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포스트, 1663 - 보급판 세트
이언 피어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서해문집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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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범죄 수사가 과학화 되면서, 범죄의 동기가 다양해지면서, 무엇보다도 조지 오웰이 말한 '영국식 살인의 쇠락Decline of English Murder'과 함께 클래식 추리물은 갈 곳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추리방식은 과학적인 척 했지만, 상당부분 잘못된 방식에 의존하고 있었고, 그런 방식에 의해 수많은 추리의 업적을 남긴 위대한 탐정들은 그저 전설로만 남아야 했다. 현대문명의 놀라운 발전은 범죄 역시도 현대화 시켰고, 현대화 된 범죄는 일개 탐정의 추리로 해결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해져 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주구장창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만 써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명탐정은 이미 식상한 아이템이었고, 독자들은 새로운 형태의 범죄와 수사를 원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이러한 딜레마를 완벽하게 해결함과 동시에, 그런 고민에서 한 단계를 뛰어넘기까지 한 걸작이었다. 빅토리아 시대가 흔하다면, 아예 그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곳에는 과학 수사나 현대화 된 범죄도 없었고, 조금 단순하고 어리석은 범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에서 명석한 명탐정의 두뇌는 더욱 빛났다. 

  뿐만 아니라, 움베르토 에코는 추리소설 안에 신학과 기호학, 논리학과 수사학 같은 철학과 인문학의 문제들을 버무려 놓았고, 그러므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이 추리소설이 단순한 펄프 픽션이 아니라, 고도의 지적인 활동이 빚어낸 결과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사실 그게 맞기도 하고) 그리고 자신이 이 추리소설을 읽는 독서활동이 지적인 과시 활동으로 여길 수 있게 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들은, 추리소설이지만 몹시 현학적이다. 실제로 번역가 이윤기 씨가 친절하게 달아 놓은 주석 없이 그 책을 읽는 것은 그리 즐겁거나 유쾌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그나마 한글로 되어 있는 책은 좀 낫다. 에코는 [장미의 이름]에서 라틴어를 혼용해서 쓰고 있는데, 그나마 한국어에선 라틴어와 한국어의 구별이 너무나도 쉽지만, 영어권 국가에선 라틴어와 자신의 국어가 비슷한 알파벳 체계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못내 저주스러울 거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도 마찬가지지만, 때론 어떤 단어는 이게 어느 나라 말인지조차 구분가지 않을 정도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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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현학적인 동시에 현란하다면, 다행히도 [핑거포스트 1663]이라고 번역된, 이안 포스트의 [The instance of Fingerpost](이하 핑거포스트)는 현란하기만 하다. (일부러 원제를 밝힌 이유는 내가 이 책을 원서로 읽었기 때문... 이라면 당연히 거짓말이고 [핑거포스트, 1663]이라는 번역제가 상당히 맘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1663이라는 년도가 아예 의미가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으나, 그것이 제목의 자리를 차지할만큼 대단한 것도 아니거니와, 아무리 읽어봐도 그것이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핑거포스트' - 손가락 모양의 이정표를 가리키는 단어로, 여기서는 진실을 직시하게 되는 깨달음의 '순간Instance'을 의미하고 있다 - 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그냥 '핑거포스트'라고 번역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인스턴스 오브 핑거포스트'라는 원제를 그대로 써야 했다) 움베르토 에코는 영국의 모더니즘 작가들처럼 '내 소설을 읽으려면 최소한 이것 이것 이것 정도는 갖추어야 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실제로 에코는 자신의 소설을 읽기 위해선 초반의 지루함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장미의 이름]의 첫 백 페이지는 일부러 지루하게 썼다, 라고 밝히고 있다), 이안 피어스는 그에 비해 훨씬 친절하게도 초반부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하며, 배경이 되는 시대에 대한 설명에도 꽤 정성을 들이는 편이다. 

  물론 [장미의 이름]이 그러하듯, 이안 피어스의 [핑거포스트]도 역사 추리물의 형식을 빌려, 신학과 철학을 논하며 독자들의 지적인 욕구(?)를 채워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안 피어스는 움베르토 에코처럼 라틴어를 혼용하거나, 장황하게 수도원 미사의 순서를 설명하는 것으로 독자를 시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갈수록 독자는 자신이 작가가 짜놓은 촘촘한 거미줄에 걸려 허우적 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심지어 그 거미줄은 한 줄로만 짜여진 것이 아니라, 굉장히 다양하고 현란한 방식으로 짜여진 것이다. 이안 피어스는 크롬웰 공화정부터 왕정 복고 직후의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 역사 추리소설 안에, 성경을부터 시작해서 중세 영문학과 현대영문학, 심지어 펄프 픽션의 장르까지를 아우르는 다양한 텍스트적 테크닉을 뿌려놓는다. 조금 천박하게 비유하자면, 노래 한 곡을 부르면서 모창을 하는데 그 안에 현인과 남인수부터 로이킴까지 들어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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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핑거포스트]는 처음엔 시치미를 뚝 떼고, 한 이탈리아 여행자의 수기처럼 시작한다. 이것이 이 소설의 첫 챕터이다. 첫 챕터 앞에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노붐 오르가눔]의 인용문과 함께 '시장의 우상'이란 제목이 붙어있다. 그리고 이탈리아 여행자는 여행을 하다가 여러 사건을 겪고 (여느 추리소설처럼) 미스테리한 밀실 살인사건에 마주하게 된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아무도 탐정 역할을 하지 않는다. 창작인물인 이 이탈리아 여행자는 물론이고, 당시 영국에 실존했던 철학자 존 로크, 과학자 보일, 의사 로어 등 역사책에서 보았던 똑똑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전부 어리석거나 괴팍하게만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여느 추리소설들이 또 다 그러하듯이) 당대의 경찰조직에 의해 (누명을 쓴 것임에 분명한) 인물이 체포된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교수형을 당하고 죽는다. 

