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한국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일본의 풍부한 1차 자료를 바탕으로, 제국 일본의 스포츠 정책과 식민지 조선인의 갈등을 세밀하게 추적한다. 단순한 전기적 서술이 아닌, 제국과 민족, 영광과 고통, 스포츠와 정치 사이의 틈에서 손기정이 짊어졌던 무게를 조명한다. 따라서 이 책은 오늘날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손기정의 모습과는 다소 다른 각도에서 그의 삶을 조명한다. 일본 쪽의 여러 자료들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다소 모호하게 알려진 사실까지 검증하며 손기정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 1936년 8월 9일 마라톤 금메달의 영광

1936년 8월 25일 일장기 말소 사건의 고통

『손기정 평전』은 ‘영웅’의 두 얼굴을 그린다. 손기정은 제국 일본의 ‘대표 선수’와 식민지 조선의 ‘민족적 자부심’ 사이에서 갈등을 겪어야 했다. 이 갈등은 8월 25일에 일어난 ‘동아일보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극대화된다. 《동아일보》의 이길용 기자가 사진을 조작했고, 그 파장은 《동아일보》가 정간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당시 손기정은 베를린에서 일본으로 오는 배에 승선하고 있었다. 일본에 도착한 후 손기정은 정치적 감시와 고난을 겪어야 했다. 단적으로, 손기정은 베를린 올림픽 이후 마라톤(운동)을 포기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는 조건이, 다시는 마라톤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라톤을 제패한 스포츠 영웅이었지만, ‘일본 제국의 조선인 금메달리스트’라는 시대적 모순에서 온 내적 갈등으로 인해, 단 한 번의 영광과 이후 이어지는 고난의 나날을 겪어야 했다.

해방 이후 손기정은 민족의 ‘영웅’으로서의 삶을 보내며, 보스턴 마라톤 등에 코치로 참가하는 등 한국 체육계를 이끄는 인물로 활약했다. 이후로도 친일 발언, 국적 회복 사건,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 활동 등을 통해, 스포츠의 정치화의 현장 한복판에 선다.

이 책을 관통하는 것은 젊은 시절 손기정의 삶을 옥죄었던 스포츠의 정치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이는 손기정이 한국전쟁 직전에 열린 보스톤 마라톤에 다녀와서 내뱉은 “선수들을 정치 도구화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말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옮긴이의 말)



영웅으로서 손기정의 삶은 제국 일본 지배하의 조선 민족의 금메달리스트였다는 사실과 일장기 말소 사건이 늘 교차하면서 빛과 그림자를 드리운다.

손기정은 지금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해 있다. 금메달리스트라고는 하지만 그는 어떤 이유로 국가를 위해 순국한 이들과 함께 국립묘지에 잠들어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손기정의 생애사(life-history)를 통해 제국 일본에서 스포츠 영웅의 의미를 묻고, 이를 통해서 일본과 조선반도 사이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근현대사를 그리려 한다.

⏤들어가며: 11쪽

이 책을 관통하는 것은 젊은 시절 손기정의 삶을 옥죄었던 스포츠의 정치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이는 손기정이 한국전쟁 직전에 열린 보스턴 마라톤에 다녀와서 내뱉은 “선수들을 정치 도구화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말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옮긴이의 말>, 239쪽

올림픽 경기장의 시상대에 선 손기정. 게양대에 일본 국기가 가장 높이 올라가고 ‘기미가요’가 흘러나온다. 그때 손기정의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의 의미는 오직 그 자신만이 알고 있었으리라. 감격의 눈물인지, 고충의 눈물인지, 아니면 미움과 울분에 사로잡힌 눈물인지. 큰 환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마라톤 우승자를 맞이하는 경기장 관중들에게 그 모습은 어떻게 비쳤던 것일까. 히틀러는 손기정의 우승을 축하했다. 그는 위대한 운동선수이자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축하를 받은 손기정의 히틀러에 대한 인상 역시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서장 제국 일본과 조선 민족의 영웅, 19쪽

8월 25일 자 《동아일보》 석간에 실린 손기정의 사진은 가슴팍에 달린 국기가 가공, 수정됨으로써 히노마루가 보이지 않도록 지워져 있었다. 운동부 기자 이길용을 중심으로 한 여러 명(8명이 구속되었다)의 《동아일보》 관계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이는 영웅 손기정의 우승을 제국 일본으로부터 조선 민족에게 되돌리려 한 것이었다. 이 행위는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을 표현함으로써 제국 일본의 ‘영웅’을 조선 민족의 ‘영웅’으로 되찾아 나가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당시 손기정에게 힘든 상황을 가져왔다.

그 결과 손기정은 제국 일본 내에서 조선총독부를 중심으로 하는 식민 권력의 경계 대상이 되어, 특고(特高) 경찰에 의해 늘 감시당하는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서장 제국 일본과 조선 민족의 영웅, 27-28쪽

손기정은 결승선을 통과한 후 20미터 정도를 그대로의 기세로 달려가 담요에 싸인 채로 엉덩방아를 찧듯이 넘어졌다. 곧바로 일어나 가볍게 달리기 시작하자 손기정보다 2분 정도 뒤처져서 달리고 있던 영국의 하퍼가 도착했고, 그 70-80미터 뒤에는 남승룡이 보였다. 남승룡은 후반부에 차례로 순위를 끌어올리며 경기장에서 마지막 스퍼트를 내고 있었다. 남승룡은 2위와는 19초 차이로 3위로 골인했다.

