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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 멕시코의 경험을 어떻게 볼 것인가?
  2006.07.19   남덕우 한국선진화포럼 이사장 106


최근에 두 공영방송이 NAFTA (미국, 캐나다, 멕시코 사이의 FTA)와 멕시코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는데 요즘 격렬한 반 FTA 데모를 보고 이들 방송의 내용이 마음에 걸려 붓을 들었다. 정부 당국은 한 신문의 전면 광고를 통해 이 프로가 FTA의 긍정적 측면을 무시하고 부정적 측면 만을 부각했고, 이론적 혹은 실증적 정확성이 없는 사례를 주장의 논거로 상용하고 있다고 반박 했는데, 필자 역시 이 프로를 보고 NAFTA가 그토록 멕시코에 불리한 것이었다면 어째서 이 나라가 NAFTA 외에 EU, 일본을 포함한 43개국과 FTA를 체결했을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쨌든 NAFTA가 멕시코에 미친 효과에 관해서는 상반된 견해가 있게 마련이다. 특히 신자유주의를 배격하는 좌파가 우세한 남미에서는 NAFTA를 좋게 말하기는 쉽지가 않다. 허나 그들이 폄하하는 세계은행이나 IMF가 제공하는 평가 보고서는 NAFTA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함께 다루고 있다. 먼저 긍정적 측면으로는 멕시코의 미국과 캐나다에 대한 수출이 3배로 증가하였고(1993-2003), 외국인 직접 투자가 120억 달러(1991-93)에서 540억 달러로 증가(2000-02)했고, GDP 평균 성장률이 2%(1980-93) 에서 4%(1996-2002)로 높아졌다. 결과적으로 기능공의 부족이 발생 했고 인구 중에서 빈곤층의 차지하는 비율이 1995년의 약 64%에서 2004년에는 약 50%로 감소했다는 것이다. 한편 부정적 측면으로는 필요한 구조조정과 개혁을 회피했기 때문에 당초에 기대했던 만큼의 큰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FTA 반대론자들은 멕시코 경제의 모든 암면을 NAFTA에 결부시키려 하나 문제의 근원은 딴 곳에 있다. 먼저 1994-5년의 외환위기, 2000년 이후의 미국의 불경기, 그리고 막강한 경쟁자 중국의 출현이라는 외부적 악재가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노동시장이 남미에서 가장 경직적이고, 석유 수입에 안주하여 세수증가를 위한 세제개혁을 미루어 왔고, 전력 공급이 부족한데 헌법이 민간 참여를 금지 하고 있고, 인적 자원 개발이 시급한데 그를 위한 제도와 재정지원이 미약했고, 기업 경영과 부정 부패를 다스리는 투명한 법적 질서가 확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지적이다. FTA반대론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멕시코의 경제적 암면이 NAFTA로 인하여 더욱 악화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멕시코 개발연구원 루이스 루비오 원장과 같이 NAFTA가 없었더라면 사태는 더욱 악화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므로 멕시코의 경험이 한-미 FTA를 무조건 반대할 만한 이유는 되지 않는다. 지난 날 GATT, 우루과이 라운드, WTO 협상 때에도 국내에서는 반대도 많았고 걱정도 많았지만 돌이켜 보면 우리 산업이 대체로 성공적으로 적응했고 성장, 발전의 촉진제가 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미국과의 FTA도 잘만하면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미국의 무역 장벽과 통상 마찰을 해소하여 보다 안정된 수출 시장을 확보하고, FTA에 간접효과로 직접 투자와 기술이전이 경제 성장으로 연결되면 반대자들이 개탄하는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는 힘이 생기며, 물가 안정과 서민층의 생계비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 물론 무역 자유화로 타격을 받는 부문이 있다. 특히 농업에 대하여는 정부가 협상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하는 동시에 농민들이 살아갈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끝으로 보다 장기적 안목으로 생각할 필요도 있다. 멕시코와 같이 우리도 중국의 경제적 도약 앞에서 전통적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데 근본 대책이 무엇인가? 한쪽에서 기회가 사라지면 다른 곳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중국과 다른 나라의 무역 장벽이 그를 가로막으면 새로운 기회를 잡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 미국, 일본, 그리고 결국에는 중국까지 포함하는 FTA를 실현해야 우리의 살길이 넓어진다. 한•미 FTA는 바로 그리로 가는 길이다. 자원이 없고 경제대국에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숙명적으로 그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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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타자라는 거울에 자기 얼굴 비춰보기

