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트러블』이 젠더와 퀴어 이론의 이정표였다면, 이 책은 그 탐구 방식을 확장해 우리의 통념을 뒤흔든다. 현재 퀴어 이론의 모든 관심사를 관통하는, 없어서는 안 될 필독서다.”
—《아트포럼(Artforum)》
“성별화(sexing)의 함의와 한계, 그리고 그 작동 기제를 놀라울 정도로 예리하게 파헤친다. 당면한 사회적 문제들을 다루는 가장 중요하고 도발적인 저작이다.”
—《보스턴 북 리뷰》
그는 ‘자연적인 몸’이라는 통념을 무너뜨리고, 몸의 물질성을 권력, 규범, 무의식, 정체화의 접합 지점으로 재구축함으로써, 섹스를 자연으로 젠더를 문화로 구별하는 이분법의 허구를 폭로, 비판하고 몸, 성 그리고 젠더의 질서를 급진적으로 사유한다.
― 김은주(철학 연구자), 해제 중에서
분야 : 인문학 > 철학
정치/사회 > 사회학 > 젠더, 퀴어
도서 개요
어떤 몸은 삶이 되고, 어떤 몸은 지워지는가.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의 필독서.
『중요한 몸』은 『젠더 트러블』 이후 제기된 “물질적 몸은 어디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버틀러의 가장 정교한 응답이다. 물질(matter)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규범의 반복과 인용을 통해 끊임없이 형성되는 물질화의 과정이다. 몸은 ‘사실’의 영역이 아니라, 치열한 ‘정치’의 현장이다. 지금, 여기, 당신의 몸은 ‘중요한(matter)’ 몸인가?
이 책은 출간 즉시 학계와 평단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비평가들은 버틀러가 전작의 한계를 넘어 ‘물질성’을 권력에 의해 형성되는 ‘물질화의 과정’으로 재정의했다는 점, 그리고 논의의 지평을 젠더에서 인종과 퀴어 정치학으로 확장했다는 점에 찬사를 보냈다.
버틀러는 성의 물질화 과정에서 작동하는 담론적 수행성을 통해, 몸의 물질성을 사유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 이 책을 통해, 버틀러는 시몬 드 보부아르와 급진 페미니즘이 고수했던 ‘섹스/젠더’의 이분법을 해체한다고 평가받는다. 따라서 『젠더 트러블』이 젠더와 퀴어 이론의 이정표였다면, 『중요한 몸』은 그 탐구 방식을 확장해 우리의 통념을 뒤흔든다. 현재 퀴어 이론의 모든 관심사를 관통하는, 없어서는 안 될 필독서다.
이 책은 2003년에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된 바 있다. 번역자와 알렙 출판사는, 이 제목이 몸(특히 여성의 몸)에서 의미를 분리시킨 뒤, 의미를 몸과는 다르다고 간주된 요소들(소유 형태나 지정학적 위치 등)에 특권적으로 부여하고자 했던 당시의 한국 상황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이전 책의 제목은 여성은 여성으로 호명되기에 앞서 어떤 특정한 형태(즉 의미가 체현된)의 몸이기에 몸은 의미와 분리될 수 없고 따라서 문제가 되는 바로 그 몸이 정치가 펼쳐지는 현장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다.
23년이 지난 지금, 그 말(몸은 의미를 체현하고 있다)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한계도 있음은 분명하다. 번역자 이승준은 주디스 버틀러의 입장에서는 ‘의미를 체현하지 못한 육체’가 ‘의미의 장에 진입한 몸’보다 더 중요시된다/문제된다(기존의 규범과 의미를 흔들리게 하고 변경을 불가피하게 만들기 때문에)고 보았기에, 이제는 이 지워지고 삭제된 비체적 존재들을 떠올릴 다른 제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체적 존재들 즉 ‘의미를 체현하지 못한 육체’는 ‘여성’이라는 기표를 뛰어넘어 ‘퀴어’, ‘소수자’, ‘버려진 자들’, ‘이주민’, ‘비주체적 존재’를 포괄한다. 그 몸들은 파시즘의 기운이 전 세계를 휘어 감고 있는 2026년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몸들이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책의 제목을 중요한 몸으로 다시 번역하게 된 가장 주요한 이유일 것이다.
