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릴케 현상 > 하바드의 교양과정 개편안 -정남영

하바드의 교양과정 개편안

한국의 대학들에서는 표면상으로는 교양교육의 확대나 강화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교양교육을 망치는 사례가 허다하다. 내가 있는 곳에서도 사태는 마찬가지이다. 이러던 차 바다 건너 하바드에서 교양과정 개편안을 발표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래서 좀 참조해보기 위해 하바드의 홈피에 들어가 교양교육연구팀 최종보고서(Final Report of the General Education Task Force)를 다운받아 읽어보았다. (아래를 보면 알겠지만 안타깝게도 실용교육에 치중하는 한국 대학가의 실정을 감안할 때 이것을 '많이' 참조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좀' 참조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새 교양과정(Core Curriculum)은 70년대 후반에 도입된 것을 대체하는 것으로서 (그럼 약 30년만에 개편하는 것이다) '21세기의 조건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한다.

보고서는 우선 Harvard College(하바드의 4년제 학사학위과정)의 교육을 'liberal education'으로 규정짓는다.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교양교육(General Education)은 이 'liberal education'의 공적 얼굴(the public face)로서, 학생들이 대학에서 배우는 모든 것이 학생들 자신의 삶 및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대면하게 되는 세계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이해하는 장소라고 한다.

(* 'liberal education'은 사실 우리말로 번역하기 힘드니 그냥 영어로 쓰기로 한다. 이것이 어떤 것인지는 아래에 나와있다.)

Harvard College에서 교육은 크게 세 범주로 나뉜다. (다른 대학들도 다르지 않다.)
① concentration : 전공 공부
② electives : 전공과 교양 이외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우리로 하면 ‘일반선택’? 그러나 일대일 대응은 불가능하다.)
③ general education : 교양교육

제안되는 교양과정의 목표들은 다음과 같다.
① 공적인 사회적 삶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준비시킨다.
②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예술, 사상, 가치들의 전통의 산물이자 그 전통에의 참여자로 이해하도록 가르친다.
③ 변화에 비판적이고 건설적으로 대응하도록 준비시킨다.
④ 자신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갖는 윤리적 차원을 이해하는 능력을 계발시킨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정작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아래의 대목이다. 이 대목은 현재 한국의 대학들을 사로잡고 있는 실용주의 풍토와는 정말로 상반되는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한국의 대학에 둥지를 틀고 있는 신자유주의자들은 혹시 이 대목을 보고 이 개편안을 낸 사람들이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이거나 아니면 대학에 침투한 '좌파'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들이 정말 바보이고 좌파일까? (영어를 그냥 노출한 부분에 대해서는 양해를 바란다. 전문직업학교란 의대, 법대, 경영대 등을 말한다.)
Liberal Education은 유용하다. 이는 그 목적이 전문직업을 위해 학생들을 훈련시키는 것이거나 아니면 졸업 후의 삶의 지침을 제공하는 것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에게 익숙한 세계가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라는 전제를 부추김으로써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주입하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Liberal Education의 목적은 전제를 뒤흔드는 것이고 익숙한 것을 낮설게하는 것이며 현상의 아래와 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고 젊은이들로 하여금 이미 정해진 방향을 잃게 하여 스스로를 재정향하는 방법을 찾도록 돕는 것이다. Liberal Education은 기존의 전제들에 물음을 던짐으로써, 자기성찰을 유도함으로써, 학생들에게 비판적이고 분석적으로 사유하는 것을 가르침으로써, 완전히 다른 역사적 순간들 및 문화적 형성체들과 만나고 자신들이 (심지어는 가르치는 선생들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과 만나는 데서 산출되는 소외감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이 목적을 이룬다. Liberal Education은 지극히 중요하다. 전문직업학교들에서는 이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고 고용주들도 이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며 가장 학술적인 대학원 프로그램들도 이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 학교들은 학생들의 자유로운 탐구정신을 박탈한다(deliberalize). 이 학교들은 학생들로 하여금 전문직업인으로서 사유하도록 훈련시킨다. ‘liberal arts’와 과학분야에서 공부를 하는 것은, 경력이나 전문직업의 경로들 외부에서 비판적이고 성찰적으로 사유를 하는 능력을 양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Liberal Education이 제공하는 역사적, 이론적, 합리적 관점들은 학생들에게 남은 생애 동안 유익하게 쓰일, 계발과 힘의 양성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liberal learning’의 바로 이러한 측면을 염두에 두면서― 졸업 후 학생들이 영위하게 될 삶에 미치는 그 영향력을 염두에 두면서 ― 다음의 교양교육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from Report of the Task Force on General Education, Harvard University (2007.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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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인터뷰] “육아 문제에 관한 한 운동권을 신뢰하지 않는다”

