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오후, 산책을 다녀오다.

먼저 뜨거운 물을 끓여 마신다. 겨울 바람에 언 몸이 녹는다.

차갑게 식은 카레를 데우고, 잘 익은 김장 김치를 썬다.

허기 졌던 몸과 마음이 포만감에 부푼다.

 

영화, 벌새는 이미 내용을 알고 보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가슴을 후려치는 묵직한 아픔을 느꼈다. 묻어 둔 기억과 영화의 내용이 겹쳐지며 공감 백 배였다. 저 때의 내 모습은 사실 영화보다 더 슬프고 아팠다. 은희는 부모가 있고 중산층의 부유한 가정이지만, 난 부모의 부재와 가난, 그리고 혹독한 사춘기를 지나왔다. 그 시절을 딱 한 단어로 표현하면 어둡고 긴 터널이었다. 사는 건 다 그래 라고 말할 수 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을 정말 오랜만에 영화를 통해 바라보는 경험은 특별하고 신비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은희는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난다. 동복이 하복으로 바뀐 햇살 가득한 날, 구김 없이 웃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렇게 모습일 뿐, 그들은 각자의 전쟁을 치르고 있을 터였다. 누군 가는 죽고 누군 가는 살아남았다. 죽음은 죽은 자의 몫이다. 기억은 점점 희미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세상의 모든 크리스마스
폴 오스터 외 지음, 알베르토 망구엘 엮음, 김석희 옮김 / 황금나침반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5월의 싱그러운 꽃놀이에 눈을 원하지 않듯
크리스마스 때 장미를 원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제 철에 나는 것이 좋습니다.
(세익피어, 사랑의 헛수고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하기의 다른 방법 - 모습들 눈빛시각예술선서 7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이희재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록된 순간과 지금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사이에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 P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순간 가장 원하는 것은 내가 나인 그대로 있는 것. 다른 누구도 무엇도 아닌 그냥 나. 어떤 불협화음에도 단단하게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되는 것이다. 여름날의 푸르른 잎들을 모두 떨군 뜰 안의 감나무는 만지면 부서질 듯 앙상한 가지들이 제멋대로 뻗어 있다. 죽은 가지로 보이지만 그 안에 숨은 생명이 동면 중이다. 봄이 되면 연푸른 싹이 수줍게 움트고 잎이 되거나 꽃이 되고 열매까지 열린다.

나 또한 긴긴 겨울을 건너는 중일 뿐이다. 적당히 어둡고 우울하지만 이 또한 지나갈 계절이다.

 

어느 순간부터 자각하기 시작한 말에 관한 것들이 있다. 나쁜 말들이 있다. 말 속에 숨은 실수들은 또 얼마나 가지가지인지. 나이가 들어 반 백을 지나니 말 수를 줄여야겠노라 다짐했다. 타인의 말실수를 보고 나도 혹 저렇지 않을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실수를 줄이려면 말을 덜 하는 수밖에 없다.

 

침묵은 수많은 자기 반성과 성찰의 여백이다. 침 튀는 수다가 주는 현기증에 어지러울 때 침묵은 더 빛난다. 깊은 산사에서 스님들이 왜 묵언 수행을 하려 하는지 알 듯도 하다.

 

우리 삶에서 의미는 순간적인 것이 아니다. 의미는 연결하는 데서 발견되며 전개 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줄거리 없이, 펼쳐짐 없이 의미란 있을 수 없다. 사실과 정보는 저절로 의미를 이루지 못한다. 사실을 컴퓨터에 집어넣어 계산을 위한 요소로 활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컴퓨터에선 절대로 의미가 생겨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사건에 의미를 부여할 때 그 의미는 알려지니 것에 대한 반응일 뿐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의미와 수수께끼는 불가분의 것이며, 둘 다 시간의 흐름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확실성은 순간적일 수 있고, 의심은 지속을 필요로 하며, 의미는 이 둘로부터 생겨난다. 사진에 찍힌 순간은 보는 이가 그 순간 속으로 지속을 읽어 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리가 사진에서 의미를 찾아낼 때 우리는 이미 그 위에 과거와 현재를 덧붙이고 있는 것이다. p88

                                                          (말하기의 다른 방법/존 버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나간 일을 떠올리는 바보짓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늘 생각했는데, 그것은 노력과는 무관하게 불청객처럼 찾아왔다.

때로는 농담처럼 웃어 넘기고 먼 타인의 가십처럼 안주 삼던 어린 시절의 일화, 추억 조각들이 갑자기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 중앙을 쿡쿡 찌르는 경험을 했다.

그동안 아프지 않아서 멀쩡했던 게 아니었다. 아프지 않은 척 했던 거였다.

드러내고 말하기가 창피했던 모양이다. 대범하게 이해하고 용서하고 극복했다는 믿음이 있었다.


오늘처럼

햇살은 따스하고 어쩐지 훈훈한 바람이 코 끝에 오래 머무는 날에 갑자기 찾아온 그것이다.

어두운 상실의 기억들과 부재로 인한 헐벗음과 눈과 귀가 닫혀 있었던 시간들, 집이었지만 집이라고 부르기가 난감하던 때다. 무언가 애틋하고 사랑스런 기억은 한 조각도 없던 시절이다.

그래서 지금, 오늘이란 얼마나 안온한지. 태어나서 살아있어서 고맙고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ᄄᅠᇂ게 태어나 살아왔는가 는 중요하지 않다고. 귓가에 속삭인다. 너가 너여서 너무 좋았노라고.

 



나는 목소리의 태어남을 결별이라는 말로 부르기를 제안한다. 갓난아기를 호흡하게 만드는 울음 소리는 호흡하지 않던 세계에 영원한 결별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 서약 위반이 최초의 고통이다. 태어남은 집없음이다. 혹은 실향이다. 첫울음이 그러하듯, 최초의 사라짐은 호흡 및 폐의 새로운 리듬 –폐의 리듬에 앞서는 심장의 리듬과 언제 까지나 협력해야만 한다을 작동시킨다. 버림받음은 언제나 기억의 바탕을 이룬다. (은밀한 생/파스칼 키냐르)


모든 강물은 끊임없이 바다로 휩쓸려 들어간다. 나의 삶은 침묵으로 흘러든다. 연기가 하늘로 빨려들 듯 모든 나이는 과거로 흡수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