철학 연구자 김은주는 「해제」에서, “그는 ‘자연적인 몸’이라는 통념을 무너뜨리고, 몸의 물질성을 권력, 규범, 무의식, 정체화의 접합 지점으로 재구축함으로써, 섹스를 자연으로 젠더를 문화로 구별하는 이분법의 허구를 폭로, 비판하고 몸, 성 그리고 젠더의 질서를 급진적으로 사유한다.”며 이 책의 중요성을 알린다.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에서 단연코 고전! 『중요한 몸』
어떤 신체가 물질/문제로 다가오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젠더 트러블』에서 버틀러는 젠더라는 용어에 관해 질문한다. 버틀러에 따르면 젠더는 페미니즘 정치에 제일 중요한 추동력이자 다양한 관점이 경쟁하는 장이다. 버틀러가 강조하고자 한 바는 강제적 이성애를 근간으로 하는 젠더 이분법으로 말미암아 이로부터 벗어난 존재로 자신의 젠더를 감지한 사람들이 감추어지고 이들은 비정상으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의 정체성은 모두 이성애의 방식으로만 해석되면서 차별과 폭력이 생겨난다.
그렇다면 성에 대한 버틀러의 견해는 어떠한 것인가? 『젠더 트러블』에서 버틀러는 성 역시도, 실상 젠더와 구별될 수 없는 것이며, 성은 젠더만큼이나 문화적으로 구성된다고 설명한다. 성에 관한 이와 같은 설명은 이후 성과 관련된 몸과 물질을 둘러싼 수많은 질문을 야기했으며, 그로부터 3년 뒤, 성, 몸, 물질에 관한 논의를 주요하게 다룬 『중요한 몸』이 출간된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페미니스트”이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젠더 철학자”인 주디스 버틀러는 젠더 수행성, 패러디, 드랙 등의 개념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이 책 『중요한 몸』에서 “신체를 ‘성별화된 것’으로 물질화하는 그러한 제약들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성이라는 ‘물질’ 좀 더 일반적으로는 신체라는 ‘물질’을, 문화적 인식 가능성의 한계를, 반복적이면서도 폭력적으로 설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어떤 신체가 물질/문제로 다가오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젠더 트러블』 이후 제기된 비판, “그렇다면 물질적 몸은 어디 있는가?”에 대한 응답으로 쓰인 『중요한 몸』은 몸을 담론의 산물이 아니라, 규범을 통해 ‘물질화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시간이 걸려 행해지면서 안정적인 것이 되어가는 물질화로서 물질은 몸으로 구현되며, 어떤 몸을 의미 있는 것으로 인정하게 한다. 이는 책의 제목인 Bodies That Matter에서 ‘matter’의 두 의미를 통해 강조된다. 버틀러는 ‘matter’가 지닌 물질(matter)라는 의미와 중요함, 가치 있음(to matter)의 이 두 의미를 연결한다. 이로써, “‘중요하다는 것(to matter)’은 ‘물질화’한다는 것(to materialize)’과 ‘의미 있다는 것(to mean)’을 동시에 의미”(81쪽)하면서, 『중요한 몸』은 몸을 물질화 과정이자 가치 있는 물질, 중요한 물질로서 탐구한다.
버틀러에게 몸의 물질성은 자연적 사실이 아니라 권력에 의해 시간을 거치면서 안정화된 효과이자, 어떤 몸이 ‘삶’으로 인정되는가를 둘러싼 정치의 핵심 문제이다. “‘어떤 몸은 왜 ‘중요한 몸’이 되고, 어떤 몸은 왜 배제되거나 비가시화되는가”라는 질문에서 알 수 있듯, 몸의 인식 가능성은 사회적 가독성과 정상성의 범주에 따른다. 『중요한 몸』은 그 인식 가능성을 어떤 몸들이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연결한다.