조수빈 기자 
“참세상 조수빈입니다. 그간 블로그에 쓰신 ‘육아일기’로 책 내신다해서요. 인터뷰를 했으면 합니다. 이번 주 안이면 좋겠는데...”
“음..... 제가 한 시간 있다가 다시 연락드려도 되겠어요?”
“예, 그러시죠”

하필 점심시간도 가까워오고 해서 “2시쯤 내가(기자가) 다시 연락하겠다” 하고 끊고 났더니, 강상구에게서 약속한 시간에 못 미친 1시쯤 연락이 왔다. 이야기즉슨 “오늘 저녁 6시에 자기 집에서 인터뷰를 하자”는 것. 준비치 못한 채 온 연락인데다 당장 인터뷰를 잡자는 요청까지 겹쳤지만 외마디 ‘윽’ 소리도 못하고서 전화를 끊었더니 가슴에 응어리가 남은 듯 한참 후에야 ‘집에서?’, ‘오늘?’ 이라는 억울함(?)이 몰려왔다 이후 생각해보니 그 요청에 당연한 듯 담담하게 대답하고 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한참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풋풋하다.

다시 돌아와서, 사실 ‘당장 보자’는 것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집에서 보자’는 것이었다. 그 심심한 걱정이라는 것은 기자로서 라기 보다 인간적인 면모(?)에서 드러나는 것 이었다. 갑작스런 초여름 날씨 축축한 땀이 싫어 신고 나온 슬리퍼형 신발 속에 꼭꼭 매어진 ‘맨발’이 문제였다. ‘윽 맨발이라니...’ 내려다본 맨발이 그날따라 어찌나 꼬질꼬질해 보이던지, 센스 있게 매니큐어라도 칠할 걸 하는 뒤늦은 후회를 뒤로 하며 가기 전에 ‘발이라도 닦고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더랬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강상구와 미루 사진이 보인다.

사적 공동체를 자신의 배경으로 삼는 남성에 대한 낯설음이..

대방역 공군회관 앞, 강상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간이 5시20분, 6시에서 약속시간을 30분 당겼던 터 이른 시간은 아니었다. 도보로 15분 거리의 아파트라고 안내한 강상구는 “걸어오는 길이 생각보다 기니 산책한다 생각하고 천천히 걸어오란”다. 습관적으로 적당한 시간을 벌기 위한 멘트라고 생각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남모르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걷는 길이 강상구 말대로 생각보다 괜찮기도 했지만, 사적 공간으로의 진입이 수월치 않은 공적 관계를 맺어온 경험으로 봤을 때, ‘남성’이 자신의 사적영역을 공적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년의 사회경험으로 봤을 때, 가부장제를 비판하던 그들이 집 안으로 들어가서는 잔존된 가부장성을 드러내거나(가정 자체의 가부장성은 차치하고라도) 회의석상에서의 소통을 전부로 아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적감정(오히려 더 정치적인)을 은폐하기 바쁘거나, 사적영역에 대한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공사분리를 부정하지 않지만.

그러나 이 남자, 겁도 없이(?) 너무도 선뜻 사적 공동체를 자신의 배경으로 삼겠다고 나선 것이다. 갑자기 ‘맨발’을 보여주기 싫었던 심리도 습관적으로 몸에 밴 사적영역에 대한 일종의 거부반응은 아니었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겹쳤다.

강상구는 할 이야기가 아주 많아 보였다!

‘J아파트 1402호’, 버스를 갈아타면서 정신없이 들었던 주소를 더듬어 기억에 가장 근접한 호수를 떠올렸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14층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안도에 웃음이 번졌다. ‘아기가 자고 있어요. 벨을 누르지 마시고 꼭 문을 두드려주세요’라고 문 앞에 붙여진 종이가 가장 먼저 기자를 반겼던 것. ‘문을’과 ‘두드려주세요’ 사이에 첨부표시로 붙여진 ‘살짝’이라는 단어가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문 안쪽으로 인기척은 충분히 전달되면서 아이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힘조절에 공을 들였다.

