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세상 끝의 낭떠러지에서 그리는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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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적 상상력
C. 라이트 밀즈 지음, 강희경.이해찬 옮김 / 돌베개 / 2004년 2월
평점 :
사회학자는 자신이 친숙한 개인적인 상황을 벗어나 더 큰 문맥에서 사물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 C. W. 밀즈
얼마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이는 독서클럽을 만들어 함께 공부하고 있다.(이와는 별도로 대학원에서 학회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 오는 가을 무렵엔 대학원 학술제도 맡아서 진행하게 되었다. 오나가나 일거리 만드는 재주는 시들어지지도 않는다.) 모임을 마치 고 집에 돌아오니 밤 12시 40분 가량 되었다. 지난주 토요일부터 휴가 첫 시작인데 그냥 잠들기도 뭣해서 잠깐 이책저책 뒤적거리다가 서재 한 귀퉁이에서 C.W.밀즈의 책 한권을 찾아냈다. 1978년 홍성사에서 홍성신서라는 이름으로 초판을 찍어낸 C.W.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책이었다. 앤서니 기든스가 "현대사회학" 서두 부분인 1장에서 언급하고 있던 그 책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5쇄 79년판이다. 역자로는 강희경(현재 충북대 교수)과 이해찬(전 국무총리)이 아직 푸릇푸릇한 청년 시절에 번역한 책이다. 이 책은 지난 2005년 돌베게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흐흐, 새책이 나온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물론 이분들이 번역을 얼마나 손 봤는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올리는 이 리뷰는 구판본에 대한 것임을 밝혀둔다. 어쨌거나 이 책은 1950년대말(1959년?)에 찰스 라이트 밀즈가 처음 출간한 이래 사회학 분야의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는 책이다. 사실 내가 사회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이라 할 수 있지만 이 방면의 독서를 나름대로(?) 시작하게 된 것은 지난 해부터였다.
모든 학문이 맞닥뜨리는 문제이긴 하지만 특히 사회학은 사회를 주요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여러가지 제약과 모순을 지니며 이를 실제 사회현실에 반영하거나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있어서는 무기력해보인다는 비판에 시달려왔다. 사회학이란 학문은 무수히 많은 갈래와 이론, 주장이 난무하지만 그 반면에 실제로 건질 것은 별로 없는 학문이란 비아냥도 있다. 현실사회주의 붕괴의 여파일지도 모르겠지만 현재 사회학에서 좀더 중요하게 취급받는 것은 "사회에 대한 과학 - 그럼으로써 사회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마르크스의 입장 보다는 "사회학은 사회적 행위를 해석하고 이해함으로써 사회적 행위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려는 학문"이라는 베버의 입장이 아닐까 싶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을 얻고자 하는 목적의식적인 입장에서 사회학에 접근하려던 사람에게 베버의 사회학적 입장이 지니는 수동성은 맥 빠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세의 유럽에서 신대륙으로의 길을 연 사람들은 지도를 만드는 이들이었던 것처럼 사회를 이해하고 해석한다는 행위, 그럼으로써 사회적 행위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는 학문으로서의 사회학이 지닌 미덕은 여전하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세상의 끝은 낭떠러지였던 것처럼 사회라는 거대한 숲의 한 가운데 있는, 어쩌면 사막이나 바다처럼 넓은 망망한 사회 한복판에 놓인 우리들에게 사회학이란 학문은 지도를 만드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C.W.밀즈는 당대 주류 사회학이 직면했던 '추상적 경험주의'와 '거대이론'을 비판하면서 사회과학자들이 다시 고전적 사회과학의 전통을 회복하여 지적 장인(匠人)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부록격으로 수록된 "장인기질론"에서 C.W.밀즈는 현재의 지식인들도 귀담아들어야 할 만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회과학자에 있어 가장 나쁜 점은 그들이 오직 한 가지 경우, 즉 특수한 조사나 '연구계획'에 대한 기금이 주어질 때만 그들의 연구계획을 집필할 필요를 느낀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연구계획'이 행해지거나 최소한도나마 신중히 씌어지는 것은 기금에 대한 요구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관습이 일반적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매우 나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어느 정도 상인 근성에 빠져드는 것이며 보편적인 기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산고를 겪는 체하기 쉽다.
물론 C.W.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이 겨냥하고 있는 일차적인 독자들은 사회과학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학문하는 기술적 방법은 물론 그 태도를 배우고자 하는 이에게도 이 책은 매우 유용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틀림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