『중요한 몸』은 몸의 존재론을 해명하려는 글이 아니다. 이 책은, 존재론 자체가 권력에 의해 배분되는 그 방식을 교란하기 위한 철학적 수행이나 정치적 개입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주디스 버틀러의 핵심 이론 :
물질화(Materialization), 비체(Abject), 수행성(Performativity)
‘정상적인 몸’이라는 개념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이는 반드시 정상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하는 비정상적이고, 읽어낼 수 없으며, 말해질 수 없는 몸들을 배제함으로써 성립한다. 비체(Abject)란 주체의 지위를 얻지 못한 채, 정상적 주체 영역의 경계선 밖으로 밀려난 존재들이다. 버틀러는, 이 배제된 영역이 단순히 정상의 ‘반대말’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들은 정상성(인식 가능성)의 외부에 유령처럼 들러붙어, 역설적으로 정상성이 무엇인지를 정의해 주는 ‘구성적 외부’ 역할을 한다. 즉, 규범은 자신이 배제한 것에 의존해서만 유지된다.
버틀러는 몸을 문화가 덧입혀지기 전의 ‘백지’ 상태로 보지 않는다. 몸은 이미 규범이 관통한 물질성의 형식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몸의 ‘물질’은 태초의 사실이 아니라, 권력의 역동적인 작용이 시간을 두고 굳어진(퇴적된) 효과이다. 이를 물질화(Materialization)라 한다.
여기서 규범은 또한 단순한 도덕이 아니다. 누가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어떤 몸이 ‘정상’이고 어떤 몸이 ‘기형’인지, 어떤 성(gender)이 ‘가능한’ 것인지를 결정하는 강력한 힘이다.
이러한 물질화 과정은 반복적인 수행성을 통해 작동한다. 수행성이란, 주체가 의도를 가지고 연기하거나 흉내 내는 것이 아니다. 이는 법과 규범이 요구하는 바를 끊임없이 인용하고 반복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이미 주어진 담론(법, 규범)을 인용하듯 반복함으로써, 그 담론이 규제하는 현실을 계속해서 재생산해 낸다. 즉, ‘나’라는 존재의 형성은 권력과의 공모(인용)를 통해 이루어진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 반복이 결코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질화는 불완전성과 재물질화의 과정에 열려 있다.” 수행성이란 규범을 끊임없이 반복해야만 유지되는 것이기에, 그 반복의 과정에서 틈이 생기거나 규범에 완전히 순응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발생한다. 바로 이 불완전성이 고정된 규범을 흔들고, 몸을 다르게 ‘재물질화’할 수 있는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성은 사회적 구축물이다.
주체는 어떻게 자신의 성을 갖는가?
주디스 버틀러는 ‘성(Sex)’이 자연적인 생물학적 사실이 아니라, 몸을 만들어내는 강력한 규범이자 사회적 구축물로 본다. 나아가 이 규범이 어떻게 개인의 내면(자아)과 신체 감각(몸 도식)을 형성하는지 연결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성을 성기(페니스나 자궁)의 유무로 결정되는 해부학적 사실로 여긴다. 그러나 버틀러는 이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성은 있는 그대로의 육체적 진실이 아니고, 시간을 통해 강제적으로 물질화된 이상(ideal)으로 보는 것이다.
성은 몸이라는 물질이 나타나는 ‘형식’ 전체를 관리하고 정상화하는 틀이다. 즉, 몸은 ‘성별화된 몸(sexed body)’이라는 코드를 통과해서만 비로소 사회적으로 인식될 수 있다.
이러한 성의 구축 과정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이성애 중심적 질서(Heterosexual Imperative)를 따른다. 이 강제적인 성 규범은 두 개의 성(남/여)만을 정상으로 승인하고, 나머지는 배제한다. 버틀러는 간성(Intersex)의 예를 드는데, 간성 아동의 성기를 수술을 통해 억지로 남성이나 여성 중 하나로 ‘정리’하려는 의료적 관행은, 성이 자연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강요와 정상화의 논리’임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이다.
