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주 연속으로 고향에 다녀오려니 기진맥진, 피로가 풀리지를 않는다. 이것도 장녀 콤플렉스라면 콤플렉스다. 엄마가 힘들거나 말거나 눈 딱 감고 모르는 척 하면 그만인 것을. 차마 그러지를 못하는 병. 할머니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엄마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결국에는 나를 위해서도 이 의무 아닌 의무는 계속될 것이다. 빈말일지언정 다음 주는 오지마라 하시는 엄마에게 와야지 몸 편하자고 안 오면 마음이 불편해서 싫다고 툭 뱉어냈지만 지치긴 벌써 지쳤다. 가족이라는 이름, 그리고 할머니의 병 아닌 병 앞에서는 도무지 긴장을 풀 수가 없다. 끝도 없이 계속되는 넋두리, 한탄, 푸념들. 좋은 기억은 다 잊고 최악의 기억들만을 곱씹고 계신 할머니가 가엾다 못해 어이가 없다. 잊어라 해라 잊혀질 성질의 것도 아니고, 고통들, 설움들, 상처들은 생경하게 살아서 할머니의 피폐한 현재를 좀 먹고 있다. 누구든 늙는 것을 피할 순 없다. 저것은 나의 미래이기도 하니까 고개를 돌리지 말고 똑바로 바라보자고 다짐하지만 추한 것을 아름답다고 말할 순 없다. 인간의 자존은 어디로 가고, 그 결벽성은 어디서 놓치고, 힘없는 팔다리를 질질 끄고 목숨을 연명하는, 관심과 애정을 구걸하는 가여운 존재가 되었는지. 늙음이 상실뿐이라면 어떻게 늙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랴. 마른 나무껍질 같은 피부와 생기 잃은 눈과 구부러진 허리와 하얗게 변색된 손톱과 썩어드는 발톱과 아무것도 씹을 수 없는 잇몸뿐인 늙음이라면.


엄마 몰래 밖에 나와 장독대를 닦으시다 넘어지셨다며 머리에 혹이 생겼노라 전화를 하신 할머니. 엄마에겐 아무 말도 말라 이르신다. 혼날까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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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04-19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늙음, 멀지 않은 곳에 있군요.

겨울 2006-04-19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을 상실하고 손상하고 왜곡한다는 게 제일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