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박장애입니다
쓰쓰미 료지로 지음, 장은정 옮김 / 시그마북스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2년만에 가져온 서평으로는 뭔가 엄한 주제인 느낌이지만, 2019년 첫 완독 책이 그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 교보 sam서비스로 두 번이나 대여하고도 안 읽고(..) 내팽겨쳐 두었다가, sam구독 해지를 하면서 밀리에는 해당 책이 없어서(...?) 이제서야 이걸 3일만에 완독했다. 강박증과 관련한 책들을 이전에도 몇 권 읽었지만, 보통 '전문가'느낌 풀풀 나는 '지루하기만 하고, 그다지 도움은 안되는 책'이 대다수였기에 별로 기대감이 없어서 더 그랬다.

 하마터면 아쉬울뻔 했다. 이 책은 강박장애를 직접 겪고 그것을 극복해 온 누군가의 기록이다. 하나의 정신질환을 학문적, 의학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일상으로 함께 해 온 누군가의 이야기. 강박증과 관련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발병부터, 인식, 극복과정까지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나는 강박장애입니까?


 내가 강박증과 관련한 책들을 찾아 읽었던 것에는, 내가 (개인적으로만 좀 불편한) 강박증세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블로그에도 드문드문 기록되어 있듯, 나는 그것을 위해 명상을 배웠었고, 수차례의 좌절도 겪어오고 있다. 외부적으로 보이는 특별한 이상행동이 없고, 병원을 통해 진찰받은 결과도 아니기에, 스스로도 '그냥 핑계처럼 휘두르고 있는 합리화'가 아닐까하는 의심을 종종 하지만, 강박장애 판정을 받은 적이 있는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듣고 '병원을 가보라'고 진지하게 권한다는 것은 역시 완전 남 일은 아닌 것 같다.

​ 이처럼 '나중에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는 일을 걱정하고 연연했다는 사실을 알지만, 다시 그런 상황에 놓이면 어찌할 바 모르는 심리 상태에 빠져 이상한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강박장애 증상의 특징이다. (32쪽.)

 사실 누구나 '강박'을 조금씩은 가지고 살아간다. 덕분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장시키며, 때로는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기도 한다. 오히려 강박이 없는 사람들만 사는 세상이라면 지금보다 더 혼란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대다수 정신적 장애가 그러하듯, 그것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그것은 병이 된다.

 나는 강박장애일까? 나는 어릴적부터 무의식적으로 '강박을 끊어내는 단어'들을 사용해왔다. 이 문장을 여기다 집어넣으니 '태생 강박장애'같아졌지만, 오히려 반대다. 비효율적인 시간낭비를 칼 같이 끊어내는 기계같은 아이라는 소리로 해석해주면 좋겠다. 이미 끝난 일이 나를 괴롭히는 것은 사전에 없는 문장이었고, 모든 걸 쏟아부어 결과물을 내었으니 내 손을 떠난 결과는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확인, 통제할 수 없는 불안이 싫은 무의식이 모든 것을 눈 앞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두고, 통제를 벗어날 것들은 처분하는 월래행사를 치르게 하고 있다.) 철저하고 완벽에 가까운 통제아래 마땅히 기뻐하지도 아쉬워하지도 않는,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나의 강박관념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상행동(강박행위)으로 거의 나아가지 못한다.

 그렇지만, 역시 요즘의 나는 강박관념에 고통받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생각해보면, 이 강박관념의 원인이 되는 '선행자극'이 삶 그 자체라서, 인 것 같다. 손을 반복적으로 씻는다면 세면대에서 벗어나면 된다, 문이 잘 잠겼는지를 수십번씩 확인하는게 문제라면 문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하면 된다. 하지만 나의 선행자극은 어느 곳에서 시간의 간격을 만들어야 하는 걸까. 내가 강박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물리적인 어떤 것이 아닌, '생각' 그 자체이다.


