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걷다 노블우드 클럽 4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 / 로크미디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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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딕슨 카의 <밤에 걷다>. <퍼펙트플랜>이후 오랜만에 보는 노블우드클럽의 신간이다.

탐정 만화를 간혹 보긴 하지만, 이런 장르의 소설을 그닥 자주 읽는 편은 아니다. 존 딕슨 카라는 이름도 이번에 처음 들었고.

게다가 이 책이 쓰여진 게 1930년이랜다. 요즘엔 소설이든 영화든, 범죄를 저지르는 쪽이든, 해결하는 쪽이든 첨단 장비로 무장하고 덤비는지라 과연 20세기 초의 과학 기술로 얼마나 대단한 걸 끌어낼 수 있을까 싶었다.

확실히 장비는 한참 구식 티가 났다. 일일이 화학약품을 사용해 플래시를 터뜨려야 하는 구식 카메라부터 요즘 사용하는 디카에 비할 바가 아니니까.

하지만, 시대가 그러니 장비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사건에 접근하는 방법은 미국 드라마 CSI를 연상시킬 만큼 과학적이고 체계적이었다. 현장 사진을 찍고 시체를 부검하고 지문을 채취하고 현장에 남아 있던 작은 흔적까지 모아 분석하고, 심지어 전문가를 불러 심리분석까지 한다.

처음에는 그냥 '아, 밀실살인...(김전일의 단골 메뉴지. -_-;)'이런 정도였는데, 뒤로 갈수록 서서히 밝혀지는 인물들간의 관계와 냉철하게 사건에 접근하는 수사관의 모습이 교차하며 긴장감을 더했다.

아무래도 추리 소설이다 보니 사소한 내용도 천기누설이 될 수 있어서 여기에 자세한 걸 적기는 그렇지만, 설사 범인을 미리 알고 결말을 예측한다고 해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다.

앞으로 노블우드클럽에서 존 딕슨 카의 작품들이 계속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다음 책도 기대.

 

기억에 남는 대사를 하나 꼽으라면 이거.

"박사는 소중하니까." - 110쪽 15줄

원서에는 뭐라고 나오는지 심히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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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달의 무르무르 Nobless Club 13
탁목조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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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설정부터가 무척 흥미롭다. 프롤로그를 지나고 첫 장(chapter)을 넘어갈 때쯤, 머릿속에는 이미 하나의 행성계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어둠속에 묻힌 작은 달위에 하나씩 생명이 꿈틀거린다.

책을 읽어가면서 문득 아이작 아시모프의 <전설의 밤(Nightfall)>이 떠올랐다. 태양이 여섯개나 되는 그 행성에는 낮이 계속된다. 그곳에 사는 인간들에게 밤은 말 그대로 ‘전설’이다. 이와 반대로 가이아의 일곱번째 달은 항상 어둠에 덮여 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자면 행성의 그림자에 가려져 이곳에 사는 인간들은 태양을 직접 볼 수 없다.

<전설의 밤>에서는 2천년에 한번 일식이 일어나 어둠이 대지를 덮는데 반해 무르무르의 달은 시작도 끝도 없이 일식 상태가 계속되는 셈이다. 그들은 별을 모르고 무르무르는 태양을 모른다. 그나마 주기적으로 찾아 오는 ‘전설의 밤’과 달리, 이미 행성의 그림자에 갇힌 일곱번째 달은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구미가 당기는 흥미로운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이 이야기는 무르무르족 스포러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다루며 마치 한 영웅의 일대기처럼 보인다. 남다른 출생 배경속에 영웅이 태어나고 자라고 여러 모험을 겪으며 성장해 마침내 운명과 마주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일곱번째 달 그 자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이 세계는 치밀하고 유기적으로 구축되어 있다. 수십종에 이르는 인간형 종족, 다양한 식물과 동물, 심지어 사후세계라고 할 수 있는 영혼까지도 작가가 창조한 세계안에서 살아 움직인다.

<전설의 밤>에서 인간들이 천문 현상을 ‘전설’로 취급하는 것처럼, 일곱번째 달의 각 종족들 사이에 전해져오는 온갖 전설들도 결국은 자연 현상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전설 뒤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가는 것은 마르지 않는 호기심과 도전 정신으로 무장한 스포러 같은 인간이리라.

저주네 유배네 하지만, 나는 이 달이 오히려 축복받은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토록 다양한 생명이 온땅에 퍼져 살아가는 그것을 과연 저주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일곱번째 달이 키운 위대한 탐험가들은 이제 대지를 박차고 신세계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달 전체를 덮는 결계란 것도 안에 있는 것을 가둔다고 볼 수도 있지만, 보호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 밖은 물도 공기도 생명도 없는 진공의 우주 공간이니 말이다. 그래도 그들은 계속 대지를 벗어나려고, 결계밖으로 나가려고 몸부림친다. 끊임없이 또다른 세계를 꿈꾸고 우주를 동경하는 우리 지구인들 처럼.

