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부르디외-디스탱숑-RDA-톰프슨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만큼 내가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책읽기에서 별로 재미를 못 보고 있는 사회학자도 드물다. 이건 그의 책 대부분이 동문선에서 출간되고 있다는 사정과 무관하지만은 않다. 어지간하지 않은 책값에도 불구하고 읽어나갈 수 없는 책들과 몇 번 대면하다 보면 지레 의욕을 상실하기 마련이다. 그의 책 <실천이성>(동문선, 2005)의 경우도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한번 소개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없는 책으로 치고 있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또 도서관에서 그 책을 집어들게 되었고(서점에서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이게 외국의 청중들을 상대로 한 강연문집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어쩌면 부르디외의 사회학에 대해서 그 자신이 가장 간명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입문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자도 이 점에 있어서는 의견을 같이 하고 있었고: "부르디외가 설명하는 부르디외의 사회학 이론을 접한다는 것은 독자에게 행운이라 할 터이다. 그의 직접적인 목소리로 듣는 해설서로서 <실천이성>이 그의 독창적 학문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보탬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278쪽)

하지만, 나의 행운과 기대는 멀리 가지 못했다. 도서관에서 불어본과 영역본(어떤 이유에서인지 한 장의 번역이 누락돼 있다)까지 대출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제일 처음 읽은 것은 1장의 부록인 ''소련의' 변형과 정치적 자본'이었다. 국역본상으로 6쪽짜리의 글인데(불어본과 영역본은 5쪽), 내용에 들어가기 이전에 몇 가지 사항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번역에 대해 의문을 갖게 했다.

 

 

 

 

일단 첫문장: "나는 여러분들 가운데 상당수가 <디스탱숑>을 깊이 있게 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32쪽) 부르디외를 읽어본 독자라면 이 <디스탱숑La Distinction>이 <구별짓기>를 가리킨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번역에 대한 불만들이 지적되기도 했지만 작년에 국역본 재판(새물결, 2005)까지 나온 바 있다(부르디외 전공자인 역자는 이 책의 제목을 '탁월화'라고 엉뚱하게 소개한 전력이 있다). 같은 책이 동문선에서는 아마도 새물결판과 구별짓기 위해서 <디스탱숑>이란 음역 제목으로 근간 목록에 올라놓고 있는데, 한국어판 판권이 과연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 사정이 어떻든간에 우리말로 아무것도 전달해주지 않는 '디스탱숑'을 책의 제목으로 삼는 태도 자체가 불만스러웠는데, 막상 번역서에서 그런 제목을 읽으려니까 심사가 아주 디스탱숑해진다.

동베를린에서 강연한 강연문인 이 글에서 부르디외가 '여러분'이라고 호명하는 대상은 1989년 10월 25일 당시 동독인들이었다(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건 불과 며칠 후인 11월이었다). 그리고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구별짓기>의 모델이 프랑스 밖에서도 적용가능한가에 대한 '여러분들'의 의문에 대해 답하겠다는 것(국내에도 부르디외 사회학의 한국적 적용을 탐색하는 시도들이 있었다). "즉, 이 책에 제안되어 있는 모델은 프랑스의 특수한 사례를 넘어서 유효한 것인가? 그것은 독일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는가, 적용된다면 그 조건들은 무엇인가?"를 부르디외는 따져보고자 한다.

이때 인용문에서 "독일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는가"는 주의를 요한다. 부르디외의 발화시점에서 '통일 독일'은 아직 없었으며 그가 쓴 표현은 '동독'이기 때문이다. 불어로 동독은 RDA이며 영어로는 GDR(German Democratic Republic)이다. 사실 어차피 통일된 마당에 동독이나 독일이나 뭐가 대수이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강연의 제목/주제와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역자가 '소련의 변형'이라고 옮긴 표현은 'La Variante 'Sovietique'(The 'Soviet' Variant)이며, 이건 ('미국형'이나 '자본주의형'에 대응하여) '소련형' 혹은 '소비에트형'으로서의 동독을 가리킨다. 오늘날의 독일을 '소련의 변형'이라고 간주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RDA/GDR은 원래대로 '동독'이라고 옮겨야 하는 것이다(더불어 이 글의 제목은 '소비에트형 사회와 정치적 자본'이라고 옮기고 싶다).

