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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걷다 - 2009 경계문학 베스트 컬렉션 ㅣ Nobless Club 11
김정률 외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2008년 1월 경계소설을 표방하며 출발한 노블레스클럽은 첫 작품 <얼음나무 숲>부터 <오우 다섯시의 외계인>까지 1년여동안 모두 9작품 10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리고 마침내 1주년을 맞는 노블레스클럽이 야심차게 준비한 열한 번째 책 <꿈을 걷다>. 이 책은 전민희, 좌백, 하지은 등 유명 장르작가 12명의 작품을 엮은 단편집이다.
국내 장르소설 시장에서 경계소설이라는 용어도 생소한 면이 있지만, 단편집도 그닥 흔치 않다. 환상 문학 웹진 『거울』같은 곳에서나 꾸준히 작품집을 발표하지 주류 출판 시장에서 단편집, 그것도 장르 소설 단편집은 어느 정도 모험이라고 볼 수 있다.
같은 표지 안에 묶여 있지만,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상당히 다양하다. 동양을 배경으로 하는 무협풍의 이야기에서부터 독특한 세계관의 판타지까지, 웃음을 터뜨리는 유쾌한 이야기부터 비극으로 끝나는 사랑 이야기까지. 개인적으로 SF라고 부를만한 작품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쉽지만 말이다.
너무 다양하고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보니 쭉 읽다보면 다소 번잡스러울 때도 있다. 한 권의 책이 아니라 그냥 여러 권의 책을 붙여 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책의 제목이 "꿈을 걷다"인데 이건 수록된 작품들 중에서 고른 제목도 아니고 그 중에 이 말이 어울릴 만한 이야기도 별로 없다.
열세 편의 이야기 중에서 "꿈을 걷다"라는 제목과 그래도 엮어 볼만한 작품으로는 하지은 작가의 <앵무새는 단지 배가 고팠을 뿐이다>를 꼽고 싶다. 이 책에는 전체적으로 비극 혹은 공포 분위기의 이야기가 많은데, <앵무새...>는 웃음이 절로 나오는 이야기다. 다소 과장되고 억지스러우면서 그것까지도 웃음의 요소가 된다. 그냥 가볍게 읽을 수도 있지만, 문장들을 음미하다 보면 은근히 뼈가 있는 웃음이다. 꿈을 꾼다는 것, 꿈을 이룬다는 것, 혹은 꿈을 잃는다는 것에 대해.
<얼음나무 숲>의 하지은 작가와 마찬가지로 노블레스클럽에서 <라크리모사>를 출간한 바 있는 윤현승 작가도 이번 작품집에 참여했다. 그는 이번에도 <인카운터>에서 또한번 반전의 묘미를 보여준다.
무협소설로 유명한 좌백 작가는 <느미에르의 새벽>으로 새로운 분위기의 작품을 선보였다. 다양한 이종족, 기계 생명체와 그 변이과정, 금속성의 삭막한 배경 등은 문득 일본 만화 이트맨을 떠올리게 했다.
한상운 작가의 <거름 구덩이>는 처음에는 무협소설인가 했는데, 뒤로 가면서 좀비 소설을 보는 기분이었다.
12명의 작가들 중 유일하게 진산 작가는 <두 왕자와 시인 이야기>, <그릇과 시인 이야기> 두 편을 실었다. 이 두 이야기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어찌보면 진부할 수도 있는 소재들을 섬세하게 엮어내며 그 안에 인생과 세상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아내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전민희 작가의 <11월 밤의 이야기>도 "꿈을 걷다"라는 제목에 어울릴 법하다. <앵무새...>에서와는 다른 의미의 꿈을 이용해, 세심한 설정과 잘 짜여진 액자구조 속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책을 받고 나서 나중에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작품의 순서. 작가 이름의 가나다 순이다. 작품의 주제나 분위기와 상관 없이, 그냥 가나다 순으로 나열한 모양이다. 그래서 더 책이 한 권의 책같지 않고 따로 노는 느낌이었던 걸까.
어쨌든, 그러니 이번 책은 작품의 순서나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대로 골라 읽어도 상관 없어 보인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부터, 혹은 이전에는 가까이 하지 않았던 새로운 장르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