손기정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했다. 제국 일본의 올림픽 마라톤 우승은 가나쿠리 시소가 처음으로 마라톤에 도전한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이후 일본 육상계의 염원이었다. 24년의 세월이 흐른 뒤 조선 출신의 한 청년이 그 꿈을 실현한 것이다.

손기정이 결승 테이프를 끊었을 때 그것은 손기정은 물론, 제국 일본에게도, 또 조선 민족에게도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음이 틀림없다.

⏤제2장 베를린 올림픽의 영광: 1932-1936년, 102쪽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한 1936년 8월 9일부터 보름 정도 지난 25일, 《동아일보》 석간에는 시상대에 선 손기정의 사진이 실린다. 그런데 가슴에 있어야 할 일장기의 히노마루가 흐릿해 일장기임을 알아볼 수 없도록 게재되었다. 사진에 찍힌 일장기가 지워져 있었던 것이다. 같은 날 조간에도 손기정, 남승룡, 하퍼 세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이 실렸는데, 거기에는 손기정과 남승룡의 가슴에 일장기의 히노마루가 선명하게 드러났었다. 석간의 사진에서 일장기가 지워진 것은 의도적인 것임이 분명했다.

이 일장기 말소를 주도한 사람은 이길용으로, 당시 동아일보의 스포츠 기자였다.

⏤제3장 일장기 말소 사건의 충격: 1936년 8월, 120-121쪽

해외에서 생활하는 동포들의 모습,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태극기, 이러한 것들과의 만남과 경험은 손기정에게 영향을 끼쳤다.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기 전까지는 해외에서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았던 손기정도 마라톤 우승 후 각종 환영회 등에서 사인을 요청받으면 거기에 한글로 ‘손기정’이라고 쓰고 출신 국명은 영어로 ‘KOREA’라고 적었다.

⏤제3장 일장기 말소 사건의 충격: 1936년 8월, 136쪽

손기정은 어딜 가든지 경찰 등으로부터 감시를 받고 있었다. 나가사키부터 시작해서 고베에서 기차를 타고 이동한 도쿄에 이르기까지 올림픽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선수들을 환영하는 사람들로 넘쳐났지만, 손기정의 기분은 우울했다.

이때의 일을 손기정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무서워졌다. 어떻게든 빨리 도망가고 싶을 뿐이었다”고 말한다. 손기정은 이러한 감시의 스트레스에 극도로 지쳐 있었다. 올림픽 선수단은 도쿄에 체류하게 되었다. 손기정이 도쿄의 마루노우치 호텔에 머무는 동안 양정고보의 담임 황욱이 마중을 나와 주었다. 마침 남승룡의 은인이기도 한 스즈키 다케시가 축하 인사를 전하기 위해 손기정을 만나러 와 있었다. 손기정의 심정을 들은 스즈키는 주변에 있던 경찰을 꾸짖고서는 쫓아냈다고 한다.

⏤제4장 제국 일본에 휘둘리다: 1936~1945년, 146-147쪽

손기정은 정말 달리기를 그만둔 것일까? 메이지 대학에 진학한 뒤 일단 달리기를 그만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5월에 발행된 《조광》에는 「다음 세계 올림픽 제패를 기(期)하는 마라톤왕 손기정 군의 심경」이라는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다. 그 기사에서 손기정은 “한동안 운동을 안 하고 보니 도리어 인간적으로 점점 보잘것이 없는 것 같아서 다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라면서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또한 “소화 15년에 동경서 열리는 제12회 세계 올림픽 대회에 다시 출장하시겠습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마음에 별 변화가 없는 한 출장하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손기정은 다음 올림픽도 겨낭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불안도 있었다. 손기정은 메이지 대학에 진학한 후 다시 학비와 생활비 문제로 고민하는 중이었다. 그것이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는 데 족쇄가 되었다. 이 무렵 손기정은 경성 적선동에 있는 성재육영회로부터 매달 45원의 장학금을 받았지만, 그 금액으로는 대학 수업료만 가까스로 납부할 수 있을 정도여서 생활은 궁핍했다고 한다.

⏤제4장 제국 일본에 휘둘리다: 1936~1945년, 156-157쪽

이제 손기정은 조선의 스포츠계 전체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권태하, 정상희 등의 선배들을 이어 조선 스포츠계를 이끄는 입장에서 경기에 관한 코멘트를 요구받았던 것이다. 경기를 떠난 지 오래되면서 그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손기정은 유복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도시화된 경성의 은행에서 근무하며 많은 지식인 및 저명인사와 친분을 맺고 조선 스포츠계에서 지도적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제4장 제국 일본에 휘둘리다: 1936~1945년, 168쪽

또한 김구는 두 선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오늘까지 세계를 제패한 손기정 때문에 세 번 울었다. 10년 전 베를린에서 망국민의 한 청년으로서 세계 열강의 젊은이들과 사투를 벌여 우승했으나, 조선 사람이면서도 조선 사람 행세를 못해 신문지상에서 그대들의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보면서 나는 울었고, 태평양전쟁이 일어났을 때 중국의 중경에서는 조선 청년 손기정이 일본군에 자원, 필리핀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불쌍해서 울었다. 그리고 오늘 죽었다던 손 군을 광복한 조국 땅에서 다시 보니 감격해서 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김구의 이 기념사는 ‘세 번의 눈물’로 불리며 손기정에게 보낸 말로 잘 알려져 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두 번째 눈물은 민족의 영웅이 제국 일본의 병사로 지원해 전사했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다른 데에서는 들을 수 없으므로 충칭(重慶)에서 퍼진 소문이 아닐까 짐작된다.