그렇다면, 주체는 자신의 성을 어떻게 갖게 될까? 성의 떠맡음(Assuming)은 쇼핑하듯 성을 고르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이미 존재하는 성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성적 규범이 호명하는 대로 수행하고 반응할 때 비로소 ‘주체’가 된다. 이 과정은 이성애적 규범이 허락하는 성 정체성만을 승인하며, 다른 가능성은 구조적으로 거부한다.
버틀러는 성 규범이 자아를 형성하는 방식과 과정에 개입함을 밝힌다. 성 규범은 단순히 몸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가 내 몸을 느끼는 방식(감각)과 자아 형성에도 깊숙이 개입한다. 성은 성감대, 제스처, 걸음걸이 등 몸의 경계를 어떻게 그리고, 감각을 어떻게 분배할지를 규정하는 ‘몸 도식(Body Schema)’과 얽혀 있다. 그리고 버틀러는 프로이트와 라캉을 인용하며, 자아는 외부의 이미지(규범적 신체상)에 애착을 느끼고 이를 무의식적으로 ‘동화(assimilation)’함으로써 형성된다고 본다. 즉, ‘나’라는 존재는 성적 규범이 배치해 놓은 몸의 형태학 위에서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몸은 단순한 ‘옷걸이’가 아니다
버틀러는 『젠더 트러블』에서 “젠더는 수행(연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중요한 몸』에서는 몸의 물질화(materialization)라는 개념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흔히 “몸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생물학적인 것(자연)이고, 그 위에 사회적인 성 역할(문화)을 옷처럼 입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버틀러는 아니라고 말니다. 몸과 마음, 사회적 규칙, 그리고 나의 정체성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꽉 얽혀 있다. 우리의 정신은 몸과 따로 떨어진 유령 같은 존재가 아니다. 몸이 자라고 감각을 익히는 과정에서 정신도 함께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남자는 이래야 해, 여자는 저래야 해”라는 사회적 규칙(이성애 규범)이 무의식적으로 우리 몸에 스며든다.
다시 말해, 몸은 문화라는 옷을 걸치기 위해 기다리는 수동적인 옷걸이가 아니다. 몸은 처음부터 사회적 권력과 규칙, 무의식이 복잡하게 얽혀서 만들어진 역동적인 현장이다. 따라서 우리가 남성이나 여성이라는 성별(sex)을 갖게 되는 과정은, 단순히 신체적 특징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주체로 태어나는 과정과 똑같다.
“그래도 몸은 물질이잖아?”: 새로운 철학자들의 반론
하지만 버틀러가 “몸은 사회적 의미로 꽉 차 있다”고 너무 강조하다 보니, 반대로 “그럼 몸 자체의 생생한 생명력은 어디 갔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신유물론(New Materialism) 철학자들의 질문이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성적 구별로 포획되지 않는 몸의 긍정적 잠재성과 활력을 강조하며, 차이를 존재론적 역량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캐런 바라드 또한 버틀러가 ‘담론이 물질이 되는 방식’은 탁월하게 분석했으나, ‘물질 그 자체가 어떻게 물질이 되는지’에 대한 설명, 그리고 인간 너머 비인간 신체들의 행위성을 해명하는 데에는 한계를 보였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버틀러가 인간이 아닌 존재(자연, 사물)의 힘을 간과했고, 여전히 인간 중심적인 ‘문화’ 쪽에 치우쳐 있다고 지적한다. 버틀러 역시 ‘자연 vs 문화’라는 오래된 이분법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의심을 받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틀러가 중요한 이유
버틀러는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왔던 ‘자연적인 몸’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버틀러 이전에는 “섹스(Sex)는 변하지 않는 자연이고, 젠더(Gender)는 변하는 문화다”라고 구분했다. 하지만 버틀러는 “섹스(자연)조차도 이미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다”라고 폭로하며 이분법을 무너뜨렸다.
