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책들에서 주운 부스러기에 대한 책이다. 지금까지 써 왔던 소설들보다는 한결 ‘실용적’이라고 칭할 수 있는 책. 쾌락을, 언제나 쉬이 사그라지고 마는 쾌락을 조금 더 오래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글. 필사(必死)할 즐거움들을 보존하기 위해 행해지는 필사(筆寫).” ―이치은(작가) 책은 도끼인가, 열쇠인가, 찌꺼기인가? 어느 소설가의 생각 부스러기들 Celestial Emporium of Benevolent Knowledge작가 이치은은 자신을 키운 건 팔할이 부스러기들이라고 한다. 10년이 더 넘은 작가의 습관이다. 책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찾으면 당장 눈에 띌락 말락 한 dog ear를 만들고(책 한귀퉁이를 접고) 다 읽은 후에 포스트잇으로 옮겨 적기. 그리고 그렇게 만난 문장들을 부스러기라고 부르기. 『천상에 있는 친절한 지식의 중심지』에는 작가의 오랜 습관에 더해, 오랜 사색이 빚어낸 책과 그림들 그리고 시간과 기억에 관한 단상들이 펼쳐진다. 그리하여 보르헤스의 말처럼, 그가 읽어내고 간추린 부스러기들은 작가 이치은이 “선구자들을 창조하는 데” 역할을 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삶과 창작의 원천으로서의 책 읽기이되, 가볍고 재치 있게, 사색의 단상을 펼쳐 보인다.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책들에서 주운 부스러기에 대한 책이다. 지금까지 써 왔던 소설들보다는 한결 ‘실용적’이라고 칭할 수 있는 책. 쾌락을, 언제나 쉬이 사그라지고 마는 쾌락을 조금 더 오래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글. 필사(必死)할 즐거움들을 보존하기 위해 행해지는 필사(筆寫).” ―이치은(작가) 아르헨티나의 대작가 보르헤스는 1952년에 발표한 『또 다른 심문들』에서 동물의 분류 방식을 제시한다. a. 황제에 예속된 동물들 b. 박제된 동물들 c. 훈련된 동물들 d. 돼지들 e. 인어들 f. 전설의 동물들 g. 떠돌이 개들 h. 이 분류 항목에 포함된 동물들 i. 미친 듯이 날뛰는 동물들 j. 헤아릴 수 없는 동물들 k. 낙타털로 만든 섬세한 붓으로 그려진 동물들 l. 그 밖의 동물들 m. 방금 항아리를 깨뜨린 동물들 n. 멀리서 보면 파리로 보이는 동물들 그는 이를 프란츠 쿤 박사의 중국백과사전에서 인용했다고 주장했다. 그 백과사전의 제목이 바로 『천상에 있는 친절한 지식의 중심지』이다. 다시 미셸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이를 재인용했고, 마지막으로 움베르토 에코가 『궁극의 리스트』에서 또 한 번 재재인용한다. 물론 그것은 보르헤스의 주특기인 이른바 ‘가짜 인용’이다. 보르헤스가 말한 이런 책은 존재하지 않으니 미국 아마존이나 중국 헌책방을 찾아 헤매지 않도록! 당연히, 이치은의 『천상에 있는 친절한 지식의 중심지』는 한국의 모든 서점에서 구할 수 있다! 작가 이치은은 자신을 키운 건 팔할이 부스러기들이라고 한다. 10년이 더 넘은 작가의 습관이다. 책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찾으면 당장 눈에 띌락 말락 한 dog ear를 만들고(책 한귀퉁이를 접고) 다 읽은 후에 포스트잇으로 옮겨 적기. 그리고 그렇게 만난 문장들을 부스러기라고 부르기. 『천상에 있는 친절한 지식의 중심지』에는 작가의 오랜 습관에 더해, 오랜 사색이 빚어낸 책과 그림들 그리고 시간과 기억에 관한 단상들이 펼쳐진다. 그리하여 보르헤스의 말처럼, 그가 읽어내고 간추린 부스러기들은 작가 이치은이 “선구자들을 창조하는 데” 역할을 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삶과 창작의 원천으로서의 책 읽기이되, 가볍고 재치 있게, 사색의 단상을 펼쳐 보인다.
당신에게 책은 무엇인가? 도끼인가, 열쇠인가, 찌꺼기인가?