RDA가 나오는 여러 대목들이 '독일'이라고 옮겨진 것까지는 그래도 참을 만했다. 그런데, 후반부에 가서 "확인의 명목으로 우리는 그렇게 획득된 사회적 공간의 모델이 오늘날 RDA가 현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갈등들을 최소한 대략적으로라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는지 자문할 수 있을 것이다."(36쪽)에서 'RDA'는 왜 튀어나오는 것인지(이 불어 약자는 GDR과 달리 단번에 검색되지도 않는다)? 역자의 부주의를 탓하기 이전에 우리가 스스로에게 자문해야 하는 문제일까?  

 

 

 

 

그렇게 이맛살을 찌푸리게 되니까 곧 흠잡을 것 투성이가 된다. "그래서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구축 작업, 나아가 - <영국의 노동계급 만들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E. P. 톰프슨이 사용하는 의미에서 - 제조 작업을 대가로 해서만 마르크스주의 전통이 사용하는 의미에서 동원된 작용적 계급들이 될 수 있다."(33쪽)

내가 아직 톰슨의 명저를 읽어보지 않아서 'mobilized and active classes'라고 영역된 문구를 '동원된 작용적 계급들'이라고 옮기는 것이 타당한지는 모르겠다(사정은 역자도 마찬가지겠지만). 하지만, 적어도 'Thompson'이 '톰프슨'이 아니라 '톰슨'으로 옮겨지며, 그의 주저는 <영국의 노동계급 만들기>가 아니라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창비, 2000)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적어도 국역된 번역본이 있는 경우에(더구나 그게 무시할 만한 번역본이 아닌 이상) 이를 참조해줄 수는 없는 것일까? 그건 일반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서비스 아닐까?

부르디외가 강연문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프랑스와 같은 자본주의 체제에서라면 경제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이 중요한 사회적 변수인 반면에 (동독과 같은) 소련형 체제에서는 '정치적 자본'이라는 게 중요하게 기능하며 (당연한 일이지만) 사회학적 분석에서 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 이런 내용은 제목에서부터 이미 암시받을 수 있고 상식에서 벗어나지도 않는다(내가 읽기에 부르디외의 사회학은 새로운 상식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상식을 확증하게 해준다). 하지만, 이 상식으로의 여로는 '디스탱숑'과 'RDA'와 '톰프슨' 등을 거쳐가야 하는 울퉁불퉁한 험로이다. 짧은 강연문에 대한 브리핑을 기획했다가 이런 식의 불평만을 늘어놓는 게 과연 나의 결벽 탓인지?..

06. 0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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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라주미힌 > "노대통령, 이래도 거짓말 할겁니까"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220

 

"노대통령, 이래도 거짓말 할겁니까"
심상정, 정부문서 폭로 "미국요청 4대 조건 해결 위해 최대노력"

한국 정부가 한미FTA 협상을 추진하기 위해 미국측이 제시한 이른바 4대 선결조건(쇠고기 수입 재개, 스크린쿼터 축소, 자동차 배출가스 허용기준 완화, 의약품 관련 투명성 제고)을 수용했음을 보여주는 정부의 공식 문서가 최초로 공개됐다. 정부는 지금껏 4대 선결조건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FTA가 아니었어도 해결했어야 할 외교 현안이었다"는 식의 주장을 일관되게 펼쳐왔다.

