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인터뷰] “육아 문제에 관한 한 운동권을 신뢰하지 않는다”

조수빈 기자 
“참세상 조수빈입니다. 그간 블로그에 쓰신 ‘육아일기’로 책 내신다해서요. 인터뷰를 했으면 합니다. 이번 주 안이면 좋겠는데...”
“음..... 제가 한 시간 있다가 다시 연락드려도 되겠어요?”
“예, 그러시죠”

하필 점심시간도 가까워오고 해서 “2시쯤 내가(기자가) 다시 연락하겠다” 하고 끊고 났더니, 강상구에게서 약속한 시간에 못 미친 1시쯤 연락이 왔다. 이야기즉슨 “오늘 저녁 6시에 자기 집에서 인터뷰를 하자”는 것. 준비치 못한 채 온 연락인데다 당장 인터뷰를 잡자는 요청까지 겹쳤지만 외마디 ‘윽’ 소리도 못하고서 전화를 끊었더니 가슴에 응어리가 남은 듯 한참 후에야 ‘집에서?’, ‘오늘?’ 이라는 억울함(?)이 몰려왔다 이후 생각해보니 그 요청에 당연한 듯 담담하게 대답하고 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한참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풋풋하다.

다시 돌아와서, 사실 ‘당장 보자’는 것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집에서 보자’는 것이었다. 그 심심한 걱정이라는 것은 기자로서 라기 보다 인간적인 면모(?)에서 드러나는 것 이었다. 갑작스런 초여름 날씨 축축한 땀이 싫어 신고 나온 슬리퍼형 신발 속에 꼭꼭 매어진 ‘맨발’이 문제였다. ‘윽 맨발이라니...’ 내려다본 맨발이 그날따라 어찌나 꼬질꼬질해 보이던지, 센스 있게 매니큐어라도 칠할 걸 하는 뒤늦은 후회를 뒤로 하며 가기 전에 ‘발이라도 닦고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더랬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강상구와 미루 사진이 보인다.

사적 공동체를 자신의 배경으로 삼는 남성에 대한 낯설음이..

대방역 공군회관 앞, 강상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간이 5시20분, 6시에서 약속시간을 30분 당겼던 터 이른 시간은 아니었다. 도보로 15분 거리의 아파트라고 안내한 강상구는 “걸어오는 길이 생각보다 기니 산책한다 생각하고 천천히 걸어오란”다. 습관적으로 적당한 시간을 벌기 위한 멘트라고 생각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남모르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걷는 길이 강상구 말대로 생각보다 괜찮기도 했지만, 사적 공간으로의 진입이 수월치 않은 공적 관계를 맺어온 경험으로 봤을 때, ‘남성’이 자신의 사적영역을 공적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년의 사회경험으로 봤을 때, 가부장제를 비판하던 그들이 집 안으로 들어가서는 잔존된 가부장성을 드러내거나(가정 자체의 가부장성은 차치하고라도) 회의석상에서의 소통을 전부로 아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적감정(오히려 더 정치적인)을 은폐하기 바쁘거나, 사적영역에 대한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공사분리를 부정하지 않지만.

그러나 이 남자, 겁도 없이(?) 너무도 선뜻 사적 공동체를 자신의 배경으로 삼겠다고 나선 것이다. 갑자기 ‘맨발’을 보여주기 싫었던 심리도 습관적으로 몸에 밴 사적영역에 대한 일종의 거부반응은 아니었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겹쳤다.

강상구는 할 이야기가 아주 많아 보였다!

‘J아파트 1402호’, 버스를 갈아타면서 정신없이 들었던 주소를 더듬어 기억에 가장 근접한 호수를 떠올렸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14층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안도에 웃음이 번졌다. ‘아기가 자고 있어요. 벨을 누르지 마시고 꼭 문을 두드려주세요’라고 문 앞에 붙여진 종이가 가장 먼저 기자를 반겼던 것. ‘문을’과 ‘두드려주세요’ 사이에 첨부표시로 붙여진 ‘살짝’이라는 단어가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문 안쪽으로 인기척은 충분히 전달되면서 아이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힘조절에 공을 들였다.

“들어오세요” 문 안쪽에서 들려온 것은 맞는데, 강상구가 아니었기에 다시 한번 문을 두들겼는데 또 그 목소리, 문을 열고 들어가니 주현숙이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강상구 역시 “어서오세요”라고 반긴다. 그는 목욕탕에서 17개월 된 아들, 미루와 씨름 중이었다. 등만 보인 채 강상구는 “누가 왔어? 왜 궁금해?”라며 미루와의 대화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처음 보았을 때 강상구는 미루를 씻기느라 욕실에 있었다. 미루는 낯선 사람의 등장에 관심을 보였다.

