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릴케 현상 > 하바드의 교양과정 개편안 -정남영

하바드의 교양과정 개편안

한국의 대학들에서는 표면상으로는 교양교육의 확대나 강화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교양교육을 망치는 사례가 허다하다. 내가 있는 곳에서도 사태는 마찬가지이다. 이러던 차 바다 건너 하바드에서 교양과정 개편안을 발표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래서 좀 참조해보기 위해 하바드의 홈피에 들어가 교양교육연구팀 최종보고서(Final Report of the General Education Task Force)를 다운받아 읽어보았다. (아래를 보면 알겠지만 안타깝게도 실용교육에 치중하는 한국 대학가의 실정을 감안할 때 이것을 '많이' 참조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좀' 참조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새 교양과정(Core Curriculum)은 70년대 후반에 도입된 것을 대체하는 것으로서 (그럼 약 30년만에 개편하는 것이다) '21세기의 조건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한다.

보고서는 우선 Harvard College(하바드의 4년제 학사학위과정)의 교육을 'liberal education'으로 규정짓는다.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교양교육(General Education)은 이 'liberal education'의 공적 얼굴(the public face)로서, 학생들이 대학에서 배우는 모든 것이 학생들 자신의 삶 및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대면하게 되는 세계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이해하는 장소라고 한다.

(* 'liberal education'은 사실 우리말로 번역하기 힘드니 그냥 영어로 쓰기로 한다. 이것이 어떤 것인지는 아래에 나와있다.)

Harvard College에서 교육은 크게 세 범주로 나뉜다. (다른 대학들도 다르지 않다.)
① concentration : 전공 공부
② electives : 전공과 교양 이외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우리로 하면 ‘일반선택’? 그러나 일대일 대응은 불가능하다.)
③ general education : 교양교육

제안되는 교양과정의 목표들은 다음과 같다.
① 공적인 사회적 삶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준비시킨다.
②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예술, 사상, 가치들의 전통의 산물이자 그 전통에의 참여자로 이해하도록 가르친다.
③ 변화에 비판적이고 건설적으로 대응하도록 준비시킨다.
④ 자신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갖는 윤리적 차원을 이해하는 능력을 계발시킨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정작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아래의 대목이다. 이 대목은 현재 한국의 대학들을 사로잡고 있는 실용주의 풍토와는 정말로 상반되는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한국의 대학에 둥지를 틀고 있는 신자유주의자들은 혹시 이 대목을 보고 이 개편안을 낸 사람들이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이거나 아니면 대학에 침투한 '좌파'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들이 정말 바보이고 좌파일까? (영어를 그냥 노출한 부분에 대해서는 양해를 바란다. 전문직업학교란 의대, 법대, 경영대 등을 말한다.)
Liberal Education은 유용하다. 이는 그 목적이 전문직업을 위해 학생들을 훈련시키는 것이거나 아니면 졸업 후의 삶의 지침을 제공하는 것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에게 익숙한 세계가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라는 전제를 부추김으로써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주입하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Liberal Education의 목적은 전제를 뒤흔드는 것이고 익숙한 것을 낮설게하는 것이며 현상의 아래와 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고 젊은이들로 하여금 이미 정해진 방향을 잃게 하여 스스로를 재정향하는 방법을 찾도록 돕는 것이다. Liberal Education은 기존의 전제들에 물음을 던짐으로써, 자기성찰을 유도함으로써, 학생들에게 비판적이고 분석적으로 사유하는 것을 가르침으로써, 완전히 다른 역사적 순간들 및 문화적 형성체들과 만나고 자신들이 (심지어는 가르치는 선생들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과 만나는 데서 산출되는 소외감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이 목적을 이룬다. Liberal Education은 지극히 중요하다. 전문직업학교들에서는 이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고 고용주들도 이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며 가장 학술적인 대학원 프로그램들도 이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 학교들은 학생들의 자유로운 탐구정신을 박탈한다(deliberalize). 이 학교들은 학생들로 하여금 전문직업인으로서 사유하도록 훈련시킨다. ‘liberal arts’와 과학분야에서 공부를 하는 것은, 경력이나 전문직업의 경로들 외부에서 비판적이고 성찰적으로 사유를 하는 능력을 양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Liberal Education이 제공하는 역사적, 이론적, 합리적 관점들은 학생들에게 남은 생애 동안 유익하게 쓰일, 계발과 힘의 양성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liberal learning’의 바로 이러한 측면을 염두에 두면서― 졸업 후 학생들이 영위하게 될 삶에 미치는 그 영향력을 염두에 두면서 ― 다음의 교양교육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from Report of the Task Force on General Education, Harvard University (2007. 2. 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