타자라는 거울에 자기 얼굴 비춰보기
[오마이뉴스 2002-12-14 12:06]
두 책은 프랑스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들의 모습을 바라봤던 위대한 작가 괴테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여행기이다. 독일인 괴테와 러시아인 도스토예프스키는 변화하는 시대를 살았고 자신들의 ‘조국’이 그 험한 파도를 헤치며 발전하길 기원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유럽에서 ‘발전과 진보의 기준’이 된 프랑스, 그들의 눈엔 그 나라가 어떻게 보였을까? 그리고 프랑스 여행을 통해 그들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 <괴테의 프랑스기행>표지
2002 인화
괴테가 프랑스로 들어간 시점은 프랑스 혁명 발발 후 3년이 지난 1792년이었다(그렇기에 ‘기행’이라는 제목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프랑스를 ‘여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프랑스 혁명을 진압하고 루이 16세를 구출하려는 유럽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출정’했다. 그의 말처럼, “공화주의 사상과 그 영향을 결정적으로 종식시킬 임무를 띤 군대와 함께 출정하기 위해 준비를 서두르는 참”(21쪽)이었다.

괴테의 글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프랑스의 망명귀족, 즉 혁명을 피해 다른 나라로 떠났던 프랑스 귀족들에 대한 불평불만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빌려 그들의 속물 근성을 지적한다. “돈이면 무슨 일이라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프랑스 여인들”(21쪽), “이제 하인도 없었고 마부조차도 없었”지만 연합군과 함께 “아내와 연인들, 그리고 아이들과 친척들을 데리고 한꺼번에 밀어닥치고 있”(29쪽)던, “이전의 모든 지위를 박탈당하여 극심한 곤궁에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변함없이 옛날과 같은 명예욕과 거만한 태도를 보”(302쪽)이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망명귀족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von Goethe)

독일의 시인이자 작가(1749∼1832). 고전파의 대표자.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부유한 가정에 태어나 아버지의 방침에 따라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하여 법률을 공부하다가 병으로 일시 귀향, 다시 스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하여 법학사가 되었다.


1774년 발표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슈투름 운트 드랑'(질풍노도시대, 문예의 혁명 운동)의 대표작으로서 전 독일 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 알려졌다. 1775년 아우구스트 공의 초청으로 그의 교육 겸 사담역으로 바이마르에 갔으며, 그 후 재상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한편 슈타인 부인과의 사랑과 1년 반의 이탈리아 여행을 통한 고대 및 르네상스 미술과의 접촉은, 그로 하여금 쉬투름 운트 드랑적인 어두운 정열에서 벗어나, 고전주의 예술 확립으로 향하게 했다. 1974년 무렵, 실러와 친교하게 되는데 이들의 우정은 실러 사망시까지 계속되었다.


그들은 서로 격려하면서 걸작품들을 세상에 많이 내어 놓게 되었는데 짧은 풍자적 비판시 <크세니엔>을 쓰기도 했다. 그후 <빌헬름 마이스터>, <파우스트> 같은 만년의 대작을 완성하여 독일 최대의 시인이자 세계문학의 한 거봉이 되었다. / 알라딘 소개글

그가 보기에 프랑스 구체제는 타락하고 썩어 무너질 기둥이었다. 사실 정확하게도 괴테는 다가올 세기의 주인공을 ‘신분’이 아니라 ‘개인’에서 찾았다. 봉건질서에서 개인은 아무리 뛰어난 자질을 가졌다 하더라도 자신의 신분을 뛰어넘진 못했다(드물게 전쟁을 통해 신분 상승의 기회가 열리기는 했지만). 하지만 시대의 전환기를 맞아 개인은 ‘그 자체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제까지는 시민적 생활에 있어서나 정치적 경력에 있어서나 중요한 인물로 분류되거나 평가되지 못했던 많은 개인들이, 개인적인 가치로 인하여 확실한 존재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307~308쪽). 이제 “모든 사람들은 각자가 완수하고 원만한 존재로써 스스로 최고라고 생각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자신만의 개인적인 일도 완벽하게 강조되어, 심지어 특별한 성격이나 어리석은 행위, 그리고 실수까지도 자신의 가치있는 존재의 총체 속에 받아들여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308쪽).

