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략 소개

정미형 작가의 소설집 당신의 일곱 개 가방에는 반복되고 빛나고 스러지는 바닷가 파도의 포말과 같은 인생들의, 그림자와 닮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소설이 <한국소설>을 통해 발표된 이후, 작가는 다수의 단편을 꾸준히 써왔고, 8편의 작품을 모아 첫 소설집을 내었다. 이 소설 가운데 대부분은 떠나는 자들이거나 혹은 어딘가를 거쳐 온 이들의 이야기였다. 마치 거품을 남기고 물러나는 파도였을까, 작가는 그 파도가 휩쓸고 간 헛헛하게 남은 자국에서 조개껍데기를 줍듯 문장을 고르고 인물들을 매만져보았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뒤이어 갈 수 있을까, 반문한다.


 

■ 출판사 서평


정미형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은, 거미줄에 매달리듯 힘겹게 살고 있는 사람들, 파도치는 바닷가의 흩어지는 포말처럼 한 순간 부서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폐 속의 공기만큼이나 소중한 밀도로 그 사람들을 숨쉬게 한다. “인생의 짧은 순간을 이어서 연대기를 쓰듯 관통하다 보면, 마지막에 무엇이 남을까 생각하다 보니, ‘이야기’가 있었다” 한다. 앞서 간 사람들은 다음에 올 무수한 사람들에게 삶의 마지막에 위트와 윙크를 보내주는 것, 그것이 작가가 이 소설들에 담은 정서(무드)이자 태도이다. 
정미형 작가는 특이하거나 극한의 상황에 처한 보잘것없는 존재가 그 상황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처절한 모습을 그리는 작품들을 쓴다. 예를 들어「초록 아보카도가 있던 방」에서 ‘나’는 눈에 파묻힌 공간 속 재앙의 한가운데에서 떠나려고 하는 자이다. 기억나지 않는 자신의 어린 시절 집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닿을 수 없는 곳에 이르고자 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나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회색 벽」에서는 이혼한 여자가 남에게 뒤처지고 혼자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부동산의 가치를 좇아 어느 낯선 시골의 땅을 보러 왔다가 창고 속에 갇히게 되는 불운을 이야기한다. 「자장가를 불러주세요」에는 취업에 번번이 실패하고 삶의 방향성을 잃은 남편을 대신해 일을 하고 있는 여자의 고단함도 들어 있다. 작가는 그들 모두 어쩌면 모두 낡은 벽 속에서 소리 낮춰서 중얼거리고 신음소리를 내는 것 같다고 한다. 깊은 밤 잠 못 드는 인물들 같아, 스스로도 자신에게 주어진 억압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작품들 속의 인물들은 어떻게 헤쳐 나갈까? 작가는 「당신의 일곱 개 가방」 속 어머니의 입을 빌려, “누구나 태어날 때 가방을 하나 가지고 오지. 자기가 태어날 때 가지고 온 가방에 뭐가 들었는지 아는 사람이 세상 떠날 때도 마음이 편한 거다.”라고 한다. 인생은 조금씩 시작이 다르고 그 궤적도 다르게 흘러간다. 그렇다고 운명론자는 아니다. 하지만 무엇을 지향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생의 문제가 다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하지만, 작가는 말하고자 한다. 그렇게 헤쳐 나가고 몸부림치는 순간이 그래도 깨어 있는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점이다. 생은 결국 실패할 뿐이라 말할 수도 있고, 싸워 이겨나가는 것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작가는 궁극적으로 삶은 매일매일 쌓아올리고 그리고 무너지는 것임이 자명하다고 본다. 그 인물들의 삶에서 다 말하지 못한 이야기, 시간을 놓친 이야기는 작가의 몫이다. 덧붙이면, 작가가 그린 인물들은 어쩌면 물처럼 형태만 바뀌지 본질은 바뀌지 않는 환원적 인물들임을 말하고자 한다. 