⏤제5장 해방 후의 세계에서: 과거의 영광과 굴욕, 190-191쪽

1981년 9월 바덴바덴에서의 감동은 지금도 누를 길 없다. 내 평생에 그렇게 즐거운 날은 없었던 것 같다.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 손기정 자서전』)

손기정은 한국의 위상을 건 올림픽 유치 활동에 참여했고, 유치가 결정되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올림픽 개최 결정의 환희, 그리고 모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올림픽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손기정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제5장 해방 후의 세계에서: 과거의 영광과 굴욕, 215쪽

1988년 9월 17일, 한국을 상징하는 서울 올림픽이 개막했다.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열리는 올림픽이었다. 개회식에서 올림픽 성화가 잠실 올림픽 경기장 성화대로 옮겨졌다. 팡파르와 함께 성화를 든 주자가 경기장으로 들어왔다.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바로 손기정이라는 노년의 주자였다.

베를린 올림픽의 영웅은 기쁨에 찬 모습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트랙을 달렸다. 10초 남짓의 달리기였다. 세계인 앞에서 제국 일본·조선 민족의 영웅은 시간이 흘러 열린 서울 올림픽 개회식에서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서 한국의 차세대 젊은이들에게 마지막으로 성화를 이어주었다.

⏤제5장 해방 후의 세계에서: 과거의 영광과 굴욕, 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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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생태철학자 신승철 소장의 유작이자, 독립연구자 이승준과의 공저입니다.

신승철 소장은 생전에 생태적지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며 탈성장과 생태민주주의를 위한 연구와 실천을 이어갔고, 이 책은 그의 마지막 문제의식이 응집된 작업입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 그 대안은 바로 ‘아래로부터의 협치’, ‘공생적 협치’, 그리고 ‘탈성장’입니다.


📌 책이 던지는 질문

  • 탈성장은 왜 기후위기의 해법인가?

  • 기후 협치는 기존 거버넌스와 어떻게 다른가?

  • 생태민주주의는 어떻게 실현 가능한가?

  • 국가와 대의제의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책은 이러한 물음을 통해 ‘기후 협치’라는 패러다임 전환을 제안합니다.

이는 단순한 이론이 아닌, 우리 모두가 당면한 생존의 문제이며, 실천을 통해 전환 가능한 현실입니다.

『기후 협치』는 단순한 생태학 서적이 아닙니다.

“협치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고

답을 찾아가는 시민의 철학 실천서입니다.

이 책은 생태적 사고와 행동의 판을 바꾸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깊은 사유와 구체적 실천의 지침을 제공합니다.

본문 속으로


현재의 기후위기 상황에서 협치의 의제 설정과 결정권, 주도권을 시민과 다중에게 부여하고, 정부나 지자체가 그것을 제도적으로 보완・지원할 수 있다면, 협치를 정부와 관료들이 주도(우리는 그것을 ‘관치’로 이해한다)할 때 발생하는 탁상공론, 뻔한 결정, 성장 중심의 방향성, 인간중심주의, 전시 행정 등의 문제를 극복하는 실질적 생태 회복의 효과를 낳을 것이다. ⏤ 들어가는 글, 8-9쪽

기후위기는 그저 우리에게 앞으로 임박한 미래로서만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실질적이고 긴급한 사태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 2020년대의 시간은 지구 생태계와 전 인류 그리고 미래의 생명 모두의 생사가 걸린 결정적인 시기이다. 지구 생태계를 이루는 다양한 구성 요소 중 일부에서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거나 임계점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가 확인된다.

⏤ 1장 탈성장 사회와 구성적 협치, 25쪽

탈성장론은 지구 생태계 곳곳에서 위기를 증폭시키는 산업 생산 시스템, 토지·삼림·해양에 대한 개발주의적 접근, 이윤 중심의 팽창적 자본주의를 중단하고 지구에 사는 모두를 풍요롭게 하면서 더 건강한 삶을 만들어낼 수 있는 다른 형태의 삶과 경제를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즉 탈성장론은 “행복을 삶과 사회의 목적으로 삼음을 옹호”하며, “모두를 위한 좋은 삶을 건축하려는 움직임을 촉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1장 탈성장 사회와 구성적 협치, 34쪽

왜 탈성장은 민주주의, 그것도 기존의 민주주의와는 완전히 차별화되는 절대민주주의의 근거를 형성하는 것일까? 우리가 생각하기에 탈성장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터져 나오는 무수한 형태의 민주주의적 요구 및 형태들과 연결되어 있는데, 그것은 분석적으로는 다음 세 가지 형태 즉 ‘아래로부터의 절대민주주의 운동, 자율적이고 전 지구적인 민주주의의 요구, 사물민주주의와 생명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의 출현’으로 근거지을 수 있다.