하지만 괴테는 자신의 조국이 프랑스처럼 병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깨끗하고 솔선수범하는 프로이센의 귀족체제는 건강한 것이었다. 더구나 괴테는 무질서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변화보다 질서를 택했고(이것을 진보/보수라는 틀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세계적 유전병”(492쪽)을 극복할 방법을 찾았다. 그는 프랑스 혁명을 “소름끼치는 현실”로 보았고 국가가 “거대한 자신의 궤도를 이탈”(378쪽)한 것으로 봤다. 그리고 프랑스의 혁명사상을 받아들이려던 사람에 대해 “자신과 현실을 분명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알 수 없는 기대와 희망에 온 힘을 쏟아붓고 있었다”(378쪽)고 평가했다.

그는 프랑스에서 무질서를 목격했고 그것을 공화주의의 특징으로 보았다. “여러 파당으로 분열이 된 것도 아닌데, 이 정도까지 갈가리 찢겨지고 흩어져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고 속속들이 뒤흔들려서 오로지 개개인의 개체로 분리되어 버리는 국민”(40쪽). “우리는 곧바로 공화주의적인 특징이라 할 만한 것에 직면하게 되었다. 포격으로 끊임없이 온 시가지가 불타고 파괴되는 것을 보아 온 시민들의 강요 때문에 사령관인 보르페르는 더 이상 항복을 거부할 수 없었다”(66쪽). “이미 파리의 잔인하고 포악한 무리들을 본보기로 삼았던 이들은 자신들의 뜻대로 희생자를 골랐다. 그래서 그것으로부터 닥치는 대로 그 권위와 소유와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빼앗으려 들었다”(141쪽).

질서를 고집하기에 그는 사람의 목숨이 오고가는 전쟁터에서도 차분하게 학문적인 관심을 유지한다(전형적인 딸깍발이의 모습). 그는 포격으로 부서진 도자기 파편이나 프랑스로 진격하는 연합군의 총검에서 빛나는 햇살을 통해 ‘색채학’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태운다. 심지어는 프랑스군의 배가 오스트리아군의 포격을 받아 강물 속으로 침몰하게 되는 광경을 이렇게 묘사한다. “맨 처음의 포탄이 흔들리는 수면과 만나자 몇 피트에 이르는 물기둥이 솟아오르고, 그 물기둥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벌써 두 번째 물기둥이 솟구쳤다. 강도는 처음 것과 같았으나 높이는 그렇지 않았다. 이와 같이 세 번, 네 번 지속되면서 점점 그 높이가 낮아지다가 끝내는 그 작은 배에 이르게 되었다.…이 광경은 보고 또 봐도 싫증나지 않았다”(427~428쪽). 그에게는 잔인한 전쟁도 하나의 관찰대상, 실험일 뿐이었다.

▲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럽인상기>
2002 푸른숲
차분했던 괴테와 달리 뜨거운 영혼을 가졌던 도스토예프스키는 69년 뒤인 1862년 유럽을 여행하면서 서구사회에 대한 불만을 공격적으로 드러낸다. 그가 유럽을 방문한 시기는 산업혁명 이후 유럽이 세계의 발전을 주도하면서 자신들의 제국주의 야욕을 드러낼 때였다. 그렇기에 그는 러시아의 극작가 폰비진의 공격적인 문장을 빌린다. “프랑스인은 이성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것을 갖는 것을 스스로 아주 큰 불행으로 생각할 것이다”(31쪽).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인에게 두 개의 조국, 즉 “러시아와 유럽”(178쪽)이 있다고 얘기한다. 당시 러시아는 표뜨르 대제 이후 ‘유럽 따라잡기’에 열심이었다. 하지만 기대에 부푼 도스토예프스키의 눈에 비친 유럽 사회, 특히 프랑스는 ‘영혼을 잃어버린 속물들의 나라’, ‘돈을 위해 영혼을 팔아버린 부르주아 파우스트의 나라’였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1821년 모스크바에서 가난한 군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당대 러시아에서 드문 전업 작가로 일생을 가난과 역경 속에 살았다. 19세기 중엽 다른 귀족 출신 작가나 시인들과 달리 그는 평생을 가난 속에 살며 돈과 시간에 쫓기고, 사형 언도와 간질병 같은 고난에 찬 특이한 경험들을 했다.


