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데 술은 먹기 싫은 날. 뭐 대충 늘어지고 부대끼는 그런 날.
나는 서가에서 [수학의 정석]을 꺼내 아무 페이지나 펼쳐
유제 몇 개를 풀어보곤 한다.
더 흥이 나는 날에는 스튜어트 미분적분학 교과서를 펴들고
숫자와 기호들의 한 판 난장을 구경하거나
몇 줄 끼어들곤 한다.
나이들어서 수학공부를 좀 했다. 일종의 지적 한량짓이다.
그 긴딘힌 약사는 이렇다.
http://blog.aladin.co.kr/alkez/4771445
나는 고전 수학의 가치 중립성이나 합의된 규범과 정리(定理)를 좋아한다.
엄격히 말하면 인간의 선험적 편견이 배제된
어떤 진공적 영역에 대한 호기심이다.
이종필 박사의 이 책의 원형이 몇년전 한겨레 온라인에
연재됐을 때 열렬한 독자였다.
하지만 먹고 살기 바빠 중도에 연재를 놓쳤었다.
그래도 수학 바보들과 newbie들이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의 '유도식'을 이해하고 편미분 방정식을 제 손으로
풀어보기 위해 모인다는 이야기는 근사했다.
이렇게 책으로 묶여 나와 다시 보니 새롭다.
재미있다.
읽을거리에 더 이상의 상찬이 필요할까.
우리가 수학의 언어와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볼 때 얻게되는
가장 큰 이점은 숫자 그 너머의 어떤 진리,
텍스트로 분칠되거나 역관계로 왜곡되지 않은
어떤 질서, 리듬, 규칙 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바보들이 회중으로 모여 아인슈타인을 공구하는
이 이야기에도 그 진리가 녹아있다.
E=MC2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
편미분 방정식의 세계로 원정 떠나는
장삼이사들의 무용담....
고교 레벨에서 충분히 따라 갈만하다. (정상적으로 수학공부를 했다면 :(
이 책 하나로 상대성 이론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문 하나 쯤은 연 셈이다.
편미분방정식의 아름다움, 아니 사물의 질서, 시간의 영원성를 바라보는
어떤 관점 하나를 얻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무엇보다 우리가 배웠던 수학이 우리 삶에서 어떻게
빛나는 잣대와 나침반으로 쓰이는지를 깨닫는 일이 큰 공부일지도.
일독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