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가로수 길을 따라 걷노라면 콧노래가 절로 난다. 노란 은행잎이 이불처럼 깔린 길에 빗자루가 지나간 흔적이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쁘던지. 매일 아침마다 청소를 하시던 분끼리 암묵적인 약속이라도 있었던 걸까. 소복소복 쌓인 은행잎을 보는 일이 이렇게 행복하다는 거, 모른다면 바보지. 동네 어귀뿐만이 아니다. 낡은 주공아파트를 둘러싼 넙적한 플라타너스나무도 오색의 이파리를 마구마구 흩뿌리는데 비에 젖어 촉촉한 그것이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모양이 그지없이 좋다. 계절의 색과 냄새와 형태를 만끽하며 일터로 가는 이런 날들은 비록 종교는 없지만 신의 축복 같다.
오늘은 추위가 제법 매서웠다. 준비성은 철저해서 두툼한 스웨터를 꺼내 입고 마스크를 쓰고 집을 나서니 차가움이 서늘하게 느껴질 정도였지만, 얇은 옷을 입고 파랗게 질린 여학생들을 보니 잔소리가 마구 쏟아지려 했다. 아이들을 보고 옷 좀 따뜻하게 입으라는 말을 무심코 하다보면 꼭 엄마가 된 것 같아서 무안할 때가 있다. 확실히 십대들은 무엇에서건 겁이 없다. 아주 기본적인 예의, 고운 말씨, 웃어른에 대한 공경 따위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듣기에도 생경한 욕설을 거침없이 뱉는 걸 보면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올 지경이다. 그러나 절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 나무라는 방법도 쿨하게, 직설화법으로 한 방에 쏴야한다. 자라고, 배우고, 느끼고, 모방하고 결론내리는 속도도 엄청나게 빠른 요즘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거기에 내 자리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