  당황해서 책장을 넘기면, 두 번째 챕터에도 역시 베이컨의 [노붐 오르가눔]의 한 부분이 인용되어 있고, '동굴의 우상'이란 제목이 붙어있다. 그리고 나면 이번엔 전 챕터에서 등장했던 다른 인물의 관점에서 본 기록이 계속된다. 그제야 이것이 우리가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에서 보았던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진실'을 다룬 플롯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제야 베이컨의 4개의 우상이 각 챕터의 제목인 것도 이해가 된다. 이안 피어스는 아마 각자의 편견이 가지는 관점의 차이를 기술함으로써 진실에 다가가는 플롯을 짜놓았으리라. 물론 그러한 예상은 맞다. 하지만 세 번째 챕터에 넘어가면 또 다른 깨달음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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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번째 챕터의 제목은 [극장의 우상]이다. 그런데 읽으면서 독자는 애초에 첫번째 챕터에서 발생했던 밀실 살인사건이 이야기의 중심에서 밀려났음을 느낄 것이다. 첫 챕터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장미의 이름]과 같은 역사추리소설처럼 시작했다. 그리고 중간엔 당시의 과학실험에 대한 이야기도 살짝 다루며,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과학수사에 대해서도 짚을 것처럼 시작했으나, 앞에서도 밝혔다시피 탐정조차 없는 기괴한 추리물의 결말처럼 맺고 말았다. 그리고 넘어간 두 번째 챕터의 장르는 전혀 다른 중세 시대의 기사도 환상문학이다. 두 번째 챕터의 화자는 아버지를 잃고, 그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려 먼 모험을 떠나며 마녀와 괴물들을 만난다. 

  그리고 세 번째 챕터로 넘어오면, 이번엔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복잡한 음모가 얽힌 스파이물 혹은 하드보일드 누아르물이 펼쳐진다. 어찌 보면 이것은 존 르 까레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제임스 엘로이 같기도 하다. 공화정과 왕정복고 사이의 정치적 혼란기를 배경으로 온갖 정보와 음모가 펼쳐지면서 첫 번째 챕터의 살인사건, 두 번째 챕터의 누명을 쓴 아버지에 관한 사건이 모두 거대한 음모의 일부분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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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네 번째 챕터가 바로 '핑거포스트', 즉 진실을 직시하는 순간이다. 마지막 챕터의 화자가 마침내 앞의 세 개의 이야기를 종합하여 사건에 대한 진실을 정리하는데, 마지막 챕터의 장르는 추리물도, 스파이물도, 환상문학도 아니라 다름 아닌 '성경'이다. 그러면서 독자는 또 한 번 깨닫는다. 베이컨의 '4개의 우상'은 그저 맥거핀이었음을. 이안 피어스는 어쩌면 처음부터 4복음서의 구성 역시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신학을 조금 공부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4복음서에서 앞의 3복음서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을 '공관복음'이라고 한다. 바라보는 관점이 같다는 뜻이다. 그럼 마지막의 '요한복음'은 바라보는 시점이 다르다는 뜻일까? 맞다. 그래서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읽다가 생기는 의문들이 요한복음에서 정리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신학을 공부해 본 사람들의 이야기다. 내 얘기는 아니고. 참고로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의 미스테리에 대한 이야기는 김성일의 [성경과의 만남]을 먼저 읽고, 그 다음에 그가 이 미스테리를 해결하기 위해 쓴 [제국과 천국]을 읽어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4복음서 역시 예수의 탄생과 행적, 죽음, 부활에 대해 4명의 화자가 각자 자기 입장에서 서술한 이야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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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의 보도자료는, 이 소설에 대해 '내란과 혁명, 공화정의 실험으로 점철된 17세기 영국을 무대로,  과학·의학·신학·인식론을 종횡무진 오가며, ‘왕권’과 ‘의회주권’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대, ‘연역’과 ‘귀납’이 충돌하던 시대, ‘종교적 억압’과 ‘인간의 이성’이 충돌하던 세기를 치밀하게 그려낸다. ‘살인사건’이라는 미스터리는 ‘왕정복고를 둘러싼 세기적 음모’라는 역사적 진실에 닿아 있고, 역사적 진실은 인간 존재의 진리에 닿아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소설의 형식 역시 다양한 지적인 실험을 하고 있다. 성경적 구성, 중세적 환상문학, 근대적 추리물에 심지어 현대적인 펄프 픽션까지 아우르는 서술의 장르적 실험은, 왕정과 공화정이 혼재했고, 구신학과 신학문이 대결하였으며, 중세적 인간형과 근대적 인간형이 혼재하며 충돌했던 당시의 시대상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내용과 형식적인 면에서 이 정도로 격조 높은 혼재가 이루어졌던 작품은 태평소와 스래쉬 메탈이 공존했던 '하여가' 정도 밖에 없었다... 라는 말은 물론 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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