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솔직하다. 지나치게 솔직해서 꼬투리 잡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맛난 간식이 된다. 그는 괜찮은 사람이다. 가식이 없고 위선이나 위악, 권위와도 거리가 멀다. 그의 소박한 외모 만큼이나 정신도 순수해서 무엇하나 감추는 것 없이 보이는 게 전부인 그런 사람이라고 굳게 믿는다. 신물나게 봐온 엘리트 관료출신도 아니고 서툴고 촌스럽지만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을 또한 믿는다.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땐 정말 기쁘고 행복했다.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무수한 복병, 무찌르고 쳐부수고 헤치고 나와도 끊임없이 에워싸는 정적들의 출몰은 예상 외로 거대하고 견고하다. 썩고 썩어서 고약한 냄새를 피우는 구태의연한 관습을 베끼면서도 부끄러움도 수치심도 모를 정도로 안일한 정치, 정치인의 수장인 그는 그러나 얼마나 왜소한가. 사공이 많은 배는 산으로 간다. 그의 지휘는 흔들리고 위태롭다. 그를 둘러싼 방어벽은 어찌 그리도 허술한지 언론은 그의 허물만을 들추고 업적에게는 등을 돌려 버린다. 그의 소탈한 유머감각과 미소조차도 답지않다는 이유로 비웃음을 당한다.

그가 꿈꾸는 이상적 정치와 현실은 물론 괴리가 있다.  그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변화가 있다, 이 만큼 왔다고 진지하게 토로한다. 그를 지지하는 동지에게는 아름답게 들릴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어휘와 행동들이 현실에 안주하여 혹은 과거 권력의 사슬로 이어져 온 자리를 지키려는 자들에게는 헛소리로 들리는 건가. 때때로 그가 가여워서 눈물이 나려한다. 두드려도 두드려도 반응이 없는 철벽에 피투성이 주먹을 휘두르는 것 같아서. 진보의 한 걸음이란, 이렇게 무겁고 아득히 먼 것을 뒷걸음질만 쳐온 우리의 정치는 아직도 모르는 모양이다.

전두환, 전재국, 전재용 삼부자의 썩어 문드러진 행태를 두 눈 멀쩡히 뜨고 바라만 보고 있는 그들이다. 혈연, 지연, 학연으로 똘똘 뭉친 부패의 고리에 바짓가랑이를 걸치고도 입으로는 아니라고 변명하는 그들이다. 그들이 원하는 사람은, 그들이 시키는 말만 하고 그들이 시키는 행동만 하는 꼭두각시 인형인가. 그들의 허물은 감쪽같이 가려주고 그들의 고픈 배는 빵빵하게 채워주는 임기웅변에 능하고 허례허식, 폼만 재는 눈속임의 대가인가. 말 한마디로 산천초목을 떨게 하여 아첨과 아부, 절대 복종과 맹신을 요구하는 독재자인가. 그들이 원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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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3-22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과 몽상님, 저도 그를 좋아하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이제야 아린 가슴을 조금 다독였어요. 뿌리 깊은 썩은니를 잘 뽑을 수 있어야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