그녀는 몸을 단순히 ‘타고난 것’으로 보던 시각을 뒤집어, 몸을 정치와 권력이 작동하는 장소로 재정의했다. 덕분에 우리는 ‘정상적인 몸’이라는 잣대로 사람을 차별하던 질서에 저항하고, 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중받을 수 있는 길을 열게 되었다. 버틀러의 철학은 우리 삶을 더 넓은 가능성으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요한(matter)’ 의미를 가진다.
『중요한 몸』의 궤적
‘물질화된 몸’을 둘러싼 권력과 배제의 정치학을 다시 쓰다
이 책은 플라톤의 철학부터 현대의 퀴어 영화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텍스트들을 횡단한다. 버틀러는 플라톤의 『티마이오스』,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학, 넬라 라슨의 소설 『패싱』, 그리고 다큐멘터리 「파리는 불타고 있다」 등을 분석하며, 이질적인 글쓰기의 전통 속에서 자신만의 논리를 구축해 나간다.
현대 페미니즘 철학의 가장 논쟁적인 사상가인 버틀러는 이 책을 통해 전작 『젠더 트러블』의 논의를 한 단계 더 확장한다. 핵심은 ‘수행성(performativity)’을 넘어선 ‘몸의 물질화(materialization)’이다.
몸은 자연이 아니라 ‘구성’된 것이다.
우리는 흔히 ‘성(sex)’은 생물학적이고 자연적인 것이며, 그 위에 사회적 ‘젠더(gender)’가 입혀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버틀러는 이 통념을 거부한다. 그녀는 우리가 ‘자연’이라고 믿는 신체의 물질성(materiality)조차 사실은 규범과 권력의 끊임없는 작용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폭로한다. 즉, 몸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권력 관계 속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굳어진(물질화된) 현장이라는 것이다.
철학적 계보: 몸의 윤곽을 만드는 권력
버틀러는 1부에서 플라톤의 ‘코라(chora)’ 개념을 재해석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푸코, 이리가레를 경유한 이 독해에서, 코라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물질성과 여성성이 교차하며 형체를 부여받는 시원적 장소로 드러난다. 또한, 「레즈비언 남근」 장에서는 ‘이성애 규범’이 어떻게 우리 몸의 경계를 획정하는지 분석한다. 이성애적 질서는 끊임없이 몸을 규정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균열과 동요가 발생한다. 버틀러는 이를 통해 신체가 차별적인 성 범주에 의해 구성되는 ‘계보학적 현장’임을 입증한다.
교차성: 젠더와 인종은 함께 작동한다
버틀러의 시선은 성(sex)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녀는 5, 6장에서 넬라 라슨과 윌라 캐더의 소설을 분석하며, 성적 규제와 인종적 규제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포착한다. 인종주의, 동성애 혐오, 여성 혐오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인종적 경계는 성적 위반을 막는 도구가 되고, 성적 규범은 인종 차별을 강화하는 기제가 된다. 버틀러는 이 모든 억압을 하나의 거대 이론으로 환원하려는 태도(인식론적 제국주의)를 경계하며, 텍스트가 현실을 완벽히 담아내지 못하고 실패하는 지점에서 오히려 새로운 정치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역설한다.
정신분석학과의 대결: ‘수행성’의 정치적 확장
책의 후반부에서 버틀러는 슬라보예 지젝 및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치열하게 대결한다. 지젝이 성적 갈등을 고정불변의 ‘실재계(The Real)’의 트라우마로 보았다면, 버틀러는 이를 비판한다. 그녀에게 상징계(법, 언어, 규범)는 고정된 구조가 아니라 반복을 통해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수행성’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인용(citation)’과 ‘재의미화(resignification)’의 과정으로 재정의된다. 권력이 몸을 통제하려 할 때 발생하는 틈새와 실패들은, 기존 규범을 비틀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정치적 가능성의 공간이 된다.