키메리에스가 몸을 숨겨도 스포러는 그의 존재를 알아 차리는 것 처럼 일곱번째 달이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고 해도 밖에서 그 존재를 인지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 가이아가 빛의 고리 모양으로 보이고 낮과 밤을 구분하는 것으로 봐서 태양을 직접 보지는 못 해도 약하게 나마 간접적으로 빛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혹은, 다른 여섯 개의 달과 가이아의 궤도를 통해 또다른 천체의 존재를 유추할 수도 있다.

그림자 뒤에 가려진 진실을 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창한 힘이나 화려한 기술이 아니다. 돌아서서 어둠속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편견이나 두려움 없이 있는 그대로.

*‘무르무르(Murmur)’라는 이름이 낯설다는 독자들이 간혹 보이더라지. 무르무르는 마족의 일종으로 죽은 영혼을 소환해 부리는 능력이 있다. <판타지의 마족들>(들녘) 참고. 다른 종족들도 작가가 완전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라기 보다 기존의 전설 등을 어느 정도 참고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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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드라의 그물 Nobless Club 12
문형진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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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라고 들었는데, 정작 도입부를 읽으며 떠올린 것은 인터넷과 게임이었다. 단순히 모뎀이라거나 단말기라거나 하는 용어가 튀어나와서만은 아니다.

주인공 칼키는 처음에 아기로 등장하지만 순식간에 성인으로 변해버린다. 사실상 그의 기억은 이 시점에서 시작되는 셈이다. 그에 비해 그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 스킬을 다 갖고 있다. 이것은 마치 게임 캐릭터가 이미 자란 상태에서 게임속 세계로 던져지는 순간을 연상시켰다.

뒤로 가면서 칼키가 새로운 스킬을 하나씩 익히고 레벨업하는 과정을 보며 이런 느낌은 더욱 강해졌다. 오토마우스라도 써서 레벨업을 했는지, 아니면 폐인 처럼 잠도 안 자고 게임만 했는지, 칼키는 짧은 시간에 최강의 캐릭터로 성장한다.

그리고 칼키와 그의 연인(들)이 모든 미션을 클리어하는 순간 자신들의 육체는 단지 '아바타'일 뿐이란 것을 깨닫는다. 유저의 취향과 욕망을 반영해 선택된 캐릭터들인 것이다.

한편, 게임이 끝나자 붕괴된 세계는 '리셋'된다. 그리고 판타지 게임을 클리어한 유저는 이제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넘어간다.

주인공의 '깨달음'이란 결국, 모든 퀘스트가 끝나고, 만렙을 달성하고, 모든 스킬을 1랭까지 다 올려서 더이상 할 게 없어진 게임을 리셋해버리는 순간이다.

세계가 붕괴하는 순간에도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나의 게임이 끝나면 다른 게임으로 넘어가면 되고 캐릭터를 삭제해도 언제든 다시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 수 있으니까.

불교 용어와 스킬 이름들도 그냥 키워드나 명령어일 뿐이고, 이 책은 차라리 게임 소설에 가까워 보인다. 종종 칼키가 자신의 의식이 육체 및 세계와 분리된다는 식으로 말을 하는데 이것은 유저가 게임 밖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대략, 노블레스클럽의 책을 읽으며 이런 기분을 느껴보는 건 데스노블 이후 오랜만인 것 같다. 나름대로 시도는 나쁘지 않았고, 기존 판타지와 차별화하기 위해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려 애쓴 흔적도 보인다. 그런데, 약간 핀트가 어긋난 느낌이랄까.

아무튼, 불교의 탈(?)을 쓰긴 했지만, 거창하게 심오하거나 철학적인 뭔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용도 그닥 어렵지 않으니 가볍게 읽어도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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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걷다 - 2009 경계문학 베스트 컬렉션 Nobless Club 11
김정률 외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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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경계소설을 표방하며 출발한 노블레스클럽은 첫 작품 <얼음나무 숲>부터 <오우 다섯시의 외계인>까지 1년여동안 모두 9작품 10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리고 마침내 1주년을 맞는 노블레스클럽이 야심차게 준비한 열한 번째 책 <꿈을 걷다>. 이 책은 전민희, 좌백, 하지은 등 유명 장르작가 12명의 작품을 엮은 단편집이다.

국내 장르소설 시장에서 경계소설이라는 용어도 생소한 면이 있지만, 단편집도 그닥 흔치 않다. 환상 문학 웹진 『거울』같은 곳에서나 꾸준히 작품집을 발표하지 주류 출판 시장에서 단편집, 그것도 장르 소설 단편집은 어느 정도 모험이라고 볼 수 있다.

같은 표지 안에 묶여 있지만,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상당히 다양하다. 동양을 배경으로 하는 무협풍의 이야기에서부터 독특한 세계관의 판타지까지, 웃음을 터뜨리는 유쾌한 이야기부터 비극으로 끝나는 사랑 이야기까지. 개인적으로 SF라고 부를만한 작품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쉽지만 말이다.