그는 러시아 민중을 누구보다 사랑한 이른바 비판적 리얼리즘 작가로 사회적, 철학적 주제를 추구한 작가이다. 그의 사상과 미학은 때론 민족 문제와 고고한 인류학적, 신학적 문제에까지 닿아 있다. 특히 러시아와 인류의 미래, 그리고 신과 인간의 문제를 아우른다. 이러한 거장의 모습은 흔히 동시대에 세계적 명성을 떨친 톨스토이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세계 문학의 정상으로 끌어올린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작품들은 '문학의 심리학'이라 불릴 정도로 인간 심성의 깊은 곳을 파헤친다. 작품으로 <가난한 사람들>, <지하 생활자의 수기>, <죄와 벌>, <백치>, <영원한 남편>, <악령>, <작가 일기>, <카라마조프의 형제> 등이 있다. / 알라딘 소개글

러시아인이 유럽을 조국으로 삼은 것은 물질적인 욕망 때문이었다. 러시아인의 삶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온통 유럽의 유산으로 영위된 것”(34쪽)이었고, 상류계급은 유럽을 동경하며 살았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렇게 묻는다. 푸슈킨에게 러시아말을 가르쳤던 유모가 없었다면 러시아의 대문호 푸슈킨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지금도 많은 러시아 아이들이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보내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들 중 또 하나의 푸슈킨이 있어서 프랑스에 보내졌으나, 거기에 아리나 로지오노브나도 없고, 요람 속에서 들을 수 있는 러시아 말도 없었다면 어떻겠는가?”(35쪽).

러시아의 정신을 파괴하고 조국을 무능력하게 만드는 것은 상류층이다. “그들은 모두 여행 안내서를 들고 돌아다니며, 도시마다 진기한 것에 굶주린 듯이 덤벼든다. 마치 무슨 의무라도 되는 듯이, 국가적인 책무라도 띠고 있는 듯이 덤벼든다. 일단 안내서에 기재된 것이라면, 창문 세 개짜리 궁전이라고 빼놓지 않으려 한다. 시장의 집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본다. 그런데 이런 집들은 모스크바나 페테르부르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68쪽).

그의 비판은 러시아의 풍습을 미개한 것으로 몰아붙이고 무조건 유럽을 칭송했던 언론에게도 향한다. “도대체 자기가 무엇이기에 거만하게 허리에 양손을 짚고, 게다가 침을 마구 뱉으며 대중 앞에 군림하는 것인가!…그런 믿음이 대중에 대한 허세일 뿐이거나 유럽의 문명에 대한 무조건적이며 노예적인 숭배에서 나왔다면, 그것이 더욱더 우습지 않은가?”(63~64쪽).

러시아인들이 바쳤던 칭송과 숭배와 달리 프랑스의 부르주아들은 물질을 숭배하고 소유욕으로 가득 차 있다. 최고의 것으로 군림하던 그들의 문화는 위선적인 교양의 가면일 뿐이다. “이 부르주아라는 것은 이상한 인종이다. 돈이 최고의 선행이며 인간으로서 의무라고 솔직하게 제창하고 있으면서도, 또한 좋은 가문을 내세우기를 무척 좋아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늘 모두가 놀랄 만큼 도도한 모습을 하고 있다. 가장 저급한 프랑스인, 즉 자기 친아버지를 단 몇 푼에 팔면서 거기에다 덤까지도 붙여줄 정도의 프랑스인이라도, 아비를 팔아먹는 바로 그 순간에도 당당한 모습을 보여 오히려 보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든다”(103쪽).

프랑스는 ‘개미집’으로 묘사된다.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똘레랑스'라는 개념조차 ‘윤리적 개념’이 아니라 그 개미집을 유지하기 위한 ‘실용적인 방편’일 뿐이다. “서로가 완고하게 자기를 주장하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존재하지만, 서로 방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도 서로 타협할 수 없는 완고하고, 이미 만성화된 보이지 않는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전체 서구의 특징인 개인적 원리와, 어떻게든 함께 공존하며 일종의 공동체를 이루어 하나의 개미집을 형성해야 할 필요성 사이의 생사를 건 투쟁이다. 단지 서로가 물어뜯지 않기 위해 하나의 개미집이라도 설계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식인종이 될 염려가 있다!”(84쪽).