결론: ‘살 만한 삶’을 향한 급진적 민주주의
이 복잡한 이론적 작업의 끝은 구체적인 실천을 향해 있다. 마지막 장에서 버틀러는 ‘퀴어함(queerness)’을 공표하는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혐오받던 존재들(비체, abject)이 불복종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는 과정, 이것이 바로 급진적인 ‘재의미화’이다. 이는 단순한 저항을 넘어, 에이즈 환자나 성소수자처럼 ‘살 수 없는 삶’으로 취급받던 이들이 슬픔과 열망을 공유하며 서로를 ‘소중한(matter) 몸’으로 인정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작업이다. 결국 버틀러는 푸코의 권력 이론과 정신분석학을 결합하여, 배제된 존재들을 정치적 주체로 되살려낸다. 이 책은 혐오를 넘어 더 많은 삶이 ‘살 만한 삶’으로 인정받는 확장된 민주주의를 모색하는,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하고도 ‘물질적인(matter)’ 지적 도전이라 할 수 있다.
지은이 주디스 버틀러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1955년 2월 24일 ~ )는 미국의 철학자이자 젠더 이론가로, 그의 저작은 정치 철학, 윤리학, 여성주의, 퀴어 이론, 문학 이론에 영향을 주었다. 1993년부터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현재 수사학과와 비교문학과의 맥신 엘리엇 교수(Maxine Elliot Professor)이자 수사학과 학장이다.
학문적으로 버틀러는 젠더에 대한 인식에 도전하고 젠더 수행성 이론을 발전시킨 것으로 잘 알려졌으며, 이 이론은 현재 여성, 퀴어 연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녀의 저작은 젠더 연구와 언어에서의 수행성을 강조하기 위해 종종 영화 연구에서도 활용된다. 또한 성소수자 권리 운동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다수의 정치적인 문제에 대하여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버틀러의 저작은 여성주의, 퀴어 이론, 대륙 철학에 영향을 주었다. 정신분석학, 문학, 영화, 퍼포먼스 연구, 비주얼 아트 등 다른 학문 분야에 대한 기여 또한 상당하다. 젠더 수행성에 대한 버틀러의 이론은 학계에서 젠더와 퀴어 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다양한 종류의 정치적 활동, 특히 퀴어 운동을 형성시켰다. 또한 버틀러의 저작은 젠더 교육, 게이 육아, 트랜스젠더 비병리화에 대한 현대적 논쟁을 다룬다.
『젠더 트러블(Gender Trouble)』(1990), 『중요한 몸(Bodies That Matter)』(1993), 『혐오발언(Exitable Speech)』(1997), 『권력의 정신적 삶(The Psychic Life of Power)』(1997), 『젠더 허물기(Undoing Gender)』(2003), 『불확실한 삶: 애도와 폭력의 권력들(Precarious Life: The Powers of Mourning and Violence)』(2004), 『윤리적 폭력 비판: 자기 자신을 설명하기(Giving an Account of Oneself)』(2005)를 포함해 여러 저작을 집필했다.
옮긴이 이승준
독립 연구자로서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안토니오 네그리, 주디스 버틀러 등을 중심으로 현대 정치 철학을 연구하고,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생태주의를 서로 연결시키는 대안적인 관점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생태적지혜연구소, 연구공간L 회원이며 ‘자율평론’, ‘맑스코뮤날레’ 등에 참여했다.
공저로 『기후 협치』, 『비물질노동과 다중』, 『페미니즘의 고전을 찾아서』, 『포스트 코로나시대, 플랫폼 자본주의와 배달노동자』가 있으며, 『자유주의자와 식인종』(스티븐 룩스), 『어셈블리』(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대항성 선언』(프레시아도) 등을 공역했다.
감수 및 해제 김은주
철학 연구자,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에서 헤겔 연구로 석사 학위를 들뢰즈와 브라이도티 비교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페미니즘 철학입문』, 『여성-되기: 들뢰즈의 행동학과 페미니즘』,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함께 쓴 책으로는 『인지와 인공지능』, 『출렁이는 시간(들): 제4물결 페미니즘과 한국의 동시대 페미니즘』, 『디지털 폴리스』, 『디지털 폴리스휴먼의 조건』이 있다. 『죽음정치: 증오의 정치에 관하여』, 『변신-되기의 유물론을 향해』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