―1장 탈성장 사회와 구성적 협치, 45쪽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존재 이유라고 말하지만 정작 위기가 발생했을 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전혀 지키고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바로 그 사람들에 의해 행해지는 반인권적이고 반민주적인 행태들, 사람들이 가진 욕망과 이해관계를 대의하겠다고 나서지만 정작 기득권들(자본가들과 정치적·문화적 엘리트들)의 이권을 지키는 데 모든 힘을 집중하는 대의정당들 및 그 기관들……. 우리는 바로 이러한 역설들 속에서 기후재난이라는 눈앞에 다가온 위기 상황을 이해하고 그것을 돌파할 힘을 직접적이고 참여적인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다중들 및 분자적 존재들의 아래로부터의 협동력에서 찾고자 한다.

―2장 협치의 기본 구도, 77쪽

우리는 결국 하늘 위에서 아래를 굽어보던 그 시선을 끌어내리고 다시 땅으로 귀환해 그 땅의 존재들과 마주 보거나 나란히 살을 맞대면서 우리가 위치한 그러한 공생적 구성체로서의 현실을 응시해야 한다. 우리는 초월적 시선 하에서 사물과 생명을 분류하고 구분 지으며 그것을 총괄 지배하는 초월자가 아니라 벌레, 풀, 플라스틱 물병, 마스크, 전자기기를 몸에 붙이고 다니면서 땅에 몸(발)을 붙이고 그 땅과 함께 매 순간 우리를 새롭게 조성하는 공생자이다.

―3장 구성적 협치의 사상가들, 136쪽

제도(institution)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것이 떠오르나? 법 제도, 행정 제도, 사법 제도, 형벌 제도 등 등골이 오싹할 만한 단어들이 줄줄 나온다. 이처럼 제도라는 개념은 딱딱하게 정체화되고 있고 규범화된 것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펠릭스 가타리는 ‘제도=관계망’이라고 말한다.

―3장 구성적 협치의 사상가들, 146쪽

해러웨이는 우리가 현재의 위기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트러블을 겪는 위태로운 존재들과 함께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낼 ‘이야기 만들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녀가 자신의 철학적 저서들에서 서슴없이 여러 SF를 만들어낼 때, 그것은 같은 말 속에서 여러 의미를 변주시키는 예술 실천이다.

―3장 구성적 협치의 사상가들, 215쪽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이하 SDGs)>는 기후위기와 제3세계 기아와 빈곤, 여성 인권, 성평등 등을 망라하는 명실공히 가장 큰 국제 정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인류와 지구의 지속가능한 번영’이라는 기치 아래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는 선에서 최소한의 탄소 배출을 용인하는 방식으로 개발 원조를 통한 제3세계 모델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제1세계의 목표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이다.

―4장 거버넌스의 사례들, 225쪽

당연하게도 민주적 역량은 민주적인 인식과 태도를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낼 때 길러지는 것이며, 그러한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의 소수자들과 연대하면서도 어떠한 편견이나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그 누구와도 수평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들이다. 이러한 존재들을 만들어내는 일이 오늘날 시급하다.

―5장 기후재난에서의 자원 관리의 협치, 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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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철학자, 고 신승철 소장의 유작

알렙 생태민주주의 시리즈 네 번째 이야기

『기후 협치: 지구 거주자들의 공생과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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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는 그저 우리에게 앞으로 임박한 미래로서만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실질적이고 긴급한 사태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 2020년대의 시간은 지구 생태계와 전 인류 그리고 미래의 생명 모두의 생사가 걸린 결정적인 시기이다. 지구 생태계를 이루는 다양한 구성 요소 중 일부에서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거나 임계점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가 확인된다.

- 『기후 협치: 지구 거주자들의 공생과 연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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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소개

기후 협치

지구 거주자들의 공생과 연대


신승철·이승준 지음 | 280쪽 | 15,000원 | 46판(128×187)

출간일 2025년 8월 25일 | ISBN 979-11-89333-99-7 03300

분야: 사회/정치 > 생태/환경

내 삶 - 내 조직 - 내 도시 - 내 사회에 기후 협치를 설계하자

탈성장 × 협치의 새로운 선언, 새로운 실천 매뉴얼

생태 철학자, 고 신승철 소장의 유작

알렙 생태민주주의 시리즈 네 번째 이야기

생태 철학과 공동체 운동, 사회적 경제 등을 연구해 오다, 2023년 세상을 떠났던 신승철 소장의 유작이 이승준 독립연구자와의 공저로 출간되었다. 생전에 생태적지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면서 기후위기 시대의 대안 마련을 위해 고심해 온 그의 뜻을 유산으로, 동료 연구자·활동가·예술가 들이 탈성장 전환 사회를 향한 실험과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탈성장 담론과 기후 협치라는 대안 사상을 새로운 실천 매뉴얼과 함께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협치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관치’가 아니라, 시민과 다중이 주도적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결정하는 ‘아래로부터의 협치’이다. 즉 아래로부터의 협치생태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저자들은 기존의 상명하달식 통치(수목형 모델)와 대비되는 수평적 협치(리좀형 모델)를 제안한다.

또한,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협치를 주장한다. 인간뿐만 아니라 비인간 존재들(동물, 식물, 심지어 인공물까지)을 기후 협치의 주요 행위자로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생적 협치’는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이성과 합리를 넘어선 새로운 언어와 정동(情動)으로 모든 존재가 공존하는 길을 모색한다.

