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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 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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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터니 호로비츠의 <셜록 홈즈-모리어티의 죽음>에는 두 가지의 텍스트 트릭이 있습니다. 하나는 작가가 의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와 상관없이) 출판사인 황금가지가 의도한 것이죠. 작가가 의도한 트릭을 밝히는 것은 엄청난 스포일러가 될테니 그만두죠. 사실상 이 소설에서 그 트릭은 80% 이상에 가까우니까요. 하지만 추리물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정확하게는 아니라도, 대충 그 트릭의 모양새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텍스트 트릭이라는 것 자체가 활용도가 그리 높지 않으니까요. 더군다나 이 분야에는 너무나도 엄청나고 유명한 레퍼런스가 있지 않습니까.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 소설 말입니다. 텍스트 트릭하면 떠오르는 작품들이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 소설과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 정도일텐데, 앤터니 호로비츠가 <살육에 이르는 병>을 읽어봤을 리는 없을 것 같고, 애거서 크리스티를 참조한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별 상관 없지만, 개인적으로 텍스트 트릭을 사용한 작품 중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를 좋아합니다. 어쨌든 저는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몇 가지 지침(?)들을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낯선 화자를 조심하라. 홈즈의 이야기를 왓슨이 기록하지 않거나, 포와로의 이야기를 헤이스팅즈가 기록하지 않았다면,그 기록자를 100퍼센트 신뢰해선 안 되는 것이죠. 작가가 쓸데없이 새로운 기록자를 만들어 내진 않았을테니까요. 새로운 기록자가 나타났다면 텍스트 트릭을 의심해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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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적으로 클래식한 수수께끼 풀이형 추리소설의 임무는 작가와 독자가 두뇌싸움을 벌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작가와 독자에게 공평하게 정보가 제공되어야 하죠. 독자가 보지 못한 증거나 단서를 갑자기 탐정이 들고 나와서 사건을 해결해 버리면, 독자는 작가에게 속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가는 독자가 눈치채지 못하는 하찮은 사실인 것처럼 중요한 단서들을 흩뿌려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텍스트 트릭은 이러한 경향을 극대화 한 것이죠. 작가는 서술과 텍스트를 통해 독자를 속입니다. 추리물을 읽는 독자 중에 모든 문장을 곰씹어 넘기는 독자는 확실히 드물죠. 그러므로 작가는 애매모호한 문장들을 통해 독자를 속이려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경우, 작가는 신경써서 공정한 게임을 하려 했지만, 황금가지가 그 위에 텍스트 트릭을 한 번 더 덮어씌움으로써 그런 노력이 상당부분 희석됩니다.


  앤터니 호로비츠가 지은 원래 타이틀은  'Moriarty'입니다. 여기엔 다른 어떤 트릭도 없을 뿐더러, 중요한 단서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황금가지에서 출판한 번역제는 <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입니다. 이건 명백한 트릭이죠. 왜 이 제목이 트릭이 될까요?


 그것은  이 소설에는 셜록 홈즈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목은 또 한 가지 거짓말을 감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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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물론 사전적인 의미로 셜록 홈즈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셜록 홈즈는 주 등장인물들의 대화에서 여러 번 언급되며, 에필로그로 덧붙여진 사건에서 잠깐 무대의 주인공이 됩니다. 하지만 작품의 메인 스토리에서는 (그로 의심되는 인물만 맥거핀으로 등장할 뿐) 그가 등장하진 않습니다. 저는 작품을 읽는 내내 어딘가에서 홈즈가 "사실은 내가 셜록 홈즈였어!"라고 등장할 것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그런 순간은 오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독서 경험이 즐겁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기대가 깨지는 그 순간도 나쁘진 않았습니다. (추리 소설을 읽는 대부분의 즐거운 경험은 독자가 작가에게 한 방 먹었다, 라고 생각하는 그때 오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출판사의 명백한 의도가 보이는 잘못된 제목짓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다지 기분 좋은 일로 받아들이긴 힘들지요.


  물론 이해는 갑니다. 이 책에 '셜록 홈즈'라는 타이틀이 떨어지는 순간, 판매량은 급감하겠죠. 홈즈 컨텐츠의 라이트한 소비자들도 모리어티라는 이름은 들어봤겠지만, 제목에 단지 '모리어티' 네 글자만 박혀 있다면 큰 매력을 느끼기는 힘들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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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셜로키언들은 코난 도일이 남긴 단편 56편, 장편 4편을 가리켜 정전(正典)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예수의 흔적을 기록한 성경 역시 저마다의 기록에 오류와 기록의 상충되는 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코난 도일이 남긴 정전 역시 마찬가지죠. 앤터니 호로비츠의 <모리어티>는 바로 정전 상의 미심쩍은 부분들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 소설입니다. 또한 정전이 셜록 홈즈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의 역할을 한다면, 이 소설은 그러한 홈즈가 사라진 세상에서 창궐하는 범죄를 막기 위해 홈즈의 추종자들이 어떻게 그의 가르침을 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사도행전'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홈즈는 부활하여 다시 세상에 재림하죠)