너무 다양하고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보니 쭉 읽다보면 다소 번잡스러울 때도 있다. 한 권의 책이 아니라 그냥 여러 권의 책을 붙여 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책의 제목이 "꿈을 걷다"인데 이건 수록된 작품들 중에서 고른 제목도 아니고 그 중에 이 말이 어울릴 만한 이야기도 별로 없다.

 

열세 편의 이야기 중에서 "꿈을 걷다"라는 제목과 그래도 엮어 볼만한 작품으로는 하지은 작가의 <앵무새는 단지 배가 고팠을 뿐이다>를 꼽고 싶다. 이 책에는 전체적으로 비극 혹은 공포 분위기의 이야기가 많은데, <앵무새...>는 웃음이 절로 나오는 이야기다. 다소 과장되고 억지스러우면서 그것까지도 웃음의 요소가 된다. 그냥 가볍게 읽을 수도 있지만, 문장들을 음미하다 보면 은근히 뼈가 있는 웃음이다. 꿈을 꾼다는 것, 꿈을 이룬다는 것, 혹은 꿈을 잃는다는 것에 대해.

<얼음나무 숲>의 하지은 작가와 마찬가지로 노블레스클럽에서 <라크리모사>를 출간한 바 있는 윤현승 작가도 이번 작품집에 참여했다. 그는 이번에도 <인카운터>에서 또한번 반전의 묘미를 보여준다.

무협소설로 유명한 좌백 작가는 <느미에르의 새벽>으로 새로운 분위기의 작품을 선보였다. 다양한 이종족, 기계 생명체와 그 변이과정, 금속성의 삭막한 배경 등은 문득 일본 만화 이트맨을 떠올리게 했다.

한상운 작가의 <거름 구덩이>는 처음에는 무협소설인가 했는데, 뒤로 가면서 좀비 소설을 보는 기분이었다.

12명의 작가들 중 유일하게 진산 작가는 <두 왕자와 시인 이야기>, <그릇과 시인 이야기> 두 편을 실었다. 이 두 이야기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어찌보면 진부할 수도 있는 소재들을 섬세하게 엮어내며 그 안에 인생과 세상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아내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전민희 작가의 <11월 밤의 이야기>도 "꿈을 걷다"라는 제목에 어울릴 법하다. <앵무새...>에서와는 다른 의미의 꿈을 이용해, 세심한 설정과 잘 짜여진 액자구조 속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책을 받고 나서 나중에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작품의 순서. 작가 이름의 가나다 순이다. 작품의 주제나 분위기와 상관 없이, 그냥 가나다 순으로 나열한 모양이다. 그래서 더 책이 한 권의 책같지 않고 따로 노는 느낌이었던 걸까.

어쨌든, 그러니 이번 책은 작품의 순서나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대로 골라 읽어도 상관 없어 보인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부터, 혹은 이전에는 가까이 하지 않았던 새로운 장르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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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 2010-03-18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좌백님, 이번에 교보 북로그에 새 무협 연재 시작하셨더라구요. 혹시 보셨어요? 기대중입니다.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 Nobless Club 10
김이환 지음 / 로크미디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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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다섯 시의 외계인(이하 '오다외')는 이제까지 읽은 노블레스클럽의 책들 중에서 가장 유쾌한 이야기였다. 최근 몇 년 간 이렇게 웃으면서 책을 읽은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다.

오다외는 현실과 환상이 겹쳐지는 공간, 지구인과 외계인이 공존하는 세계를 통해 일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준다.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고, 다채롭지만 복잡하지 않고, 심오하지만 현학적이지 않다.

이야기는 고달픈 일상을 살아가는 어느 휴학생과 길잃은 외계인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누가 외계인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사람들과 섞이지 못 하고 겉도는 성우와 달리 정작 외계인인 용관은 지구인들과 의외로(!) 잘 어울린다. 순식간에 팬클럽(?)이 생길 정도로 인기폭발이다.

그에 비해 비상식적인 말과 행동을 보이는 사장님과 사모님이 더 외계인 같고,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 하는 주인공과 역시 그를 따돌리는 주위 사람들은 서로에게 외계인같은 존재일 뿐이다. 지구에서 태어나 지구에서 자랐지만 외계인 취급을 받는 지구인과, 지구인들 틈에 섞여 조금의 의심도 없이 - 심지어 다른 종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 어울리고 있는 외계인들.

이것은 길잃은 외계인이 분실물을 찾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이지만, 정작 지구인이면서 외계인 취급을 받으며 방황하던 한 청년이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지구로 여행온 외계인들인 게 아닐까. 친구를 찾아,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 어딘가에 있을 집으로 돌아갈 문을 찾아 헤매는 외계인.

그러니 길을 잃지 않게 조심하자. 매번 성우같이 친절한 지구인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닐테니까.

 

오다외를 그냥 즐겁고 가벼운 이야기로 읽을 수도, 거창한 철학이나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구인에게는 쓸모없는 물건이 외계인의 손에서 온갖 기능의 선물로 바뀌는 것처럼 책이란 것도 독자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기도 하는 신비한 물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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