대통령-정부 한 통속으로 국민 상대 거짓말 드러나

최근 노무현 대통령은 4대 선결조건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이에 대한 진위 여부가 한미FTA 자체에 대한 정당성 문제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자 "4대 선결요건 논란과 관련해 더 이상 진위 논란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선결조건으로 해석된다면 대통령 결정으로 수용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으나 '거짓말'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하거나 사과한 적은 없다.

결국 이번 문서 공개로 그동안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해온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2005년 9월 12일에 열린 <제5차 대외경제위원회 안건> 자료 가운데 '4대 선결조건' 관련 부분을 31일 공개했다. 이 문서에서 정부는 "양국 정부간 사전 실무점검회의를 개최한 결과 미측은 대의회 설득 등 협상개시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는 양국간 통상현안의 진전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 심상정 의원이 공개한 <제5차 대외경제위원회 안건> 자료 가운데 '4대 선결조건' 관련 일부분
 
정부는 특히 "06년 6월 양국 통상장관회담시 포츠먼 USTR 대표는 한미FTA의 필요성에 동의하면서도 주요 통상 현안 사전 해결의 우리측 노력을 강조했다"고 전하면서 "이에 따라, 통상교섭본부장(김현종)은 05년 7월 방미하여 미 행정부 및 의회 주요 인사를 만나 한미FTA 추진 필요성을 설득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미, 통상현안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

정부는 그러나 "미 행정부 및 의회 모두 한미FTA 출범을 위해서는 주요 통상 현안의 사전해결이라는 기존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쇠고기, 스크린쿼터는 완전 해결, 자동차, 의약품은 상당한 진전이 있는 경우 한미FTA에 대한 의회 및 업계 설득이 가능할 것"이라는 아미 잭슨Amy Jackson USTR 한국 담당 부대표보의 2005년 8월 30일자 발언을 소개하고 있다.

정부는 "한국 관련 이해관계 업계들은 FTA 추진을 통해 쇠고기, 스크린쿼터, 자동차, 의약품 등 관련 통상현안의 해결을 기대하고 있다"는 미 업계의 입장을 전하면서, "미 행정부는 통상 현안에 진전이 있는 경우 보다 구체적인 협의가 가능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심상정 의원이 공개한 <제5차 대외경제위원회 안건> 자료 가운데 '4대 선결조건' 관련 일부분
 
즉, 한미FTA에 대한 초기 논의 단계때부터 미 정부 및 업계는 4대 현안이 해결돼야만 한미FTA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 왔으며, 우리 정부도 이런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 방안은 무었이었을까. 문서에서 정부는 "4대 선결조건의 해결(진전)이 없는 경우 11월 APEC 정상회의시 한미FTA 추진 공식화는 어려울 전망"이라며 "4대 선결조건의 해결(진전)에 최대한 노력하되, 이 경우 미측도 한미FTA를 확실하게 공식화하도록 외교적 협의를 강화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한국 정부 "4대 선결 조건 해결 위해 최대 노력"

정부가 05년 11월 APEC 정상회의를 한미FTA 추진을 공식화하는 마지노선으로 삼은 이유는 "미국내 TPA 소멸시점(07.6), 1년 이상의 FTA 협상기간 등을 고려할 때, 11월 APEC 정상회담시 공식화가 어려울 경우 협상 추진이 상당기간 지연될 전망(11P)"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4대 현안 관련 한국측 주무부처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었다.

문서에 따르면, 문광부는 스크린쿼터에 대해 "미국 요구 수준(연 73일)으로 감축은 국회와 영화계의 반대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쇠고기 수입 재개 문제에 대해 농림부는 "미측 제출(8.30일) 자료에 대해 관련 절차에 따른 추가분석을 통해 안정성을 검토한다"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자동차 배출가스 허용기준 완화와 관련, 환경부는 "미 연방기준 허용은 우리의 환경기준의 완화를 초래"할 수 있고, "08년말까지 소규모 판매자 유예시 유예기간이 장기화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수용 불가"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2005년 9월까지만 해도 해당 부처 수용불가 입장 분명히

의약품 관련 투명성 제고 문제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현행 약가산정방식 및 혁신적 신약 여부는 국내외 이해당사자가 참여하여 결정되었거나 결정하는 사항"이라며 약제비 절감방안의 투명성에 대한 미측의 문제제기를 일축하고 있다.