“들어오세요” 문 안쪽에서 들려온 것은 맞는데, 강상구가 아니었기에 다시 한번 문을 두들겼는데 또 그 목소리, 문을 열고 들어가니 주현숙이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강상구 역시 “어서오세요”라고 반긴다. 그는 목욕탕에서 17개월 된 아들, 미루와 씨름 중이었다. 등만 보인 채 강상구는 “누가 왔어? 왜 궁금해?”라며 미루와의 대화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처음 보았을 때 강상구는 미루를 씻기느라 욕실에 있었다. 미루는 낯선 사람의 등장에 관심을 보였다.

그 이후로도 강상구는 사실상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기자 또한 제대로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강상구는 주어진 1시간 동안 미루 옷을 입히고, 잠시 놀아주고, 밥 먹이는 데 소요했고, 기자는 처음 보는 노트북을 거칠게 만지려는 미루의 손을 조심히 밀어내느라 애를 먹어야 했지만, 대체로 강상구는 할 이야기가 아주 많아 보였다. 심지어 강상구는 저녁밥이 부족해 햇반을 사온다면서도 주현숙를 대타로 세워놓는 치밀함도 보였다.

“여성이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은 인권침해”

강상구는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알아서 말을 이어갔는데, 그의 말은 호소력이 짙고 하소연(?)에 가까웠다. 그는 최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며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 그에게 “편집위원 중에 자고 일어나면 아이가 죽어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육아 스트레스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고 이해한다는 제스처를 보였더니 그는 사회가 모성을 강요하며 책임지려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강상구가 “극단적인 생각하다가 (여성이 자신의 아이를) 한 달에 한 명 꼴로 진짜 죽인다는고 한다. 인터넷 검색하다보면 애가 너무 많이 울어서 버렸다, 던졌다, 목을 졸랐다는 등의 사례 본다. 나 역시 애기 던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회가 방치하는 것”이라고 말하자 주현숙이 “아이를 보는 시간이 늑대의 시간에 가깝다”고 거든다.

“애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든지 몰랐어요.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며 힘든 것이 은폐되어 있는 일이죠. 애 이쁘니깐 뭐 이런 감정에 넘어가서 또 낳는데, 절대 둘째는 없어요. 절대 안 낳을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힘들게 키웠던 것 잊고 애 커가는 거 보면서 이뻐서 또 낳는다고 하는데, 저희는 블로그 글 써놓은 것도 있고 글 보면서 둘째는 절대 낳지 않을 겁니다”

강상구는 미루 밥 먹이는 일을 육아의 어려운 3가지 중 한 가지로 꼽았다. 보기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강상구는 육아노동에 대해 끊임없이 몸으로 말로 설명했다. 맘 먹고 오해할라 치면 6월 출간하게 될 강상구의 육아일기는 ‘절대 애를 낳지 마시오’라는 이야기로 오인 받기 적당해보였다. 그러나 사실 그의 책은 사적영역으로 몰아져 여성에게만 전가된 ‘육아’의 사회화를 고민하는 내용에 더 가깝다.

강상구는 “여자 혼자 키우는 것은 인권침해”라며 “전국의 가정집에 갇혀서 신음하고 있는 엄마들이 자기애들을 다 맡길 수 있도록 인프라가 구축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육아 전에는 머리로 이해하던 것을 이제는 가슴으로 흥분한다”

육아를 경험한 남성에게서 기대되는 것은 여성주의에 대한 고민이다. 강상구에게서도 그러한 고민이 엿보인다. 사온 햇반을 기자의 얼굴에 들이밀며 “엄마의 정성으로 만든”이라는 광고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대거나 어떻게 기회를 만든 “외식자리에서 다른 테이블에 한 여성이 혼자 밥도 못 먹고 아이 밥 먹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화가 치민다”는 그의 말에서 그 흔적을 읽을 수 있다. 강상구는 일상에서 은폐되어 있는 폭력을 하나씩 발견하고 있는 중이었다.

