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라틴어 한마디쯤은 알고 있죠. 코기토 에르고 숨. 코기토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르네 데카르트의 말입니다.



르네 데카르트

나는 생각한다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스스로의 발로 처음 서는 인간에게 주어진 유일한 무기유일한 자기증명법결국에는 신에 대한 부정으로 서서히 이어지는 아득한 바벨탑의 시초.

두 번째 코기토는 니체의 도덕의 계보에 나옵니다.
 
인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로 신은 존재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물론 이 언사는 그가 ‘금욕주의적 이상을 비꼬는 데 사용한 거지만실은 그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사용했다 해도 별로 놀랍지 않을 듯합니다그가 부정하고 싶었던 건 신이 아니라어리석은 인간들이었습니다한없이 어리석으면서도 이성이란 걸, ‘인식이란 걸 항상 갖고 있는 척하는 비천하고열등한 인간그리고 결정적으로 니체 자신의 우월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사실 ‘이란 그에게 있어서 부정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이나 달성해야 할 최종 단계였습니다.

세 번째 코기토는 라캉의 세미나 무의식에 있어 문자가 갖는 권위 또는 프로이트 이후의 이성에서.  

나는 내가 아닌 곳에서 생각한다그러므로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없는 곳에서만 존재한(I thinkwhere I am notthereforeI am where I donot think).



자크 라캉


인간이 생각하는 주체-이성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데카르트의 신화는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고이제 라캉은 코기토를 그답게 뒤틀며 말합니다그리하여 이 코기토는 자연스레 그의 스승 프로이트를 떠올리게 합니다프로이트는 자신의 분석학 강의의 열여덟 번째 강의 외상에 대한 고착무의식에서 인류는 지금까지 두 번의 커다란 모욕(첫 번째 모욕은 코페르니쿠스로부터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두 번째 모욕은 다윈으로부터인간이 창조에 의한 특권을 누린 유별난 존재가 아니라는)을 받았으며이제 마지막 모욕자아/주체가 존재의 주인이 아니라는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문학에서의 코기토일반적인 인간-존재에 대한 탐구로서의 코기토가 아니라글쓰는 존재에 대한 탐구로서의 코기토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의 검은 책에서 주운 마지막 코기토.
 
나는 다른 사람이다고로 존재한다.



오르한 파묵
이 글은 이치은 에세이, 『천상에 있는 친절한 지식의 중심지』(알렙, 2020)에 수록된 단편을 재구성하여 쓴 것입니다. 『천상에 있는 친절한 지식의 중심지』는 책 읽기, 책 속의 그림, 책 속의 문장에 관해 쓴 이치은의 단편 에세이들입니다. 이치은 작가는 짤막한 단상이 잡문이나 메모 정도에 지나지 않고, 읽히는 글이 되게끔 세심하게 글감을 골랐습니다.


천상에 있는 친절한 지식의 중심지
도끼열쇠찌꺼기가 된 어느 소설가의 생각 부스러기들
이치은 지음 | 알렙 | 2020.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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