즉, 제5차 대외경제위원회 회의가 있던 05년 9월 12일 기준에서 볼 때, 한미FTA를 신속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약 2개월 후인 부산 APEC정상회의에서는 양국 정상이 협상 추진을 공식화할 수 있어야 했고, 그것이 가능하려면 늦어도 10월중에는 미측의 4대 선결 조건을 우리측이 수용해야 했는데, 해당 부처는 수용 불가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때문에 정부는 "주무부처의 적극적 조치 없이는 11월 APEC 정상회의 전까지 4대 선결요건의 해결 또는 진전은 어려울 전망"이라며 "10월 중순까지 4대 선결조건의 최대한 해결 또는 진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상당한 초조감을 읽을 수 있다.

이후의 사태 진행을 보면 '4대 선결조건의 최대한 해결 또는 진전'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노대통령과 부시 미대통령은 11월 부산 APEC 정상회의에서 만나 한미FTA 추진을 무리없이 공식화했다.

그에 앞서 10월 30일 정부는 '약값 재평가 제도의 개정' 중단을 선언했고, 11월 6일 수입차에 대해서는 배출가스 강화 기준의 적용을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이듬해 1월 13일 미국산 쇠고기 금수조치를 해제했으며, 같은 달 16일 스크린쿼터를 146일에서 73일로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한미FTA의 공식화 시점을 전후로 한 3개월 사이에 4대 선결조건이 말끔히 해결된 것이다.

거짓말에, 독단적 결정에 어이없는 정권 

결국 정부는 한미FTA 추진 여부는 물론, 추진 방향(4대 선결조건의 수락)에 대해서도 국내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결정했다. 한미FTA를 위한 공청회가 요식행사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상정 의원이 이날 공개한 또 다른 자료인 <2005년 11월 대외경제위원회 회의안건 자료(외교통상부 작성)>를 보면, 정부는 06년 2월 3일 한미FTA 협상개시 선언 후 공청회를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관련, 문서는 "FTA 체결절차 규정의 취지상 공식협상 개시선언 전에 공청회를 개최하는 것이 원칙이나 협상개시 선언 후 의회 등과 협의를 거치는 미국 국내 절차와 균형유지 문제 등을 고려하여 협상개시 선언 후 공식협상 개시 전에 (공청회를)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미국 입장 고려 공청회 개최시기도 늦춰

FTA에 대한 대통령 훈령을 어길 수도 있음을 공식문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절차적 감각에서 본다면, FTA 공식협상 개시선언과 같은 시간에 이뤄진 실제의 공청회(파행으로 무산된)는 그나마 양호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과 정부에게 있어 절차(공청회)와 내용(국내 이해관계자의 의견 반영)이란 처음부터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한미FTA 추진 자체가 중요했을 뿐이다. 심상정 의원이 공개한 정부의 공식 문서는 이런 참상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2006년 07월 31일 (월) 18:3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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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세상 끝의 낭떠러지에서 그리는 지도
사회학적 상상력
C. 라이트 밀즈 지음, 강희경.이해찬 옮김 / 돌베개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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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는 자신이 친숙한 개인적인 상황을 벗어나 더 큰 문맥에서 사물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 C. W. 밀즈