“여성문제에 있어서 전투적이 되었다. 노골적이다. 앞으로 당에 가서는 싸울 것이다. 어떤 남자가 나보다 더 많이 알겠는가. 저에게는 블로그는 기록과 기억의 의미가 동시에 있다. 사람들과 싸울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과 함께 그 시간을 기억을 할 수 있다. 눈이 날카로워졌다”

이런 강상구에 대해 주현숙은 “(여성문제에 있어)육아 전에는 머리로 이해하던 것을 이제는 가슴으로 흥분한다”고 말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운동권을 신뢰하지 않는다”라는 고백

육아는 휴직 여부와 관계없지만, 6월 1일부터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하는 강상구는 육아를 운동으로 확대하는 중이다. 책출판도 그런 의미이지만, 육아휴직 전에 자신이 일하고 있던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논란이 많았던 만큼 이후 가사분담을 위한 6시간 칼퇴근 쟁취투쟁과 함께 여성주의에 대한 고민도 가져갈 각오를 보였다.

인터뷰 내내 미루는 노트북에 관심을 보였다. 강상구는 미루의 시선을 노래가 나오는 장난감으로 끌기 위해 애썼다.

“민주노동당이라면 진보적 성향이 강하다고 하는데, 똑같다. 이 문제(여성주의)에 관한 한 운동권을 신뢰하지 않는다. 좌파와 민족주의자 모두 똑같다. 민족주의자는 원래 무개념이고, 이들은 심지어 애기엄마 만나서 설득하겠다고도 했다. 좌파도 똑같다. 당외부라고 다르지 않다. 당 밖에 사회단체에도 운영위원으로 있는데 그 단체에서도 일 많이 할 수 있겠다는 반응이었다. 제도적으로 할 수 있고 막지는 못할 뿐이었다.

육아휴직한다고 했을 때, 0.1초내에 참 잘했다고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브르주아적 반응이 곧바로 나왔다. 육아문제를 포함한 여성주의적 내면화 말뿐이다. 육아휴직 전에 사무실(당) 사람 100명 중 98명은 하지마라였다. 가봐야 할 일 없다, 남자가 있어봐야 도움이 안된다, 육아휴직 이후 뭐 할거냐, 바쁠 때 해야겠냐 라는 질문 많이 받았다. 그러나 밀어붙였다. 토론의 문제가 아니었고, 진지하게 얘기하지 않았다. 토론하기 너무 힘들었다”

강상구는 육아휴직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육아휴직의 계기를 묻는 기자에게 강상구는 “다음부터 육아휴직을 하지 않는 남성에게 왜 육아휴직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물으라”고 반응했다. 앞서도 육아를 여성이 혼자 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주장했으니, 사회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다면 육아는 부모가 동등한 책임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는 말이다. 강상구는 “자신의 운동성에 따라 생활도 조직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집에 가서 남편이랑 싸웠으면 좋겠다”

“육아휴직 동안 블로그에 매일 하루에 한 개씩 글을 쓰려고 했는데, 끝날 무렵 보니 300개 정도 썼더라. 이번 책에는 그 중에서 100개를 뽑아 담았다. 블로그에 쓸 때, 몇 가지 방향이 있었는데, 미루 커가는 모습과 커가는 과정에서의 아기의 변화과정, 미루를 키우면서 힘들고 어려운 점들 등이었다. 또 애 키우는 것과 별도로 가사노동을 분담하면서 예전에 몰랐던 변화, 정체성의 변화들을 담았다. 또 애를 키우면서 느끼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 사회에 나갔을 때 불편한 점, 얘를 키우는데 사회적 불편하다고 느끼는 점을 중심으로 썼다. 이번 책은 그 중에 미루 커가는 모습을 중심으로 하는 것으로 글을 골랐다. 그 내용에는 육아의 어려움이나, 가사를 분담하게 된 경험들이 들어가 있다”

강상구는 이번 책을 남성들도 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대신 여성들이 집에 가서 부부싸움하고 사회를 향해 싸워 쟁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어떤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았지만 모성이데올로기에서의 자유와 일상의 폭력에 대한 저항을 의미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리하여 불온한 상구씨, 이 책이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제도가 갖춰줘야 하지만 그렇다고 다 되는 일이 아닌 이데올로기가 바뀌지 않으면 안되는” 육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싸움의 하나라는 것이다.