당신에게 읽을 대상으로서의 책은 무엇인가? 언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인가? 자신의 마음속 한 번도 가지 못한 방을 여는 열쇠인가? 체험의 찌꺼기일 뿐인가? 아니면 우리의 체험과는 아무 상관 없이 그저 세계에 덧붙여진 부록 같은 것인가? 이치은이 카프카와 보르헤스의 입을 빌려 묻는다. “책은 무엇인가?” 도끼인가, 열쇠인가, 찌꺼기인가? 먼저, 카프카가 책에 대해 말한 문장 중 흔히 인용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이 문장은 1904년, 그러니까 20살의 카프카가 친구인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에서 인용한 문장이다. 이치은은 “책은 도끼”라는 카프카의 말이 전혀 카프카스럽지Kafkaesk 않다고 말한다. 이치은이 찾은 ‘진짜로’ 카프카스러운 부스러기가 있다. 역시,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이 말이 나온다. “많은 책들은 자신의 성 안에 있는 어떤 낯선 방들에 들어가는 열쇠 같은 역할을 하네.” 카프카의 편지에는 책-독서에 대한 이야기가 드물다. 그리고 다음 글도 카프카가 직접 남긴 말이 아니라, 구스타프 야누흐란 사람이 카프카의 대화를 기록한 말이다. 그를 다시 만났을 때 나는 그동안 ‘닥치는 대로’ 읽었던 책들을 열거했다. 카프카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서는 비교적 쉽게 그렇게 많은 책을 끄집어 낼 수 있지만, 책에서는 거의, 정말 거의 인생을 끄집어 낼 수 없어요.” “글은 체험의 찌꺼기에 지나지 않아요.” 이치은에게 책은, (카프카스럽지 않지만) 도끼이며, (카프카스럽게도) 열쇠이며, 찌꺼기이다. 이치은은 더 나아간다. 보르헤스는 『노란 장미』에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 “책들은 세계의 거울이 아니라 세계에 새로 덧붙여진 어떤 무엇이라는 것.” 소설을 쓰는 이치은 작가에게 책이란 보르헤스적인 의미가 강하다. 보르헤스는 『또 다른 심문Otras Inquisiciones』이란 책에서 “실제로 모든 작가들은 그들의 선구자를 ‘창조’했다.”고 말했다. 책은 도끼일 수도, 열쇠일 수도, 찌꺼기나 문일 수도 있지만, 이치은 작가에게 책은 기존의 세계에 새로 덧붙이는 어떤 무엇이며, 그렇게 덧붙여졌을 때에 그 기존의 세계가 유의미한 것이 되는 어떤 무엇이라는 것이다. 무작정 시대의 조류에 휩쓸리거나, 유행을 선도하는 동시대나 전시대의 거장을 따라한 게 아니라 스스로 새로움을 만들었다는 자신감. 어쩌면 어느 시대나 예술가에게 필요한 게 바로 이런 자세가 아닐까? 이치은은 스물여덟의 나이에 <오늘의 작가상>을 받고 화제로 떠올랐던 소설가였다.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대형 신인의 탄생”이란 극찬을 했던 작가였다. 하지만, 오랜 공백으로 인해, 그리고 상당한 아방가르드적인 문학 성향으로 인해, 이치은은 그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이치은은 20년 동안 장편소설 6편과 단편소설집 1편을 펴낸, 그리 과작의 작가는 아니다. 이 책은 이치은 작가의 ‘책 읽기’에 대해 쓴 책이다. 작가에게 책 읽기란 무엇과도 비교하기 힘든 커다란 쾌락이다. 작가는 자주 스스로에게 ‘책 읽기’가 더 큰 쾌락을 가져다주는지, 아니면 ‘책 쓰기’가 더 큰 쾌락을 가져다주는지 묻는다. 답은 그때 그때 다르지만 그래도 ‘책 읽기’가 답일 때가 더 많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을 손에 든 바람에 괴로울 때도 수없이 많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신을 산산이 해체할, 놀라운 기쁨을 선사해 줄 또 다른 책을 만날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책 읽기, 책 속의 그림, 책 속의 문장에 관한 70편의 단상
『천상에 있는 친절한 지식의 중심지』는 책 읽기, 책 속의 그림, 책 속의 문장에 관해 쓴 이치은의 단편 에세이들이다. 도끼로서의 책, 열쇠로서의 책 혹은 부스러기들로서의 책에 대해 자유롭고 아무 격식 없이 이야기한다. 이치은은 짤막한 단상이 잡문이나 메모 정도에 지나지 않고, 읽히는 글이 되게끔 세심하게 글감을 골랐다. 책도락(冊道樂) 책이 인생의 큰 도락인 작가에게는, 천국에도 책이 있을까 묻는다. 책도 없다면, 거기는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다행히 Hortus Conclusus(닫힌 정원)라는 그림을 보면 책은 있는 것 같아 안도하게 된다. 하지만, 만에 하나, 천국에는 없는 책들이 없지만(그러면 그건 정말 천국이라 불릴 만하겠다) 성경처럼 모두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로 쓰여 있다면? 거기야말로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지옥이겠다. 