  라이헨바흐에서 실제로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가, 에 대한 문제는 실제로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왓슨의 기록이 말이 안 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죠. 이를테면 왓슨이 모리어티의 수하에게 속아서 홈즈를 폭포에 놔두고 돌아갔을 때 왓슨은 폭포에서 내려오는 데 한 시간, 올라가는 데 두 시간이 걸렸다고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칼 베데커의 <이탈리아, 사보이, 티롤 인접 지역과 스위스: 여행안내서>에 따르면 라이헨바흐 호텔에서 아래쪽 폭포까지는 15분, 위쪽 폭포까지는 45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홈즈가 그 시간에 '어두워져 가는 하늘'을 보았다고 말한 부분은 더 큰 문제입니다. 왓슨이 왕복에 3시간이나 걸렸다면 이미 시간은 밤 10시를 훌쩍 넘어있었을 것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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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터니 호로비츠는 정전에서 보이는 이런 헛점들을 가지고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모리어티라는 대악당이 지배하는 영국의 범죄세계와 그에 침입한 클래런스 데버루라는 인물의 대결로 이루어진 흥미진진한 이야기죠. 조지 오웰은 <영국식 살인의 몰락 Decline of the English Murfder>라는 에세이를 통해, 동기와 이유를 가지고 저지르는 '나름의 명분이 있는' 영국식 살인보다 최근의 범죄는 더 잔인하고 무차별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 소설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도 마찬가지죠. 클래런스 데버루는 나름대로 모리어티가 세우고 있는 범죄 세계의 철칙들을 모두 다 깨버리고, 오직 돈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탐욕스런 미국의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 쿨럭, 죄송 - 가 아니라 범죄의 모습을 런던에 끌고 옵니다. (그러나 나 책을 다 읽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리어티 잔당 쪽이 훨씬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고 다녔다는 생각이 들죠) 그래서 이 소설은 기존의 홈즈 소설에 비해 훨씬 잔인한 묘사가 많습니다. 홈즈 소설 역시 잘린 귀 등의 신체 훼손이 등장하고, 여러 종류의 살인을 다루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렇게 역동적인 문장들로 묘사하진 않죠. 적어도 앤터니 호로비츠의 잔인한 장면 묘사는 영국식(?) 보다는 미국식(?)에 가깝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작품의 화자가 미국인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건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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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셜로키언이 되기엔 믿음이 좀 부족하지만 나름 셜록 홈즈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앤터니 호로비츠의 모리어티에 대한 가설은 꽤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읽는 시간도 꽤 빨랐구요. 셜록 홈즈만큼이나 모리어티에 대한 학설도 꽤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이를테면 크리스 콜럼버스가 각본을 쓰고 배리 레빈슨이 연출한 - 우리에게는 <피라미드의 공포>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 <젊은 셜록 홈즈 Young Sherlock Holmes> 란 영화에선 모리어티의 기원을 또 재밌는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방영되고 있는 <엘리멘터리 Elementary>란 미드는 모리어티를 아이린 애들러와 동일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죠. 앨런 무어의 <젠틀맨 리그 The League of Extraordinary Gentlemen>엔 셜록 홈즈는 등장하지 않지만, 모리어티는 등장합니다. 그러고 보니 모리어티는 단순히 '셜록 홈즈의 숙적'으로 불리고 있을 뿐, 별로 알려져 있는 것이 많지 않은데, 그렇게 묻혀있기에는 아쉬운 인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대학교수이면서 타고난 지능을 이용해 영국 전역의 범죄를 지휘하는 인물이라면 홈즈만큼이나 매력적인 인물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죠. 하지만 우리가 그에 대해서 들을 수 있는 정보는 모두 셜록 홈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제한적인 것들 뿐입니다. 셜록 홈즈는 물론 탐정으로서는 세계 최고입니다만, 결코 남에 대해서 편견없이 공정하게 말하는 인물이라고 보긴 어렵죠. 특히 모리어티에 대해서는요.


  아마 앤터니 호로비츠가 해낸 이번의 작업도 거기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호로비츠는 셜록 홈즈에 의해 폄훼되어 왔던 모리어티를 끄집어 내서 매력적인 악당의 자리로 끌어올리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단순히 생각해 보건대, 그가 왓슨과 홈즈가 말하는 대로 악하기만 한, 실수투성이의 악당이라면 홈즈의 호적수가 될 정도로 큰 인물이 되지도 못했을 겁니다. 호로비츠는 그래서 모리어티에게 그에 알맞은 캐릭터를 다시 부여하는 작업을 수행했고, 제목에서 홈즈를 지우고 그의 이름만을 남겨 놓았습니다. 근데 황금가지는 거기에 다시 셜록 홈즈의 이름을 크게 붙이고, 그의 이름을 작게 만들었죠. 그래서 우리가 읽는 표지에는 지금 이렇게 인쇄되어 있습니다.


셜록 홈즈-모리어티의 죽음. 


ps. 이 리뷰는 황금가지의 사전서평단에 선정되어 가제본된 책을 미리 제공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호의적인 리뷰를 작성하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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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오프 밀리언셀러 클럽 139
데이비드 발다치 엮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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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친구와 함께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현세 만화에 등장하는 오혜성, 설까치, 마동탁, 백두산과 이상무 만화에 등장하는 독고탁, 김준 등이 같은 해 드래프트에 등장한다면 과연 누굴 먼저 지명할 것인가. 독고탁이 던진 드라이브볼을 마동탁은 칠 수 있을 것인가. 
  따지고 보면, 너댓 살부터 남자아이들은 태권 브이와 마징가 제트가 싸우면 누가 이길지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열 살 쯤 되면 <소년중앙> 같은 잡지에서 에어울프와 키트가 대결하면 어떻게 될까 다룬 기사를 읽어보죠. 조금 더 머리가 크면 추리소설을 읽고,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이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 하죠. 심지어 모리스 르블랑은 셜록 홈즈를 자신의 작품으로 끌고 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정한 게임은 아니었죠. 전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명탐정 셜록 홈즈는 모리스 르블랑이라는 작가의 농간에 놀아나 아르센 뤼팽에게 농락당하고, 고삐리 이지도르 보트를레만도 못한 추리 실력을 보여줬으니까요.  (물론 르블랑은 셜록 홈즈 Sherlock Holmes를 헐록 솜즈 Herlock Solmes - 혹은 솔메스 - 로 위장하는 꼼수를 쓰기는 했지만요)

