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두 가지 흐름이 상호 교차하며 흐른다. 하나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 즉 조현증을 앓는 어머니를 돌본 경험을 풀어낸 스토리텔링이다. 다른 하나는 저자가 자신의 경험 속에서 나이듦, 노년, 돌봄, 죽음 등의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얻은 인문학적 성찰들이다. 저자는 어머니를 돌본 시간을 반추하며 나이듦과 노년, 그리고 이를 대하는 우리의 사회·문화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고 인생의 노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간다. 그리하여 저자는 노화의 의미를 쇠퇴와 하락이 아닌 ‘성장’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며, 노년을 맞는 이들과 그 곁을 지키고 있는 모든 이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노화도 성장이다
나이듦, 노화는 흔히 손실과 퇴행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저자는 나이듦의 의미를 구하며 오히려 ‘성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계속해서 늘어나고 많아지는 것을 성장이라고 본다면 신체적 측면에서는 일정 시기가 되면 성장이 다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이해한다면 성장과 관련해서 중요한 것, 바로 ‘깊이’와 ‘농도’를 간과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깊이와 강렬도는 길이와 무게의 한계를 넘어서는 까닭에, 양적이고 물질적인 성장이 다해도 우리는 깊어지고 축적되는 굴곡의 성장기를 여전히 유지한다. 저자는 이와 같이 ‘성숙’으로 대변되는 깊이의 성장에는 끝이 없고, 이 성장기의 마지막을 가리키는 시기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죽음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노화는 우리의 신체가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려고 준비하는 작용 속에서, 어떻게 하면 그런 현상들과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오르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즉, 노화를 미처 못다 이룬 내적 성장을 추구할 수 있는 제2의 성장기로, 삶에 부여된 기회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화에 저항하는 문화에 저항하기
우리는 나이듦을 실제 현상과는 달리 갑작스럽게 불현듯 다가오는 것처럼, 마치 일종의 ‘발견’처럼 느낀다. 현상과 발 맞추어 제때 노화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노화를 애써 바라보려 하지 않았던 습관들의 축적물이다. 저자는 이것이 ‘나이듦이라는 필수적인 과정의 수긍’을 방해하는 구조가 너무 견고하고 광범위해서 의식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산재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우리 사회에서 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기보다는 방지되어야 할 현상으로 치부된다. 그리하여 노화 방지(안티에이징) 산업이 해마다 성장하며, 제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이 칭찬으로 통용된다. 또, 생산성이 떨어지는 존재로서의 노인됨을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이로 인해 세대 갈등이나 노인 소외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저자는 이 같은 사회와 문화에 맞서, ‘반노화에 저항하는 주체성’을 만들어 가자고 말한다. 그렇게 한다면 피할 수 없는 노화를 거부하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비롯되는 불안과 갈등을 덜어내고 소외된 마음의 소리에도 귀 기울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삶과 죽음의 분리를 넘어
우리는 누구나 조금씩, 매일 변화를 겪으며 조금씩 나이 들어 간다. 그리고 그 방향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죽음을 향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나이 들어 간다는 것, 산다는 것은 곧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눈앞 도처에는 삶만 있을 뿐 죽음은 보이지 않는다. 도시화와 현대화가 진행될수록 죽음은 더욱더 매끈하게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 버리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죽음이 옮겨진 자리를 영속성이라는 환상이 차지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이러한 삶과 죽음의 분리를 자연과 인간의 분리와 유사한 형태로 인식한다. 즉, 자연을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다는 착각과 죽음의 질서를 조절할 수 있다는 착각은 서로 비슷하게 구조화된다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나이듦은 이러한 분리의 독단과 오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자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죽음을 사장시킨 삶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틈새마다 스며 있는 ‘죽음 감수성’을 되살려 내자고 말한다. 소유와 축적을 허용하지 않는 유한성의 직시야말로 삶 자체에 대한 애착을 있는 그대로 살려 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