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은 유럽중심 비판이론의 한계와 글로벌 사우스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하는 보아벤투라 드 소우자 산투스의 『남의 인식론』 중에서 <서론> 부분을 요약하며 읽은 내용입니다. 원문은 원고지 150매 이상의 긴 글입니다.

서론 서구중심의 비판이론 및 정치적 상상력과 거리두기

이제는 다른 시선을 가질 때

20세기 이후, 유럽 중심의 비판이론은 자유와 평등, 해방을 꿈꾸는 정치적 상상력의 핵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러한 전통은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남의 인식론』 서론에서 보아벤투라 드 소우자 산투스는 서구중심의 비판 전통과 거리두기를 시도하며,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해방적 정치 상상력과 이론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산투스 교수에 글에 따르면, 서구 비판이론의 다섯 가지 한계를 짚을 수 있습니다. 그가 내놓는 진단과 분석은 명쾌한 언어로 표현됩니다.

먼저, 강한 질문에 약한 대답. 인권, 민주주의, 발전 등 서구적 원칙들은 현실의 모순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 글로벌 사우스의 저항과 투쟁은 이러한 개념들의 한계를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둘째, 끝없는 자본주의의 종말. 자본주의의 위기를 비판하면서도, 유럽 중심 이론은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의 다양한 시도들(예: ‘수막 카우사이’, ‘공동체적 사회주의’)이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줍니다.

셋째, 끝없는 식민주의의 종말. 정치적 독립이 식민주의의 종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산투스 교수는 내부 식민주의가 지속되고 있으며, 문화적・인종적 억압의 심화를 지적하면서, 탈식민적 연대를 모색합니다.

넷째, 시간성의 딜레마: 긴급성과 문명적 변화의 충돌. 기후위기, 불평등, 전쟁 등은 즉각적인 행동을 요구하면서도 장기적 문명 전환을 동시에 필요로 합니다. 산투스 교수가 중심이 되었던 세계사회포럼은 이 두 시간성을 조화롭게 결합하려는 실험장이었습니다.

다섯째, 비판적 명사의 상실과 이론과 실천의 유령적 관계. 산투스 교수는 비판적 명사 즉 사회주의, 혁명 등 본래의 비판적 언어가 사라지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그대신 형용사 중심의 수식어로 대체되면서 비판의 힘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실천은 원주민, 여성, 농민 등 새로운 주체들이 이끌고 있지만, 기존 이론은 이들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세계사회포럼 이후의 인식론적 전환. 세계사회포럼은 북반구의 중심적 이론을 탈중심화하고, 남반구의 다양한 실천과 지식이 동등하게 평가받아야 함을 보여주기 위한 운동과 실천입니다. 이제 우리는 과학적 지식뿐 아니라 토착 지식, 대중 지식, 종교적 지식까지 포함하는 ‘지식의 생태학’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도 요점이죠. 우리는 지금 ‘근대적 해결책이 더 이상 없는 근대적 문제들’을 마주한 전례 없는 과도기에 살고 있습니다. 전통적 전위 이론은 놀라움과 낯선 실재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실천을 따라가고, 해석하며, 번역하는 ‘후위 이론’입니다. 이는 남반구에서 비롯된 경험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상호문화적 대화를 통해 새로운 해방의 길을 모색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글로벌 사우스의 시선으로 세계를 다시 보다.

이 글이 전하는 가장 큰 메시지는 하나입니다. 더 이상 서구 이론만으로 세계를 설명할 수 없으며, 그 외의 수많은 삶의 지혜와 정치적 실천을 배워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좌파 이론의 재구성, 해방의 새로운 상상력은 ‘남으로 향함’에서 시작됩니다.

한국은 이제, 지구상의 최빈국에서 불과 몇십 년 만에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하죠. 눈 떠보니 다시 후진국이 되었다고도 하고 독재 국가로 진행한다고도 합니다만, 현재 한국의 경제력과 민주주의력으로 봤을 때 글로벌 사우스가 아니라 글로벌 노스 쪽으로 편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근대적 해결책이 없는 근대적 문제들이 여전한 한국 사회가 마주한 전례 없는 과도기’에, 산투스 교수의 『남의 인식론: 인식론 살해에 맞서는 정의(Epistemologies of the South: Justice against Epistemicide)』는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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