  국제 스릴러 작가 협회가 기획하고, 데이비드 발다치가 편집을 맡은 <페이스 오프>는, 모리스 르블랑의 꼼수와는 달리 스릴러 작가들의 자발적이고 충성스런 움직임 끝에 나온 선집選集입니다. 데니스 루헤인이나 마이클 코넬리, 제프리 디버와 리 차차일드 같은 작가들이 스스로 자신의 캐릭터를 낯선 다른 작가들의 세계 속으로 보내는 것에 동의했고, 함께 작업을 해서 11편의 단편을 써냈죠. 저마다 내로라 하는 명탐정과 수사관들이 하나의 작품 안에서 크로스오버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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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멋지게 보일 수도 있지만, 얼핏 듣기에도 진입장벽이 만만찮아 보이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추리물이라면 히가시노 게이고 정도를 연상하는 일반적인 한국의 독자들에겐 더욱 그렇죠. 데니스 루헤인이나 마이클 코넬리, 제프리 디버, 리 차일드  정도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익숙할 만 하지만, 나머지 작가의 작품과 캐릭터를 아는 독자들은 그렇게 흔치 않을 겁니다. 평소의 활약상을 잘 모르는 탐정들이 나와서 만나봤자, 그들이 만들어내는 시너지나 케미스트리를 이해하긴는 쉽지 않죠. 즉 이 11편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이해하자면, 최소한 22 작가의 작품과 캐릭터를 익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지만, 짧은 단편에서, 그것도 만만찮은 유명세의 캐릭터와 만나서 그 매력을 발휘하기란 그렇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조금 더 복잡한 또 하나의 문제도 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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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른네스트 만델은 <즐거운 살인- 범죄소설의 사회사 Delightful Murder - A Social History of the Crime Story>라는 책을 통해 범죄 소설을 작가 개인의 영향보다 사회적인 맥락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범죄는 사회를 반영하며 그 범죄를 다루는 범죄 소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범죄가 일어나는 매커니즘을 반영한다는 것이죠. 재밌게도 이 선집의 작가 중 사회파 추리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이러한 만델의 이론에 대한 좋은 케이스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데니스 루헤인이 그렇죠. <가라, 아이야, 가라>의 초반 20페이지는 미국 동부 빈민가의 숨막히는 생활에 대해 끝내주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환경에서 범죄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관계를 보여주죠. 패트릭 켄지는 그런 동부의 생활 속에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탐정입니다.  반면 마이클 코넬리의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미키 할러는 전형적인 LA식 뺀질이 캐릭터입니다. 적당히 불법과 협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요란한 변호사죠. 해리 보슈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역시 LA소속의 형사다운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집의 첫 작품인 <야간비행>에서 패트릭 켄지와 해리 보슈가 나누는 대화는 굉장히 유의미하게 다가옵니다. 

   "내가 만약 LA에 가게 된다면."
  보슈가 그 손을 잡고 흔들었다. 
  "우습군. 당신이 LA에 있는 건 상상이 안 되는데."
  패트릭이 대꾸했다.
  "나도 당신이 LA말고 다른 곳에 있는 건 상상할 수 없어요."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코틀랜드 탐정인 이언 랜킨의 존 레버스와 잉글랜드의 로이 그레이스가 만나는 두 번째 단편 '인 더 닉 오브 타임'도 마찬가지죠.제임스 엘로이는 이언 랜킨을 '타탄 투아르의 왕 the king of tartan noir'라고 불렀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타탄 누아르란 도덕적 모호함을 매력으로 하는 스코틀랜드 문학의 전통을 범죄 소설에 끌고 온 스코틀랜드 특유의 장르입니다. 하지만 로이 그레이스의 경우엔 조금 더 스트레이트한 스타일의 경찰이죠. 그래서 이런 물음이 발생합니다.

  로이 그레이스와 존 레버스는 세대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다.
  그리고 이 둘은 법 집행에 대한 생각도 아주 다르다.
  또 이들 사이에는 800킬로미터란 거리가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 이 두 남자가 어떻게 현실적으로 만나서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있을까?

  조금 더 심한 경우에는 리얼리즘 세계의 인물이 환타지나 호러의 세계로 들어가 헤매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물론 독자들의 경우에는 그 두 세계관에 대해 충분한 학습이 없는 상태에서요. 
  다시 말하지만, 진입장벽이 만만찮은 기획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에 익숙하다면 정말 재밌고 흥미로운 컬래버레이션이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김용 세계관에 완벽하게 통달한 사람에겐 왕가위의 '동사서독'은 어마어마하게 흥미진진한 텍스트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세계에 대해 잘 모르거나, 혹은 일부만 아는 독자들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소리만 중얼거리는 영화에 다름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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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대개 이런 류의 기획은 - 안타깝게도 - 흔한 시쳇말의 확인으로 끝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라는 레토릭 말이죠. <페이스 오프>는 국제 스릴러 작가 협회가 기획한 '소문난 잔치'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작가들이 각자 자신의 소문난 재료들을 들고 온다는 점에서 '소문난 포틀럭 potluck' 에 가깝죠. 작가들은 저마다 자신 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파티장에 왔습니다. 그리고 짝을 지어서 재료들을 섞고 솜씨를 더해 결과물을 테이블에 차려 놓았습니다. 결과는요? 다행히도 '먹을 것 없다'라고 혹평할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일류 주방장들이 일류 재료들을 가지고 만들었으니 맛이 없으면 아무래도 곤란하겠죠. 하지만 파티의 주인은 음식 준비를 모두 참석자들에게 일임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비슷한 요리가 나오기도 하고, 어떤 요리의 경우에는 다소 엉뚱하기도 합니다. 기대하던 것과 많이 다른 모습도 보이고, 주문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돌파한 경우도 있죠. 결과는요? 상다리 부러지게 여러 개의 요리가 올라 있기는 합니다만, 풍성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재료는 다양한데 요리가 다양한 건 아니고, 개인적으로는 독특한 맛을 내는 몇 개의 요리와 맛있는 요리 몇 개를 위주로 집어먹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요리의 시작은 데니스 루헤인과 마이클 코넬리의 <야간비행>입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의 지명도가 높은 두 작가이고,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 데니스 루헤인을 좀 더 - 작가들이라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패트릭 켄지의 동네에 놀러 온 해리 보슈가 아직은 동부의 공기에 적응이 덜 된 느낌이 듭니다. 소품 형식이라 벌어지는 사건은 그닥 흥미가 당기는 것이 아니었고, 가장 재밌는 장면은 역시 패트릭과 해리가 재즈와 CD, mp3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다음 작품인 이언 랜킨과 피터 제임스의 <인 더 닉 오브 타임>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어벤저스2>에서 가장 재밌는 장면은 신나는 액션 씬보다도 캡틴 아메리카, 토르, 아이언맨이 거실에 모여서 망치 가지고 장난 치는 장면이 아니던가요?