강상구, 주현숙에게 마지막으로 육아에 대한 철학을 물었다. 부모의 자녀교육관 중 부정적 표현으로 쓰이는 ‘치맛바람’이 모성이데올로기로 부터 기인한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에 계몽적인(?) 대답을 기대하고 던져본 질문이었다. 역시 이들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기는 소유물이 아니다. 쉽게 소유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길게 왔다가는 손님이라고 생각한다. 갈 때까는 잘 보살피는 거다. 나중에는 우리가 독립해야 한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컸음 좋겠다. 어떻게 널 힘들게 키웠는데 이런 말 하지 말자고 서로를 다독인다. 애들은 절대 모르고 알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미루가 너무 움직여 여러번 사진을 찍어야 했지만, 물론 수전증도 문제이지만, 결국 깨끗한 사진을 얻기는 실패.

길게 왔다간다지만 손님 치고 두 사람에게 육아의 무게는 퍽 무거워 보였다. 물론 미루는 기자가 보기에도 이쁜 아기였지만. 6월 7일 발간을 앞둔 그의 책이 육아의 사회화를 요구하는 여성, 활동가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는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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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딸기 > 아휴... 이제야 읽었네
역사의 종말 한마음신서 6
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 / 한마음사 / 199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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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지난해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었는데, 읽은 지 한달이 넘도록 미처 정리를 못했다. 책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고 읽고 나서 며칠 정도는 머리 속에 잔상이 남았는데 그걸 제대로 곱씹지를 못하고 넘겨버렸더니 기억 저편으로 잘도 사라져버렸다. 그다지 감동적인 책은 아니었다고 봐야겠다.

너무 유명한 책이고 너무 유명한 제목인 까닭에, 독자로서 뭔가 해석을 붙이기도 뭣하다. 지금과는 다른 용어들(예를 들면 ‘자유민주주의’라든가)이 쓰이고 있어서,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 오래된 책이 아닌데도 낡은 듯한 느낌이 든다. 현실사회주의가 망한 뒤 20년이 아직 안 되었는데 그 사이의 변화는 너무나 빨라서 어느새 어떤 종류의 개념어들은 역사의 유물처럼 느껴지게 된 모양이다.

앞부분 읽으면서는 너무나 직선적 이분법적 단선적이고 또 오만한 듯해서 기분 나쁘다 못해 좀 우습기까지 했는데 다 읽고 나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든다.

후쿠야마 <역사의 종말>, 하면 새뮤얼 헌팅턴 <문명의 충돌>이 커플로 묶여서 비판을 받곤 한다. 전에 <문명의 충돌> 읽을 때에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헌팅턴 사고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숱한(정말로 많은!) 글들을 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난 그래도 재밌었는데’ 이렇게 생각했었다. <역사의 종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너무나 많이 인용되고 또 너무나 많이 욕을 먹는데, 참 너무나 재미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따지고 보면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다.

후쿠야마는 사회주의의 몰락을 계기로 근대적 세계관에 각인된 하나의 역사는 끝났다고 하는데, 그것이 ‘하나의 역사’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영원한 역사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후쿠야마는 헤겔이나 칸트니 ‘최후의 인간’이니 하는 것들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헤겔을 모르니 말이다. 그러면서 후쿠야마는 왜 역사를 비관적으로 보냐며 낙관론을 주장한다.

인간에겐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헤겔 등등 누구누구의 말을 끌어들이면서 계급적 갈등 중심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맑스류에 반대를 하는데, 읽다보면 재미있지만 너무 단순하다. 냉전 끝난 이후 이렇게 단순한 낙관론이 히트를 쳤었구나, 난 그냥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읽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구분하여 이란 이슬람공화국을 설명한 부분 같이, 단편적이지만 재미난 분석들이 눈에 띄기는 했다. 뭐 아주 극악무도한 꼴통 보수의 책도 아니고, 약육강식을 외치는 현실주의자의 논리와도 좀 다르다. 오히려 요즘 프리드먼이 보여주는 글로벌리즘의 좀 예스런 버전 정도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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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딸기 > 기후변화에 대한 최고의 안내서
기후 창조자 - 인류가 기후를 만들고, 기후가 지구의 미래를 바꾼다
팀 플래너리 지음, 이한중 옮김 / 황금나침반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기후변화에 대한 것은 그동안 나온 책들을 꽤 많이(실은 대부분;;) 읽어봤기 때문에 이젠 더 읽지 말아야지 했는데 어쩔수 없이 더 보아야만 하는 일이 생겨서, 조금 돈이 아까운 감이 드는 것을 꾹꾹 눌러가며 기후에 대한 책을 또 샀다.

