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낮,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았다. 오랜만에 맡는 풀냄새, 흙냄새에 괜히 맘이 설레는데, 잡초 뽑힌 자리마다 이름모를 벌레들이 화들짝 놀라 달아났다. 삭막한 시멘트 마당 틈새를 비집고 올라오는 잡초도 생명이라고 신기하게 바라만보다가 그것이 커서 씨를 남길까봐 기어이 뽑아 없앴다. 감나무는 노란 감꽃을 피우고, 빠트리고, 화단에는 정체모를 식물 두어 그루가 나날이 자라고 있다. 무슨 꽃을 피울지 궁금해서 두고 보는 중인데, 꽃은커녕 키만 큰 잡초로 자랄 가능서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때때로 꽃이건 풀이건 마음껏 자라도록 내버려두고 싶지만 사람도 없는 집이라고 흉볼 것이 걸렸다. 달력을 보니 어제가 소만(小滿)이다. 산과 들판이 신록으로 물드는 시절, 보리가 가을의 벼처럼 익어가고 죽순이 절정으로 자라는 입하와 망종 사이의 절기.
小滿
이만하면 세상을 채울 만하다 싶은
꼭 그런 때가 초록에게는 있다
조금 빈 것도 같게
조금 넘은 것도 같게
초록이 찰랑찰랑 차오르고 나면
내 마음의 그늘도
꼭 이만하게는 드리워지는 때
초록의 물비늘이 마지막으로 빛나는 때
소만(小滿) 지나
넘치는 것은 어둠뿐이라는 듯
이제 무성해지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듯
나무는 그늘로만 이야기하고
그 어둔 말 아래 맥문동이 보랏빛 꽃을 피우고
소만(小滿) 지나면 들리는 소리
초록이 물비린내 풍기며 중얼거리는 소리
누가 내 발등을 덮어다오
이 부끄러운 발등을 덮어다오
나희덕의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