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의 월든 - 부족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태도에 대하여
박혜윤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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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소로가 한 일은 바로 집안일이었다. 그는 집안일어즐거운 일이라고 했다. 바닥이 더러우면 일찍 일어나 가구들을집 밖에 내어놓고, 물을 뿌리고 모래로 문질러 깨끗하게 청소를 한다. 그러고는 풀밭에 있는 가구들을 찬찬히 감상한다. 주변의 나무며 풀과 어우러진 가구들을 보면서 그는 충만한 일체감을 느낀다. 그는 이런 집안일을 명상이라고 불렀다. 사소하고 귀찮은 집안일을 즐거움이자 나만의 명상으로 여기는 소로의 모습에 나는 감동한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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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인의 월든 - 부족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태도에 대하여
박혜윤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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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태도에 대하여

라는 멋진 부제에 끌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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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치 하우스
앤 패칫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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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이브가 죽은 직후의 시간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오터슨 씨가 장례식 미사에서 가족과 함께 앉아 두 손에 얼굴을 묻고울었던 것 말고는 그의 슬픔은 내 것만큼 깊고 넓은 강물이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그에게 가봤어야 한다는 걸, 그를 위로했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내 안에 위로는 없었다. - 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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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 독거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혐오까지는 아니지만 이 사회에서 쓰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의미하는 부정적이고 쓸쓸하고 어둡고 불쌍한 느낌을 싫어한다. 방송 등의 매체에서 어디 사는 누가 고독사 하였다는 말을 전할 때마다 불편하다. 혼자살던 사람이 혼자 죽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죽음 후의 깔끔하지 못함을 두고 이러쿵 저러쿵 사회문제, 악인냥 치부하는 게 불편하다. 일찍 발견되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죽은 자는 사실 관심없다. 사는 동안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는 죽은 이만이 안다. 재밌게 살다 갑자기 준비없이 죽을 수 있다. 한달 후 발견 되었다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뒤처리를 하는 이들의 설명이 죽은 자에 대한 백 퍼센트 진실은 아닐 것이다.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을 때를 알고 가는 죽음, 죽을 때를 선택하는 죽음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죽음일 것이다. 바라건대 나 역시 그런 죽음을 원한다. 신이 있어 언제 죽을 것이라고 알려준다면 축복이겠지만, 아직까지 그런 죽음은 멀리 있다. 그렇다해서 요양원, 병원에서의 죽음이 더 가치 있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곳에서의 죽음이 아무리 깔끔한들 살던 집에서의 마지막에 비할 순 없다.

 

죽음은 죽음일 뿐. 죽음 이후 까지 계급을 나누고, 고급과 저급을 말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삶의 굴곡에 비하여 죽음만큼 인간에게 공평한 순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타인에 의한 살해만 아니라면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마지막, , 소멸은 한 줌의 재라는 결과물일 뿐이다. 언젠가 나도 홀로 죽을 것이다. 운이 없어 발견이 늦어 부패된 모양일지라도 흉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중임을 알아주길 바란다. 살이 썩어 구더기가 생기고 역한 냄새가 진동하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죽음임을, 뭐 대단히 비참한 삶의 종말처럼 떠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홀로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언제 어떻게 죽던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고 할 수 있는 그대들의 기도를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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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불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없다.

그러나 실제로 혼불을 보았다는 사람은 많다.

그것은 우리 몸 안에 있는 불덩어리로, 사람이 제 수명을 다하고 죽을 때, 미리 그 몸에서 빠져나간다고 한다.

어떤 사람의 몸에 혼불이 있으면 산 것이고, 없으면 죽은 것이다.

혼불은 목숨의 불, 정신의 불, 삶의 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은 또 사람을 사람 답게 하는 힘의 불이기도 하다.

즉 혼불은 존재의 핵이 되는 불꽃인 것이다.

이미 혼불이 나가버린 사람의, 껍데기만 남은 어둡고 차디찬 몸을 살아 있다고 믿는 어리석음이여!

나는 혼불이 살아 있는 시대를 간절히 꿈꾸면서

우리의 역사에서 가장 어둡고 아픈 일제 강점기

한 가문의 진정한 삶을 일궈내는 상처의 삼십 년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 눈물 나는 해원의 굿이 열리는 마당으로

나는 소설 혼불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1995, 미국 시카고대학 노스팍칼리지 초청강연

<소설 혼불을 통하여 본 한국인의 정서와 문학적 상상력, 그리고 작업과정>


혼불을 읽는다는 건 어떤 아주 아주 오랜 기억들과 마주하는 경험이다.

예전에는 사용했는데 지금은 들을 수 없는 단어, 고샅은 골목을 의미한다

고샅이라는 말에는 할머니의 기억이 묻어있어 정겹다

할머니도 여장부셨다. 청암부인처럼 19살에 과부가 되셨고 자식 셋을 거느리고 굴곡 많은 세월을 살아내셨다. 내 유년은 온통 할머니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졌다. 할머니 따라서 밭을 메고 모내기를 하고 뽕을 따고 감을 따고 밤을 딴 소소한 일상들.... 쉬지 않고 일하고 또 일하고 일만 하시던 할머니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다 겪으셨다

전쟁 중 남편과 아들을 잃었고 살아남은 큰 아들은 군대에서 앗아갔다

온전한 정신으로 버티고 살아온 것이 기적인 할머니의 그 삶 안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혼불'이라는 소설을 통해 하고 있는 셈이다. 

 

혼불의 언어는 전라도 사투리가 지배한다

전라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읽기가 더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몇 번을 읽어도 해석이 요원해서 애먹었다. 

경상도 사투리의 투박함보다 더 비틀린 느낌이 낯설어서 몇 번을 읽어야 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철저히 고증에 입각하여 그 지역 토박이의 언어로 말하듯이 썼다. 

한마디로 어려운 소설이다

올 한 해의 마무리와 시작은  혼불로 태워 활활 타올라  볼까. 

죽고 살고 엎어져서 논 매고 밭 매도
이녘의 목구녘에는 보리죽이 닥상이고
손톱 발톱 다 모지라지게 베를 짜도 내 생에
얻어입는 것은 요 사발만한 두루치 한쪼각이여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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