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의 아들 - 전2권 세트 - 법의관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퍼트리샤 콘웰 지음, 홍성영 옮김 / 노블하우스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앓아누워 열에 시달리는 동안, 초저녁 일찍 잠을 자기 시작하면 꼭 한밤중에 한 번은 깨게 된다. 새벽 한두 시나 혹은 서너 시경인데, 이런 경우 그냥 무식하게 불을 끄고 눈을 감는다고 달콤한 잠이 쏟아지는 일은 없다. 일단 따뜻한 차 한 잔을 천천히 마시면서 몰입에 적당한 소설을 펴든다. 예를 들어, 사두고 이런저런 이유로 읽지 않고 있던 퍼트리샤 콘웰의 <카인의 아들>같은, 얇고 그래서 손에 들기에 가벼운 책이다. 베개를 쌓아 등을 기대고 반쯤 정신이 멍한 상태에서, 스스로에 대한 연민으로 한없이 약해진 마음을 가다듬고, 홀로 사는 아픈 여자가 새벽에 일어나 소설을 읽는 요상한 그림을 상상해 보라.


그렇게 두 권을 책을 나흘에 걸쳐 읽었다. 적당한 감동과 흥분과 으스스한 공포감에 시달리면서. 눈 내리는 뉴욕의 밤, 공원에서 발견된 여자의 시체. 그녀를 누가 죽였는가는 소설 첫머리에 드러난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살인자가 누구인가를 밝혀나가는 그렇고 그런 스토리는 아니다.


하얀 눈 위에 벌거벗은 몸으로 죽어 앉아있는 이름 없는 여자에 대한 호기심과 동정심 앞에서 케이 스카페타 박사는 분노하고 아파한다. 살해된 여자는 거리의 부랑아였다. 그녀의 죽음을 원통해할 가족도 친구도 없다. 어쩌다 연쇄살인마의 표적이 된 운이 나쁜 경우일 뿐. 냉정한 이론가 혹은 행동파인 동료들 속에서 케이는 그들이 무심히 넘기고 지나친 사소한 문제들을 끌어안고 번뇌한다. 마음에 쏙 드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나는 이런 여주인공을 만나면 정신을 못 차린다.


어떤 인간의 내면은 더 이상 손댈 수 없을 지경으로 사악하고 사악하다. 뒤틀리고 꼬인 그런 인간의 영혼은 눈을 감고도 보고 싶지가 않다. 살인마의 행적을 따라가며 몸서리를 치다가 다시 초점을 스카페타 박사에게 맞추면 차갑게 식었던 가슴과 머리가 따뜻하게 덥혀진다. 악에 대적하는 선에 대한 지극히 단순한 공식이지만 그 선이 결국은 인간을 인간답게 세상을 살게 한다는 것을 배운다.


단지 소설만이 아니다. 어느 날 문득 주변을 돌아보다 세상이 더 이상 살만한 곳이 아닌 것 같다는 생경한 두려움에 젖을 때가 있다.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범죄와 가정과 학교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상처, 울부짖음을 듣노라면 과연 내가 안전할까라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소설 속에서 케이 스카페타는 그 암울을 비극을 바로잡아가는 존재다. 끊임없이 번민하고 의심하고 회의하면서 한 걸음씩 살인마에게 다가가 의연히 맞선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한 가여운 영혼의 이름과 가족을 찾아주기 위해, 모든 이의 안식을 위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5-12-31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케이 스카페타, 욱, 하는 사람이라 좋아요..;;

겨울 2006-01-02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려서 쉽게 상처입고 분개하며 감정적이 되는 감수성도 매력이죠. 그녀는 한없이 약함을 드러내면서도 범죄자의 사악함에 정면으로 맞서요. 시간이 없어 읽기를 미루고 있는 '죽음의 닥터'에서는 어떤 모습일 지 정말 궁금해 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