아래로부터의 구성적 협치가 강한 민주주의이다!

자본의 맷돌을 멈추고 커먼즈를 돌리자!

고 신승철 소장과 이승준은 이 책에서 ‘기후 협치’라는 주요 테마와 핵심 사상을 분석하기 위해 몇 가지 주요한 질문을 던진다. “탈성장은 왜 기후위기 시대의 핵심 전략인가?” “기후 협치는 기존 거버넌스와 어떻게 다른가?” “생태민주주의는 무엇을 어떻게 확장하는가?” “전 지구적 위기 앞에서 국민국가와 대의제는 왜 무능한가?” “탈성장 전환을 제도화하기 위한 실천 경로는 무엇인가?”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이 새로운 거버넌스 모델인 ‘기후 협치’와 관련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저자들은 2019-2020년부터 이 지적 여정을 시도했다.

기후 협치: 위기와 대안의 교차점

이 책은 기후위기가 단순한 미래의 위협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실질적이고 긴급한 사태임을 강조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 2020년대의 시간은 지구 생태계와 전 인류 그리고 미래의 생명 모두의 생사가 걸린 결정적인 시기이다.”(25쪽) 이러한 절박한 인식 아래, 저자들은 기존의 통치(governance) 방식으로는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기후 협치’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들은 위로부터의 지배(수목형 모델)는 한계가 있다고 보며, 국가나 관료, 전문가 중심의 일방적 의사결정 방식은 “탁상공론, 뻔한 결정, 성장 중심의 방향성, 인간중심주의, 전시 행정 등의 문제를 극복하는 실질적 생태 회복의 효과를 낳을” 수 없다고 비판한다.(9쪽)

대의 민주주의 또한 무능하다고 본다. 저자들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나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에서 보듯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존재 이유라고 말하지만 정작 위기가 발생했을 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전혀 지키고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의 현실을 지적한다.(77쪽)

제국적 협치에도 한계가 있다.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같은 국제적 거버넌스는 이상적인 모델이지만, “제1세계의 목표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이며,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무기력하다”고 비판한다.(225-226쪽)

그렇다면, 아래로부터의 구성적 협치는 무엇이고 왜 필요한가? 기후 협치는 “위로부터의 일방적 지배(수목형 모델)로 나타나는 통치와는 구별되며, 좀 더 수평적 형태(리좀형 모델)로 작동한다”고 설명한다.(7쪽) 이는 시민과 다중에게 의제 설정과 결정권, 주도권을 부여하고, 정부나 지자체는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하고 지원하는 방식이다. “리더십과 전략은 다중에게! 전술은 정부와 전문가들과 공동체들의 협의체가!”(9쪽)라는 전제하에서만 시민과 다중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돌발 변수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탈성장 사회와 생태민주주의

기후 협치의 핵심 전제 중 하나는 ‘탈성장 사회’로의 전환이다. 저자들은 현재의 기후위기가 경제성장주의에 기인한다고 보았고, 성장주의와 인간중심주의에 맞서 탈성장론과 탈인간중심주의에 중점을 두는 논의들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탈성장은 경제 성장 추구의 종식을 내세우며, “경제 성장이 여전히 인간 복지를 증진하고, 물리적으로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고 상상하는 것이 바로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33쪽)

‘적을수록 풍요롭다’라는 말처럼, 탈성장론은 단순한 금욕이나 내핍을 넘어 “지구에 사는 모두를 풍요롭게 하면서 더 건강한 삶을 만들어낼 수 있는 다른 형태의 삶과 경제를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34쪽) 이는 더 적은 신진대사 활동을 지향하지만, 다른 구조와 새로운 기능을 가진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사회를 지향한 결과이다.

따라서 탈성장은 “교환가치와 이윤 증식 중심의 가치화에서 탈가치화, 재가치화, 자기-가치화로의 전환”을 모색하며, 여기에 “돌봄의 재생산 경제와 ‘공통적인 것’(혹은 커먼즈/공통장)”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한다.(41쪽) 커먼즈 경제는 누구도 소유할 수 없으며, 누구도 그것을 일방적으로 재현/대의할 수 없는 것으로, 모두의 필요에 따라 공정하게 분배하고, 모두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생산하며, 공통적인 것을 다스리는 협치를 뜻한다.(60쪽)

그래서 탈성장론은 절대민주주의의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탈성장은 “인간중심주의나 개체중심주의에 한정되는 것을 넘어서 지구 전체에 공존하는 생명체들인 동식물과, 그와는 다른 형태의 존재자들인 광물, 사물, 인공물, 대기, 해양 등의 물질 및 그것들 간의 관계성, 운동성, 시간성 등을 민주주의의 구성 요소로 이해하는 포괄적인 ‘절대적 민주주의’의 근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45쪽)

탈성장은 오로지 아래로부터만,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자들의 삶에의 욕망으로부터만 강력하고 실질적인 형태로 실현될 수 있다. 위로부터의 대안은 “늘 고통스러운 내핍을 강제할 뿐이며, 전 지구를 반으로 가르는 위계적 단층선을 따라 ‘조용한 폭력’의 형태로 실행된다.”(47쪽)

구성적 협치(기후 협치)의 철학적 기반과 사례

라투르, 가타리, 네그리&하트, 해러웨이의 사상과 기후 협치

저자들은 이제 브뤼노 라투르, 펠릭스 가타리,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 도나 해러웨이의 사상을 통해 구성적 협치(기후 협치)의 철학적 깊이를 탐구한다.