​확인강박은 한마디로 말해서 '무엇이든지 엄밀하고 정확하게 확인하고 행동하려는 것을 지향하며, 그것을 나중에 자신의 기억으로 확인할 수 없으면 불안을 느끼는 상태'다. (127쪽.)


누구나 다방면의 일을 동시에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강박관념 때문에 괴롭더라도 일단 시작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런데 무언가에 집착하는 병적인 사람의 사고법을 보면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이론적으로 독단한다는 특징이 있다. (128쪽.)

"한 번 신경이 쓰이면 그것에 속박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계속 생각한다."라고 털어놨더니 "그러니까 생각의 전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군요."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76쪽.)

 나에게 생각이란 '내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길잡이'이다. 그러니 적당히 타일러서, 간격을 만들어두는 걸로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는 확신을 주기가 어렵다. 아무리 간격을 두고, 전환을 일으켜도 물리적인 증거도 없고 평생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고 살았기에 결국은 되돌아가고 만다.

 재미있게도 이 책에 소개된 극복방법에는 내가 명상에서 배웠던 기술들이 많이 등장했다. 특히나 시간의 간격을 만든다는 말은 정말 지겹도록 들었던 말이다. 결국 "무시하는 능력"이 답이라는 것이다. 나는 공식적으로(?) 명상을 그만두기로 하면서,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짐을 느끼고 있다. 명상이라는 행위자체가 오히려 나를 '강박'이라는 단어에 묶어두었고, 그것을 계속 떠오르게 함으로써 무시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니 어떠한 목적에 의해서 명상을 시작하는 분이 있다면 [뜬금없지만] 나는 말리고 싶다.

​실제로 곤란한 상황이 닥치지 않는 한 이치에 맞지 않는 일, 잘 생각나지 않는 일이 있더라도 넘겨버린다. (178쪽.)

 재미있다. 요즘 내가 일상에서 품고 살아가려고 하는 문장이 이 책에 정확한 활자의 모습을 하고 누워있었다. 강박이란 싸우려들수록 더 집요하게 사람을 괴롭힌다. 그냥 조금 성가신 고양이를 한 마리 기른다는 느낌으로, 적당히 알은 채 해주고 적당히 무시해주면 의외로 조용하다. 가끔씩 자주 우냥냥거리며 뛰어다니면, 아마 이미 익숙해져있을 이 상황을 감내하는 수 밖에. 불안도 굳은 살이 생기나보다.

 이 문장이 주는 무력함과 멍함만으로 충분히 불안하지만, 그 불안마저도 생각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강박이 아니라도 내 머릿속은 항상 온갖 생각들로 넘쳐났기에, 종종 궁금하다. 타인들도 이렇게 많은 생각들과 함께 살아가는 걸까. 아니면 적당한 멍함과 무력함이 대다수 일반인의 기본값인걸까.

​결국 강박이란, 싸워 이겨야할 대상이 아닌, 타협하고 협의하여 함께 살아가야할 존재이다.

물론 사라져준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이정도 마음가짐으로도 한결 편안해진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가 아직은 '정신건강'에 대해서 쉬쉬하는 분위기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덕분에 그만큼 자료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 책은 안내자는 되어줄 수 있지만, 실험해볼만한 솔루션을 제공한다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참고도서나 검색어를 첨부하고 있는데, 모든 책은 한국어 번역이 안되어 있고, 검색어도 우리나라와는 관련이 없는 듯 하다. (전혀 딴내용이거나 전혀 아닌 것 같은 검색결과만 나온다.) 이 책만 달랑 추천해주기에는 다음으로 나아가기가 너무 어렵다고 할까.

 [슬픈일이지만] 이젠 누구에게나 더이상 '정신건강'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세상이 와버렸다. 좀더 개방적인 사회적 분위기와 좀더 다양한 정보들을 이용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 날이 오면,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아무런 거리낌없이 이 책을 선물해 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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