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에 발표된, 가장 아방가르드한 국산 밴드 어어부(漁魚父) 프로젝트 사운드의 혁명적인, 하지만 대중들의 철저한 무시를 받았던 2집 더블 앨범 「개, 럭키스타」의 열다섯 번째 싱글의 제목은 「마루가 꺼진 은신처」이다. 지옥에라도 들고 가고 싶은 훌륭한 앨범이다. 이때만 해도 ‘저자’라는 별명 뒤에 숨어 있었던 백현진이 썼다는 가사를 그대로 옮겨본다.

평상시처럼 너는 걸어간다
웅성대는 사고현장을 가로질러
붉은 색 도로 위에 흰 드레스
맨홀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고
온전한 곳을 기대할 수 없는
너는 설마하면서
피해보려고 할 때 니 심장에
정확히 관통된다
반복돼.

아침 유리창은 녹아내린다
피투성이 이웃의 도움 요청 소리
반복되는 초시계 박동에 놀라
현금수송 차량은 개를 또 짓이기고

너는 재빠른 총총걸음으로
막다른 골목을 향해
네 몸을 숨기려고 문을 열면
마루가 꺼진 은신처
반복돼

너는 이제 초조하다
너는 진작 초조했다
너는 도처에 있었다
너는 다 알고 있었다
반복돼

「선고/자백」의 충격적인 시작도 놀랍고 「하수구」의 노곤함도 좋고 「어항 속의 다방」도 흥겹고 「수사반장」도 혁신적이지만, 이 앨범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고르라면 이 노래를 고르겠다.

나는 처음 이 소설을 쓰기 전에 한동안 이 소설의 제목을 『불화의 소멸』로 할 것인지, 『마루가 꺼진 은신처』로 할 것인지 고민했었다. 누추한 소설의 제목으로 자신의 노래 제목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백현진 님에게 감사드린다.

2018년 11월
이치은

<마루가 꺼진 은신처>의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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