괴테의 상대가 공화주의자였다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상대에는 부르주아만이 아니라 당시 유럽에서 확산되던 사회주의자도 포함되었다. 특히 그는 ‘박애’가 프랑스의 상징일 수 없다고 비판한다. 박애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되는 것이고 주어지는 것이며, 자연 중에 존재하는 것”(109쪽)이고 “먼저 피와 살로 스며들”(110쪽)어야 하는데, 프랑스나 유럽에서는 그런 정신이 이미 개인의 욕망으로 대체되었다.

개성은 이기적인 욕망이나 닫혀진 개인이 아니라 사회 속의 개인, 타자 속의 나에서 발현된다. “누구에게 강요받지 않고 완전히 자각하여 만인을 위해 자기 전부를 희생하는 것이야말로, 개성이 최고로 발달한 것이며, 최고의 위력이며, 최고의 극기이며, 최고의 자유의지의 표현이다. 자유의지로서 만인을 위해 생명을 버리고, 십자가에 매달리고, 불길 속에 뛰어든다는 것은, 개성이 가장 강하게 발달했을 때에만 가능하다.…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이 자주 정신을 가진 행복한 개성으로 만들기 위해서이며,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111쪽). 이것은 “이성이 아닌 감성과 자연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114쪽).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회주의자들의 실험이 실패하리라고 예측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박애는 "무게나 크기를 계산하고, 이해를 저울질하면서, 이 박애로부터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이익이 돌아가며, 누가 얼마만큼 이득을 볼 수 있는가를 설명하거나 셈하는 것”인데, “누가 얼마의 공헌을 했는가, 각자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를 미리 결정하며 분배”(115쪽)해야 하기에 불가능한 유토피아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회주의는 가능하지만, 다만 그것은 프랑스가 아닌 어떤 다른 곳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117쪽).

괴테와 도스토예프스키는 여행을 통해 자신들의 모습을 되돌아 볼 기회를 얻었다. 괴테의 모습이 의기양양한 승리자의 것이라면, 도스토예프스키의 모습은 굴욕을 딛고 일어서려는 도전자의 것이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타자를 통해 자기 속의 모습을 비판하는 그들의 방식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 무관하다고 우리는 자신할 수 있을까? 사실 타자를 무조건 따라잡거나 무조건 거부하는 극단적인 두 가지 방식만을 고집해 온 우리에게 그런 비판은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 두 권의 책은 그 비판의 여유를 준다.

여행의 묘미는 무엇일까?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낯선 신기함만이 아니라 익숙한 자기 속에 숨어있던 또 다른 자기의 모습을 발견해서 돌아온다. 내가 내 얼굴을 볼 수 없기에 우리는 거울을, 자신의 얼굴을 비춰줄 타자의 눈망울을 필요로 한다. 내가 타자를 바라보는 방식은 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우리는 타자를 존중해야 하고, 그런 사람만이 자신을 존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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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가을산 > 미국 '쌩 쑈 지적했던 단체들의 예언 100% 다 들어맞아

싱가포르 별도 협상.. 뚜껑 여니 미국 요구 수두룩  

[기자의눈] 미국 '쌩 쑈 지적했던 단체들의 예언 100% 다 들어맞아  
  

라은영 기자 hallola@jinbo.net / 2006년08월22일 10시10분  

2차 협상 당시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며 협상 결렬의 쌩 쑈를 벌이던 미국 협상단이 한국의 '건강보험 의약품 선별 등재 방식, 포지티브 시스템 도입'의 연내 실시를 수용하는 대신 이 제도의 절차적 사항 등 세부 시행 방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해 왔다. 그리고 이에 한국협상단 반색을 하며 전격 수용, 21일 22일 양일간 싱가포르에서 의약품 분야 작업반의 별도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21일 별도 협상의 결과를 보고하며 전만복 보건복지부 한미 FTA국장은 어찌나 자랑스럽게 말한다. 미국 협상단이 한국 제도의 연내 실시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미국 협상단에게 한국 복지제도를 승인 받은 것이 그리 좋을까. 남의 나라 제도에 '감 놔라 배놔라' 하는 미국 협상단도 웃기지만, 그것을 성과라며 '재차 확인'을 강조하며 브리핑을 하고 있는 한국 협상대표의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국내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번에도 보건의료,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100% 들어 맞았다.(이들은 2차 협상의 의약품 분과 협상 결렬은 미국 측이 더 많은 성과를 따내기 위한 ‘의도된 쑈’라며 선견지명의 타수를 날린 바 있다)