브뤼노 라투르의 사물 정치와 공생적 협치

브뤼노 라투르는 팬데믹 경험을 통해 인류가 도시와 집과 맺는 관계를 흰개미가 흰개미집과 맺는 관계에 비유한 바 있다. “우리는 흰개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거주지 자체와 공생했다.”(121쪽) 지구 위의 모든 것은 서로 공생하며, 지구의 위기, 지구 안에서의 위기는 지구 안의 모든 존재의 연합 및 상호 결합의 위기로 인식되어야 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홀로바이온트(holobiont, 공생 생명체)”로서 윤곽이 모호한 행위자들의 앙상블이며, 외부와 차단된 독립체일 수 없다. 따라서 저자들은 인간 협치를 넘어서는, 다양한 생명 존재들과의 공생적 협치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라투르의 사상을 적극 해석한다. 라투르는 “하늘 위에서 아래를 굽어보던 그 시선을 끌어내리고 다시 땅으로 귀환해 그 땅의 존재들과 마주 보거나 나란히 살을 맞대면서 우리가 위치한 그러한 공생적 구성체로서의 현실을 응시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상가이다.(136쪽)

펠릭스 가타리의 제도 요법과 구성적 협치

프랑스 생태 철학자 펠릭스 가타리는 제도가 고정불변의 구조가 아니라 “관계망에 가까운 것”이며, “관계망이 바뀌면 제도도 바뀐다”고 주장한다.(146-147쪽) 제도는 완성태가 아니라, 늘 과정태로서만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통해 “재특이화 과정만을 필요로 하는 제도의 비밀을 드러낸다.”(146쪽) 이때, 미시 정치가 중요하다. 구성적 협치는 “기계, 배치, 구조, 제도 등의 다차원적 맥락을 신중하게 살피는 미시 정치의 장”이 되어야 하며, “상상력, 욕망, 정동에 기반한 담화”를 통해 풍부한 가능성을 창출해야 한다.(163쪽)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다중의 어셈블리로서의 협치:

네그리와 하트는 오늘날의 ‘협치’를 “법과 소유의 지배에 기초한 공화제로서의 전 지구적 협치”이자 “제국적 주권의 발전된 양식”으로 이해하며 비판한다.(180-181쪽) ‘어셈블리(assembly)’는 의회, 공회, 민회, 모이기, 집회 등을 포괄하는 다층적 개념으로, 다양한 존재들의 협력과 연대를 통해 특이한 판을 짤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이미지를 제시한다.

네그리와 하트는 ‘소유 공화국’의 두 형태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둘 다를 거부하는 탈성장 코뮌을 기획하며, 이는 공허한 유토피아를 지향하지 않는다고 했다.(197쪽) 이는 “가난하면서도 풍부하고 충만하고 협동하는 영성 공동체”를 의미하며, “정동과 활력을 통해 생태민주주의를 가속화함으로써 다중의 권리와 자율을 더욱 확장시키는 방향성을 띨 것”이다.(195, 197쪽)

도나 해러웨이의 공-산적 협치와 이야기 만들기

해러웨이는 생명들이 서로 협동하는 공생적 관점인 ‘공-산(sympoiesis)’을 통해 “함께-세계 만들기를 위한 적절한 용어”를 제시한다.(204쪽) 이는 상대방이 나의 몸을 만들고, 나는 상대의 몸을 만들며, 상대가 만들어준 나의 몸으로 다시 상대를 만들기에 참여하는 상호 의존적 관계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하와이 짧은꼬리오징어와 비브리오 피스케리 박테리아, 그리고 아카시아나무와 수도머멕스속 개미의 사례를 통해 “종과 종을 넘어, 외래종과 토착종 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협력하는 어떤 사태”를 보여준다.

해러웨이는 “트러블을 겪는 위태로운 존재들과 함께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낼 ‘이야기 만들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SF(들)는 새로운 땅의 이야기를 만들어냄으로써 우리가 어울릴 친구와 동반자들을 다른 이미지로 그려낼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고 설명한다.(215쪽, 219쪽)

연합과 탈성장을 통한 내적 혁명

협치(거버넌스) 사례와 실천 경로

책에서는 다양한 거버넌스 사례를 분석하고, 기후 협치로의 전환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경로를 모색한다. 예를 들면, 유엔의 SDGs의 경우 이상적인 협치의 모델로 제시되지만, 제1세계 중심이라는 한계와 현실적인 문제 해결에서는 무기력함을 지적한다.