지극히 사적인 취향 글을 쓰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다. 또 “SF에 대한 나의 편견을 둘러싼” 정반대의 변명도 있다. 이치은 작가는 “지극히 사적인, 추리소설들을 위한 명예의 전당”에 자신만의 리스트를 올린다. 취향이란 존재에 닿아 있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 그것은 DNA에 적혀 있거나 아니면 기억하기 힘든 아주 어렸을 적부터 형성된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다. 순환되거나 역전되는 현상, 세계 이치은 작가의 소설 작품들의 경향과 유사하게, 이야기의 주제는 순환되거나 역전되는 시간과 기억에 관한 것으로 옮아간다. “시간에 대한 SF 작가들의 상상력”, “역행하는 시간, Through the Looking-Glass”에서 시간과 기억은 종종 역전된다. (왕의 시종이 있어. 지금 벌을 받아서 감옥에 갇혀 있지. 재판은 다음주 수요일에나 열릴 거야. 당연히 범죄는 가장 나중에 저질러지지.) (뒤로만 작용을 하다니 형편없는 기억이로구나.) 영국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네 번째 앨범 『움마굼마』(1969)의 커버 사진은, 사진 속의 사진들로 반복된다. 반복되면서 조금씩 변주되는 사진들. 그들의 아방가르드한 음악처럼 천천히 응시하면 점점 더 빨려들 것 같은 이상한 사진. 또 다른 호사, 그림: 책 속의 그림 속의 책…… 이치은 작가가 호사스럽게 누리는 또 다른 책에 관한 사치는, 책을 통해 그림(회화)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 책의 2부에는 그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가 그림을 찾은 팔 할 이상의 장소는 책이었다. 나머지 일 할 오 푼의 그림은 인터넷에서, 나머지 오 푼의 그림은 박물관-미술관에서이다. 작가는 책에서 그림을 보는 것을 선호한다. 그림책, 화집, 도록, 미술 비평서. 부스러기들처럼, 작가는 조금은 다른 방식이지만 작가에게 커다란 희열을 가져다주었던 그림들 한 장 한 장을 정성스레 도려내어 펼쳐놓는다. 그 방식은 역시 호사가의 취미처럼 다양하다. 자신에게 푼크툼Punctum이 되었던 그림, 자신만의 빌보케를 만드는 현대미술의 경향, 책 속의 그림, 그림 속의 책, 랭보의 5가지 색깔과 매칭되는 화가들, 페스타이올로들, 이상한 제목의 그림들 등…… 전문적인 식견을 갖춘 미술 비평이 아닌, 다양한 방식의 미술작품 감상법을 선보인다. 부스러기들, 책 읽기에 대해 쓴다는 것 그리고 작가의 10년도 더 넘은 실용적인 목적의 습관에서 비롯된 글들이 있다. 책 읽기에 대해 쓰는 것은 책 쓰기와는 또 다른 차원의 행위다. 책 읽기와 책 쓰기는 각각 커다란 쾌락을 작가에게 가져다주지만, 책 읽기에 대해 쓴다는 것은 단지 쾌락에서 시작한 일이 아니다. 약간은 실용적인 목적도 있다.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작가에게 주어졌던 커다란 즐거움을 완전히 잊지 말고 가끔씩 꺼내보기 위해, 작가는 책 읽기에 대해 써 왔다. 처음에는 아주 사적인 형식의 글들이었다: 작은 메모들, 작은 쪽지들, 작은 낙서들. 이치은은, 책 속에 묻혀 있는 짧은 문장들을 찾아서 그것들을 메모의 형식으로 남겨 두었다. 그런 문장들을 작가는 ‘부스러기’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하여, 이 책은 작가가 좋아하는 책들에서 주운 부스러기에 대한 책이다.
이치은 ‘인생은 금물’이라는 가르침을 듣지 않고 1971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공업화학과 졸업. 같은 곳에서 석사학위 획득. 1998년 『권태로운 자들, 소파 씨의 아파트에 모이다』로 제22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 그닥 별스런 꿈 때문에 새벽잠을 설치는 일도 없이 아직 마루가 꺼지지 않은 은신처에서 가족들과 함께 ‘정신은 그 어떤 결심에 의지하지 않았을 때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라는 엉터리 선인의 말만을 붙들고 오늘도 매일매일 하루하루 별일 없이 산다. 2003년 『유대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사라졌는가?』, 2009년 『비밀 경기자』, 2014년 『노예 틈입자 파괴자』(2014년 세종도서 문학 부문 선정), 2015년 『키브라, 기억의 원점』, 2018년 『보르헤스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논쟁』, 『마루가 꺼진 은신처』를 발표하였다. 천상에 있는 친절한 지식의 중심지 도끼, 열쇠, 찌꺼기가 된 어느 소설가의 생각 부스러기들 이치은 지음 | 알렙 | 2020. 1.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