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의 맑음 만큼 기쁘고 설레게 하는 것도 드물다. 매일 맑은 날도 매일 비오는 날도 식상하고 지루하기 때문이다. 푸른 하늘도 하얀 구름도 처음 보는 양 바라보게 된다. 군데군데 이끼가 낀 앞집의 낮은 슬레이트 지붕조차도 정겹다. 바람에 날리지 말라고 올려놓은 벽돌도 생경하다. 홀로 사시던 할머니가 서울의 아들집에 다니러 가신 후 비어있는 집은 세월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 추레함이 싫다고 흉하다고 생각하던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매끄럽고 번듯하게 페인트칠 된 그 집은 상상하기도 싫다. 낯설 것 같다. 쌓이고 쌓인 먼지가 제 고유의 색을 입어 얼룩덜룩 그림이 된 벽, 녹이 슨 못 자국, 허물어질 듯 갈라지고 모퉁이가 닳아버린 담벼락은 그 자체로 평화롭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집을 거쳐 갔는지도 안다. 병든 노모를 모시고 박스를 주워 생계를 잇던 지체장애의 아주머니의 선량한 얼굴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실까. 조금은 까칠한 주인 할머니와는 달리 세 들어 살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넉넉하고 순했었다. 이제는 과거의 기억이다. 집이 없는 사람들의 떠도는 삶을 떠올리면 그립다는 말로는 부족한 연민이 앞서는. 눈 뜨면 마주 바라보는 정경들이 이렇듯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돌아오는 이런 날엔 빨래줄에 이불을 걸어놓고 먼지 나도록 팡팡 두들겨야지.   

 

~라고 썼는데, 오후부터 구름이 잔뜩 끼고 잠깐이지만 비도 뿌리고 하여튼 날씨가 흉흉했다. 원래 5월이 이렇게 변덕스러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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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5-19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몽님, 빨래줄에 걸린 우몽님의 뽀송한 이불을 상상합니다.
남이 보지 않는 부분을 잘 가려내어 보시는 우몽님의 시선이 이불보다 더 반짝여요.
잘 계셨냐는 인사를 이리 묻습니다.
도대체 정말 잘 지내신겁니까...말많은 여우에게 말도 안걸어주시고.....^^

겨울 2007-05-20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아팠던 팔은 다 나으셨나요?
전, 번잡하고 소소하고 권태로운 일상의 무게에 눌려
책 한 권 제대로 읽을 여유가 없었으니
절대로(?) 잘 지내진 못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