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왜 우리에겐 만엽집 같은 책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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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요슈 - 고대 일본을 읽는 백과사전 ㅣ e시대의 절대사상 7
구정호 지음 / 살림 / 2005년 5월
평점 :
1. 만엽집 같은 책을 접할 때 순수하게 감상할 수 없음은 비참한 일이다.
아무리 우리 역사와 전통이 우수하다고 주입식교육을 받아도 세뇌되지를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아 영광스러운 무엇이 보이는가. 모든 광신이 비롯되는 지점이 거기다. 우리의 지나친 애국심, 지나친 기독교 믿음. 의심스러운 것을 믿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할 때 광신이 될 수밖에 없다. 미치지 않고는 믿을 수가 없다. 우리의 이 모든 열등감이 일제의 식민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나름 의식있다는 사람들은 지적하지만, 동시에 역식민사관의 공격을 매일 받고 있어도 우리에 대한 자긍심은 생길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2. 몇 년 전 교토와 나라의 그 분위기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라 역에서 동대사(도다이지)를 가는 길목에 이름은 잊었지만 작은 못이 하나 있다. 가이드북은 그 못이 만엽집에도 나오는 오래된 것이라고 친절히 설명해 주고 있었다. 오, 고딩 때 향가를 배우면서 언급되던 그 만엽집.
3. 삼국유사에 14수, 균여전에 11수, 도이장가를 합쳐 26수의 향가를 가진 우리와 20권 4,516수의 와카가 수록된 만요슈를 가진 일본. '이러한 현실에서 과거의 역사적 상황만을 내세워 만요슈의 노래가 향가의 영향을 받았다고 결론내리는 것은 학문적 자세가 결여된 태도다.' (p.8)
4.
(1) 형성시기 : 7세기 중반~8세기 후반, 천황과 귀족의 작품이 대다수 그러나 농민, 병사의 노래까지 수록.
(2) 와카의 가체 : 장가, 단가(57577), 세도카(577577), 붓소쿠세키카, 렌가
(3) 와카의 분류 : 조카(사랑노래), 소몬(장례노래), 반카(의례가)
(4) 일본 문학사의 구분 : 상대(794 헤이안 천도까지, 고지키, 니혼쇼키, 만요슈) 중고(1192 가마쿠라 막부 개설까지, 고킨와카슈, 겐지모노가타리) 중세(1603 에도 막부 개설까지, 군기모노가타리, 노, 교겐) 근세(1868 메이지유신까지, 하이카이) 근대(현재까지)
5. 만요슈의 의미, 만요슈의 표기(읽는 법), 일본문학의 발전과 관련한 만요슈의 역사 등이 쉽게 소개되어 있음.
6. 몇 가지 맘에 와 닿는 와카를 소개한다.
다만 만요슈를 시집처럼 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 당시 그들에겐 노래였을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에겐 몇 가지를 빼고는 거의 감흥을 일으키지 못한다. 저자는 만요슈를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고대 일본을 알 수 있는 백과사전 내지는 거대한 박물관'이라고 하고 싶다는데, 그 만큼 지금에 와서는 시집이 아니라 민속자료집으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는 뜻이리라. 그래도 일본문학을 배우고 일본운문의 전통을 알고 싶은 사람은 꼭 한 번 읽어 볼 만 할 것이다.
권두가(1-1)
천황이 지은 노래
바구니 바구니 들고 호미 들고 호미 들고서 이 언덕에서 나물 뜯는 아가씨 집을 고하라 이름 고하라 성스러운 야마토 이 나라는 내가 다스리로다 내가 다스리로다 내가 먼저 고할까 집과 이름을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온 듯하다 새하얀 빛의 빨래 말리고 있는 아메노 가구야마(1-28)
당신이 바로 패랭이면 좋겠네 나 아침마다 그 꽃 손에 들고서 항상 그리워하리(3-408)
산다는 것이 근심과 염치없다 생각하지만 도망갈 수 없다네 새처럼 날 수 없기에(5-893)
고개를 들어 초승달 바라보니 한 번 보았던 그 임의 가는 눈썹 생각이 나는구나(7-994)
내 집 뜨락의 오얏꽃 송이일까 떨어지는 건 잔설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일까(19-4140)
끝 노래(20-4516)
3년 정월 초하루 이나바 지방의 현청에서 지방 관리들과 함께한 연회에서 지은 노래 한 수 - 제사(제목)
새로운 해가 처음 시작되는 날 초춘인 오늘 내리는 이 눈처럼 좋은 일 쌓이거라
위 한 수는 수령인 오토모 스쿠네 야카모치의 작 -좌주
7.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이 비참함은 어떻게 극복할 수가 있을까.
여기는 이백이 뱃놀이를 하던 곳, 저기는 소동파가 xx를 읊던 곳, 여긴 루쉰이 xx를 썼던 건물,
여기는 만요슈 x권 x번째에 나오는 연못, 저기는 만요슈에서 천황이 나들이 하던 곳.
왜 우리에겐 그런 향기가 주어지지 않았지, 1000년 뒤 우리 후손은 가질 수 있는 행운이 따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