현재 알려진 미국 협상단의 요구는 ①다국적 제약사의 신약이 부당하게 건강보험 의약품에 등재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신약 접근성을 보장해 줄 것 ②혁신적 신약의 가치를 인정해 줄 것 ③다국적 제약사가 신약의 보험 약값 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독립적인 ‘이의 신청기구’를 설치하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줄 것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점쟁이도 이런 점쟁이가 없다. 지난 7월 13일 민중언론 참세상이 의약품 작업반 결렬과 관련해 천문호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회장의 인터뷰를 했던 바가 있다. ‘의약품협상 결렬, 합의를 위한 단계일 뿐’(http://news.jinbo.net/news/view.php?board=news&id=36835) 이 기사에 언급된 경고와 정확히 일치한다. 천문호 회장이 점쟁이 일리 만무하고 미국 협상단을 앞세운 다국적 제약회사의 노림수에 대한 뻔한 분석의 결과인 게다. 애써 한국 정부만 모른 척 할 뿐.


말 그대로 4대 선결과제로 약값 제도를 제물로 바치고, 보건복지부의 선별등재 방식으로 발목 잡혔다. 결국 협상의 달인 미국 협상단은 한국 정부의 ‘선별등재방식’을 수용한 대가로 ‘혁신적 신약’의 독점적 이윤을 보장 받겠다 요구해왔다. 한국 정부는 ‘제도 수용’을 거듭 확인하며 시선을 돌리려 하지만 결국 미국 협상단의 요구에 밀릴 수밖에 덫을 스스로 놓은 셈이다.


다국적 제약회사가 많은 수익을 챙길 수 있는 혁신적 신약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다 보니 일반 복제약들에 비해 가격 평가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또한 다국적 제약회사의 신약 중에는 몇 가지만 첨부해서 특허기간 연장 받겠다는 꼼수를 부리는 ‘신약’도 적지 않다.


현재 소수의 제품만 ‘혁신적 신약’으로 분류하고 있다. 미국 협상단의 요구 ①②는 결국 ‘혁신적 신약’의 범위를 넓혀 달라는 요구다. 범위를 넓혀 혁신적 신약으로 인정 받겠다는 것은 고로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대상을 더 늘려달라는 거다. 지금도 건강보험 총 진료비 중 30%를 차지하는 약제비. 이 지출을 줄이겠다며 ‘선별등제방식’을 고집 하더니 오히려 한국 협상단은 더 많은 지원과 재정 지출을 다국적 제약회사에 약속하고 있는 셈이다.


③도 마찬가지다. ‘독립적 이의 신청기구’를 두자는 제안은 겉보기에는 합리적일 듯 하지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그리고 끊임없이 보험 약값 결정과 모든 정책과 입법 과정에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앙상한 ‘선별등제 방식’ 깃발을 밑에 초라하게 씨익 웃고 있는 한국 정부와 협상단의 모습이 보인다. 공개되지 않은 미국의 추가 요구에 무엇이 숨어있는지는 그들만 알 뿐이다. 이대로 선별등재방식을 빈 껍데기로 만들고, 약값상승과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 먹을 이들의 협상판을 어떻게 엎을 것인가에 대한 고뇌가 인다.


어쨌든 양국의 협상단은 싱가포르 별도 협상에서 최대한 쟁점사안과 절충을 시도하고 오는 9월 3차 협상에서 추가적인 내용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너무 순조롭게 진행되는 한미FTA협상, 3차 협상으로 쫑나는 거 아닌지 걱정이 해일처럼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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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오른쪽으로 이동하지 마

올해 회사 살림은 영 좋지 않았다.
지난해 기획되었던 것들을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어쨌든 올 1월 내가 출근하기 시작했고
그 뒤에 나온 책들이 잘 나가지 않는다는 건
꽤 부담스러운 일이다.
자본을 쌓아놓고 있는 회사도 아니고,
그달 수금해서 그달 먹고살아야 하는 영세한 출판사 형편에
빚만 늘어나는 월말 회계 보고서 보기가 괴로웠다.
(판매, 수입, 지출 등등 회계 명세가 100퍼센트 사원에게 공개되는 회사에 다녀요. -_-v)
 
그런데 지난 4월에 만든 책이
요 두어 달 사이에 부쩍 잘 나간다.
(이렇게 말하면 누구는 수만 부 팔린 줄 아는데, 그래봐야 이제 오천 부 나가주셨다.
수만 명이나 같은 책을 본다는 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정치판에서 화제가 된 덕분인데,
잘 나가는 건 좋은 일이고
또 정치인들이 이 책을 읽어주길 바랐기 때문에 희망이 이루어진 것도 좋지만,
이 책에 대한 반응을 소개한 신문 기사를 보면
제대로 읽은 사람은 별로 없구나 싶어 씁쓸하다.

