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을 읽어도 여전히 흥미진진한 책이다. 사자마자 후다닥 읽어치운 후 지인에게 빌려주었다가 얼마 전에 돌려받고 보니 다시 흥미가 당겨 펴들었는데, 웬걸 내용들이 생경하다. 도대체 내가 뭘 읽었길 레? 의아했지만 읽으면서 곰곰 생각하니 그럴 법도 하다. 인간을 다룬 인간의 이야기를 평소의 습관으로 빠르게 한 번 읽었다 한들 곳곳에 숨겨둔 저자의 비장의 문맥들이 제대로 기억에 뿌리내렸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재독을 유혹하는 책의 맛은 달콤쌉싸름하다. 첫 맛의 밍밍함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강하게 톡 쏘는 제 2의 맛이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이 중대한 사실을 시시때때로 잊는 다는 것. 그래서 한 번 읽혀 뒷방 신세가 되어 먼지를 뒤집어쓰는 가엾은 책들의 운명에 대해 새삼 심사숙고를 해본다.


백미러 없는 ‘불도저’의 자신감. 현 서울시장으로서 저자의 관심 제 1순위에 오른 이명박을 지칭하는 이 말의 뉘앙스는 묘하다. 읽는 사람의 느낌이 그러하니 글을 쓴 사람의 의도가 어쨌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언론에 보여준 부분도 그렇고 약간은 색 있는 안경을 끼고 바라본 것도 사실이고, 저명한 글쓴이까지 그렇다고 말하니 전적으로 오해는 아니라는 것이다.


병든 할머니를 모시고 있는 10대 초반의 소녀 가장에게 ‘나도 사글세방에 살아 보아서 잘 안다. 그래도 너는 내가 겪은 가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은 이렇게 정부에서 도움이라도 주고 있지 않니. 용기를 잃지 말거라’라는 식의 위로가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그 소녀 가장이 이명박의 어린시절보다 덜 가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그 소녀가 술주정뱅이 아버지 밑에서 허구헌날 폭력에 시달리며 성장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때는 물리적 궁핍함보다 정서적 황폐함이 더 문제가 된다. 배를 곯지는 않지만 생활보호대상자라는 처지가 부끄러워 친구들과의 관계가 힘겹다면 그 또한 어떤 식으로든 배려할 방법을 찾아야할 문제다. 가난의 정도라는 하나의 잣대로만 한 사람의 상황을 판단할 수는 없다. ‘배부른 투정’이라는, 세사에서 가장 무지한 관용구로 넘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p.28)


소녀 가장 앞에 서 있던 이명박의 모습이 성공하여 배부른 억만장자라는 사실은 솔직히 구역질이 난다. 그가 뱉은 위로와 충고를 도로 밀어 넣고 싶다. 그저 말없이 안아주고 등 두드려주는 것이 백배는 진솔했을 것이다. 이런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는 것에 대해서도 물론 그는 철통같은 이론으로 무장하리라 의심치 않는다. 당신이 아무리 떠들어도 나는 나다. 바꿀 생각도 이유도 없다. 고 하면서.


명박은 자신이 겪은 가난의 본질에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을 극복한 자기 스토리에 깊이 공감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억은 우월한 쪽으로 흡수된다. 과거는 찬란했으나 현재가 보잘것없는 사람은 과거 쪽으로, 과거에 비해 현재가 월등한 사람의 과거는 화려한 현재를 돋보이게 하는 장식용으로만 가능하다.(p.29)


인간의 개별성을 중시하라는 정혜신의 호소에 공감한다. 청계천 복원공사 도중에 자살한 사람의 진심을 간과하지 말라는 뼈아픈 충고에도 그가 귀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한번은 스스로의 치명적인 단점을 인정하고 그의 불도저에 밟히고 뭉개진 파편들 앞에서 겸허히 고개를 숙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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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12-04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관함으로....
다른 리뷰를 보면서도 안사고 버텼던 책인데...^^

겨울 2005-12-04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은비님, 날개님, 제가 사는 곳에도 눈이 왔어요, 눈이.^^ 함박눈은 밤사이 내려 오는 걸 못봐 몹시 서운했지만 낮에도 슬금슬금 내렸어요. 눈 오는 날, 저는 오리털 파카 뒤집어쓰고 내내 컴퓨터 앞에 달라붙어 혼자 놀았네요. 이중창의 불투명한 창 하나를 열어 가끔 하늘과 지붕과 나무를 보면서요. 행복해라~ 중얼거리면서요. 이 책의 두 번째로 흥미로운 사람은 박근혜라지요. 천천히 읽어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