그 이후로도 강상구는 사실상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기자 또한 제대로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강상구는 주어진 1시간 동안 미루 옷을 입히고, 잠시 놀아주고, 밥 먹이는 데 소요했고, 기자는 처음 보는 노트북을 거칠게 만지려는 미루의 손을 조심히 밀어내느라 애를 먹어야 했지만, 대체로 강상구는 할 이야기가 아주 많아 보였다. 심지어 강상구는 저녁밥이 부족해 햇반을 사온다면서도 주현숙를 대타로 세워놓는 치밀함도 보였다.

“여성이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은 인권침해”

강상구는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알아서 말을 이어갔는데, 그의 말은 호소력이 짙고 하소연(?)에 가까웠다. 그는 최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며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 그에게 “편집위원 중에 자고 일어나면 아이가 죽어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육아 스트레스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고 이해한다는 제스처를 보였더니 그는 사회가 모성을 강요하며 책임지려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강상구가 “극단적인 생각하다가 (여성이 자신의 아이를) 한 달에 한 명 꼴로 진짜 죽인다는고 한다. 인터넷 검색하다보면 애가 너무 많이 울어서 버렸다, 던졌다, 목을 졸랐다는 등의 사례 본다. 나 역시 애기 던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회가 방치하는 것”이라고 말하자 주현숙이 “아이를 보는 시간이 늑대의 시간에 가깝다”고 거든다.

“애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든지 몰랐어요.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며 힘든 것이 은폐되어 있는 일이죠. 애 이쁘니깐 뭐 이런 감정에 넘어가서 또 낳는데, 절대 둘째는 없어요. 절대 안 낳을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힘들게 키웠던 것 잊고 애 커가는 거 보면서 이뻐서 또 낳는다고 하는데, 저희는 블로그 글 써놓은 것도 있고 글 보면서 둘째는 절대 낳지 않을 겁니다”

강상구는 미루 밥 먹이는 일을 육아의 어려운 3가지 중 한 가지로 꼽았다. 보기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강상구는 육아노동에 대해 끊임없이 몸으로 말로 설명했다. 맘 먹고 오해할라 치면 6월 출간하게 될 강상구의 육아일기는 ‘절대 애를 낳지 마시오’라는 이야기로 오인 받기 적당해보였다. 그러나 사실 그의 책은 사적영역으로 몰아져 여성에게만 전가된 ‘육아’의 사회화를 고민하는 내용에 더 가깝다.

강상구는 “여자 혼자 키우는 것은 인권침해”라며 “전국의 가정집에 갇혀서 신음하고 있는 엄마들이 자기애들을 다 맡길 수 있도록 인프라가 구축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육아 전에는 머리로 이해하던 것을 이제는 가슴으로 흥분한다”

육아를 경험한 남성에게서 기대되는 것은 여성주의에 대한 고민이다. 강상구에게서도 그러한 고민이 엿보인다. 사온 햇반을 기자의 얼굴에 들이밀며 “엄마의 정성으로 만든”이라는 광고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대거나 어떻게 기회를 만든 “외식자리에서 다른 테이블에 한 여성이 혼자 밥도 못 먹고 아이 밥 먹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화가 치민다”는 그의 말에서 그 흔적을 읽을 수 있다. 강상구는 일상에서 은폐되어 있는 폭력을 하나씩 발견하고 있는 중이었다.

“여성문제에 있어서 전투적이 되었다. 노골적이다. 앞으로 당에 가서는 싸울 것이다. 어떤 남자가 나보다 더 많이 알겠는가. 저에게는 블로그는 기록과 기억의 의미가 동시에 있다. 사람들과 싸울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과 함께 그 시간을 기억을 할 수 있다. 눈이 날카로워졌다”

이런 강상구에 대해 주현숙은 “(여성문제에 있어)육아 전에는 머리로 이해하던 것을 이제는 가슴으로 흥분한다”고 말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운동권을 신뢰하지 않는다”라는 고백

육아는 휴직 여부와 관계없지만, 6월 1일부터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하는 강상구는 육아를 운동으로 확대하는 중이다. 책출판도 그런 의미이지만, 육아휴직 전에 자신이 일하고 있던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논란이 많았던 만큼 이후 가사분담을 위한 6시간 칼퇴근 쟁취투쟁과 함께 여성주의에 대한 고민도 가져갈 각오를 보였다.

