한 정신으로 지도를 펼쳐든다. 지도는 명확한데 현재 위치를 가늠할 수 없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현재에 머문다.
삶도 그랬다. 불안과 두려움은 엄마 배 속을 박차고 나온때부터 내 삶에 달라붙어 있었다.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지 못한다면 불안과 두려움이
전부가 된다.
나만의 불안이 아니다. 누구나의 공포다. 길을 잃은 것은 너의 잘못도 아니고 나의 실수도 아니다. 그저 우리의 길은 그런 것이다. 마치
안개를 만난 것 처럼. -184p
우리는 늘 듣는다. '딴짓하지마!' 그래서 그런지 딴짓이라는 단어에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잔뜩
묻어 있다. 집중하지 못하고, 빗겨나가고, 엉망진창이 된다. 아니 그렇게 되어버릴 것만 같은 단어다. 소설책을 읽는 일 조차도 '딴짓'이
되어버리는 갑갑한 세상. 하지만 정작 우리는 딴짓을 하기위해서 살고 있는 건 아니었던가.
목적지가
생기니 주변 경관을 둘러볼 여유가 사라진다. 목표를 두고 살아온 육지 것의 현실이다. -237p
'딴짓'이라는 단어를 설명할 수 있는 딴짓은 엄청나게 많겠지만, 이 책의 저자는 일상속 행동들
속에서 딴짓을 정의하고, 자신을 성장시킨 딴짓인 '여행'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렇다, 저렇다 우리가 마음대로 재단하고, 가정하고
살아가는 일들 중에서 우리의 허를 찌르는 반전을 담은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순간적인 창피함, 순간적인 감정들을 무시하지 않고 깊이 새기면
그것은 또 하나의 딴짓이 된다.
야구 관람도, 낚시 하기도, 자전거 타기도, 등산하기도.. 하지 않을때는 몰랐던 즐거움을 그녀는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마음이 닿는대로 여행하기, 그 곳에서 소중한 인연들을 만들어가기,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듣기. 그녀의 여행
이야기를 읽다보면, 어느새 빙그레 웃음짓게 된다.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그녀의 삶 속에서
'홀로있음'이라는 단어는 아름답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녀의 삶이 부럽다.
제주에서 터를 잡기 위해 오랜기간 그곳을 찾았지만, 그녀는 어떤 충동적인 기분에 휩싸여 '경기도
양평 앙덕리'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제주도를 향해 불태웠던 열망의 시간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느 곳이라도 상관없는 사람으로
변한 나를 만났다.'고 했다. 그것은 어쩌면 정말 '운명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늦은 나이에야 알게 된 '딴짓'에서 아마 그녀는 앞으로도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아니 지구상에서 스스로를 알아가고, 그렇게 살아가야하는 존재이기에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도 역시.
잠시
익숙한 공간과 시간에서 사라질 수 있는 여행, 바로 딴짓. 딴짓은 나를 알게 한다. 딴짓은 내가 원하는 것을 찾게 한다. 딴 짓은 나를 채우고
나를 만든다. 꿈을 이루는 과정에 있는 이들에게 딴짓은 달콤한 휴식이며, 꿈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에게 딴짓은 꿈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319p/ 에필로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