 

읽다 보니 돈 아깝다 생각한 것이 미안할 정도로 알찬 책이었다. 지금껏 본 기후 책들 중엔 이 책이 최고.

기후변화에 대한 책들은 사실 내용이 대동소이한데, 책의 ‘질’은 ‘세부사항’이 얼마나 충실히 나와 있는지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다. 이 책은 기후변화의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쉽게, 그리고 생생하게 설명하고 있다. 또 2005년초까지의 비교적 ‘최근’의 상황을 담았다는 것도 시기상으로 보면 큰 장점. 다만 올해 기후변화 정부간 패널(IPCC)의 4차 보고서가 완료될 예정이니깐 올해 책들이 우르르 나오면 세부사항에서 좀 달라지는 것들이 있을 것 같다.

시각도 좋고 내용도 좋고. 다르푸르 문제를 기후 변화 측면에서 본 것, 이러다가 ‘탄소독재’ 나오겠다 내다본 것 재미있었다.


▶ 버지니아대학의 환경과학자인 빌 러디먼은 우리의 후기 산업시대를 나름의 지질시대로 구분했다.

이 중대한 지질학적 사건을 처음으로 인식하고 이름을 붙인 것은 오존층 구멍에 관한 연구 업적으로 1995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폴 크루첸 팀이었다. 그들은 이 시대를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부르며 산업혁명의 거대 기계들이 뭉게뭉게 피워 올린 메탄가스와 이산화탄소가 지구 기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1800년을 이 시대의 태동기로 구분했다. 러디먼은 이들의 주장에 자신의 독창성을 가미했다. 1800년보다 한참 전부터 인류가 지구 기후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이는 증거를 발견해낸 것이다.

8000년 전에 시작된 지난 일사(日射) 주기(밀란코비치의 2만3000년 길이의 궤도일사주기) 초기에 밀란코비치의 메커니즘은 메탄 배출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농경, 특히 동아시아의 논농사와 같이 물을 많이 사용하는 습식 농경의 시작이었다. (99쪽)


▶ 아주 먼 과거에는 파충류나 포유류, 조류가 없었다. 대신 갑갑하고 꿉꿉한 생장물이 곤충류와 함께 번성했다. 당시 대기는 산소가 풍부해서 불완전한 호흡기를 가진 동물도 엄청난 크기로 자랄 수 있었다. 노래기는 길이가 2m까지 자랐고, 거미는 몸길이가 3m나 되었다. 30cm나 되는 바퀴벌레가 날개 폭이 1m나 되는 잠자리와 함께 푸른 초목을 나누어 차지했으며, 물에는 크기가 악어만 하고 거대한 머리와 널찍한 입과 반짝이는 눈을 가진 양서류가 숨어 있었다. (108쪽)


▶ 목걸이레밍쥐(collared lemming·Dicrostonyx hudsonius)는 아북극이 아닌 훨씬 더 북쪽에서도 살 수 있다. 혹독하게 추운 그린란드 북해안에서도 생존할 뿐만 아니라 빙권에서도 너무 잘 적응한다. 이들은 설치류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겨울에 털이 흰색으로 변하고, 겨울이 되면 발톱이 두 갈래의 넉넉한 삽 모양으로 변해 딱딱한 눈에 터널을 뚫을 수 있다. 이들의 개체수는 약 4년 주기로 오르내리는데, 주기의 마지막에 이르면 너무 많아져서 떼를 지어 먹이를 찾으러 다닌다. 바로 이 때문에 무리로 절벽 아래로 떨어져 자살을 한다는 잘못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북극에 사는 생물들이 아무리 강인하다 해도 북극의 생태계는 대단히 취약하다. 2004년에는 이 지역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나라들이 후원해 작성된 보고서 ‘북극 기후영향평가’가 발간되었다. 지구온난화 추세가 이어지면 숲이 북극해 가장자리까지 북상하면서 툰드라 지대를 파괴할 것이라는 보고서 내용은 충격적이다. 목걸이레밍쥐와 툰드라 지대와의 관계는 불가분의 것이어서, 보고서에 따르면 레밍쥐는 이번 세기 말이면 멸종될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그 때가 되면 자살 성향이 있는 작은 설치류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비극적인 사실은 이 레밍쥐들이 스스로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은 떠밀린 것이다. (187쪽)