물론 ‘진보 세력이 선거에서 이기는 법’을 표방한 책이고,
그 방법이란 상대편의 가치관에 따른 ‘말’ ‘표현’을 답습하지 마라,
상대방의 주장이 함축된 용어를 그대로 받아 쓰면 절대 이길 수 없으니
표현 자체를 바꾸라는 것이긴 하지만,
단순히 말장난, 혹은 표피적인 선전 기술을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다.
내 생각에, 이 책의 핵심은 ‘오른쪽으로 이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선거판에서는 어느 정도 보수적인 가치관과 타협해야
‘현실적인 당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 같다.
타협하지 않으려는 이들은, 당선 가능성을 위해 원칙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타협하려는 사람이든 타협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든,
이기려면 어느 정도는 오른쪽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지은이는 말한다.
공화당은 전혀 왼쪽으로 이동하지 않고도 선거에서 이긴다고.
왜? 그들의 주장은
보통 사람들(노동자들과 가난한 서민들)의 보수적인 가치관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수적인 가치관과 진보적인 가치관
양쪽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 특정한 자극을 받았을 때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이를테면 성차별이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라도
당장 늙은 어머니가 힘들게 집안일을 하는 걸 보면
자기와 같이 직장에서 퇴근해 저녁 밥상을 받는 아내를 째려보곤 한다.
그래서 진보 세력이 선거에서 이기려면
보수적인 가치관에 굴복(오른쪽으로 이동)할 게 아니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진보적인 가치관을 끄집어내야 한다.
아내에게 힘들더라도 집안일에 더 신경 쓰라고 할 게 아니라,
사랑은 다른 사람이 대신 표현해주는 게 아님을 일깨워야 한다.
내가 어머니를 사랑하는데, 왜 내 사랑을 아내에게 표현해달라고 떠넘기나?

그런데 요새 이 책을 탐독했다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오른쪽으로 이동하지 말라’ ‘원칙을 포기하지 말라’는 핵심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도리어 오른쪽으로 성큼 물러나서(사실 그다지 왼쪽에 있지도 않았던 것 같지만)
‘오른쪽’이 아니라 ‘바른쪽’으로 간 거라고 우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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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아령운동을 이용한 근력운동