  작품 소개

『당신의 일곱 개 가방』에는 표제작을 포함해 모두 8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다. 작가가 말하듯, 대체로 인물들은 모호한 공간 속에서 떠나와 어딘가 모를 곳으로 걸어 나가는 이들이 많다. 이곳을 떠나는 이들과 지나간 과거에서 돌아오는 이들이 모여 작가의 소설 속 공간과 시간을 짜놓았다. 작가는 폐 속의 공기만큼이나 소중한 밀도로 그 사람들을 숨쉬게 한다. 이 소설집은 오직 그들이 왔다 간 것을 기록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당신의 일곱 개 가방」은 병환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간호하며, 그 어머니의 젊은 시절 꽃피던 이야기를 소환한다. 어머니의 삶의 조각들은 평소에 쓰던 일곱 개의 가방에 담겨 있다. 악어가죽 가방, 구슬 가방, 은색 가방 등등이다. 생의 한가운데에서 각각의 사연을 담았던 이 가방들은 어머니의 삶의 편린이 되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항상 신기한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칠순의 어머니에게는 일곱 개의 가방이, 일흔 개 혹은 칠백칠십칠 개의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병환으로 쓰러진 이후 어머니는 오줌 가방(주머니)을 차게 되고, 경사침대에 묶여 재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어머니가 누워 있는 모습은, 우주비행사의 가방과 거기에 매달린 은색 끈을 가지고 몸을 단단히 매고 있는 우주정거장 같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내게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주복을 입은 우주인의 등에는 무엇인가 들어 있는 가방이 있고 우주인은 그 가방에서 긴 끈을 늘어뜨리고 우주 밖으로 뻗어나간다. 그러고는 영원히 손닿지 않을 곳으로 떠돌아다닌다는 것이다. 나는 소리 내어 울고 어머니는 놀래켜 준 것이 미안한 듯 그랬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어디 멀리 가냐?”라고. 앞서 간 사람들이 다음에 올 무수한 사람들에게 삶의 마지막에 위트와 윙크를 보내주는 것과 같은 정서가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것이다.  
「초록 아보카도가 있던 방」에서 ‘나’는 눈에 파묻힌 공간 속 재앙의 한가운데에서 떠나려고 하는 자이다. 기억나지 않는 자신의 어린 시절 집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닿을 수 없는 곳에 이르고자 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나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폭설이 재앙처럼 한 달 가까이 내려, 사방천지가 죽음 같은 눈에 파묻혀 있다. 아버지의 사설 도서관을 물려받아 운영하는 도서관장인 ‘나’는 이곳을 탈출하려 하고, 식당일을 하는 ‘마재순’은 결코 이곳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겨우 구호물품에 의지해 연명해 가지만, 폭설과 겨울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호물품인 초록 아보카도처럼 이곳은 ‘나’의 지향해야 할 삶의 공간과 시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직원인 ‘마재순’에게 이곳은 첫 직장이자 떠날 수 없는 삶의 공간이 되었다. 결국 ‘나’는 옛 연인의 도움으로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초록 아보카도가 자줏빛으로 익어 가는 이곳을 떠올리며 아쉬움과 회한에 젖는다. 하지만 도서관의 책들을 한 권씩 한 권씩 읽는 재미에 빠져 있던 마재순의 독백을 통해, ‘나’의 탈출은 결국 착각이라는 게 드러난다. 탈출을 위한 설상차도 없었고, 옛 연인은 그녀의 탈출을 돕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눈 터널 사이로 난 산책길을 다녀왔을 뿐이었다. 마재순의 생각에, 그 모든 것이 다 밤에 읽는 이 책들 덕분이라는 것이고, 아침에 일어나면 관장에게 말하리라 다짐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소설의 도입부와 결말부의 서사와 관점이 다르면서, 누가 환상에 빠져 있는지 누가 실상을 살고 있는지 모르는 채로 말이다. 
「불의 하루」는 자신의 집요한 생의 의미, 즉 불의 연구를 하기 위해 사는 가난한 남편과 그 아내의 이야기이다. 조금은 부조리한 상황에서 오직 하나의 가치관에 매여 서로가 자신의 앞만 보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파이프」는 오랜 시간 알아도 그 사람의 진실된 내면의 소리를 알아차릴 수 없는 삶의 모순을, 죽은 친구가 다시 돌아와 내게 말을 거는 식으로 썼다. 친구인 ‘나’와 ‘너’는 같이 자라고 같이 공부했던 사이지만, 커서는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았다. ‘너’는 사업에 실패한 남편 때문에 생활이 아주 곤란했고, 급기야 병에 걸렸다. 급성 뇌혈관 부종.
나는 너의 머릿속을 가로질러 가는 무수한 파이프를 떠올렸다. 파이프 속으로 말들이 떠다니고 기억들이 내밀한 공간을 건너가며 번갯불처럼 번쩍이다가 조각조각 사라져 버린 것을. 어쩌면 네가 말한 그 파이프의 물소리를 듣는 낯선 여자는 바로 너의 모습 아니었을까? 
‘너’의 머릿속의 파이프 속으로는 더 이상 말들이 떠다니지 않는다. 기억들은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너’는 죽고 난 후에, ‘나’에게 찾아온다. ‘너’는 죽기 전에 부동산 중개인을 했던 까닭인지, ‘나’에게 살 집을 구해 달라고 하였다. 무미무취이면 좋겠다 한다. 하지만, 사람 사는 집들은 다 똑같다. ‘너’가 구하는 무미무취의 아파트는 아마 찾아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너’는 이미 네가 한 번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너는 부동산 사무소가 늘어서 있는 상가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지만, ‘너’가 찾는 무미무취의 집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너는 다시 나를 찾아왔고, 나는 집 하나를 골라 두었다. 이곳 아파트 파이프 속에 너의 작은 방을 마련해 둔 것이다. 
급성 뇌혈관 부종, 즉 뇌의 혈관을 다니는 통로가 막혀 버린 병으로 죽게 된 친구는, 신산스러운 삶에 부대끼다 세상을 떠났지만 다시 세상에 나오고 싶은 친구는, 결국 ‘나’의 아파트 파이프 속에 안식처를 갖게 될 것이다. 아파트 파이프는 막혀 버린 뇌 혈관과는 다르게 네가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을 거고, 어쩌면 너는 나보다 더 오래 이곳을 드나들며 살게 될 거다.
「회색 벽」는 이혼한 여자가 남에게 뒤처지고 혼자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부동산의 가치를 좇아 어느 낯선 시골의 땅을 보러 왔다가 창고 속에 갇히게 되는 불운을 이야기한다. 
「자장가를 불러주세요」는 취업에 번번이 실패하고 삶의 방향성을 잃은 남편을 대신해 일을 하고 있는 여자의 고단함이 들어 있다. 어쩐지 그들 모두 낡은 벽 속에서 소리 낮춰서 중얼거리고 신음소리를 내기도 한다. 

 

 

 

 

■ 저자 소개

   
정미형
 
1963년 진해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
부산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2009한국소설당신의 일곱 개 가방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계간 작가와사회, 좋은소설등에 다수의 단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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