인터뷰 내내 미루는 노트북에 관심을 보였다. 강상구는 미루의 시선을 노래가 나오는 장난감으로 끌기 위해 애썼다.

“민주노동당이라면 진보적 성향이 강하다고 하는데, 똑같다. 이 문제(여성주의)에 관한 한 운동권을 신뢰하지 않는다. 좌파와 민족주의자 모두 똑같다. 민족주의자는 원래 무개념이고, 이들은 심지어 애기엄마 만나서 설득하겠다고도 했다. 좌파도 똑같다. 당외부라고 다르지 않다. 당 밖에 사회단체에도 운영위원으로 있는데 그 단체에서도 일 많이 할 수 있겠다는 반응이었다. 제도적으로 할 수 있고 막지는 못할 뿐이었다.

육아휴직한다고 했을 때, 0.1초내에 참 잘했다고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브르주아적 반응이 곧바로 나왔다. 육아문제를 포함한 여성주의적 내면화 말뿐이다. 육아휴직 전에 사무실(당) 사람 100명 중 98명은 하지마라였다. 가봐야 할 일 없다, 남자가 있어봐야 도움이 안된다, 육아휴직 이후 뭐 할거냐, 바쁠 때 해야겠냐 라는 질문 많이 받았다. 그러나 밀어붙였다. 토론의 문제가 아니었고, 진지하게 얘기하지 않았다. 토론하기 너무 힘들었다”

강상구는 육아휴직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육아휴직의 계기를 묻는 기자에게 강상구는 “다음부터 육아휴직을 하지 않는 남성에게 왜 육아휴직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물으라”고 반응했다. 앞서도 육아를 여성이 혼자 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주장했으니, 사회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다면 육아는 부모가 동등한 책임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는 말이다. 강상구는 “자신의 운동성에 따라 생활도 조직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집에 가서 남편이랑 싸웠으면 좋겠다”

“육아휴직 동안 블로그에 매일 하루에 한 개씩 글을 쓰려고 했는데, 끝날 무렵 보니 300개 정도 썼더라. 이번 책에는 그 중에서 100개를 뽑아 담았다. 블로그에 쓸 때, 몇 가지 방향이 있었는데, 미루 커가는 모습과 커가는 과정에서의 아기의 변화과정, 미루를 키우면서 힘들고 어려운 점들 등이었다. 또 애 키우는 것과 별도로 가사노동을 분담하면서 예전에 몰랐던 변화, 정체성의 변화들을 담았다. 또 애를 키우면서 느끼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 사회에 나갔을 때 불편한 점, 얘를 키우는데 사회적 불편하다고 느끼는 점을 중심으로 썼다. 이번 책은 그 중에 미루 커가는 모습을 중심으로 하는 것으로 글을 골랐다. 그 내용에는 육아의 어려움이나, 가사를 분담하게 된 경험들이 들어가 있다”

강상구는 이번 책을 남성들도 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대신 여성들이 집에 가서 부부싸움하고 사회를 향해 싸워 쟁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어떤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았지만 모성이데올로기에서의 자유와 일상의 폭력에 대한 저항을 의미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리하여 불온한 상구씨, 이 책이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제도가 갖춰줘야 하지만 그렇다고 다 되는 일이 아닌 이데올로기가 바뀌지 않으면 안되는” 육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싸움의 하나라는 것이다.

강상구, 주현숙에게 마지막으로 육아에 대한 철학을 물었다. 부모의 자녀교육관 중 부정적 표현으로 쓰이는 ‘치맛바람’이 모성이데올로기로 부터 기인한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에 계몽적인(?) 대답을 기대하고 던져본 질문이었다. 역시 이들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기는 소유물이 아니다. 쉽게 소유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길게 왔다가는 손님이라고 생각한다. 갈 때까는 잘 보살피는 거다. 나중에는 우리가 독립해야 한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컸음 좋겠다. 어떻게 널 힘들게 키웠는데 이런 말 하지 말자고 서로를 다독인다. 애들은 절대 모르고 알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미루가 너무 움직여 여러번 사진을 찍어야 했지만, 물론 수전증도 문제이지만, 결국 깨끗한 사진을 얻기는 실패.

길게 왔다간다지만 손님 치고 두 사람에게 육아의 무게는 퍽 무거워 보였다. 물론 미루는 기자가 보기에도 이쁜 아기였지만. 6월 7일 발간을 앞둔 그의 책이 육아의 사회화를 요구하는 여성, 활동가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는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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