▶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은 지역은 대단히 광범한, 대서양에서부터 수단에 이르는 사하라 남부의 엄청난 구역이었다. 강수량이 갑자기 떨어진 뒤로 40년이 지났는데도 생명을 주는 우기의 비가 회복할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강수량이 줄어들기 전에도 사헬 지역은 생명체가 살기 어려운, 강수량이 극히 적은 곳이었다. 비교적 토양이 좋고 비가 좀더 많은 곳에서는 농민들이 땅에 의존해 살았으며, 더 건조한 황야에서는 낙타를 기르며 낙타의 먹이를 찾아 반쯤은 유목 생활을 하며 돌아다녔다. 비가 줄어들자 두 그룹 모두 사는 것이 어려워졌다. 낙타를 치는 사람들은 진짜 사막이 되어버린 곳에서 풀을 찾기가 힘들어졌고, 농민들은 밭이 다시 생동하도록 해줄 충분한 빗물을 거의 구경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의 언론들은 정기적으로 그 결과를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다.

나는 어릴 때 이러한 이미지들을 텔레비전에서 보았으며, 지나친 방목과 급증하는 인구 때문에 빚어지는 끔찍한 상황이라고 듣곤 했다. 사실 서구 사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러한 현상을 인간이 스스로 끌어들인 재앙이라고 주장해왔다. 낙타와 염소, 소를 지나치게 방목하고 아울러 땔감을 구하는 과정에서 얼마 되지 않던 식물군을 파괴하면서 짙은 비깔의 맨땅이 드러나게 되었고, 그만큼 이 일대의 알베도(태양빛을 반사하는 비율)가 변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환경론자와 도덕론자 모두에게 주의를 줄 만한 내용이었지만 거의 모든 면에서 그릇된 것이었다.

사헬에 닥친 재앙을 부른 진짜 원인은 2003년11월에 드러났다. 콜로라도 볼더에 있는 미국 국립대기연구센터의 기후학자들이 만든 컴퓨터 시뮬레이션 모델은 이 일대의 과거 및 현재의 기후를 실제에 가깝게 복원했는데, 인간이 황폐하게 만든 땅은 극적인 기후변동을 일으킬 수 없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대신 기후 변수 하나가 강수량 감소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인도양의 해수면 온도가 상승해 온실가스가 쌓이면서 나타난 결과였다. 사헬 지역에 닥친 재앙이 원시적이고 무지한 목축민들이 환경을 잘못 다룬 탓이 아니라는 뜻이다.

수단 서부에 있는 다르푸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기후 변화 때문에 절박한 처지에 내몰렸다. 낙타를 모는 유목민들이 낙타를 농경지 있는 곳으로 몰고 가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서 불가피하게 농민들과 충돌하게 된 것이다. 이 유목민들은 아랍인이고 농민들은 아프리카인이다. 생활방식에 약간씩 예외가 있는 것만 빼면 이들은 문화적, 신체적으로 차이가 없다.

사헬에 일어나고 있는 기후변화는 세계가 직면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금 서구 사회는 문제를 일으킨 명백한 원인인 환경 재앙보다는 종교와 정치에만 치중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우리는 문제의 원인에 대해 스스로를 속여 왔다. (171쪽)


우리가 수단에서 낙타를 몬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평생 좋은 날씨를 경험하지 못했으며, 좌절 끝에 낙타 무리를 몰아 우리와 통혼도 하고 교역도 하던 농민들의 땅으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우리 가축들은 작물을 짓밟고 불화의 씨를 뿌렸다.

