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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똥개 뽀삐
박정윤 지음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책의 첫 머리에 소개된 몇 개의 에피소드들을 넘길때는 '뭐지, 이건' 싶었다. '그들은 그들만의
사랑을 하고 있었고, 나의 섣부른 판단이었다.'라는 결론을 내리며, 새로운 배움과 성장을 얻었다는 내용의 글들이었지만, 저자의 사람들에 대한
불신이 조금 당황스럽게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수의사라면 마땅히 가질만한 의심이었지만, 그렇게 무작정 무책임한 주인이라던지,
자격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속으로 불쾌해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전에는 수의사 박정윤씨를 알지못했고, 그렇게 또 한명의 가치의 극단에 있는 저자를
만났다고 생각하며 마지못해 책을 넘겼다. 하지만 그 몇몇의 에피소드는 아마 그녀 자신의 부끄러운 성장기를 우리들에게 알려주기위해 살짝 얹은
이야기였던 모양이었다. 이후의 에피소드들을 넘기면서 나는 그녀의 진실된 수의사로의 모습에 몇번이나 감동을 했다. 그녀는 수의사란, 동물만을
케어하는 직업이 아니라 그의 가족들의 아픔까지도 함께 돌아보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금전적인 문제로 마땅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늘
가슴아파하고, 동물자유연대와 연을 맺어 함께 호흡하고 있기도 하다. 아마 쉽게 유기되는 동물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미안해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극단의 언어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건 아닐까.
검둥이는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을 병원에 버리고 간 첫 번째 주인이 가르쳐준 '손'. 처음 가르치면서 가족들은 검둥이를 한껏 칭찬해주었을 테고, 그
칭찬에 검둥이는 기쁨이 넘치도록 행복해하며 더 열심히 배웠던 그 시간을, 그 추억을 '손'이라는 말소리와 함께 기억하고 있었으리라.
-74p
어쩌면
그들의 말대로 동물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키울 때엔 무책임한 우리들일 수 있다. -242p
동물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동물을 좋아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흔히 우리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문장보다 훨씬 무거운 의미를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동물을 정말 좋아해서요,
허스키도 키웠고, 말라뮤츠도 키웠고....'라며 자신이 키웠던 무수한 견종을 자랑하듯 읊는 남자의 에피소드에서 '그래서 그들이 지금은 어디에
있죠?'라는 저자의 반문에 그녀의 깊이 있는 동물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꽃님이의
예상치 못한 장수의 비결은 엄마에게 있었다. 엄마는 꽃님이를 환자로 대하지 않았다. 아픈 아이가 아니라 그냥 강아지 꽃님이었다. 곧 떠날 아이로
대하는 게 아니라 다른 강아지들과 똑같이 놀아주고 잘못하면 뭐라고 꾸짖고 이것저것 말을 걸면서 꽃님이가 알아듣든 말든 상관없이 그렇게 야토
찡보와 똑같이 대했다. -305p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큰 깨달음을 준 사람은 수의사인 저자보다 그녀의 어머니였다. 한 병원의
원장이자 수의사인 딸덕분에 그녀의 집은 늘 동물들로 가득했는데, 그녀는 딸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그녀만의 방식으로 반려동물들을 사랑해주었다.
저자는 어머니를 못말리겠다며 이야기하지만, 사랑은 수학이나 과학의 공식이 아니었다. 수의사인 저자도 해내지 못하는 기적들을 그녀의 어머니는
이루어내곤 했던 것이다. 기계적인 약물처방과 식이조절이 아니라, 하나의 진정한 가족으로 사랑해주는 것, 수의사가 아닌 우리가 우리들의 작은
가족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처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