한국 사례로도 박원순 시장 시기 만들어진 녹색서울시민위원회를 든다. 하지만, 서울시의 거버넌스 왜곡 사례를 통해 “시민사회 기반을 포섭하고 그 기반으로 시 행정을 하려고 했던 위로부터의 거버넌스의 전략”이라 비판한다.(233쪽)

파리의 15분 도시는 생태주의적 도시 정책의 성공 사례로, 일자리, 도시 계획, 에너지 인프라 등을 집약하여 탄소 감축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했음을 보여준다.(236-238쪽) 그리고 재난 시 공공 영역의 기능이 정지한 상황에서 지역 생협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구호 활동을 펼친 사례(고베생협의 대지진 대응)를 통해, “아래로부터의 협치가 자본이나 국가가 공백 상태에 처했을 때 빠르고 유효한 대책을 실행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임을 강조한다.(241쪽) 민방위대와 주민들의 즉각적인 협치를 통해 사망자 0명을 기록한 쿠바의 허리케인 윌마에 대한 대처 사례를 통해, “마을 단위의 공동체적 관계가 살아 있고, 마을 주민 전체가 민방위대 및 군대와 혼연일체가 되어 움직였기 때문”에 가능했음을 보여준다.(243-244쪽)

저자들은 기후 협치가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역량 강화와 함께 이루어진다고 강조하며, 이는 “다양한 형태의 소수자들과 연대하면서도 어떠한 편견이나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그 누구와도 수평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들”을 만드는 일이라고 말한다.(259쪽)

궁극적으로 이 책은 “우리를 변신시켜 새로운 차이의 존재로 탄생시킬 우리 자신의 내적 혁명을 지금 바로 시작하자!”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며, “아래로부터의 협치, 풀뿌리 민주주의이자 모든 존재가 서로에게 의존하면서도 또한 서로를 살리는 공생적 어우러짐만이 지금 기후위기의 유일한 실효적 대안”이라고 역설한다.

그린풋 생태민주주의시리즈는?

기후위기와 생명위기 시대에 우리 사회에 대한 인문적 성찰과 대안을 작지만 탄탄한 지식의 풍경으로 담아냅니다. 생태적지혜연구소와 함께 미래진행형의 ‘지혜의 판(plan)’을 만드는 생태민주주의시리즈를 첫선으로, 답으로 주어진 현실을 거부하는 수많은 문제제기에 주목한다.

저자 소개

신승철(1971-2023)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를 연구하는 생태철학자이자 활동가였다. 공동체 운동과 사회적 경제, 기후 운동 등에 이론적인 기반을 제공하면서, 탈성장 전환 사회로 가는 길의 안내자가 되고자 했다. 2019년 뜻맞는 연구자, 활동가들과 함께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을 만들어서 기후 변화와 생명 위기 시대에 대응하는 의미 있는 활동을 하다가, 2023년 여름 향년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생명, 생태, 기후위기, 동물권, 전환, 탈성장, 구성주의, 사회적 경제, 돌봄, 정동 등을 키워드로 약 40여 권의 저작을 남겼다. 대표적인 책으로는 『정동의 재발견』, 『묘한 철학』, 『가난의 서재』, 『지구살림, 철학에게 길을 묻다』, 『생태계의 도표』, 『모두의 혁명법』, 『탄소자본주의』, 『구성주의와 자율성』, 『마트가 우리에게 빼앗은 것들』 등이 있고, 함께 쓴 책으로 『탈성장을 상상하라』, 『돌봄의 시간들』 등이 있다.

이승준

독립연구자로서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안토니오 네그리, 주디스 버틀러 등을 중심으로 현대 정치 철학을 연구하고, 페미니즘, 맑스주의, 생태주의를 서로 연결시키는 대안적인 관점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생태적지혜연구소, 연구공간L 회원이며 ‘자율평론’, ‘맑스코뮤날레’ 등에 참여했다.

공저로 『비물질노동과 다중』, 『페미니즘의 고전을 찾아서』, 『포스트 코로나시대, 플랫폼자본주의와 배달노동자』가 있으며, 『자유주의자와 식인종』(스티븐 룩스), 『어셈블리』(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대항성선언』(프레시아도) 등을 공역했다.

차례

들어가는 글

1장 탈성장 사회와 구성적 협치

기후재난 시대의 도래

대안으로서의 탈성장 전환 사회

탈성장과 민주주의들

탈성장과 커먼즈 경제

탈성장을 실현하는 구성적 협치

2장 협치의 기본 구도

전 지구적 위기들과 대의정치의 민낯

거버넌스(협치)란?

협치의 기본 이해: 통치, 관치, 법치, 협치

협치의 작동 방식

공동체, 공공, 시장만으로 운영되는 거버넌스의 한계

3장 구성적 협치의 사상가들

브뤼노 라투르의 사물 정치와 공생적 협치

펠릭스 가타리의 제도 요법과 구성적 협치

네그리·하트: 다중의 어셈블리로서의 협치

도나 해러웨이의 공-산적 협치와 이야기 만들기

4장 거버넌스의 사례들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에서의 거버넌스

한국의 지속가능발전 목표의 기본 지표

녹색서울시민위원회에서의 거버넌스와 좌절의 시절

케이트 레이워스의 도넛경제학의 구도

녹색도시: 파리의 15분 도시

고베생협과 지역 생협의 위기 시 대응 방법

초대형 허리케인 윌마에 대한 쿠바의 대처

5장 기후재난에서의 자원 관리의 협치

재난 시 가용 자원의 여부

재난 시 푸드플랜과 도시농업

라이프라인이 끊겼을 때의 회복탄력성

재난 시 돌봄

재난 시 민회로서의 주민자치회의 역할

일상적 관리와 위기 시 전환의 필요성

에필로그: 구성적 협치를 통한 연합과 탈성장

참고문헌

본문 중에서

현재의 기후위기 상황에서 협치의 의제 설정과 결정권, 주도권을 시민과 다중에게 부여하고, 정부나 지자체가 그것을 제도적으로 보완・지원할 수 있다면, 협치를 정부와 관료들이 주도(우리는 그것을 ‘관치’로 이해한다)할 때 발생하는 탁상공론, 뻔한 결정, 성장 중심의 방향성, 인간중심주의, 전시 행정 등의 문제를 극복하는 실질적 생태 회복의 효과를 낳을 것이다.