  그리고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번역의 문제. 이 작품에서 해리 보슈는 패트릭 켄지에게 반말을 쓰고, 패트릭 켄지는 해리에게 존댓말을 씁니다. 해리가 나이가 많기 때문일까요, 아님 거친 LA의 캐릭터인 해리와 깔끔한 동부 탐정인 패트릭 켄지의 차이 때문일까요? 비슷한 문제가 <대단한 배려>에서도 발생하는데 잭 리처와 닉 헬러는 서로 존대를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리처는 반말을 쓰고 헬러는 존댓말을 씁니다. (아마 중간에 잭이 나이가 많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긴 합니다) 어쨌든 해리와 패트릭의 경우엔 서로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니 상호 존대를 하는 편이 맞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상관없는 이야기인데, 말 나온 김에 번역 얘기 하나 더. 장르 소설 번역본의 경우, 대화가 아닌 지문에도 구어체로 번역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그것은'이라고 번역해야 할 것을, '그거는'이라고 하는 경우) 이것은 혹시 원문이 구어체라서 그것을 살리기 위한 번역일까요, 아니면 그냥 번역가가 문장에 익숙치 않은 탓일까요? (이 책에서도 종종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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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길이 머니까 각 작품별로 포인트를 조금만 살펴 보겠습니다. 이언 랜킨과 피터 제임스의 <인 더 닉 오브 타임>은 재밌는 소품입니다.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레버스 경위와 로이 그레이스가 등장하는 오 헨리의 단편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가스등>은 흔한 호러 설정의 이야기입니다. 80년대 <환상특급>류의 미드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죠. 개인적으로는 두 등장인물 간의 밸런스 조절에 실패한 이야기로 보이는데, 사실상 등장인물들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그리 많아 보이진 않습니다. 그래도 너무 전형적인 스타일로 흘러간 게 좀 아쉽네요.<웃는 부처>는 한국의 독자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이야기로 보입니다. 저도 추리물과 초자연적인 현상을 결합시키거나 혹은 추리물과 포스트모던, 아니면 환타지를 결합시킨 소설(추리물의 적통인 영국 작가들이 요즘 이런 짓을 많이 하더군요. 재스퍼 포드의 <제인 에어 납치사건>이나 더글러스 애덤스의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 사무소> 혹은 재더다이어 베리의 <탐정매뉴얼> 같은 경우)을 몇 개 읽어봤는데 취향에 맞지 않더군요. 개인적으로 추리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닫혀있는 구조와 앞뒤가 완벽하게 짜맞춰지는 느낌이 좋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열린 결말 스릴러'라든지 - 실제로 장윤현 감독의 <텔미썸띵>이 쓴 표현입니다 - 범인이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고 모호하게 끝나는 요즘의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클래식하게 수수께끼가 완벽하게 풀리는 것을 좋아하죠. 물론 <웃는 부처>는 그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추리소설에 초자연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는 거죠. 
  <팬더를 찾아>와 <링컨과 프레이>는 그나마 전통적인 미스테리 소설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특히 제일 맘에 드는 게 <링컨과 프레이>인데요. 정말 전통적인 작법으로 기대한 딱 그만큼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야기가 너무 짧지도 않고, 충분히 복잡한 사건을 구성했으며, 적당한 트릭과 미스테리도 있고, 안락의자 탐정인 링컨 라임과 몸으로 움직이는 루카스 데븐포트가 자신의 역할을 정확하게 분배받아 비슷한 비중으로 활약합니다. 심지어 둘 사이의 갈등도 약간 보여주죠. 작업방식도 정확합니다. 서로 번갈아 쓰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플롯을 만들고 각자가 자신 있는 부분을 쓴 뒤, 합치고 다시 한 번 다듬는 거죠. 
  <지옥의 밤>은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 중에서 조금 후진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입니다. 특히 결말 부분의 권선징악은 너무 진부해서 '설마 이건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딱 맞더군요. <정차>는 스피디한 문장이 돋보입니다만, 솔직히 션 라일리가 등장할 필요가 있는 이야기였나, 싶은 스토리입니다. 배경 설명 없이 딱 본문의 사건만 가지고 흘러가는 드라이한 스타일의 추리소설인데,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명한 등장인물들을 끌어오려면 그들의 개성이 조금 더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심지어 글렌 카버 같은 경우엔 린우드 바클레이의 등장인물 중에 그렇게 중요한 비중의 캐릭터도 아니라고 하더군요. 
  <침묵의 사냥>과 <악마의 뼈>는 쉽게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입니다. 다만 <침묵의 사냥>은 또 한 번 제3세계-서방구원자 시각의 이야기라는 점이 살짝 걸리죠. <악마의 뼈>는 흔한 이야기입니다만, 악당 캐릭터가 귀엽습니다. 거기에 맞서는 두 히어로의 콤비 플레이도 심심하지 않구요. 
  <대단한 배려>는 잭 리처와 닉 헬러가 만나는 이야기답게 하드 보일드한 소품입니다. 딱 에필로그로 쓸 정도의 소소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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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틀럭을 주최할 때는 두 가지 스타일이 있습니다. 하나는 손님들에게 자유롭게 자신들의 요리를 들고 오게 하는 것입니다. 주최자는 손님을 정해서 초대하고 희미한 아웃라인만 정해줄 뿐 구체적으로 그들의 요리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페이스 오프>는 이 경우에 속합니다. 손님들은 자신이 만나서 자유롭게 작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작품의 편차가 좀 있고, 겹치는 요리도 좀 있고, 재료들이 불균질하게 섞인 경우도 좀 생기게 된 것이죠. 뭐 그래도 즐길 수 있다면 상관없겠습니다만.
  다른 방법은 주최자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프로듀싱하거나 어레인지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짝만 맞춰줄 것이 아니라 작업방식이나 장르, 플롯 등에 참견하는 것이죠. 이것보다 좀 더 참신한 이야기로, 가능하면 두 주인공의 비중이 비슷하도록, 반드시 하나 이상의 미스터리가 등장하고, 하나 이상의 트릭이 있는 이야기를 쓸 것, 두 주인공이 직간접적으로 갈등하는 장면을 넣을 것 등등. 작업하는 것에 조금 더 많은 룰과 제약을 걸었다면 어땠을까요. 
  <페이스 오프>란 제목은 하키가 시작할 때 자세를 말하며, '시합개시' '대결'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알고 있습니다. 두 주인공의 '대결'을 위해서는 운동장만 마련해주고 마음껏 뛰어노는 방식보다는 조금은 그에 걸맞은 룰을 주는 것이 어땠을까요. 쉽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은 듭니다. 어쨌든 유명한 작가들에게 작품을 기부 받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띠지의 표현처럼 이것이 소문만큼 엄청나고 대단한 구경거리라는 생각은 그렇게 들지 않네요. 

