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무심코 마시던 인스턴트커피의 상표를 확인하고는 오만상을 찡그린다. 평균, 하루 한잔씩 꼬박꼬박 마시던 커피다. 비극적인 칠레 대통령 아옌데 살해의 이면에 다국적기업 ‘네슬레’가 있었다니. 그동안 마신 커피들이 되넘어 올 것 같다. 말 되는 일보다 말 안 되는 것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아기, 어린이들의 생명을 담보로 주권국가의 대통령을 살해하는 음모에 이르렀다는 잔혹함 앞에서 숨이 턱 막힌다. 기아문제가 교과서에서 가르칠 수 없는 터부 중의 하나라니. 숙명적인 기아가 지구의 과잉인구를 조절하는 확실한 수단이라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보조나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는 토머스 멜서스(18세기말 영국국교회 성직자)의 이론이 양심의 가책을 진정시켜 끔찍한 사태를 외면케 하고 무관심을 조장한다니. 세상에나.




마음 한편으로 그 나라에서 그렇게 태어나지 않았음을 안도하는 마음, 가난하고 병들었음에도 왜 끝없이 아이를 낳을까 라는 통속적인 의문을 품었던 마음이 참으로 부끄럽다. 죽어가는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멜서스만큼이나 잔인하고 비겁하다. 지글러는 이런저런 생각이나 반성할 시간적 여유도 사치라고 호통 친다. 무조건적이고 즉각적인 도움을 요청한다. 왜, 어째서라는 짧은 의문조차도 굶주려 죽어가는 아이들에겐 사치스럽고 어리석은 관심일 따름이니까. 이 책에는 구조적이거나 경제적이거나 내부 혹은 외부적인 다양한 기아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다양한 나라, 인종, 정치, 사회, 문화의 차이에 의한 셀 수 없는 모순에 갇혀 진퇴양난에 처한 현실을 토로한다. 일회성 도움보다는 장기적인 해결책을 모색하지만 수많은 난관에 봉착하고 좌절하고 다시 도전하는 식이다. 자본을 독점하고 있는 강대국, 다국적 기업들의 자발적 협조가 없이는 근본적 해결책이 없는 것이다. 가진 것에 만족할 줄 모르고 더 많이를 외치며 세계정복을 꿈꾸는 인간을 창조한 신을 원망하는 길밖에 없는 것일까. 기아 앞에 붙는 숙명이라는 단어가 피처럼 붉게 느껴진다.




이 책을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노라면 식욕이 뚝뚝 떨어지고, 눈앞의 진수성찬이 부끄러워진다. 음식을 남기고 버리는 것에도 죄의식을 느낀다. 다분히 감상적이지만, 다이어트가 필요하거나 하고 있는 사람은 필히 이 책을 필독하시길.  이런 정서적인 반응에 대해 저자는 쓸모없노라고 신랄히 비판하리라. 현재 죽어나가는, 어린이무덤에 묻히고 있는, 아무 죄도 없는 작은 생명에게 필요한 건 먹을 거라고. 고작 마시던 커피 맛을 잃는 정도의 유치한 감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배고픔의 숙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라도 말이다. 부족한 것은 연대감이며, 국제공동체로부터 도움을 받고자 하는 진짜 의지이다. (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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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18 21:41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갈라파고스 2007년 11월 도서목록에 있는 책으로 2007년 11월 8일 읽은 책이다. 관심분야의 책들 위주로 읽다가 알라딘 리뷰 선발 대회 때문에 선택하게 된 책인데, 이런 책을 읽을 수록 점점 내 관심분야가 달라져감을 느낀다. 총평 물질적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이 책에서 언급하는 "기아의 진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막연하게 못 사..
 
 
프레이야 2007-07-16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상적인 동정이 아닌 합리적인 실천으로 해결되어야할 문제입니다.
다국적 기업들의 자발적인 협조를 꼭 필요하구요.
지금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하고 연민할 시간도 사치라고 하는 저자의 말이..

겨울 2007-07-17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아로 고통받는 다수의 국가들이 프랑스 등의 식민국가였고 현재도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는 것도 충격이었어요. 상카라라는 청년 대통령이 빈곤과 기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홀로서기에 성공하자 그를 제거하기 위해 나선 프랑스라는 이름이 갖는 지적,미적, 예술적 가치가 얼마나 허울인지요. 가난하고 약한 나라는 계속해야 무능하기를 바라죠. 호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