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가 낳은 가장 혁신적인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1952년에 발표한 『또 다른 심문들』에는 유명한 동물의 분류 방식이 나옵니다.



아르헨티나의 대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사실 그는 프란츠 쿤 박사의 중국백과사전에서 인용했다고 주장했죠그리고 다시 미셸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재인용했고마지막으로 수다쟁이 아저씨 움베르토 에코가 궁극의 리스트에서 재재인용해서 더더욱 유명해졌습니다한번 볼까요?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


a. 황제에 예속된 동물들
b. 박제된 동물들
c. 훈련된 동물들
d. 돼지들
e. 인어들
f. 전설의 동물들
g. 떠돌이 개들
h. 이 분류 항목에 포함된 동물들
i. 미친 듯이 날뛰는 동물들
j. 헤아릴 수 없는 동물들
k. 낙타털로 만든 섬세한 붓으로 그려진 동물들
l. 그 밖의 동물들
m. 방금 항아리를 깨뜨린 동물들
n. 멀리서 보면 파리로 보이는 동물들
 



움베르토 에코


그러면이 놀라운 분류 방식을 고안해 냈으면서도 짐짓 프란츠 쿤 박사에게서 인용했다고 주장하는 보르헤스의 말은 사실일까요?
그 백과사전의 제목은 바로 천상에 있는 친절한 지식의 중심지입니다물론 그건 보르헤스의 18번인 이른바 가짜 인용입니다.
당연히 이런 책은 존재하지 않으니 아마존이나 중국 헌책방을 찾아 헤매지 말아야 합니다*^^*

볼 때마다 웃음 짓게 하는 이 놀라운 분류 방식. 이런 놀라운 분류표를 고안해 낸(고안해 냈으면서도 짐짓 고안한 것이 아니라 타인이 쓴 글에서 빌려 왔다고 천연덕스럽게 농을 던지는) 보르헤스는 어디에 속할까요? 
당신은 어디에 속하는가요? 그리고 이 책을 쓴 이치은은 어디에 속할까요? 



이 글은 이치은 에세이, 『천상에 있는 친절한 지식의 중심지』(알렙, 2020)에 수록된 단편을 재구성하여 쓴 것입니다. 『천상에 있는 친절한 지식의 중심지』는 책 읽기, 책 속의 그림, 책 속의 문장에 관해 쓴 이치은의 단편 에세이들입니다. 이치은 작가는 짤막한 단상이 잡문이나 메모 정도에 지나지 않고, 읽히는 글이 되게끔 세심하게 글감을 골랐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