ps. 본 리뷰는 도서출판 황금가지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 받아 작성 되었습니다만, 읽어보셨다시피 할 얘기를 못 한다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pps. 위의 ps.는 제가 블로그들을 다니면서 저런 문구를 볼 때마다 '나도 한 번 저런 걸 써보고 싶다'라는 생각 때문에 쓴 것 뿐이지, 강제 의무사항은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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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D현경 시리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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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판 <하얀 거탑>. 에드 맥베인이 경찰의 수사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경찰소설 리얼리즘을 마련했다면, 요코야마 히데오의 <64>는 경찰 내부의 조직과 정치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새로운 경찰소설 리얼리즘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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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D현경 시리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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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꾸준히 사고, 또 읽는 사람이라면 대충 깨닫고 있을 것이다. 책의 띠지나 뒷표지에 적힌 출판사 관계자의 과장된 문구는 어느 정도 걸러 들어야 한다는 것을. 책의 띠지만 보면, 출판되는 모든 책은 내 삶의 폐부를 찌르는 엄청난 깨달음을 담고 있거나, 숨조차 쉬지 못할 정도로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흥미진진한 내용들만을 담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세상엔 띠지의 휘황찬란한 찬사를 감당할 수 있는 책보다 그러지 못한 책이 훨씬 더 많다. 

  쉽게 예를 들자면 - 죄송하지만 - 이응준의 [국가의 사생활] 같은 경우, 작가가 3년 동안 300권의 논문을 조사하며 내놓은 소설이라는 홍보문구를 사용했는데, 소설을 읽고 나서 든 솔직한 심정은 '이딴 걸 쓰는 데 3년이나 걸렸다면, 웬만하면 작가 말고 다른 일을 찾아보시는 게..' 였다. 
 
   각설하고. 

   요코야마 히데오의 [64]의 뒷표지를 보면 '집필기간 10년! 치밀한 구성과 압도적인 스토리 텔링으로 일본소설의 수준을 단번에 끌어올린 걸작'이라는 홍보문구가 달려있다. 책을 다 읽고 난 이후, 지금 생각해보면 요코야마 히데오에겐 참 죄송하고 미안한 일이지만, 그땐 제일 먼저 이응준의 저 소설에 당한 사기가 생각났었다. "선수끼리 왜 이래, 추리소설 한 편을 10년 동안 썼다고? 이봐 히가시노 게이고는 1년에 10권도 쓰더라." 이런 생각도 했었고. 그렇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난 지금의 생각은 조금 바뀌었다. '일본소설의 수준을 단번에 끌어올린'은 조금 호들갑스러운 과장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요코야마 히데오의 [64]는 근래 보기 드문 경찰소설(추리소설이 아니다)의 걸작이고, 이 정도의 소설이라면 충분히 10년 정도의 시간을 성실하게 집필에 할애하면 써야 할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성실하게 잘 쓰여졌을 뿐더러, 독자를 완벽하게 거머쥐고 가는 소설이다. 

  아무래도 경찰서 내의 이야기를 리얼하게 다룬 추리소설이라면, 그 첫머리에 에드 멕베인의 '87분서 시리즈'를 연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FBI라는 연방수사국을 제외하면, 각 경찰조직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미국의 경찰과 일본의 경찰조직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아무래도 요코야마 히데오의 [64]를 에드 멕베인의 소설에 비견하는 것은 곤란하겠지만, 적어도 경찰서 내의 이야기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접근한다는 지점은 비슷하다. 하지만 그 둘을 완전히 다른 소설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아무래도 독특한 일본의 경찰조직이다. 