세상은 수십 년 동안 우리의 난처한 처지를 우리가 천연자원을 잘못 다룬 탓으로 돌렸다. 이제 지구상에서 가장 힘센 정부가 우리에게 대량 학살의 혐의를 씌우고 있다. 그러다 우리는 비가 오지 않는 확실한 이유를 발견했다. 그것은 제일 부유하고 힘센 나라들이 대기를 오염시켰으며, 사헬 사람들을 기근과 빈곤과 분쟁의 나락으로 빠뜨렸기 때문이었다. 이토록 부당한 일을 어떻게 보상받아야 할까?(353쪽)


▶ 과학자들이 지구의 기후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균형이 무너지는 점(tipping point)’에는 중요한 내용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멕시코 만류의 약화 또는 중단이고 둘째는 아마존 우림지대의 소멸이며, 셋째는 해저에서 올라오는 기체 수화물(포접화합물)의 방출이다. (244쪽)


▶ 마지막 시나리오에 따르면 인류는 ‘가이아의 자동 온도조절 능력을 통제하는 지구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 수밖에 없는데, 교토의정서에서부터 쉽게 출발할 수 있다. 위원회는 바다를 이용해 지구의 자동 온도조절 능력을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전지구적으로 바다라는 공공재를 이용하고 소유하는 문제를 논할 새로운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다.

기후 위기가 심각해질수록 위원회는 한 나라가 기후변화 때문에 상당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를 중재해야 할 것이다. 결국 일부 구성원들은 더욱 효과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문제의 근본 원인, 곧 지구상의 인구 수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로써 위원회는 자체적인 통화와 군대를 가진, 그리고 지구 구석구석과 모든 사람을 통제하는 오웰 스타일의 세계 정부로 변해갈 것이다. 너무나 끔찍한 결과지만, 우리가 기후변화의 위기에 맞서 싸우는 활동을 지체하면 생존을 위한 탄소 독재가 반드시 필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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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라주미힌 > 오호... 탄소펀드라...

산업은행 2천억 탄소펀드

2010년 15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에 국내 금융기관 진출이 시급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산업자원부가 올해 상반기 조성하기로 한 국내 최초 탄소펀드 입찰에 산업은행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한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은 26일 '배출권 거래제도 시행에 따른 탄소펀드 현황' 보고서에서 국내 금융기관이 탄소시장 진출을 사전에 준비하지 않는다면 해외 기관에 주도권을 빼앗길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적 헤지펀드 회사인 맨그룹(Man Group)이 '새로운 놀이터'라고 명명한 탄소시장은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한, 즉 탄소배출권을 상품화해 거래하는 시장을 뜻한다.

선진국 기업들은 온실가스 감소나 청정에너지 개발 투자에 많은 돈을 쓰는 대신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한 탄소배출권 구매에 나서고 있다.

탄소시장은 2004년 이후 급성장세를 보여 지난해는 3분기까지 거래 규모가 215억달러를 기록했고, 2010년까지 약 1500억달러로 시장이 커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세계적인 금융기관은 탄소펀드(투자자에게서 자금을 조달해 펀드를 조성한 후 온실가스 저감사업이나 배출권에 투자하는 펀드) 조성과 투자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지난해 5월 향후 5년간 30억달러를 탄소배출권 구입에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또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도이치방크 등의 투자은행(IB)들도 사모펀드 조성과 해외 탄소펀드 지분 매입 등을 통해 탄소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활동중인 탄소펀드는 38개, 총 25억달러 규모에 이른다.

지금까지 탄소펀드가 전무하던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상반기 첫 토종 탄소펀드가 등장할 전망이다.

산업은행은 산업자원부의 탄소펀드 입찰에 증권ㆍ자산운용사들과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해 1000억~2000억원 규모의 탄소펀드 조성에 나선다고 밝혔다.

김원근 산업은행 PE실장은 "컨소시엄 형식으로 사모펀드(PEF)를 만들어 탄소펀드 입찰에 나서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며 "해외 배출권 거래에 대한 투자 등 다양한 형태의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토의정서 시장은 교토의정서 비준 국가들이 교토의정서에서 정한 규정을 따르는 것으로 EU 배출권 거래시장과 일본 캐나다 거래시장 등이 있다.

EU 배출권 거래시장은 EU 역내 국가들이 탄소 배출권을 거래할 수 있도록 2005년부터 가동됐으며, 현재 약 82억유로 규모의 배출권이 거래되고 있는 세계 최대 탄소 시장이다.



[조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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