얼마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이는 독서클럽을 만들어 함께 공부하고 있다.(이와는 별도로 대학원에서 학회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 오는 가을 무렵엔 대학원 학술제도 맡아서 진행하게 되었다. 오나가나 일거리 만드는 재주는 시들어지지도 않는다.) 모임을 마치 고 집에 돌아오니 밤 12시 40분 가량 되었다. 지난주 토요일부터 휴가 첫 시작인데 그냥 잠들기도 뭣해서 잠깐 이책저책 뒤적거리다가 서재 한 귀퉁이에서 C.W.밀즈의 책 한권을 찾아냈다. 1978년 홍성사에서 홍성신서라는 이름으로 초판을 찍어낸 C.W.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책이었다. 앤서니 기든스가 "현대사회학" 서두 부분인 1장에서 언급하고 있던 그 책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5쇄 79년판이다. 역자로는 강희경(현재 충북대 교수)과 이해찬(전 국무총리)이 아직 푸릇푸릇한 청년 시절에 번역한 책이다. 이 책은 지난 2005년 돌베게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흐흐, 새책이 나온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물론 이분들이 번역을 얼마나 손 봤는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올리는 이 리뷰는 구판본에 대한 것임을 밝혀둔다. 어쨌거나 이 책은 1950년대말(1959년?)에 찰스 라이트 밀즈가 처음 출간한 이래 사회학 분야의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는 책이다. 사실 내가 사회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이라 할 수 있지만 이 방면의 독서를 나름대로(?) 시작하게 된 것은 지난 해부터였다.

모든 학문이 맞닥뜨리는 문제이긴 하지만 특히 사회학은 사회를 주요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여러가지 제약과 모순을 지니며 이를 실제 사회현실에 반영하거나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있어서는 무기력해보인다는 비판에 시달려왔다. 사회학이란 학문은 무수히 많은 갈래와 이론, 주장이 난무하지만 그 반면에 실제로 건질 것은 별로 없는 학문이란 비아냥도 있다. 현실사회주의 붕괴의 여파일지도 모르겠지만 현재 사회학에서 좀더 중요하게 취급받는 것은 "사회에 대한 과학 - 그럼으로써 사회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마르크스의 입장 보다는 "사회학은 사회적 행위를 해석하고 이해함으로써 사회적 행위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려는 학문"이라는 베버의 입장이 아닐까 싶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을 얻고자 하는 목적의식적인 입장에서 사회학에 접근하려던 사람에게 베버의 사회학적 입장이 지니는 수동성은 맥 빠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세의 유럽에서 신대륙으로의 길을 연 사람들은 지도를 만드는 이들이었던 것처럼 사회를 이해하고 해석한다는 행위, 그럼으로써 사회적 행위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는 학문으로서의 사회학이 지닌 미덕은 여전하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세상의 끝은 낭떠러지였던 것처럼 사회라는 거대한 숲의 한 가운데 있는, 어쩌면 사막이나 바다처럼 넓은 망망한 사회 한복판에 놓인 우리들에게 사회학이란 학문은 지도를 만드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C.W.밀즈는 당대 주류 사회학이 직면했던 '추상적 경험주의'와 '거대이론'을 비판하면서 사회과학자들이 다시 고전적 사회과학의 전통을 회복하여 지적 장인(匠人)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부록격으로 수록된 "장인기질론"에서 C.W.밀즈는 현재의 지식인들도 귀담아들어야 할 만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회과학자에 있어 가장 나쁜 점은 그들이 오직 한 가지 경우, 즉 특수한 조사나 '연구계획'에 대한 기금이 주어질 때만 그들의 연구계획을 집필할 필요를 느낀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연구계획'이 행해지거나 최소한도나마 신중히 씌어지는 것은 기금에 대한 요구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관습이 일반적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매우 나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어느 정도 상인 근성에 빠져드는 것이며 보편적인 기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산고를 겪는 체하기 쉽다.