  '춤추는 대수사선', '파트너', '케이조쿠'를 비롯한, 일본의 수많은 경찰 추리드라마를 즐기는 이에게라면, 전혀 낯설지 않은 단어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캐리어'라는 단어인데, 이는 한국의 행정고시에 해당하는 국가공무원시험 1종 합격자 중 경찰직에 배속되어 경부보로 임명된 사람을 가리키는 은어이다. 그들은 고속승진이 보장되고 진급에 제약이 없는 위치로, 보통 도쿄대 법학부 같은 명문대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은 반면, 현장 경험이 없는 책상물림이나 현실을 모르고 범죄수사보다 자신의 출세에만 눈이 먼 관료 같은 느낌이 강하다. (실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추리물에서 이런 모습으로 그려진다) 또한 젊은 나이에 높은 계급에 오르면서 지휘권을 가지지만, 동시에 현장경험이 많고 계급은 낮은 논캐리어들과 많은 갈등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 역시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겠고 대부분의 추리물에서 그렇게 그려진다) 

  잠깐. 다시 뒷표지 이야기로 돌아가자. 

  검은숲의 편집자가 정리한 뒷표지의 줄거리는 이렇게 쓰여있다; "14년 전 미제로 끝난 소녀 유괴살해사건. 일명 '64'. 새로 취임한 경찰청장이 시효만료 1년을 앞둔 지금 사건을 마무리하겠다고 나서지만 유족은 청장의 방문을 거절한다. 경찰 홍보실의 미카미는 유족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64'의 담당형사들을 찾아가고, 사건 후 퇴직하거나 은둔형 외톨이가 된 동료를 보면서 그들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음을 직감한다. 그러던 중 '64'를 모방한 유괴사건이 일어나는데......"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이 소개를 보면, 이 줄거리 소개가 얼마나 큰 트릭인지 깨달을 것이다. 거의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에서 쓰인 텍스트 트릭에 버금갈 정도의 완벽한 트릭이다. 왜 그러냐면.

  일단 줄거리만 보면, 독자는 당연히 '64'가 14년의 간격을 두고 일어나는 두 개의 유괴사건의 범인을 잡는 추리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두 사건의 범인은 밝혀지지만, 추리물의 방식은 아니다. 조금 과장되게 이야기하자면, 그 두 유괴사건은 이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소재이기는 하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아니기 때문이다. 

  요코야마 히데오의 '64'는 689페이지에서 끝난다. 초반에 주인공이자 화자 역할을 하는 미카미의 이야기가 세팅되고, 14년 전 벌어진 유괴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80페이지 언저리에서 나온다. 자 이제 줄거리 소개에 따르면 64에 대해 사람들이 비밀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밝혀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사실은 300페이지 근처에 가서 밝혀진다. 줄거리 소개에 따르면 64를 모방한 유괴사건이 바로 벌어져야 할 것이다. 그것은 500페이지가 넘어서야 벌어진다. 그런데 놀랍게도 채 100페이지가 되지 않아서 범인이 밝혀지고, 이야기가 정리된다. 심지어 탐정의 추리도,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도 거의 없다! 

  그럼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당연히 궁금할 것이다. 도대체 두 개의 유괴사건 없이 이 책의 남은 내용 - 그러니까 64가 첫 소개되는 80페이지부터 두 번째 모방 유괴사건이 일어나는 4백 페이지 넘는 공간 - 은 어떻게 채워진 것인가! 줄거리 소개에 담긴 내용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대한 분량을 어떻게 채웠을지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이것은 추리물도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과연 700페이지에 가까운 이 두꺼운 소설은 무슨 재미로 읽을 것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 중간에 담겨진 내용은 두 개의 유괴 사건보다 훨씬 더 재밌고 흥미진진하다. 

  요코야마 히데오는 지방경찰서 내의 캐리어와 논캐리어 간의 갈등, 본청과 지방경찰 간의 조직에서 발생하는 갈등, 또한 경찰과 언론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경찰서를 배경으로 한 [하얀 거탑]을 만든다. [64] 내에 등장하는 경찰들은 유괴범과 두뇌싸움을 벌이는 것이 아니다. 경무부와 형사부가 서로의 배에 칼을 하나씩 삼켜두고 두뇌싸움을 벌이고, 경찰 홍보부와 지방지 기자들이 음모와 배신으로 반목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엎치락 뒷치락 하는 사건의 전개는 사건을 추리하는 재미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하다. 형사부에서 밀려나 홍보부에 자리잡은 주인공이자 화자인 미카미를 비롯한 홍보부의 인물들, 경무부의 간부들, 형사부의 형사들, 기자들까지 모든 캐릭터가 살아있고, 그들이 부딪치는 모습에 넋을 잃고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64의 범인이 궁금하다는 사실조차 잊게 될 때가 있는 것이다.

  물론 요코야마 히데오는 64를 허투루 다르지는 않는다. 이 사건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64의 망령에서 허우적 대고 있다. 캐리어 출신들은 64를 이용해 경찰서를 장악하려 하고, 반면 형사들은 64로 인해 발생한 커다란 함정에 버거워 하며 그들에 맞선다. 그렇게 인물들을 따라가며 독자 역시 허우적 대고 있노라면 이런 질문이 머릿속에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도대체 이 소설을 어떻게 끝내려고 하지?"

  500페이지가 넘어서야 64를 모방한 유괴사건이 벌어지는데, 이쯤 되면 독자 역시 소설 내내 기자와 경무부와 형사부에 치이며 완전히 지쳐버린 미카미의 심정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 이미 빠져나갈 길은 없어 보이는데, 책은 200페이지가 채 남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끝내지? 어떻게 끝내지? 하며 미친 듯이 책장을 넘기고 나면 약간은 허무한 요코야마 히데오의 결말과 만나게 되는데, 다소 그곳에서 실망할 수는 있겠지만, 뭐 그 정도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재밌게 600페이지 이상을 읽고 난 후다. 