⏤ 들어가는 글, 8-9쪽

기후위기는 그저 우리에게 앞으로 임박한 미래로서만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실질적이고 긴급한 사태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 2020년대의 시간은 지구 생태계와 전 인류 그리고 미래의 생명 모두의 생사가 걸린 결정적인 시기이다. 지구 생태계를 이루는 다양한 구성 요소 중 일부에서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거나 임계점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가 확인된다.

⏤ 1장 탈성장 사회와 구성적 협치, 25쪽

탈성장론은 지구 생태계 곳곳에서 위기를 증폭시키는 산업 생산 시스템, 토지·삼림·해양에 대한 개발주의적 접근, 이윤 중심의 팽창적 자본주의를 중단하고 지구에 사는 모두를 풍요롭게 하면서 더 건강한 삶을 만들어낼 수 있는 다른 형태의 삶과 경제를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즉 탈성장론은 “행복을 삶과 사회의 목적으로 삼음을 옹호”하며, “모두를 위한 좋은 삶을 건축하려는 움직임을 촉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1장 탈성장 사회와 구성적 협치, 34쪽

왜 탈성장은 민주주의, 그것도 기존의 민주주의와는 완전히 차별화되는 절대민주주의의 근거를 형성하는 것일까? 우리가 생각하기에 탈성장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터져 나오는 무수한 형태의 민주주의적 요구 및 형태들과 연결되어 있는데, 그것은 분석적으로는 다음 세 가지 형태 즉 ‘아래로부터의 절대민주주의 운동, 자율적이고 전 지구적인 민주주의의 요구, 사물민주주의와 생명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의 출현’으로 근거지을 수 있다.

―1장 탈성장 사회와 구성적 협치, 45쪽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존재 이유라고 말하지만 정작 위기가 발생했을 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전혀 지키고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바로 그 사람들에 의해 행해지는 반인권적이고 반민주적인 행태들, 사람들이 가진 욕망과 이해관계를 대의하겠다고 나서지만 정작 기득권들(자본가들과 정치적·문화적 엘리트들)의 이권을 지키는 데 모든 힘을 집중하는 대의정당들 및 그 기관들……. 우리는 바로 이러한 역설들 속에서 기후재난이라는 눈앞에 다가온 위기 상황을 이해하고 그것을 돌파할 힘을 직접적이고 참여적인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다중들 및 분자적 존재들의 아래로부터의 협동력에서 찾고자 한다.

―2장 협치의 기본 구도, 77쪽

우리는 결국 하늘 위에서 아래를 굽어보던 그 시선을 끌어내리고 다시 땅으로 귀환해 그 땅의 존재들과 마주 보거나 나란히 살을 맞대면서 우리가 위치한 그러한 공생적 구성체로서의 현실을 응시해야 한다. 우리는 초월적 시선 하에서 사물과 생명을 분류하고 구분 지으며 그것을 총괄 지배하는 초월자가 아니라 벌레, 풀, 플라스틱 물병, 마스크, 전자기기를 몸에 붙이고 다니면서 땅에 몸(발)을 붙이고 그 땅과 함께 매 순간 우리를 새롭게 조성하는 공생자이다.

―3장 구성적 협치의 사상가들, 136쪽

제도(institution)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것이 떠오르나? 법 제도, 행정 제도, 사법 제도, 형벌 제도 등 등골이 오싹할 만한 단어들이 줄줄 나온다. 이처럼 제도라는 개념은 딱딱하게 정체화되고 있고 규범화된 것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펠릭스 가타리는 ‘제도=관계망’이라고 말한다.

―3장 구성적 협치의 사상가들, 146쪽

해러웨이는 우리가 현재의 위기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트러블을 겪는 위태로운 존재들과 함께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낼 ‘이야기 만들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녀가 자신의 철학적 저서들에서 서슴없이 여러 SF를 만들어낼 때, 그것은 같은 말 속에서 여러 의미를 변주시키는 예술 실천이다.

―3장 구성적 협치의 사상가들, 215쪽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이하 SDGs)>는 기후위기와 제3세계 기아와 빈곤, 여성 인권, 성평등 등을 망라하는 명실공히 가장 큰 국제 정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인류와 지구의 지속가능한 번영’이라는 기치 아래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는 선에서 최소한의 탄소 배출을 용인하는 방식으로 개발 원조를 통한 제3세계 모델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제1세계의 목표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이다.

―4장 거버넌스의 사례들, 225쪽

당연하게도 민주적 역량은 민주적인 인식과 태도를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낼 때 길러지는 것이며, 그러한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의 소수자들과 연대하면서도 어떠한 편견이나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그 누구와도 수평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들이다. 이러한 존재들을 만들어내는 일이 오늘날 시급하다.

―5장 기후재난에서의 자원 관리의 협치, 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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