물론 C.W.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이 겨냥하고 있는 일차적인 독자들은 사회과학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학문하는 기술적 방법은 물론 그 태도를 배우고자 하는 이에게도 이 책은 매우 유용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틀림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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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정치철학

정치철학에 부쩍 관심이 많은데요, 이는 사실 발리바르의 최근 업적들을 따라가다가 생긴 것 같습니다. [제가 교양도 없고, 상식도 없는지라, 모르는게 참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좀 쉽게 가볼까 하고, 이른바 '개론적인' 책 몇권을 추천받고 싶어서, 이렇게 질문 남깁니다요. ㅎ 정치철학의 핵심적인 요점이나 쟁점을 잘 정리한, 또는 앞으로 공부를 해감에 있어서 참고해야 할 책들 몇권 추천해주셨으면 합니다. 국역본도 괜찮고 영어본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장마가 이렇게 끝났으면 좋겠네요, 건강하세요.

2006-07-27
rrred

FTA반대 balmas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정치철학이란 게 분야도 넓고 또 좀 애매모호한 데가 있는 분야라서
모든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만한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읽을 만한 책을 몇 권 소개한다면 다음과 같은 책들을 권해드리고
싶군요.

전반적인 개론서로는
존 플라므나츠나 세이빈 같은 사람의 책을 보시면 될 것 같고,
최근에 나온 리처드 대거, 테렌스 볼이 편집한 [현대 정치사상의 파노라마]
같은 책은 현대 정치 이데올로기의 지형을 살펴보는 데 유용한 책입니다.

근대정치철학, 특히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흐름에 관한 고찰로는,
Pierre Manent의 An Intellectual History of Liberalism을 권하고 싶네요.
2006-07-28
삭제
FTA반대 balmas
Manent은 프랑스의 저명한 자유주의 정치철학자이고 이 책은 그의 주요 저서 중 한 권입니다. 적은 분량이지만 상당히 좋은 책입니다.
민주주의론에 관해서는, 조금 특수하기는 하지만 Claude Lefort의 책을
권해드리고 싶네요. 영어로는 Democracy and Political Theory와 The political forms of modern society, 그리고 Writing: The Political Test 등이 있는데, 앞에 두 책이 좀더 르포르 사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니까 그 책들을
먼저 읽으시는 게 좋습니다. 사실 르포르는 국내에 꼭 소개되어야 할 철학자 중 한 사람인데, 여태 소개되지 않아서 아쉽네요.
2006-07-28
삭제
FTA반대 balmas
아렌트나 레오 스트라우스의 책들은 많이 읽을수록 좋은데, 국내에 번역된
책들은 전반적으로 번역이 별로 좋지 않더군요. 레오 스트라우스 책들은 전반적으로 다 그런 것 같고 아렌트의 경우는 [혁명론]이나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가 특히 번역에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더군요. 그런 책들은 원서로 읽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화주의 전통과 관련해서는 Pocock의 The Machiavellian Moment나 Quentin Skinner의 Liberty before Liberalism, Maurizio Viroli의
From Politics to Reason of State 같은 책들이 도움이 될 겁니다.
그리고 이건 정치철학 책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유럽 좌파의 역사적 흐름을 보시려면
2006-07-28
삭제
FTA반대 balmas
Geoff Eley의 Forging Democracy: The History of the Left in Europe, 1850-2000나 Donald Sasson의 One Hundred Years of Socialism: The West European Left in the Twentieth Century 같은 책이 좋죠. 이 책들도
국내에 번역, 소개된다면 참 좋을 텐데요 ...
마지막으로 현대 프랑스 철학에 기초를 두고 정치철학을 쇄신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몇 권 소개해드릴게요. :-)
Bonnie Honig의 Political Theory and the Displacement of Politics나Democracy and the Foreigner는 데리다와 가까운 관점에서 아렌트의 정치철학을 비판적으로 재전유하려는 작업들이죠. 아주 탁월한 책들입니다.
2006-07-28
삭제
FTA반대 balmas
그리고 Miguel Vatter의 Between Form and Event는 현대 프랑스 철학에 기초를 두고 마키아벨리를 좌파 공화주의자로 재독해하려는 책인데, 독창적이고 깊이있는 중요한 책입니다. 최근에 논문들도 여러 편 발표했는데,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쉽게 구할 수 있을 겁니다.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 예컨대 Jean-Luc Nancy나 Jacques Ranciere 같은 사람들, 또는 Agamben의 책은 잘 아실 것 같아서 따로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2006-07-28
삭제
rrred
넙죽! __' 자세한 답변과 책 추천 감사드립니다. 친절한 발마스씨^^* 아렌트 책은 몇권 읽어봤는데, 번역이 좀 그랬군요 ... 암튼 만땅 충전하고 가니 배부르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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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부활하는 네오콘의 대부 레오 스트라우스-강유원