  다 읽고 난 후 뒷표지를 다시 본다. 솔직히 말해 아직도 '일본소설의 수준을 단번에 끌어올린'이란 호들갑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아니, 일본 전체 소설의 수준을 단번에 끌어올릴 정도의 위대한 소설이 지구상에 존재하긴 할까. 뭐, '선수끼리' 그 정도의 과장은 접어주고 읽어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소설을 쓰려면 성실하게 써도 10년 정도 걸릴 수 있다는 것에는 충분히 동의한다. 아마 다 써놓고도 두 번 정도 다시 썼을 것이다. 경찰조직과 주변의 인물과 사건을 묘사하는 데 들인 정성과 노력은 단 100페이지만 읽어도 확실히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작가가 경찰생활을 따로 해본 것도 아니니, 모든 것은 취재와 조사의 결과일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너무 생생하게 잘 살아 있는 소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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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ple 2015-04-29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으면서 `64를 모방한 사건은 대체 언제 일어나는 거지?!`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네요 ㅋㅋ
 
핑거포스트, 1663 - 보급판 세트
이언 피어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서해문집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 

     범죄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범죄 수사가 과학화 되면서, 범죄의 동기가 다양해지면서, 무엇보다도 조지 오웰이 말한 '영국식 살인의 쇠락Decline of English Murder'과 함께 클래식 추리물은 갈 곳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추리방식은 과학적인 척 했지만, 상당부분 잘못된 방식에 의존하고 있었고, 그런 방식에 의해 수많은 추리의 업적을 남긴 위대한 탐정들은 그저 전설로만 남아야 했다. 현대문명의 놀라운 발전은 범죄 역시도 현대화 시켰고, 현대화 된 범죄는 일개 탐정의 추리로 해결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해져 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주구장창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만 써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명탐정은 이미 식상한 아이템이었고, 독자들은 새로운 형태의 범죄와 수사를 원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이러한 딜레마를 완벽하게 해결함과 동시에, 그런 고민에서 한 단계를 뛰어넘기까지 한 걸작이었다. 빅토리아 시대가 흔하다면, 아예 그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곳에는 과학 수사나 현대화 된 범죄도 없었고, 조금 단순하고 어리석은 범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에서 명석한 명탐정의 두뇌는 더욱 빛났다. 

  뿐만 아니라, 움베르토 에코는 추리소설 안에 신학과 기호학, 논리학과 수사학 같은 철학과 인문학의 문제들을 버무려 놓았고, 그러므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이 추리소설이 단순한 펄프 픽션이 아니라, 고도의 지적인 활동이 빚어낸 결과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사실 그게 맞기도 하고) 그리고 자신이 이 추리소설을 읽는 독서활동이 지적인 과시 활동으로 여길 수 있게 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들은, 추리소설이지만 몹시 현학적이다. 실제로 번역가 이윤기 씨가 친절하게 달아 놓은 주석 없이 그 책을 읽는 것은 그리 즐겁거나 유쾌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그나마 한글로 되어 있는 책은 좀 낫다. 에코는 [장미의 이름]에서 라틴어를 혼용해서 쓰고 있는데, 그나마 한국어에선 라틴어와 한국어의 구별이 너무나도 쉽지만, 영어권 국가에선 라틴어와 자신의 국어가 비슷한 알파벳 체계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못내 저주스러울 거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도 마찬가지지만, 때론 어떤 단어는 이게 어느 나라 말인지조차 구분가지 않을 정도라니. 

  #.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현학적인 동시에 현란하다면, 다행히도 [핑거포스트 1663]이라고 번역된, 이안 포스트의 [The instance of Fingerpost](이하 핑거포스트)는 현란하기만 하다. (일부러 원제를 밝힌 이유는 내가 이 책을 원서로 읽었기 때문... 이라면 당연히 거짓말이고 [핑거포스트, 1663]이라는 번역제가 상당히 맘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1663이라는 년도가 아예 의미가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으나, 그것이 제목의 자리를 차지할만큼 대단한 것도 아니거니와, 아무리 읽어봐도 그것이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핑거포스트' - 손가락 모양의 이정표를 가리키는 단어로, 여기서는 진실을 직시하게 되는 깨달음의 '순간Instance'을 의미하고 있다 - 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그냥 '핑거포스트'라고 번역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인스턴스 오브 핑거포스트'라는 원제를 그대로 써야 했다) 움베르토 에코는 영국의 모더니즘 작가들처럼 '내 소설을 읽으려면 최소한 이것 이것 이것 정도는 갖추어야 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실제로 에코는 자신의 소설을 읽기 위해선 초반의 지루함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장미의 이름]의 첫 백 페이지는 일부러 지루하게 썼다, 라고 밝히고 있다), 이안 피어스는 그에 비해 훨씬 친절하게도 초반부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하며, 배경이 되는 시대에 대한 설명에도 꽤 정성을 들이는 편이다. 

  물론 [장미의 이름]이 그러하듯, 이안 피어스의 [핑거포스트]도 역사 추리물의 형식을 빌려, 신학과 철학을 논하며 독자들의 지적인 욕구(?)를 채워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안 피어스는 움베르토 에코처럼 라틴어를 혼용하거나, 장황하게 수도원 미사의 순서를 설명하는 것으로 독자를 시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갈수록 독자는 자신이 작가가 짜놓은 촘촘한 거미줄에 걸려 허우적 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심지어 그 거미줄은 한 줄로만 짜여진 것이 아니라, 굉장히 다양하고 현란한 방식으로 짜여진 것이다. 이안 피어스는 크롬웰 공화정부터 왕정 복고 직후의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 역사 추리소설 안에, 성경을부터 시작해서 중세 영문학과 현대영문학, 심지어 펄프 픽션의 장르까지를 아우르는 다양한 텍스트적 테크닉을 뿌려놓는다. 조금 천박하게 비유하자면, 노래 한 곡을 부르면서 모창을 하는데 그 안에 현인과 남인수부터 로이킴까지 들어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 

  [핑거포스트]는 처음엔 시치미를 뚝 떼고, 한 이탈리아 여행자의 수기처럼 시작한다. 이것이 이 소설의 첫 챕터이다. 첫 챕터 앞에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노붐 오르가눔]의 인용문과 함께 '시장의 우상'이란 제목이 붙어있다. 그리고 이탈리아 여행자는 여행을 하다가 여러 사건을 겪고 (여느 추리소설처럼) 미스테리한 밀실 살인사건에 마주하게 된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아무도 탐정 역할을 하지 않는다. 창작인물인 이 이탈리아 여행자는 물론이고, 당시 영국에 실존했던 철학자 존 로크, 과학자 보일, 의사 로어 등 역사책에서 보았던 똑똑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전부 어리석거나 괴팍하게만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여느 추리소설들이 또 다 그러하듯이) 당대의 경찰조직에 의해 (누명을 쓴 것임에 분명한) 인물이 체포된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교수형을 당하고 죽는다. 

