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마다 몇 시간씩 들여다보는 곳이 생겼습니다. 알라딘 북펀드 창인데, 또 여기를 기웃대다 보니 눈에 띄는 책 1권이 있었죠. 『사명을 찾아서』. “책 읽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책은 왜 자꾸 나오고, 출판사는 왜 자꾸 생기는 걸까?”라는 카피를 달고 있습니다. 이 질문은 나에겐 오래된 것입니다. 그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얻은 게 15년 전, 이맘때였습니다.
2010년의 한 해 전, 그러니까 2009년의 일입니다. 직장 생활을 끝낼까 연장할까 고민하면서, 출판사라는 직장과 출판인으로서의 직업에 대해, 머리 쥐어뜯던 시절. 만일 내가 출판사를 창업한다면 어떤 이름을 지을까, 행복한 공상을 했었습니다. 바불곳(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먼저 떠올랐죠. 출판의 새바람을 일으키자라는 모토. 천개의 고원은 어떤가요. 책 하나하나는 내가 등정해야 할 고원이라는 의미이죠. 들뢰즈와 가타리의 책이 고이 내 책상 앞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난 것이, 아하, 그랬었지, 였습니다.
나는 과거의 일이지만, 한때 보르헤스 전집의 4,5권을 책임 편집했습니다. 좀 지나서는, 보르헤스 탄생 100년 특집을 문예지에서 다루는 일을 맡아 했습니다. 동시에 시집도 기획했습니다. 더 지나서는, 보르헤스가 기획하고 작품을 선별했다는 보르헤스판 세계문학전집을 번역하는 일도 주도했죠. 그리고 이름, 즉 사명을 생각하는 그 즈음에 내 책장 한켠에 보르헤스 전집 1,2,3,4,5권이 자리해 있었습니다.
이름을 짓는 건 순간이고 우연입니다. 짓고 나서 생각하니, 모든 게 필연입니다. ‘알렙’이란 이름이 무척 마음에 드는 건, 이 이름이 발음하기도 어렵고 설명하기도 어렵고 결코 만만치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출판사명을 짓고 나니, 출판등록증을 얻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2009년 11월 중순에 나는 출판사 등록을 신청했고, 11월 19일에 출판사 신고필증이 나왔습니다. 그 후, 이 날짜를 기억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사람인 나는, 딱히 그 날짜에 맞출 이유도 필요도 없었던 어떤 책이든, 11월에 나오는 책이면 발행일을 11월 19일로 맞추곤 했습니다.
서두에 나는 [알라딘 북펀드]에 매일 몇 시간씩 머문다고 했는데, 맞습니다. 알렙에서도 [알라딘 북펀드]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발행일을 11월 19일로 맞추려고 하는 책.
내가 태어난 해에 출판된 책. 나오자마자 금서로 탄압받은 책.
한국에서는 『수탈된 대지』로 알려졌던 책.
영어 중역이었고 시대의 한계로 오류를 잔뜩 품은 책.
이제는 절판된 책.
2021년을 맞아 스페인어권 최대 출판사인 21세기 출판사에서 스페셜 에디션으로 다시 출판한 책.
“나는 역사를 쓰지 않았다. 현실이 그렇게 쓰여 있었다.”라는 멋진 말을 아무렇게나 쏟아내는 남자,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책입니다.
소소한 목표로 북펀드를 시작했고, 책의 탄생을 미리 알리고자 이렇게 사연팔이(사명 팔이?) 홍보성 글을 올립니다.
나만큼 나이 먹은 책을 이제야 한국에 제대로 소개한다는 자랑도 섞었습니다.
(사실은, 과거에 대한 반성일 수 있습니다.)
https://www.aladin.co.kr/m/bookfund/view.aspx?pid=26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