부활하는 네오콘의 대부 레오 스트라우스

박성래(지음), <<부활하는 네오콘의 대부 레오 스트라우스>>, 김영사, 2005.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촘스키만 읽어서는 유에스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다. 그럼 하워드 진까지 읽으면 되는가? 그렇게 물으면 '공부안한다'는 소리 듣는다. 무당파적이라는 소리 듣더라도 골고루 읽는 게 좋다. 정책결정과는 무관한 사람들이야 편식을 해도 괜찮으나 외교 통상부장관쯤 되면 정말 골고루 읽어야만 한다. 안 그러면 저자가 지적하듯이 "한국 외교 통상부의 수장이, 난다긴다하는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미국의 국가안전보좌관이 쓰는 용어를 못 알아" 듣게 된다. 영어를 못해서가 아니라 무식해서 그런거다. '못 알아들으면 좀 어때'해봐야 뒷심을 받쳐줄 국력이 없으니 이는 대화불능의 상황을 넘어 난감하기 그지없는 사태로 귀결되곤 한다. 이 책의 목적은 바로 이러한 소통불능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기본용어집을 제공하는 데 있다.

그에 덧붙여지는 이 책의 쓸모는 다음 몇가지이다.
첫째, 이 책은 유에스의 이른바 '스트라우스 교파'의 계보를 잘 정리하고 있다. 그의 '철학적 계보'는 그에게 영향을 끼친 사상 내용을, '주요 제자들'은 그가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주는데, 제공되는 설명은 이 책의 내용 전체를 요약하고 있을 정도이다.

둘째, 이 책은 스트라우스의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 실마리는 물론 "스트라우스의 직계 제자들로부터 스트라우스 정치철학 훈련을 받았으나 스트라우시언이 되기를 거부한, 일종의 내부고발자"라 할 수 있는 앤 노턴Ann Norton의 저작(Leo Strauss and the Politics of American Empire)이나 "20여년 동안 스트라우스와 그 제자들을 추적해온 캐나다의 여교수" 샤디아 드러리Shadia Drury의 언급("Saving America")에 힘입은 것이다.

셋째, 한국방송 탐사보도팀 기자로 일하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시청자가 알아듣기 쉽도록" 쓰여 있다. 중언부언이 많기는 하나 -- 그러다보니 불필요하게 두꺼워지고 값도 비싸졌다 -- 아주 상식적인 배경지식을 가진 이라도 끝까지 읽고나면 유에스 정치가 돌아가는 판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겠으나 플라톤의 <<국가론>>에 대한 비밀스러운 독해에 근거하여 무식한 대중은 그냥 그렇게 살게 내버려 두고 똑똑하고 잘난 엘리트가 지배해야 한다는 정치철학으로 무장한 스트라우시언들은 유에스의 정치를 망가뜨리고 있다. 다 읽은 뒤에는 보수진영 내부에서 뛰쳐나와 고발서(<<우익에 눈먼 미국>>(나무와숲)를 출간했던 데이비드 브룩의 말이 떠오른다: "급진적 보수주의자들[네오콘]은 보수주의 철학이 지닐 수 있는 모든 가치를 배반했다." 한국의 급진 보수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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