  당황해서 책장을 넘기면, 두 번째 챕터에도 역시 베이컨의 [노붐 오르가눔]의 한 부분이 인용되어 있고, '동굴의 우상'이란 제목이 붙어있다. 그리고 나면 이번엔 전 챕터에서 등장했던 다른 인물의 관점에서 본 기록이 계속된다. 그제야 이것이 우리가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에서 보았던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진실'을 다룬 플롯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제야 베이컨의 4개의 우상이 각 챕터의 제목인 것도 이해가 된다. 이안 피어스는 아마 각자의 편견이 가지는 관점의 차이를 기술함으로써 진실에 다가가는 플롯을 짜놓았으리라. 물론 그러한 예상은 맞다. 하지만 세 번째 챕터에 넘어가면 또 다른 깨달음이 기다린다. 

  #. 

  세번째 챕터의 제목은 [극장의 우상]이다. 그런데 읽으면서 독자는 애초에 첫번째 챕터에서 발생했던 밀실 살인사건이 이야기의 중심에서 밀려났음을 느낄 것이다. 첫 챕터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장미의 이름]과 같은 역사추리소설처럼 시작했다. 그리고 중간엔 당시의 과학실험에 대한 이야기도 살짝 다루며,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과학수사에 대해서도 짚을 것처럼 시작했으나, 앞에서도 밝혔다시피 탐정조차 없는 기괴한 추리물의 결말처럼 맺고 말았다. 그리고 넘어간 두 번째 챕터의 장르는 전혀 다른 중세 시대의 기사도 환상문학이다. 두 번째 챕터의 화자는 아버지를 잃고, 그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려 먼 모험을 떠나며 마녀와 괴물들을 만난다. 

  그리고 세 번째 챕터로 넘어오면, 이번엔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복잡한 음모가 얽힌 스파이물 혹은 하드보일드 누아르물이 펼쳐진다. 어찌 보면 이것은 존 르 까레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제임스 엘로이 같기도 하다. 공화정과 왕정복고 사이의 정치적 혼란기를 배경으로 온갖 정보와 음모가 펼쳐지면서 첫 번째 챕터의 살인사건, 두 번째 챕터의 누명을 쓴 아버지에 관한 사건이 모두 거대한 음모의 일부분임을 밝힌다. 

  #. 

  그리고 네 번째 챕터가 바로 '핑거포스트', 즉 진실을 직시하는 순간이다. 마지막 챕터의 화자가 마침내 앞의 세 개의 이야기를 종합하여 사건에 대한 진실을 정리하는데, 마지막 챕터의 장르는 추리물도, 스파이물도, 환상문학도 아니라 다름 아닌 '성경'이다. 그러면서 독자는 또 한 번 깨닫는다. 베이컨의 '4개의 우상'은 그저 맥거핀이었음을. 이안 피어스는 어쩌면 처음부터 4복음서의 구성 역시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신학을 조금 공부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4복음서에서 앞의 3복음서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을 '공관복음'이라고 한다. 바라보는 관점이 같다는 뜻이다. 그럼 마지막의 '요한복음'은 바라보는 시점이 다르다는 뜻일까? 맞다. 그래서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읽다가 생기는 의문들이 요한복음에서 정리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신학을 공부해 본 사람들의 이야기다. 내 얘기는 아니고. 참고로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의 미스테리에 대한 이야기는 김성일의 [성경과의 만남]을 먼저 읽고, 그 다음에 그가 이 미스테리를 해결하기 위해 쓴 [제국과 천국]을 읽어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4복음서 역시 예수의 탄생과 행적, 죽음, 부활에 대해 4명의 화자가 각자 자기 입장에서 서술한 이야기가 아닌가!

  #.

  출판사의 보도자료는, 이 소설에 대해 '내란과 혁명, 공화정의 실험으로 점철된 17세기 영국을 무대로,  과학·의학·신학·인식론을 종횡무진 오가며, ‘왕권’과 ‘의회주권’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대, ‘연역’과 ‘귀납’이 충돌하던 시대, ‘종교적 억압’과 ‘인간의 이성’이 충돌하던 세기를 치밀하게 그려낸다. ‘살인사건’이라는 미스터리는 ‘왕정복고를 둘러싼 세기적 음모’라는 역사적 진실에 닿아 있고, 역사적 진실은 인간 존재의 진리에 닿아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소설의 형식 역시 다양한 지적인 실험을 하고 있다. 성경적 구성, 중세적 환상문학, 근대적 추리물에 심지어 현대적인 펄프 픽션까지 아우르는 서술의 장르적 실험은, 왕정과 공화정이 혼재했고, 구신학과 신학문이 대결하였으며, 중세적 인간형과 근대적 인간형이 혼재하며 충돌했던 당시의 시대상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내용과 형식적인 면에서 이 정도로 격조 높은 혼재가 이루어졌던 작품은 태평소와 스래쉬 메탈이 공존했던 '하여가' 정도 밖에 없었다... 라는 말은 물론 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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