아령운동을 이용한 근력운동
규칙적인 운동은 허리 근력과 체력에 많은 도움을 준다.
운동은 매일 실시하는 것이 좋다. 가끔씩 하는 운동은 허리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하루에 30분 정도의 운동이 필요하며, 가급적 아침, 저녁으로 15분 정도가 좋다.
만약 허리에 통증이 있다면 운동을 중단하여야 한다.
또한 너무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만약 운동을 실시하는 중에 아픔을 느낀다면 운동을 중단해야 한다.
1. 옆으로 들어올리기
1) 발을 어깨 너비로 벌리고 서서 아령을 든 손을 허벅지 앞에 모은다.
2) 손바닥은 서로 마주 보게 하며 팔꿈치는 약간 구부린다.
3) 아령을 든 양손을 동시에 어깨 높이로 들어올린다.
4) 처음자세로 돌아와서 반복한다.
5) 호흡은 자연스럽게 한다.
2. 앞으로 들어올리기
1) 발을 어깨 너비로 벌리고 서서 아령을 든 손을 허벅지 앞에 모은다.
2) 손바닥 면은 허벅지 쪽을 향한다.
3) 한 쪽 팔을 정면(앞)쪽으로 어깨 높이로 들어 올린다.
4) 들어올린 팔을 내리고 다른 쪽 팔을 들어올리면서 교대로 반복한다.
5) 호흡은 자연스럽게 한다.
3. 몸통굽혀 들어올리기(승모근, 상완, 삼두근)
1) 발과 어깨 너비 2배 정도 벌리고 몸통을 거의 바닥과 평행하게 구부린다.
2) 무릎과 팔꿈치는 약간 구부린다.
3) 팔은 바닥 쪽을 향하고 손바닥 면은 서로 마주보게 한다.
4) 아령을 든 양손을 동시에 바깥쪽으로 어깨 높이 만큼 들어올린다.
5) 처음의 위치로 돌아와서 반복한다.
6) 호흡은 자연스럽게 한다.
4. 수직으로 끌어올리기(어깨, 목, 승모근)
1) 발을 어깨 너비로 벌리고 서서 아령을 든 손을 허벅지 앞에 모은다.
2) 손바닥 면은 허벅지를 향하게 모은다.
3) 양손의 아령을 가까이 모은다.
5. 팔꿈치 붙이고 당기기(상완 이두근)
1) 양발은 어깨 너비로 벌리고 서서 아령을 든 손을 자연스럽게 몸통 옆에 붙인다.
2) 손바닥 면이 앞쪽(정면)을 향하게 한다.
3) 팔꿈치를 옆구리에 붙이고 양손을 동시에 위로 들어 올린다.
4) 처음의 위치로 돌아와 반복한다.
5) 호흡은 자연스럽게 한다.
6) 한 손씩 교대로 들어올리는 방법도 실시한다.
6. 팔 뒤로 뻗치기(상완 삼두근)
1) 운동하는 팔의 반대쪽 발을 한 발 앞쪽으로 내딛고 손을 무릎에 올린다.
2) 운동하는 쪽 팔의 팔꿈치를 구부려 몸통 뒤로 뺀다.
3) 팔꿈치는 고정시키고 팔을 뒤쪽으로 완전히 편다.
4) 팔을 처음의 위치로 올 때까지 구부리고 반복한다.
5) 한쪽 팔의 운동이 끝나면 다른 족 팔로 교대해서 실시한다.
6) 호흡은 자연스럽게 한다.
아령운동 7.
① 아령을 든 양손을 자연스럽게 양옆으로 내린다.
② 양발 사이의 간격은 약간 떨어뜨린다.
③ 양발의 뒤꿈치를 동시에 힘껏 들어올린다.
④ 발꿈치를 내리고 반복한다.
⑤ 호흡은 자연스럽게 한다.
아령운동 8.
① 운동하는 팔로 아령을 들고 뒤쪽(등쪽)으로 올린다.
② 운동하지 않는 팔로 운동하는 팔의 팔꿈치 밑을 자연스럽게 받쳐 잡는다.
③ 아령을 든 손을 앞쪽(정면)을 향해서 뻗쳐 올린다.
④ 처음의 자세까지 다시 구부리고 반복한다.
⑤ 한쪽 팔의 운동이 끝나면 팔로 교대해서 실시한다.
⑥ 호흡은 자연스럽게 한다.
⑦ 양팔을 동시에 잡고 위로 뻗치기를 실시한다.
아령운동 9.
① 어깨 너비로 다리를 벌리고 서서 아령을 든 손을 자연스럽게 옆으로 내린다.
② 한쪽 발을 앞으로 내딛는다.
③ 양쪽 무릎을 자연스럽게 구부리며 아령을 든 손은 양옆에 유지시킨다.
④ 구부린 무릎을 다시 펴고 반복한다.
⑤ 호흡은 자연스럽게 한다.
⑥ 발을 바꾸어 실시한다.
아령운동 10.

① 무릎을 구부린 채로 눕는다.
② 아령을 든 양손을 가슴의 중앙 위에 손바닥 면이 마주 보이도록 모은다.
③ 팔꿈치는 약간 구부린다.
④ 아령을 든 양손을 동시에 위쪽(머리쪽)을 향해 올린다.
⑤ 팔꿈치의 구부림은 유지한다.
⑥ 처음의 자세로 돌어와 반복한다.
⑦ 호흡은 자연스럽게 한다.
아령운동 11.

① 무릎을 구부린 채로 눕는다.
② 아령을 든 양팔을 몸과 직각이 되도록 옆으로 벌린다.
③ 아령을 든 양손이 가슴 위쪽의 중앙에 모이도록 동시에 올린다.
④ 처음의 위치로 양팔을 벌리고 반복한다.
⑤ 호흡은 자연스럽게 한다.
출처 : http://tong.nate.com/kj75mom/726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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